정선군 북평면 숙암리 306번지,
오래 전부터 골짝의 이름을 단풍이 숲을 이루었다 하여 단임골이라 부르는
행정구역상으로서의 명칭으로
그 번지 속에 3년전 TV에 방영된 인간극장에서 꽃순이와 나무꾼으로 불리우는
리영광 박안자 부부가 살고 있다.
육십년대에 휴전선을 단신으로 넘어 귀순하여 안정된 직장도 갖고
도시에서의 화려한 생활도 누리던 그가 모든 것을 버리고 홀로 찾아든 곳이라
당시만 하여도 오지 중의 오지마을로서 진부 정선가는 큰 길에서 버스를 내려
서너 시간을 걸어걸어 오르던 골짝이 이제는 차가 다닐 수 있게 길이 생겨
더 이상 오지는 아니지만 겨울에 눈이라도 한 자 넘게 쌓이면 녹을 때까지 속절없다.
우체부도 눈쌓인 길을 허위허위 올라 날저물면 어느 집에서건
하룻밤을 묵고 내려갔다며
리영광 씨는 지금도 웃으며 그 이야기를 한다.
시월도 가는 어느 날의 아침에 서리는 내려 작은 텃밭의 무우 배추도 시든 듯 하였으나
따스한 아침햇살을 함뿍 받고는 다시금 생기를 찾는다.
이 가을의 단풍이 모두 지기 전에 단임골을 찾아보자 나선 발길이
용바위가 있다는 마지막 동네를 지나니
때이른 서리에 밭에서는 콩대를 베어 묶느라 분주하고,
해마다 오고가는 가을이건만 이 가을은 더욱 아쉽다는 듯
두툼하게 입은 화백들 몇은 단풍이 물든 골짝을 캔버스에 담느라 여념이 없다.
월정사에서 내려오는 오대천은 맑기도 맑아 여름이면 속을 알 수 없던
군데군데 깊은 소 바닥도 훤히 보이고
여울지어 흐르는 물에서는 세월을 낚는 태공이 한가롭게 낚싯대를 휘두른다.
좌우 병풍처럼 둘러쌓인 산으로 단임골은 고깔 속의 골짜기라
깍아지른 절벽 틈새 바위바위엔 붉은 단풍이 곱기도 하고
빨강 노랑 초록 그리고 두어 가지 색을 더한 오색으로 산은 물들었다.
그 옛날 지게지고 걸어오르던 개울 옆 오솔길은 희미한 흔적만 남아 낙엽이 쌓였고
바람부니 단풍은 떨어져 돌돌 소리내는 개울물에 떠내려간다.
속세를 떠난 골짝에 들어 단풍보고 물을 보느라 걸음은 느려지고
시간이 지날수록 육신조차 오색으로 물들어 내가 누구인지 알 수가 없다.
때마침 나무를 하러 스님과 함께 내려오는 나무꾼을 만난다.
우연히 찾은 단임의 풍광에 마음을 앗긴 청도 운문사에서 온 비구니스님은
떠나고 싶지 않다 하여
나무꾼 동네 비어있는 너와집에 들어 한 달 넘게 지낸다.
오늘도 꽃순이는 눈부신 하얀 빨래 가득 마당에 널었고
뜰에는 산수유가 빨갛게 익었다.
군불지핀 구들장에서는 알싸한 흙내와 함께 따스함이 온 몸을 감싼다.
오래 전 누군가 화전을 일구며 손수 집을 지어 문짝도 기둥도 이리 삐뚤 저리 빼뚤하지만
문은 잘도 닫히니 바람도 들지 않아 아늑하고,
따스한 방바닥에 누워서 보는 삐뚤빼뚤은 정겹기만 하다.
대낮이건만 흐릿한 전등불빛 아래 꽃순이의 옛이야기가 도란도란하다.
십여 년전 나무꾼의 근황을 알리는 방송을 보고 골짝을 찾아 함께 산책을 하던 중
풀 몇 포기가 돌에 깔리니 나무꾼은 말없이 돌을 치우더라 한다.
그 모습을 보고 여생을 함께 하겠노라 결심했다는...
골짝의 초입과 달리 한참을 올라온 이 곳은 단풍은 이미 지고
숲 속엔 낙엽만 수북하다.
작은 다리 하나 있는 삼거리 좌우로 개울을 끼고 또 한참을 거슬러 오르면
산 밑 양지바른 둔덕에 집들이 드문드문 몇 있고
어느 집의 굴뚝에서는 하얀 연기가 모락모락 피어오른다.
정선 산골 어디에서도 보는 이 풍경은 정선아리랑 가사에서도 볼 수 있음이라,
이웃집은 다문다문 산은야 울우리 창창하니
산수좋고 인심좋아서 무릉도원일세
섬섬옥수 흐르는 개울엔 다람쥐 넘나들고
작은 돌을 넘는 물은 소리낸다.
퐁퐁퐁
첫댓글 가을이 금방떠난 자리가 아직은 예뻐보입니다. 살면서 정말 인간적이라는 생각이 듭니다. 어느것하나 내려놓기가 아쉬워서 아둥아둥살다가도 님의 글을 보면 자연스럽게 두손이 펴집니다. 맑은 햇살이 늦가을를 지켜주려는듯 고운날입니다.
정선에 온지 3년이 지나니 이제 모든 집착에서 벗어난 듯 합니다. 그저 물같이 흘러흘러 가지요...
참으로 사람 살기 좋은~거 같습니다.
네비찍고 가보구 싶은 마음 입니다.ㅎㅎㅎ
아직 핸드폰도 되지 않는 곳이라 바쁜 분은 하루를 버티기 힘들다는...ㅎ
글로만 읽어면서도 그곳 풍광이 그림그리듯 눈에 선하게 다가옵니다..
글보다 실제는 그리도 좋습니다.ㅎ
천혜의 선택받은 그곳에서 살고계시는 나그네님에 하루는 무릉도원이 따로 없네요
정말 부럽슴당
부럽긴요... 몇 번 얘기했지만 서울서 정선으로 유배왔는디요.ㅎ
지난 목요일 설악산 흘림골에서 내려 오는데 용소폭포랑 선녀탕 물빛이 하도 청아해 그 속에 풍덩 빠지고 싶더이다..암요...무릉도원이 바로 그기지요...ㅎㅎㅎ나뭇군이 만든 부엌 싱크대가 아직도 생각이 납니다....꽃순이 무릎 생각해서 만들어준 설겆이대...ㅎㅎㅎㅎ하얀 설경 그대로 꽃순이 태운 수레를 끌고 내려오는 선하디 선한 그 미소 ..산에서나 찾아 볼수 있는 그 천진함....ㅎㅎㅎ
지금도 그 때와 같은 천진함을 잃지 않고 살아가고 있답니다.
삭제된 댓글 입니다.
많은 사람들이 시골로 가서 살겠다 하나 준비가 있어야 하고 때가 있음이니...
지난번 사진상으로 본 정선나그네님의 집주위 전경이 눈앞에서 아른그립니다,,,이제 가을이 깊어 낙엽이 쌓이고,,,곧 눈쌓인 소식이 들려 오겟지요,,,,,듣고만 있어도 마음이 편안해 지는 글입니다,,,,
네, 요즘 마당에는 묵은 솔잎이 많이도 떨어집니다. 갈퀴로 긁어 난로 불쏘시개로 쓰지요.ㅎ
지난주에 오대산소금강의물도 연두빛이엇습니다. 그물빚깔에 혼을 빼고 말엇엇는데...하물며, 정선의 절경을 보고 싶네요.
날이 추워지니 물빛은 더욱 투명해집니다. 오대산 소금강에 다시 가고 싶네요. 내내 건안하세요~
저두 인간극장 "꽃순이와 나뭇꾼"을 보았던 기억이 있네요...
하얀 수염 길게 늘어트리신 모습이~
11월 첫째주일에 동생들과 정선장에 가기로 했는데 지금부터 기대만발입니다...ㅎㅎ
정선에 오신다면 그저 반갑고 고맙기만... 무어 살 것은 없어도 장날이면 장에 갑니다.
소설속에 한 페이지 읽어넘기는 듯한 이야기,,, 아주 맛납니다.해마다 정선을 찾는데(장날에)이번에도 장날껴서 다녀오려 친구랑 날 맞추어 놓았습니다.그곳에 단풍은 얼마니 고울까 벌써부터 설레입니다.
공감하여주심에 감사드리며, 장날엔 공연장에서 아라리 한 자락을 듣고 있으니 같은 자리에 있을지도 모르겠네요.ㅎ
꽃순이같은 고운 안사람만나서 여생을 함께 지내시며 금상첨화일듯..합니다... 혼자서 지내시는 모습이 때로는 쓸쓸해보이십니다.. 더불어 지내시며 아름다운 풍광속의 벗처럼 함께 하셨으면...하는 바램이 ..갑자기 스칩니다 ~
쓸쓸하다니, 즐긴다 하면 이해하려나...ㅎ
수채화로 그려놓은듯한 단임골 풍경 잘 보고 갑니다..늘 여유로우시네요..패치카의 고구마 냄새가 여기까지 들립니다..건강하세요..
공감하여주심에 감사드립니다. 님께서도 내내 건안하세요~
덕분에 구경 잘 하고 갑니다 ^^
감사합니다.
에효~~
항복임다...ㅎ
요거이 꼭 옮겨다 당산이 샤량하는 누구라꼬 자랑질을 꼭 해보고싶네여.
어케 이루케 사람을 무장해제를 시키시는지...ㅋㅋㅋ
무신 말쌈인지? ㅋ
삭제된 댓글 입니다.
그저 그렇게 조용하게 인연은 이어집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