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4넌 7월 17일 연중 제15주간 수요일
-이영근 신부
복음;마태11,25-27 <지혜롭다는 자들에게는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셨습니다.> 25 그때에 예수님께서 이렇게 말씀하셨다. “아버지, 하늘과 땅의 주님,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26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 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27 “나의 아버지께서는 모든 것을 나에게 넘겨주셨다. 그래서 아버지 외에는 아 무도 아들을 알지 못한다. 또 아들 외에는, 그리고 그가 아버지를 드러내 보여 주려는 사람 외에는 아무도 아버지를 알지 못한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
오늘 복음은 짧지만 참으로 깊고 아름답습니다. 앞 장면은 예수님께서 아버지께 드리는 감사, 찬양의 기도요, 뒤 장면은 당신 자신에 대한 계시입니다.
예수님께서는 먼저 '하늘과 땅의 주님이신 아버지'를 부르시면서 기도를 시작하십니다. 곧 아버지께서 우주의 주권자이심을 인정하는 동시에, 모든 피조물의 소유권을 가지신 분임을 고백하십니다.
그리고 이렇게 기도드리십니다. "지혜롭다는 자들과 슬기롭다는 자들에게는 이것을 감추시고 철부지들에게는 드러내 보이시니,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마태 11,25)
이 고백은 하느님의 뜻은 지혜나 슬기로 알게 되는 것이 아니라, 아버지께서 드러내주셔야만 알 수 있다는 것을 말해줍니다. 그러나 주님께서 드러내주신다고 해서 모두가 알게 되는 것만도 아닙니다. 그것을 받아들일 때라야 알게 되는 것이라 할 수 있습니다.
이것이 바로 어린이와 어른의 차이라 할 수 있습니다. 어린이는 '나는 모른다'라는 태도를 지니고 있습니다. 그래서 이것저것 묻습니다. 그리고 ‘모른 것’을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어른이 되어가면서 '나는 안다'라는 태도를 지니게 됩니다. 그래서 ‘아는 것’을 받아들입니다.
그러나 예수님께서는 아버지께서는 우주의 주권자이기에 당신께서 원하시는 사람들에게 자유롭게 당신의 뜻을 드러내시기도 하고 감추시기도 하실 수 있는 분이심을 말씀하십니다. 예수님께서는 이처럼 '감추시고'와 '드러내시고' 라는 표현을 통해서, 영적 진리는 하느님의 주권적인 배려에 의해서만 알 수 있음을 말해줍니다.
예수님께서는 지금 바로 이러한 아버지의 주권적인 배려에 감사를 드리는 것입니다. 예수님께서 드린 '감사'(Έξομολο-γουμαί)의 원어의 뜻은 찬양을 나타내는 감격스런 고백을 뜻합니다. 곧 아버지의 뜻에 대한 완전한 인식과 동의를 말합니다. 곧 ‘슬기롭다는 자에게는 감추시고 철부지에게는 드러내시는’ 아버지의 뜻과 섭리에 대한 완전히 동의와 전폭적인 지지를 말합니다.
그래서 그 감사의 이유를 이렇게 고백하십니다. “그렇습니다, 아버지! 아버지의 선하신 뜻이 이렇게 이루어졌습니다.”(마태 11,26)
오늘 우리도 이렇게 고백해야 할 일입니다. 아버지께서 우리 안에 활동하시고 일하셨음을 믿음과 흠숭으로 고백하는 일입니다. 당신의 일하심에 전적으로 동의하고 지지하는 일입니다. 비록 지혜롭고 슬기롭다는 자들이 나를 알아주지 않아도, 아버지를 확신하고 지지하는 일입니다.
아니, 오히려 감사와 찬미를 드리는 것입니다. ‘모든 것에 감사드리는 것이 아버지 하느님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통하여 우리에게 원하시는 바입니다.’라고 말씀하신 사도 바오로처럼 말입니다.
‘하늘나라의 장막에 머무는 길은 우리 안에 일하시는 주님을 찬미하라’(수도규칙 머리말 30)고 제시하신 성 베네딕도의 말씀하신 것처럼 말입니다. 아멘.
<오늘의 말·샘 기도> “아버지의 선하신 뜻”(마태 11,26) 그렇습니다, 주님! 오늘도 미처 알아듣지도 못한 채 당신의 ‘선하신 뜻’을 부둥켜안고 살아갑니다. 그 드러내신 사랑에서 당신의 얼굴을 뵈오며 그 감추신 신비에서 당신 심장의 소리를 듣게 하소서. 그 모든 것 안에서 믿음과 사랑이 자라게 하시고 그 안에서 신비를 살게 하소서! 당신의 선하신 뜻 그 안에 제가 매달려 있으니 당신 뜻에 응답하게 하소서.
아멘.
- 양주 올리베따노 성 베네딕도 수도회/이영근 아우구스티노 신부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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