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에 닿을 줄 알았던 바벨탑이 무너졌습니다.
‘바벨’은 도시 국가의 이름이요,(창11:8) ‘탑’은 종교적인 상징물이라, 바벨탑이 무너졌다는 것은 바벨론이라는 정치적 국가가 무너졌다는 것과 아울러 그 국가의 신전이 유린당했다는 두 가지 의미가 있겠습니다. 바벨탑이 무너지면서 ‘바벨탑’을 중심으로 정치·종교 공동체를 이루어 살던 사람들이 흩어질 수밖에 없었습니다.(창11:9)
평생 거기에 살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바벨론에 살던 ‘데라’가족도 다른 사람들처럼, 어쩔 수 없이 떠나야 했습니다.(창11:31) 데라는 아들 ‘아브라함’과 손자 ‘롯’을 데리고 바벨론을 떠났습니다. 데라는 가나안 땅을 목적지로 삼았지만, 가나안에 닿지 못하고 하란에서 죽고 맙니다. “데라가...가나안 땅으로 가고자 하더니 하란에 이르러 거기 거류하였으며 데라는 나이가 이백오 세가 되어 하란에서 죽었더라”(창11:31~32) 데라는 목적지로 삼았던 땅에 가고자 하였으나 하란이라는 곳에 정착하였고, 정착했던 곳에서 죽습니다. 정착하면 죽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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샤갈,<아브라함>
아버지 데라가 돌아가셨으니, 이제 아브라함이 가장입니다. 아버지 데라가 미처 가지 못한 길을 가족들을 데리고 마저 가야합니다. 아버지 데라처럼 죽지 않고 살고자한다면, 어쩔 수 없이 길을 나서긴 해야겠지만, 길은 고단하고 위험합니다. 가야하는 길이 있습니다만, 고단하고 위험한 길을 선뜻 나서긴 어렵습니다. 가야할 길을 두고 고뇌하는 아브라함에게 하나님께서 말씀하십니다. “...너는 너의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 내가 네게 보여 줄 땅으로 가라 내가 너로 큰 민족을 이루고 네게 복을 주어 네 이름을 창대하게 하리니 너는 복이 될지라”(창12:1)
하나님께서 아브라함에게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나라고 하십니다만, 사실 아브라함은 이미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났습니다. 아브라함의 고향은 ‘갈대아 우르’, 즉 바벨론 땅입니다. 아브라함은 아버지 데라와 함께 이미 고향과 친척을 떠나 왔습니다. 바벨탑이 무너지면서 거대한 도시의 사람들이 흩어졌고, 사람들이 흩어져버린 도시에서 더 이상 살 수 없었기 때문에, 어쩔 수 없이 아브라함은 ‘고향과 친척과 아버지의 집’을 떠났었습니다. 비장한 결단 하에 떠났다기보다 어쩔 수 없이 떠날 수밖에 없었습니다. 어쩔 수 없이 아브라함은 이미 하나님에게 순종하고 있었던 겁니다.
그런데 히브리서를 통하여 하나님은 아브라함을 한껏 추켜올리십니다. “「믿음으로」 아브라함은 부르심을 받았을 때에 순종하여 장래의 유업으로 받을 땅에 나아갈 새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나아 갔으며 「믿음으로」 그가 이방의 땅에 있는 것 같이 약속의 땅에 거류하여 동일한 약속을 유업으로 함께 받은 이삭 및 야곱과 더불어 장막에 거하였으니 이는 그가 하나님이 계획하시고 지으실 터가 있는 성을 바랐음이라”(히11:8~10) 아브라함은 어쩔 수 없이 길을 나섰던 것인데, 하나님은 이를 믿음으로 행한 순종이라 칭찬하십니다.
믿음은 사람이 갖기 어려운 덕목입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고’ ‘믿음으로’ 길을 간다는 것은 무책임하기 짝이 없는 일입니다. 갈 바를 알지 못하는데도 길을 갈 수 밖에 없다면, 뭔가 숨은 사연이 있는 겁니다. 적어도 아브라함은 그랬습니다. 고상하고 비장한 결단을 하고 난 연후에 고향과 친척을 떠났던 게 아니라, 아브라함은 고향과 친척을 떠날 수밖에 없는 시대적인 흐름 위에 놓여 있었던 거지요. 하나님은 이러한 아브라함의 어쩔 수 없는 선택을 믿음으로 인정해주셨습니다. 실로 겨자씨만큼도 안 되는 믿음인데, 아브라함은 이 믿음으로 ‘열국의 아버지’가 되었습니다.(창17:4) 어쩔 수 없이 떠밀리듯 길을 나섰고, 그저 아버지 ‘데라’를 따라 고향과 친척을 떠났던 것인데, 이것이 믿음의 행위가 되고 ‘큰 민족을 이루’는 근거로 인정받습니다.
그래서 은혜입니다. 어쩔 수 없이 먹고 살기 위해 내렸던 결정인데, 하나님께선 그 결정을 순정한 믿음의 결단으로 받아주십니다. 예수님께서도 가난한 사람에게 복이 있다 하셨지요. 애통하는 사람도 복되다 하셨구요. 가난하고 애통한 것이 뭐 자랑할 거리겠습니까. 부자가 되지 못해 어쩔 수 없이 가난한 거고, 즐겁고 싶지만 어쩔 수 없이 눈물이 흐르는 거지요.
어쩔 수 없이 가난하고 눈물이 흐릅니다. 가난하고 애통하면 믿음으로 밖에 살 수 없겠지요. 어쩔 수 없이 믿음으로 삽니다. 하나님 외에 소유한 것 없는 가난한 사람은, 하나님을 잃어버리지 않기 위한 삶을 살아 더 부요합니다. 무너져 버린 바벨탑 아래에서 살 수 없어 어쩔 수 없이 길을 나섰던 아브라함이 믿음으로 구원받습니다.(창15:6)
어쩔 수 없이 길을 가도 하나님은 그 어쩔 수 없음을 믿음이라 인정해주십니다. 그렇게, ‘오직 믿음’으로 의인되어 하늘에 닿습니다.(롬1:17)