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행복 어깨동무" 손끝으로 읽는 국정에서 발췌

[장정애]

【월간】 손끝으로 읽는 국정

 2010년 6월호

대담｜마라톤 동반주자 김용열 씨

한발 한발…머나먼 길

‘행복 어깨동무’

시각장애인 마라토너와 함께 달리는 ‘동반주자’들의 모임이 있다. ‘해피레그’다. 이들은 한국 최초 시각장애인 마라토너인 이용술 씨를 비롯, 수많은 시각장애인 마라토너들의 눈이 되어 마라톤 코스를 완주할 수 있도록 돕는다. ‘해피 레그’를 만들고, 7년째 활발한 활동을 이어오고 있는 김용열(49) 씨를 만났다.

‘해피레그’ 활동을 시작하게 된 계기가 궁금합니다.

마라톤을 시작한지 11년쯤 되었습니다. 처음에는 비만 때문에 살을 빼려고 운동 삼아 시작했는데, 기록도 제법 나오고 살도 빠지면서 차차 마라톤의 재미를 알게 되었죠. 이후 마라톤 대회 출전을 위해 토요일마다 남산에서 훈련을 시작했는데, 알고 보니 시각장애인 마라토너들도 그곳에서 훈련을 하더군요. 그것이 인연이 되어 한 시간 정도 끈을 잡고 함께 달리기도 했습니다.

이후 한 마라톤 대회에 출전했어요. 경기를 준비하고 있는데 안내 방송이 나오더군요. 시각장애인 마라토너의 도우미가 지각을 해서 경기장에 오지 못하고 있다며, 동반주자를 구한다는 내용이었어요. ‘누군가 나서겠지’하는 마음으로 주위를 둘러보는데, 남산에서 자주 만났던 이용술 씨가 서 있더군요. 모르는 척 할 수 없어 그날 대회에서 이용술 씨와 함께 달렸어요. 그 후 시각장애인 마라토너에게는 동반주자가 필요하다는 것을 알게 되면서 '해피 레그’라는 모임을 만들게 되었습니다.

훈련은 어떻게 하나요?

마라톤 경험이 없는 시각장애인 마라토너는 똑바로 걷는 것부터 훈련합니다. 시각장애인 분들은 걷기 자세가 좋지 않은 경우가 많거든요. 매주 화요일과 토요일 오전 10시부터 남산 산책로 등을 걷는 거죠. 한두 달 정도 걷기 훈련을 하면 자세도 바로 잡히고 체력도 생깁니다. 서너 달 뒤부터는 10킬로미터 달리기를 시작합니다.

이후 동반주자와 함께 작은 대회부터 출전하여 경험을 쌓습니다. 시각장애인 마라톤은 동반주자와의 호흡이 굉장히 중요하기 때문에 훈련을 하며 서로의 성격, 달리기 습관, 기록 등을 파악해 안전하게 완주할 수 있도록 돕습니다.

동반주자는 어떤 역할을 하나요?

50센티미터 정도 되는 끈을 당기고 풀면서 시각장애인 마라토너에게 길의 상황을 알려주고, 전맹 마라토너에게는 팔을 내어주어 방향을 안내합니다. 한마디로 시각장애인 마라토너가 안전하게 달릴 수 있도록 돕는 것이죠.

동반주자는 시각장애인 마라토너보다 풀코스 마라톤 기준으로 기록이 20 내지 30분 정도 빠른 것이 좋지만, 그보다는 마음이 중요합니다. 꾸준히 나와서 함께 훈련할 수 있는 마음 가짐을 가진 사람이 진정한 해피레그라 할 수 있지요.

해피레그가 반드시 지켜야 할 지침이 있다면?

시각장애인 마라토너와 동반주자가 함께 마라톤 대회에 출전했다고 생각해 봅시다. 둘이 함께 완주를 하지만 동반주자는 자신의 기록을 갖지 못합니다. 시각장애인 마라토너의 기록만 남죠. 한마디로 동반주자는 마라톤 대회의 시작부터 끝까지, 시각장애인 마라토너의 경호원이자 안내자로서 출전하는 것입니다. 개인 기록을 위해 나오는 것이 아니죠.

동반주자는 혼자서 길을 찾기 힘든 시각장애인을 배려해 지하철 역에서 만나 대회장까지 함께 와야 하고요. 또 시각장애인 마라토너와 함께 달릴 때에는 다른 사람과 대화를 삼갑니다. 청각이 발달한 시각장애인의 경우, 대화 소리가 집중에 큰 방해가 될 수 있거든요. 또 마라톤 경기 때는 한 발 뒤에서 뛰는 것이 좋습니다.

또 시각장애인 마라토너의 방향 감각을 고려해 좌우로 지나치게 방향을 틀면 안되겠습니다. 앞에서 달리는 사람이 길을 막고 있다면 길을 양보해 달라고 말하는 편이 낫습니다. 방향과 길의 상태 등을 간결하게 설명하는 것은 동반주자의 기본이지요.

마라톤의 매력은 무엇인가요?

마라톤 덕분에 저는 좋은 사람도 많이 만났고, 좋은 친구도 여럿 만들었습니다. 시각장애인 마라토너들이 완주할 때 함께 기뻐하고 감동할 수 있다는 게 참 행복합니다.

또 저의 개인적인 기록이 점점 좋아지는 것 역시 즐거움이죠. 시각장애인 마라토너 중에 저보다 잘 달리시는 분들이 많은데요. 그런 분들과 동반주자로 달리다 보면 제 실력도 늘더군요. 현재 이용술 씨와 오는 9월 9일에 열리는 ‘대한민국 횡단 308킬로미터 울트라 마라톤 대회’ 참가를 위해 연습하고 있는데요. 함께 완주하고 싶습니다.

앞으로의 꿈은?

현재 해피레그 활동이 서울 등 수도권 쪽으로 편중되어 있어요. 지역에서는 시각장애인 마라토너들이 여건이 되지 않아 훈련을 제대로 못하는 경우도 많은 걸로 알고 있습니다. 그분들도 마음껏 달릴 수 있도록 해피레그 활동을 전국적으로 확대하는 것이 하나의 꿈입니다. 달리고 싶은 분들, 마라톤 대회에 출전하고픈 시각장애인 분들이 있다면 걱정 말고 서울 남산에 와서 도전하세요.

또 한 가지 바람이 있다면 남산에 물품 보관소가 생겼으면 하는 겁니다. 예전에는 물품 보관소가 있어서 마라토너들이 그곳에 물품을 보관하고 훈련을 할 수 있었는데, 근래 들어 보관소가 없어져 여러 가지로 어려움이 많습니다. 이것은 저의 소원이고, 또 남산에 달리러 오는 모든 이들의 소원이에요.

모든 회원이 평등하게 활동하기 위해 직책도 만들지 않았다고 말하는 김용열 씨. 해피레그 모임은 물론 한국시각장애인마라톤 클럽까지, 대가를 바라지 않고 자발적으로 이끌고 있다. 함께 달려서 행복하다는 그의 마음이 아름답다.

남궁소담 기자

※ 출처: 문화체육관광부 발행, 한국점자도서관 제작협력 [월간]"손끝으로 읽는 국정"(2010년 6월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