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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81호 : 예산 수덕사 목조석가여래삼불좌상 및 복장유물
(禮山 修德寺 木造釋迦如來三佛坐像 및 腹臧遺物)
수덕사 대웅전(국보 제49호)에 모셔져 있는 목조 삼세불좌상 및 복장유물과 연화대좌, 수미단 등이다.
삼세불좌상은 수덕사의 중흥조(中興祖)인 만공(滿空)선사가 전북 남원에 있는 만행산 ‘귀정사(歸淨寺)’로부터 옮겨온 것이라고 한다. 중앙의 석가모니불을 중심으로 오른쪽에는 약사불, 왼쪽에는 아미타불이 자리하고 있다.
불상 안에서 발견된 ‘조성기’에 의하여 조선 인조 17년(1639)에 수연(守衍)비구를 비롯한 7명의 화원(畵員)들이 참여하였음을 알 수 있다.
한편, 석가모니불이 앉아 있는 대좌형 수미단(須彌壇)은 고려시대 심원사(心源寺) 대웅전 불탁(佛卓)과 그 장엄수법이 동일한 것으로, 금강 저(金剛杵)·삽화병(揷花甁)·목단(牧丹)·운파(雲波) 등 안상(眼象) 조각에서 고려시대 불탁의 특징을 살필 수 있다. 이 수미단의 기초는 좌우 일반형 탁자와 달리 대웅전 마루 저면 약 30㎝ 지점의 초기 평면과 동일하며, 그곳에서부터 육각의 저대석이 탁자를 지탱하고 있는 것으로 보아 조성시기는 대웅전 건립연대(1308)와 같을 것으로 추정된다.
불상 안에서 나온 복장유물은 전적류·후령통(喉鈴筒) 및 오색실·복식 등이 있다.
(제1382호 - 제1394호, 2003.12.30 지정)
제1382호 : 청자상감국모란문‘신축’명벼루(靑磁象嵌菊牡丹文‘辛丑’銘硯) 리움박물관
청자벼루는 현존하는 예가 매우 드문데, 이 작품은 정교한 상감문양에 제작시기를 추정할 수 있는 간지와 제작자·사용자에 관한 내용이 새겨져 있어 특히 귀중한 자료이다.
긴 네모꼴 형태의 벼루 양 측면에는 흑백상감으로 모란당초문을 단정하게 새겨 넣고, 앞·뒷면에는 국화당초와 구름 문양을 상감하였으며 윗면 가장자리에는 음각의 뇌문대를, 안바닥에는 국화절지문을 가늘게 새겼다. 밝은 녹청색을 띠는 유색은 맑고 투명하며 흑백상감 부분의 유약층도 다른 부분과 특별한 변화는 없다. 접지면은 유를 대충 긁어낸 후 사질 내화토를 열한 군데 받쳤다.
안바닥 넓은 면 오른편으로 ‘신축오월십일조(辛丑五月十日造) 위대구전호정서감부(爲大口前戶正徐敢夫)’라 새겨 넣고, 왼편에는 ‘청사연대쌍황하사(淸沙硯壹雙黃河寺)’라는 명문을 백상감하였다. 여기서 신축년(辛丑年)은 1121년, 1181년, 1241년에 해당되는데, 유약의 상태와 상감문양 등으로 볼 때 1181년일 가능성이 가장 높다.
제1383호 : 청자철화초충조문매병(靑磁鐵畵草蟲鳥文梅甁) 리움박물관
이 매병은 구연이 평평하게 벌어지고 둥근 어깨와 몸통의 선이 거의 일직선으로 내려가 굽에 연결되는데, 이러한 형태를 중국 매병의 특징으로 보는 관점에서 아직 고려화가 덜된 초기적인 형태라는 평가를 받고 있다. 자토를 약간 두텁게 발라서 문양부분이 두꺼워져 있고 흑갈색은 깊고 윤기나는 색감을 띠고 있다.
문양은 어깨부분에 한 줄의 횡선을 둘러서 전체를 상단과 하단으로 구분하고, 좁은 상단에는 변형된 국화당초문 한 줄기를 두르고 넓은 하단에는 마치 참외덩굴과 같아 보이는 절지문을 크게 그린 후 큰 새 한 마리와 나비 한 쌍과 벌을 그려 넣었다. 유약은 엷은 담황색을 띠지만 맑고 투명한 편이며 빙열은 없다. 굽은 안바닥을 깎아 내었고 접지면에 굵은 모래를 받쳤던 흔적이 남아 있다. 고려시대 철화청자를 대표하는 작품으로서 파격적인 문양구성과 대담한 필치, 녹갈색 유태와 흑갈색 문양의 조화가 특히 아름다운 작품이다.
제1384호 : 청자상감유로매죽문편병(靑磁象嵌柳鷺梅竹文扁甁) 리움박물관
이 상감편병은 전형적인 편병의 형태와 다양한 문양소재를 갖춘 대표적인 예라 할 수 있는데, 특히 어깨부분에 귀면(鬼面)을 붙여 장식효과를 높인 점이 눈에 띤다.
넓은 몸통을 크게 삼분하여 상단, 중단, 하단으로 구분하고 상단 어깨부분과 하단에는 서로 마주보는 연판문을 새겨 넣고, 중단의 평평한 면에는 능화형(菱花形)으로 화창(畵窓)을 새긴 후 그 안에 버드나무와 여러 마리의 새를 그려 넣었다. 중단의 둥근 측면에는 각각 세 줄기의 대나무와 가지가 Y자형으로 갈라진 활짝 핀 매화 한줄기를 새겨 넣었다. 어깨에 장식된 귀면조각은 이빨을 드러내고 있는데 입안으로 둥근 고리가 물려져 있는 모습이 자연스러워서 뛰어난 조각 솜씨임을 알 수 있다.
유약은 엷은 담회색을 띠며 유층에는 가는 기포가 꽉 차 있다. 백상감이 새겨진 부분의 유층은 소위 은화현상이라고 하는 넓은 균열이 있으며 흑상감은 안정되고 견고하며 차분하다.
제1385호 : 청자양각운룡문매병(靑磁陽刻雲龍文梅甁) 리움박물관
고려시대 중기에 제작된 전형적인 매병으로, 규격도 크지만 위엄있는 형태와 정교하고 사실적인 문양이 조화를 이루는 뛰어난 유물이다.
몸통 전면에 서로 마주보는 형상의 용 두 쌍을 꽉 차게 배치하고 어깨 부분의 평평한 면과 저부 빈 공간에는 비슷한 형태의 작은 뭉게구름을 낮고 굵은 음각으로 새겨 넣었다. 파도치는 넓은 바다에서 네 마리의 용이 여의주를 희롱하며 하늘로 오르는 형상인데 주변에는 상서로운 구름이 에워싸고 있어서 신비로운 분위기를 한층 높이는 역할을 하고 있다.
유약은 균열이 없고 맑은 담녹청색으로 투명한 편이지만 유층에 미세한 기포가 있어서 약간 반투명하며 광택이 은은하다.
이 매병은 왕실에서 사용하였던 것으로 추정되며, 힘이 넘치는 듯한 용의 자태와 거세게 몰아치는 파도, 잔잔하면서도 힘있는 뭉게구름은 물론, 우아한 매병의 형태와 담록의 비색유가 완벽하게 조화되어 고려청자 절정기의 특징을 잘 보여주는 유물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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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386호 : 청자상감어룡문매병(靑磁象嵌魚龍文梅甁) 리움박물관
조선 초기의 전형적인 매병으로 구연이 그대로 외반되고 어깨가 원과 같이 둥글며 허리가 가늘고 아랫부분이 넓게 벌어진 형태를 하고 있다. 몸통전체를 삼분하여 상단ㆍ중단ㆍ하단으로 나누고, 어깨 부분인 상단에는 변형된 연판문과 그 밑에 넓게 펼쳐진 여의두문대를 둘렀다. 넓은 몸통의 중단에는 얼굴은 용의 모습이며 물고기의 몸통을 한 어룡을 2군데에 새기고, 그 사이에 연화절지문과 작은 물오리들을 새겨 넣었다. 어룡과 같은 신비로운 소재와 연꽃과 물오리와 같이 일상적이며 서정적인 소재를 함께 배치하여 독특한 분위기를 자아내고 있다. 유약은 맑고 투명한 엷은 담녹색을 띠고 있으며, 유층에는 균열이 없고 광택은 은은한 편이다.
굽은 평평하지만 전체적으로 중심부가 약간 오목하게 들어갔으며 희고 굵은 모래를 받쳤던 흔적이 남아 있다.
형태나 문양소재, 상감기법 등 고려청자의 전통을 그대로 계승하였지만 표현 방법에서 새로운 조선시대의 특징이 나타난 상감문양이 새겨져 있는 대표적인 작품이다.
제1387호 : 분청사기철화모란문장군(粉靑沙器鐵畵牡丹文장군) 리움박물관
분청사기 장군 가운데 특별히 규격이 크고 전면에 선이 굵고 검은 철화문양이 파격적인 필치로 그려져 있는 작품이다.
성형과정에서 굽형태로 깎은 한쪽 마구리와 사용할 때 굽의 기능을 하는 넓고 높은 굽의 안쪽면을 제외한 전면에 귀얄 붓으로 백토를 약간 두텁게 씌웠으며, 조금 얇은 부분은 붓 자국이 그대로 나타나 있다.
문양은 넓은 몸통을 중심으로 그렸는데, 중심에 작은 모란꽃송이와 양편으로 거의 대칭에 가까운 형태의 무성한 모란 잎을 전면이 꽉 찰만큼 듬직하게 그려 넣었다. 그리고 양쪽 주변에는 두 줄의 선을 칼로 긁어서 바탕색이 드러나게 하여 중앙 모란문과 구분한 후 간단한 당초문을 그렸다. 구연이 붙은 어깨부분에도 화창(花窓)과 같은 선을 그려 넣었다.
모란꽃과 잎을 그릴 때 구획선을 염두에 두고 있었지만 잎을 크게 그려서 부분적으로 벗어나는 경우도 있고, 반대로 작게 그려진 경우 빈 공간이 많이 남는 경우도 있어서 자유롭고 분방하게 붓 가는 그대로 나타냈음을 알 수 있다. 갈색을 띠는 암회색 태토에는 가는 사립(沙粒)이 포함되어 있으며 발색이 일정하고 윤택이 좋은 편이다.
제1388호 : 분청사기박지연화문편병(粉靑沙器剝地蓮花文扁甁) 리움박물관
이 편병은 모나지 않은 부드러운 맛을 살려 빚어진데다 형태와 어울리는 곡선적인 문양이 새겨져 있어 편병들 가운데서도 손꼽히는 명품 중 하나이다. 특히 그릇의 표면에 조화와 박지기법을 적절하게 사용하여 연화문을 시원스럽게 장식한 솜씨가 돋보인다. 연꽃과 줄기의 윤곽을 거침없고 활기 넘치는 조화기법으로, 나머지 배경은 박지기법으로 표현하여 시원하면서도 활기 넘치는 느낌을 주고 있다. 연꽃의 꽃술과 꽃받침 부분에는 점을 찍어 활짝 핀 꽃 모양을 강조하여 그것을 만들던 장인의 정성스러움이 엿보인다.
밝은 회청색을 띠는 맑고 투명한 유를 씌웠으나 잘 녹지 않아 뭉쳐 있는 곳도 있다. 굽의 접지면에는 모래를 받쳐 구운 흔적이 남아 있으며 안바닥까지 시유하였다. 당당한 형태에 시원스러운 문양장식이 잘 어울어져 있다.
제1389호 : 청자상감매죽유문‘장진주’명매병(靑磁象嵌梅竹柳文‘將進酒’銘梅甁) 리움
청자 매병 가운데 시문(詩文) 장식이 상감되어 있는 희귀한 작품이다. 버드나무와 대나무와 매화를 두 군데에 각각 새긴 후, 그 사이 네 군데에 위패 형태의 창을 마련하였다. 그리고 그 안에 활달하고 기운 찬 필치로 시문을 새겨 넣고, 한쪽 버드나무 가지 사이 빈 공간에 ‘장진주(將進酒)’라는 시의 제목을 흑상감하였다. 시는 제목의 좌측 위패장식에 첫 부분을 배치한 후 왼쪽으로 돌아가며 내용이 이어진다.
각각의 위패에 적혀 있는 시는
① 유리종호박농소준주(琉璃鐘琥珀濃小樽酒) 적진주홍팽룡(滴眞珠紅烹龍)
② 봉옥지읍라병수막위(鳳玉脂泣羅屛繡幕圍) 향풍취룡적격고호(香風吹龍笛擊鼓皓)
③ 치가세요무황시청춘(齒歌細腰舞況是靑春) 일장모도화난락여홍(日將暮桃花亂落女紅)
④ 우권군종일명정취주(雨勸君終日酩酊醉酒) 부도유령분상토(不到劉伶墳上土)
이며, 중국 당대(唐代)의 시귀(詩鬼)로 불리우는 이하(李賀, 790∼816)의 작품이다.
제1390호 : 백자청화동정추월문호(白磁靑畵洞庭秋月文壺) 리움박물관
원통형의 듬직한 몸체에 입이 크게 벌어진 병으로, 떡메처럼 생겼다 하여 속칭 ‘떡메병’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이 병은 꽃을 꽂는 화병이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조선시대에 소수 제작되었으나 현재 전하는 예는 매우 드물다.
표면에는 발색이 좋은 청화안료로 몸통 전체에 산수화를 시원스럽게 펼쳐 그렸는데, 한 면에는 절벽 위에 세워진 누각과 깃발을 묘사하고, 그 좌측으로는 하늘의 둥근 달과 멀리 삼산봉(三山峰)을 배경으로 근경에 선유경(船遊景)과 배가 정박해 있는 강촌(江村)의 풍경을 그렸다. 이러한 소재의 산수화는 18세기 후반 경기도 광주 분원에서 제작되던 백자의 장식에 크게 유행하는데, 이 작품의 경우 그림의 필력이나 구도가 특출하여 궁중소속의 도화서 화원이 그린 것으로 추정할 수 있다.
제1389호 | 제1390호 |
제1391호 : 백자투각상감모란문병(白磁透刻象嵌牡丹文甁) 리움박물관
제1392호 : 이암필화조구자도(李巖筆花鳥狗子圖) 리움박물관
이 작품의 작자인 이암(李巖, 1499∼?)은 세종대왕의 넷째 아들인 임영대군(臨瀛大君, 1418∼1469)의 증손으로서 자는 정중(靜仲)이며, 정5품의 두성령(杜城令)에 제수된 인물이다. 그는 영모화(翎毛畵)와 조화에 뛰어났다고 한다.
이 작품은 따스한 봄날 꽃나무를 배경으로 하여 세 마리 강아지가 한가롭게 햇볕을 즐기고 있는 장면을 그린 것이다. 굽어진 가지에는 두 마리의 새가 앉아 있는데, 이 새들은 서로 마주보고 있는 것이 아니라, 가지를 향해 날아오는 나비와 벌을 마치 호응하듯 바라보고 있다. 세 마리의 강아지는 〈모견도(母犬圖)〉(국립중앙박물관 소장)라는 이암의 다른 그림에서 이미 낯익은 강아지들이다.
이 중 누렁이는 앞발에다 얼굴을 괴고 단잠에 빠져 있으며, 어미를 빼어 닮은 검둥이는 무슨 소리를 들었는지 눈을 동그랗게 뜨고 오른쪽을 응시하고 있다. 한편, 화면 앞쪽의 흰둥이는 꼬리를 길게 늘이고 방아깨비를 잎에 문 채 장난을 치고 있다. 전체적으로 소재나 화면의 구성요소들이 너무나 자연스럽고 조화를 이루며 따스한 봄날의 평화로운 분위기가 보는 이에게 절로 전달되어 온다.
제1393호 : 김홍도필추성부도(金弘道筆秋聲賦圖) 리움박물관
이 작품은 중국 송대(宋代) 구양수(歐陽修, 1007∼1072)가 지은 ‘추성부(秋聲賦)’를 단원 김홍도(1745∼1806?)가 그림으로 그려낸 시의도(詩意圖)이다.
화면의 왼쪽에는 백문타원인(白文楕圓印)으로 기우유자(騎牛游子)라 찍혀 있으며 추성부 전문이 김홍도의 자필로 쓰여져 있는데, 끝 부분에 ‘을축년동지후삼일(乙丑年冬至後三日) 단구사(丹邱寫)’라 하였으므로 이 그림은 1805년 즉, 단원의 나이 61세에 제작된 것임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이 해는 단원이 죽기 바로 전 해로 추정되므로 그의 마지막 기년작이자 죽음을 앞두고 그린 작품으로 믿어진다.
이 그림은 전체적으로 어둡게 시채되어 있으며 갈필을 사용하여 가을밤의 스산한 분위기가 잘 드러나 있다. 좌우에 산이나 언덕을 배치하여 초옥과 마당을 감싸듯, 부감하듯 그려냄으로써 주제를 강조하는 포치방식은 역시 구도에 대한 단원의 뛰어난 감각을 단적으로 말해주며, 호리호리하면서도 불규칙하게 꺾여 올라가 끝이 갈라지는 나무 형태 또한 단원의 전형적인 화법을 보여준다.
제1394호 : 경기감영도병(京畿監營圖屛) 호암미술관
이 작품은 인왕산의 연봉들 아래로 넓게 펼쳐진 서대문 밖 경기감영(京畿監營)의 풍경을 12폭의 화폭에 담아낸 것이다.
이 병풍은 오른쪽부터 시작하여 1폭에 서대문[돈의문(敦義門)]과 수문장청(守門將廳)이 보이며, 제4폭에는 솟을대문에 기영(圻營)이라 쓰여진 것이 보인다. 제6폭 중앙에 있는 큰 건물은 관찰사가 근무하는 선화당(宣化堂)이며, 8폭 위쪽에는 영은문(迎恩門)과 모화관(慕華館)이 있고, 제8폭에서 9폭에 걸쳐 연꽃이 만발한 연지가 보이며, 제10폭의 위쪽에는 대현(大峴), 소현(小峴)과 읍승정(揖升亭)이라는 활터가 있으며, 그리고 제12폭에는 사정(射亭)이 보인다.
이러한 대표적인 건물 외에도 관아의 측간이나 작은 창고까지 묘사되고 사람들이 사는 기와집과 초가집들, 그리고 약방이나 신발가게, 쌀가게, 주막, 좌매 등도 배치되어 있다. 하지만 건물들이나 풍경묘사 보다도 이 그림에 활력을 부여하고 재미를 더해주는 요소는 바로 화면 곳곳에서 벌어지고 있는 생활장면이다. 이 그림이 문헌에 나오는 성시도(城市圖)의 형식을 빌린 것이라는 견해 또한 바로 이러한 산수도, 지도, 그리고 풍속화의 결합에 기인하는 것이다.
제1395호 : 도갑사도선·수미비(道岬寺道詵守眉碑) 영암
도갑사 도선·수미비는 귀부(龜趺), 비신(碑身), 이수(이首)를 구비한 석비로 도갑사의 부도전(浮屠田) 부근에 건립된 보호각 안에 보존되어 있다. 통일신라시대의 승려인 도선국사와 조선시대 수미왕사의 행적을 기록한 높이 517㎝ 규모의 석비이다.
석비가 자리한 탑구(塔區)는 수매의 판석으로 조성했는데, 전면의 구도는 방형이지만, 뒷면은 귀부의 형상과 같이 ‘ㅅ’자형으로 조성해 전체적으로는 6각형의 형태를 보이고 있다.
귀부의 머리는 오른쪽으로 약간 튼 형태인데 입에는 상·하 8개의 이빨로 여의주를 꽉 물고 있는 형상이다. 등에는 전형적인 귀갑문 대신 평행 사선문(斜線紋)으로 정연하게 음각하였다. 4발 중 앞발은 5조, 뒷발은 3조의 발가락이 표현되었으며, 꼬리는 살짝 돌려 왼쪽 발의 허벅다리에 닿았다. 상면에는 비좌(碑座)로부터 중단에 이르기까지 넓게 방형의 얕은 받침이 표현되었다. 비신은 귀부와 이수와는 달리 대리석으로 조성했다. 상면에는 전서로 「월출산도갑사도선국사수미대선사비명」이라 썼으며, 비제(碑題)는 횡서로 「월출산도갑사도선국사수미대선사비명병서」라 음각했다. 비문에 의하면 본래 이 곳에 있던 도선국사의 비가 훼손되어 다시 세웠음을 알 수 있다.
제1396호 : 백련사사적비(白蓮寺事蹟碑) 강진
백련사 사적비는 백련사 대웅전에서 오른쪽으로 약 50여m 떨어진 지점에 위치하고 있는 높이 447㎝ 규모의 전형적인 석비(石碑)이다. 귀부(龜趺), 비수(碑身), 이수(이首)로 구성되어 있는데, 귀부는 고려시대의 조성으로, 비신과 이수는 1681년(조선 숙종 7)에 조성되어 각기 서로 다른 건립연대를 보이고 있다.
귀부는 지대석(地臺石)과 더불어 화강암 일석(一石)으로 조성되었다. 용두(龍頭)는 목을 움츠리고 정면을 응시하고 있는데, 입은 상·하 7개의 가지런한 이빨로 꽉 다문 모습이며, 하단에는 길게 수염이 흘러 목주름까지 늘어져 있다.
비신은 2면비로 전·후면에는 비문이, 양 측면에는 초화문을 양각했다. 비신 전면의 상단에는 자경 15㎝ 크기의 전서체로 「만덕산백련사비」라 새겼고, 횡서로 「전라도강진만덕산백련사사적비」라 기록하고 있다. 뒷면에는 당시 불사(佛事)에 참여한 사람의 인명이 기록되어 있다.
제1397호 : 영국사영산회후불탱(寧國寺靈山會後佛幀) 한국불교역사문화기념관
중앙의 석가모니불(釋迦牟尼佛)을 중심으로 좌우 대칭되게 문수(文殊)·보현(普賢) 등 보살(菩薩)과 성중(聖衆)들을 빽빽하게 배치하였으며, 조선시대 불화 가운데 비교적 제작시기가 이르다.
이 그림은 인문 일파가 주도하여 그린 전형적인 군도형식(群圖形式)의 작품으로 본존을 에워싸도록 주위를 빙 둘러 권속들을 배치하였으며, 상단에는 부드러운 중간 색조의 황·녹·홍색의 색구름을 둔 뒤 나머지 여백을 짙게 처리하여 공간감을 부여하였다. 또한 주변 인물들의 크기를 위로 갈수록 작게 그리고 모두 본존불을 향하도록 함으로써 평면의 화면에 원근감을 나타냄은 물론, 예배화로서의 성격을 부각시키고 있다 하겠다.
주 색조는 적·녹색으로 담채(淡彩) 계통의 밝은 홍색을 많이 사용하여 조선 초기적 경향이 강하며, 각 인물의 묘사에 있어 부분적으로 다소 경직된 면이 있기는 하나 단순한 듯 세밀하면서도 세련된 필치를 보여 솜씨가 뛰어남을 볼 수 있다.
이 그림은 테두리 하단 중앙 부분에 먹으로 쓰여 있는 화기 중의 “강희사십팔년사월일(康熙肆拾捌年四月日) 신화성영산일부봉안우(新畵成靈山一部奉安于)…화사(畵師) 인문(印文) 민기(敏機) 세정(洗淨)…”이라는 내용을 보아, 강희 48년(숙종 35년)인 1709년에 인문을 비롯한 민기, 세정 등 불화승(佛畵僧) 3인이 참여하여 그렸음을 알 수 있다.
제1398호 : 청자상감압형주자(靑磁象嵌鴨形注子)
현존하는 오리모양을 한 주전자 형태의 청자 중 장식이 매우 특이한 형태로 오리의 깃털을 음각·양각의 흑백상감기법으로 표현하였고 뚜껑의 장식과 오리의 머리, 손잡이가 잘 어울린다. 오리를 주제로 한 파격적이고 독창적인 기형과 화려하고 정교한 문양장식의 표현, 비색(翡色)의 유약(釉藥)과 정선된 태토(胎土)로 제작된 고려시대 최절정기(12세기)의 청자이다.
현존하는 예도 극히 드문 상형청자(像型靑磁)의 새로운 자료로 고려시대 도자사연구에 매우 귀중한 자료로 평가된다.
제1399호 : 청자퇴화표형주자(靑磁堆化瓢形注子)
이 주자는 윗 박의 규모가 작고 수직상태로 누른 여섯 개의 선으로 장식하였으며, 아래 박은 양감이 풍부하고 저부가 크게 팽창되어 밑으로 쳐진 듯한 형태를 하고 있다. 특히 나팔의 벌어진 끝 부분과 같이 넓게 벌어진 높은 굽이 받치고 있으며 표주박 형태의 몸통에는 아무런 문양장식이 없다.
몸통이 완전한 소문인 것과는 달리 주구(注口)와 손잡이는 가늘고 섬세한 음각과 반양각을 써서 대나무의 어린 싹과 마디를 소재로 하여 기하학적 분위기로 재구성하였는데, 그 음각과 반양각이 새겨진 선을 따라 흰색 백토로 퇴화점(堆花點)을 질서 정연하게 찍어 넣었다. 손잡이와 몸통의 연결부는 마치 가는 대줄기를 꼬아 감으면서 부착한 것 같은 형태를 하였으며, 주구는 어린 죽순의 형상을 조금 변형시킨 형태를 하고 있다.
제1400호 : 분청사기상감모란당초문장군(粉靑沙器象嵌牡丹唐草文장군)
측면이 완전한 직사각형에 가깝고 양쪽 옆면이 직선에 가까운 완만한 곡면을 이루고 있어서 양감이 크고 듬직하며 무게감이 느껴지는 형태이다. 몸통의 듬직함과 같이 입술도 넓고 굵으며 굽다리도 완전한 직사각형으로 넓게 만들어 붙여서 전체는 크고 듬직하며 당당한 모습을 하고 있다.
전면에는 윤곽선이 굵은 모란당초문과 조밀하게 찍은 인화문(印花文)을 중심으로 가는 상감선을 사용하였는데 굵은 면은 더욱 굵고 듬직하게, 가는 선은 섬세하고 유려하게 새겨 넣어 강과 약의 조화를 꾀하였다.
문양은 넓은 몸통을 수직상으로 나누고 다시 구연부를 중심으로 좌우 대칭되게 나누었는데, 중심부에 가는 선상감의 당초문대를 내리고 좌우편에 간결한 선으로 윤곽을 두른 넓은 잎과 모란꽃을 좌우 대칭으로 면상감 한 후 옆면 둥근 마구리면은 인화상감을 조밀하게 찍어 넣었다. 굽의 안바닥에는 복부에 2∼3줄의 음각선이 있는데 이것은 음각하고 굽을 붙인 후 백상감을 한 흔적이다.
안정감 있는 당당한 기형에 활달하고 대담한 문양, 섬세한 인화기법의 표현 등에서 15세기 분청사기장군을 대표하는 예이며 도자사의 흐름을 파악하는데 귀중한 자료이다.
제1401호 : 중원봉황리마애불상군(中原鳳凰里磨崖佛像群)
산비탈 두 곳의 커다란 암벽에 시기를 약간 달리하여 부조(浮彫)로 조각되어 있는 9구의 불·보살상(佛·菩薩像)이다.
상부에는 높이 3.5m, 폭 8m의 바위면에 불좌상 1구가 양각되어 있고, 하부에는 불좌상 1구와 공양상(供養像)·반가상(半跏像)을 중심으로 5구의 보살상 등 모두 8구가 새겨져 있다.
비바람에 의한 마멸로 부분에 걸쳐 윤곽이 뚜렷하지 않지만, 마애불상(磨崖佛像) 중 비교적 초기의 예로 한강유역과 낙동강유역을 연결하는 중간지역이라는 특수한 역사적·지정학적 배경을 바탕으로 조성되었다. 이 마애불상군은 신라시대 불상조각의 흐름은 물론 고구려 불상의 경향까지도 함께 보여주는 매우 귀한 자료로 그 학술적 가치가 높다.
제1402호 : 소수서원문성공묘(紹修書院文成公廟) 영주 소수서원
문성공묘는 소수서원의 경내에 있는 제향기능의 사당으로 안향을 주향(主享)으로, 문정공(文貞公) 안축(安軸) · 문경공(文敬公) 안보(安輔) · 문민공(文敏公) 주세붕(周世鵬)의 위패를 함게 봉안하고 있다.
규모는 정면3칸, 측면3칸의 맞배집으로 장대석으로 마무리한 낮은 기단위에 둥글게 다듬은 주좌(柱座)를 놓고 배흘림 두리기둥을 세웠으며, 기둥머리에 주두를 놓고, 첨차를 내어 그 위에 소로가 주심도리의 장혀를 받치고 보 방향으로는 쇠혀(牛舌)를 내고 안쪽으로는 보아지 모양을 하여 퇴간의 보를 받치는 초익공식 구조를 이루고 있다.
가구는 오량으로서 대들보를 전면 고주(高柱)와 후면 평주 위에 걸고, 첨차로 짜인 동자기둥을 놓아 종보를 받치고, 이 위에 판대공을 놓아 종도리를 받치고 있다. 맞배지붕의 양측 박공에는 풍판을 달았다.
매년 3월, 9월 초정일(初丁日)날 제향을 올리고 있으며, 주세붕이 직접 쓴 제향의식과 절차를 기록한 홀기문서(笏記文書)가 전하고 있다.
제1403호 : 소수서원강학당(紹修書院講學堂)
강학당은 서원의 양대기능중 하나인 학문을 강론하던 장소로 장대석의 높은 기단을 쌓아 그 위에 자연석을 다듬은 초석을 놓았으며, 규모는 정면4칸, 측면3칸의 팔작지붕 겹처마로서 웅장하면서도 고색이 잘 간직되어 있으며, 사방 둘레에 너비 1m정도의 툇마루를 설치하였다. 툇마루 가장자리는 높이 6.5㎝, 높이 8.5㎝의 턱을 두었고, 기단 네 모서리에 추녀를 받는 활주를 설치하였다.
강학당의 정면은 동쪽을 향하고 있으며, 서원입구에서 바로 강학당으로 들어갈 수 있도록 남쪽 기단에 계단을 설치하였다. 내부 대청의 북면에는 명종의 친필인 '소수서원(紹修書院)' 이란 편액이 높이 걸려있다. 정면 4칸 중 좌측 3칸은 마루이며, 우측 1칸에는 방을 2개 설치하였고,기단3면(정면, 우측, 좌측)에 계단을 설치하였으며, 굴뚝은 마루 밑에 조그마한 구멍을 뚫어 처리하였다.
기둥 윗몸에서 앙서 하나를 내어 기둥위에 놓인 주두와 결구시킨 초익공 구조를 이루고 있다. 가구는 오량으로 대들보를 앞뒤의 평주위에 걸고 이 위에 동자기둥을 세워 종보를 받치고, 종보 위에 파련대공을 놓아 종도리를 받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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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404호 : 봉사조선창화시권(奉使朝鮮倡和詩卷) 국립중앙박물관
이 시권(詩卷)은 왕숙안(王叔安)이 전서(篆書)로 「봉사조선창화시책(奉使朝鮮倡和詩冊)」이라 쓴 제전(題篆)과 창화시(唱和詩) 본체 및 청(淸)나라 당한제(唐翰題)와 나진옥(羅振玉)이 쓴 발문(跋文)의 세 부분으로 구성되어 있다.
명(明)나라 봉사(奉使) 예겸(倪謙)과 집현전 학사(集賢殿 學士)인 성삼문(成三問), 신숙주(申叔舟), 정인지(鄭麟趾) 사이에 서로 나눈 창화시(唱和詩)를 모아 권축으로 만든 것을 광서(光緖) 을사년(乙巳年)에 개장한 것이다.
이 시권은 명(明)나라 한림원시강(翰林院侍講) 예겸이 경제(景帝, 1450∼1457 재위)의 등극을 알리는 조서(詔書)를 가지고 조선에 온 세종 32년(1450) 윤정월 1일에서 2월 3일 다시 압록강에 이르는 1개월간에 원접사인 정인지(鄭麟趾)와 신숙주(申叔舟)·성삼문(成三問) 간에 창화(唱和)한 시문(詩文) 중 37편을 추려서 엮은 것이다.
제1405호 : 비해당소상팔경시첩(匪懈堂瀟湘八景詩帖) 국립중앙박물관
이 시첩은 세종 24년(1442)에 안평대군(1418∼1453, 호는 비해당(匪懈堂))의 주선으로 송영종(宋寧宗)의 팔경시(八景詩)를 모탑(模탑)하고 팔경도(八景圖)를 그려 판각한 다음, 고려의 이인로와 진화의 팔경시를 이서(移書)하고 김종서(金宗瑞)·성삼문(成三問)·박팽년(朴彭年)·신숙주(申叔舟)·안지(安止)·강석덕(姜碩德)·최항(崔恒)·남수문(南秀文)·신석조(辛碩祖) 등 19명의 시문을 받아 본시(本始) 두루마리로 꾸민 시권(詩卷)에서 팔경도와 송영종의 팔경시가 일탈(逸脫)된 상태에서 첩장(帖裝)으로 개장한 것이다.
제1406호 : 이십삼상대회도및김종한교지(二十三霜臺會圖및金從漢敎旨) 경기도박물관
이 계회도는 사헌부에서 벼슬을 지낸 김종한(金從漢) 등 23명이 가졌던 계회를 토대로 제작된 것이다. 상단에는 전서로 쓴 표제가 있으며, 그 아래에는 계회를 하는 장면이 그려져 있고 찬시(贊詩)가 쓰여 있다. 그리고 하단에는 참가자들의 이름 및 품계, 그리고 그 부친의 관직 및 이름 등을 기록한 좌목(座目)이 있다. 이러한 체제는 조선조 초기 계회도에서 볼 수 있는 형식으로서 그 보다 후에 제작된 계회도에 비하여 그림 자체의 비중이 대단히 적으며, 참가자 부친에 대한 정보를 기재하기 위해 단을 따로 설정한 점도 이채롭다.
한편 하단의 추기를 별도로 기록한 좌목 추기가 있는데 이 문서는 후손에 의하여 정서된 것으로 정확한 작성 연대는 불명이다.
제1407호 : 수보살계법·범망경보살계본합본(受菩薩戒法·梵網經菩薩戒本合本)
청주고인쇄박물관
이 책은 후진의 구마라즙(鳩摩羅什)이 번역한 범망경노사나불설보살심지계품 권하(卷下)와 이 경전이 중심이 되어 이루어지는 보살계도량이나 수계법회 등의 절차와 규범인 북송의 연수(延壽)가 집(集)한 수보살계법(受菩薩戒法), 그리고 진(陳)나라 혜사(惠思)가 찬(撰)한 수보살계의(受菩薩戒儀)로 되어 있다. 『범망경』은 승조(僧肇)의 후서(後序)에 따르면 112권 61품으로 구성된 범문이 있었으나 전체는 한역이 되지 않았다고 한다.
이 책은 상하 2권으로 구성되어 있는데, 우리나라에서는 이 하권만 따로 뽑아 보살계본으로 삼아 불교도의 신행 규범으로 삼고 있다. 내용은 보살이 지켜야 하는 10가지 무거운 계(十重大戒)와 십선계(十善戒) 등 보살이 지녀야 할 몸가짐과, 말씨와 마음자세 등을 어떻게 해야 하는지 그 실천덕목을 담고 있다. 신라시대부터 한국불교 종단의 조직 및 유지에 큰 영향을 미친 경전이다.
제1408호 :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 청주고인쇄박물관
이 책은 목판본으로 구마라즙(鳩摩羅什)이 번역한 금강경을 바탕으로 육조 혜능(慧能)이 금강경에 대해 해석한 내용을 붙인 것이다. 『금강반야바라밀경(金剛般若波羅蜜經)』은 줄여서 ‘금강경(金剛經)’이라고 부르기도 하는데 모든 법이 실체가 없으므로 집착하는 마음을 일으키지 말라는 공(空)사상을 중심사상으로 하고 있다. 제10의 <장엄정토분(莊嚴淨土分)>에서는 청정한 마음으로 외적인 대상에 집착함이 없이 ‘마땅히 머무르는 바 없이 그 마음을 낼 것(應無所住而生其心)’을 가르친다.
고려 충렬왕 31년(1305) 청주 원흥사(元興寺)에서 개판된 점이 주목되는데, 곧 원흥사의 육구(六具), 박지요거사(朴知遙居士) 등이 발원한 사찰판이다. 이는 1377년의 흥덕사(興德寺) 간행 『백운화상초록불조직지심체요절』 이전에 간행된 판본으로서, 청주지역이 우리나라 인쇄문화의 발흥지임을 나타내는 중요한 자료라는 점에서 소중하다.
제1409호 : 대방광불화엄경소권48,64,83(大方廣佛華嚴經疏卷四十八,六十四,八十三)
청주고인쇄박물관
이 책은 대승경전의 하나인 화엄경(주본(周本))을 저본으로 당나라 징관(澄觀)이 주소하고 여기에 송나라 정원(淨源)이 주해한 교장류(敎藏類)의 일종이다. 일반적으로 ‘대방광불화엄경(大方廣佛華嚴經)’은 줄여서 ‘화엄경(華嚴經)’이라고 통칭되기도 하며, 부처와 중생이 둘이 아니라 하나라는 것을 중심사상으로 하고 있다.
우리나라에서는 화엄종의 근본경전으로 ‘법화경’과 함께 한국 불교사상을 확립하는데 중요한 영향을 끼친 경전이다. 이러한 화엄경에 화엄학의 대가인 당나라 징관이 주소한 화엄경소(華嚴經疏)를 송나라 정원이 주해한 것이다.
이 판본은 저자인 정원(淨源)이 의천(義天)에게 상인 서전(徐전)을 통해 보낸 목판으로 주본(周本) 화엄경을 주해한 주소본(註疏本) 120권을 찍어낸 것 가운데 권48, 64, 83에 해당하는 것으로 상태가 비교적 양호한 편이다.
제1410호 : 금동 당간 용두(金銅幢竿龍頭) 국립대구박물관
금동용형당간두는 금방이라도 튀어나올 듯 두 눈을 크게 부릅뜬 채 윗입술이 S자형을 이루며 위로 길게 뻗친 입을 벌려 여의주를 물었으며 아래 위의 송곳니가 모두 위쪽을 향해 날카롭게 휘어져 있는 것이 특징적이다. 목을 앞으로 쑥 내밀어서 휘어진 역동적인 몸통에는 두 가닥의 선으로 비늘을 촘촘히 음각하였는데, 각 비늘마다 안쪽에 꽃무늬와도 같은 문양을 새겨 넣었다.
한편 목과 만나는 입 안쪽으로 도르래가 장착된 구조로 되어 있어, 턱 밑을 뚫고 어금니 부분의 못(리벳)으로 고정시켜 놓아 실제로 사용할 수 있도록 고안한 것으로 보이나 지금은 도르래 부분의 부식이 심하여 본래의 기능을 상실한 상태이다.
통일신라 간두로는 매우 희귀한 예로 통일신라의 조각사, 공예사 및 건축사적으로도 중요하며 또한 도르래의 사용에서 과학사적으로도 참고가 되는 중요한 유물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