뿌리를 돌아보라.
주님의 은총과 평화가 우리 가운데 임하시기를 빕니다. 조금 일찍 찾아온 추석 연휴를 잘 보내고 계신지 모르겠습니다. 따뜻하고 정겨운 소식만 듣고 싶은 날입니다만 여전히 세상은 아픔이 넘칩니다.
포항 지하 주차장에서 엄마를 구하고 죽은 15살 학생이 엄마에게 마지막으로 한 말이 “엄마 키워줘서 고마워”였다지요? 엄마는 아들의 장례식에서 그만 정신을 잃고 말았다고 합니다.
세상 도처에 이런 아픔이 있습니다. 지난 8월 21일, 수원시의 다세대주택에 살다가 숨진 세 모녀 사건도 우리 가슴을 저릿하게 만듭니다.
암에 걸린 60대의 어머니와 희소병과 정신질환에 시달리던 40대의 두 딸이 어떤 사회적 돌봄도 받지 못한 채 세상을 떠났습니다.
풍요를 누리는 세상이지만 우리 시선이 닿지 않는 곳에서 이렇게 절망의 나락으로 떨어지고 있는 이들이 많습니다.
나가사키의 소토메라는 소읍에는 엔도 슈사쿠의 문학비가 서 있는데, 거기에는 이런 문구가 적혀 있다고 합니다.
“인간은 이리도 슬픈데, 주여, 바다는 너무나 푸릅니다”.
애상에 빠지기는 싫지만 가끔은 세상에 가득 찬 슬픔에 가슴이 미어지기도 합니다. 아픔을 겪는 이들 곁에 조금씩이라도 눈길을 주고, 곁에 다가가고, 그들을 고립으로부터 벗어나게 해주는 게 우리의 소명이 아닌가 싶습니다.
• 함께 누리는 삶
첫 열매를 구별하여 가져오고, 제사장이 그것을 제단 위에 올리고, 온 백성들이 자기들의 내력에 대해 고한 것으로 공식적인 의례는 끝납니다. 그러나 이어지는 일이 매우 중요합니다.
🌳“그리고 당신들은 그것을 주 당신들의 하나님 앞에 놓고, 주 당신들의 하나님께 경배드리고, 레위 사람과, 당신들 가운데서 사는 외국 사람과 함께, 주 당신들의 하나님이 당신들과 당신들의 집안에 주신 온갖 좋은 것들을 누리십시오.”(신 26:10-11)🌳
하나님이 주신 선물을 홀로 누리는 것은 진정한 예배가 아닙니다. 사회적 약자들의 처지를 헤아리고 그들의 필요에 응답하는 것이야말로 진정한 예배의 표징입니다.
이미 여러 차례 언급한 바가 있습니다만 프랑스인들의 존경을 받았던 아베 피에르 신부는 인간에 대한 기본적인 구분은 ‘믿는 자’와 ‘안 믿는 자’ 사이에 있는 것이 아니라, 홀로 만족하는 사람 즉 자신을 숭배하는 사람과 공감하는 사람 사이에, 다른 사람들의 고통 앞에서 등을 돌리는 사람과 고통을 나누려는 사람 사이에 있다고 말합니다(아베 피에르, <단순한 기쁨>, 백선희 옮김, 마음산책, p.93). 저는 이 말에 깊이 공감합니다.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것이 하나님의 선물임을 아는 사람은 홀로 만족할 수 없습니다. 이어지는 구절도 같은 지점을 가리킵니다.
율법은 세 해에 한 번씩 땅에서 나는 모든 소출에서 열의 하나를 따로 떼어서 전적으로 경제적 하층민을 위해 사용해야 한다고 말합니다.
🌳“그것을 레위 사람과 외국 사람과 고아와 과부에게 나누어 주고, 그들이 당신들이 사는 성 안에서 마음껏 먹게 하십시오.”(신 26:12)🌳
언약 안에서 살아간다는 것은 이런 것입니다. 우리는 하나님의 백성으로 부름 받았습니다. 그 말은 우리가 서로에게 책임적인 존재가 된다는 말입니다.
다른 이들의 곤경을 해결하기 위해 땀을 흘리고, 사랑과 신뢰 속에서 함께 살고, 관심사를 서로 나누고, 홀로 할 수 없는 일들 이루기 위해 협력할 때 우리는 비로소 하나님의 자녀라 할 수 있습니다. 예수님은 이것을 잃어버린 양 한 마리를 쉽게 포기하지 않는 세상으로 형상화한 바 있습니다.
우리 삶이 전적으로 은혜임을 알 때 우리는 더 이상 무정한 사람이 될 수 없습니다. 다른 이들이야 어찌되었든 나 홀로 만족하는 사람은 하나님을 알지 못하는 사람입니다. 세상이나 세상에 있는 것들을 사랑하는 사람들은 하나님을 사랑할 수 없습니다.
좋은 것을 함께 누릴 줄 아는 이들이 늘어날 때 세상은 따뜻해집니다. 수해로 고통을 겪고 있는 파키스탄 사람들, 경주와 포항의 이재민들을 기억합니다.
우리교회도 고통에 연대하겠다는 마음을 담아 의연금을 보내려 합니다. 모든 고통을 다 해결할 수 없다 하여 세상에 만연한 고통을 외면하는 순간 우리는 하나님도 외면하게 마련입니다.
우리가 지금 누리고 있는 것들이 다 누군가로부터 받은 선물이라면 우리 또한 누군가의 선물이 되어 살아야 합니다.
뿌리를 돌아본다는 것은 바로 이런 의미입니다. 이 가을에 우리 삶이 그렇게 조금씩 변화되기를 기원합니다. 아멘🙏-청파교회/2022.09.11