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여 홍산현 관아
정의
충청남도 부여군 홍산면에 있는 조선시대 홍산현의 객사와 동헌 등의 관청.사적.
개설
사적 제481호. ‘홍산현 관아’로 지정된 유적지에는 객사 비홍관(飛鴻館)을 비롯하여 동헌인 제금당(製錦堂, 충청남도 유형문화재 제141호), 집홍루(관아의 정문), 형방청 등 관아 건물이 있다. 객사 옆에는 향토유적 제83호로 지정된 은행나무가 서 있다.
역사적 변천
홍산현 관아의 창건연대는 정확히 알 수 없다. 다만 발굴조사에서 여러 동의 건물지가 2차례 이상 중복되었음이 확인되었다. 또한 조선시대 중기까지 한차례 중건이 있었고, 중기 이후 화재로 무너졌다가 다시 중건되었음이 밝혀졌다.
관아의 동헌과 형방청은 1871년(고종 8)에 다시 세운 것이다. 일제강점기 동헌 건물은 헌병대파견소로 이용되다가 해방 후 1970년까지 홍산지서로 사용하면서 개조되었다. 1984년 부여군에서 현재의 모습으로 보수하였다. 형방청은 잠시 수감시설로 사용하다가 1914년에 잠업 전습소로 사용되었다. 해방 후 개인의 살림집으로 사용되면서 충청남도 민속자료 제9호(이정우가옥)로 지정되기도 했다.
관아의 정문인 집홍루는 1964년 부소산성 안에 있는 영일대 자리로 이건하면서 영일루로 바뀌었다. 지금의 집홍루는 1994년에 복원한 것이다.
1836년(헌종 2)에 중건한 홍산객사는 1871년(고종 8)과 1983년에 중수하였다.
내용
홍산객사는 중앙에 정청이 있고 정청 좌우에 동익헌과 서익헌이 있다. 정청은 5량 맞배집으로 공포는 이익공(二翼工) 형식이다. 천장은 연등천장인데 임금을 상징하는 전패(殿牌)를 모셨던 중앙 후면부만 우물반자로 꾸몄다. 정청 좌우의 양 익헌은 초익공 형식의 팔작집으로 방과 대청으로 구성되어 있다.
동헌은 정면 6.5칸, 측면 2칸 규모의 초익공계 팔작집이다. 본래는 8칸에 불과했으나 고종연간에 중건하면서 15칸으로 확장되었다. 평면은 대청 3칸을 중심으로 좌우에 크기가 다른 방을 드렸다. 동헌 앞에는 ‘비홍추청(飛鴻秋廳)’이란 현판을 건 형방청이 있다. 본래는 6칸 초가였으나 고종연간에 중건하면서 10칸으로 확장되었다. 평면은 ‘ㄷ’자 형으로 중앙에 대청(정면 3칸)을 두고 좌우 날개 부분에 방과 부엌을 드렸다.
특징
홍산객사는 지방에 세워진 객사로 볼 때 비교적 규모가 큰 편이다. 또한 일반적인 객사와 달리 동익헌(정면 5칸, 측면 2칸)과 서익헌(정면 3칸, 측면 2칸)의 규모가 서로 다른 특징을 보여주고 있다.
흥산동헌은 현재 동헌과 형방청, 문루가 남아 있다. 일제강점기 많은 건물들이 헐렸음에도 불구하고 다른 지역의 동헌과 비교할 때 관아 건물이 비교적 잘 남아 있는 편이다.
의의와 평가
부여 홍산현 관아는 조선시대 옛 고을의 핵심시설인 객사와 동헌이 비교적 원형대로 잘 보존되어 있다. 그리고 조선 고종연간에 전국에 있는 관아 건물을 중건하면서 변화된 과정을 기록과 함께 잘 보여주고 있다. 특히 관아 건물 중 형방청은 전국에 남아 있는 사례가 거의 없으므로 문화재적 보존 가치가 높다.
[출처: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부여 홍산현 관아(扶餘鴻山縣官衙))]
조선시대의 지방조직은 전국 8도로 나뉘었고 각각의 도에는 관찰사를 파견했다.
도 아래에 다시 부(부사), 목(목사), 군(군수), 현(현령, 현감) 이들을 모두 수령이라 지칭했다.
수령 아래엔 이방(吏房)·호방(戶房)·예방(禮房)·병방(兵房)·형방(刑房)·공방(工房)의 6방을 두고 업무를 보았다.
전통건축을 전공한 이들조차 관아는 별로 관심을 갖지 않는 경향이 있다.
이는 사찰이나 궁궐처럼 다이나믹한 건물이 없고 평범한 장소에 위치해 있다보니 그런 것 같다.
관아건물 역시 전통건축 분류의 한 축을 담당하고 있는 귀중한 문화유산이다.
관아건물을 좀더 재미있게 답사하려면 사전에 거기에 얽혀있는 역사와 인물들에 대한 조사를 하고 보면 훨씬 가슴에 와 닿는다. 관아건물속엔 민가유형 건물과 관공서유형 건물들이 혼재해 있다. 어찌보면 민가를 보는 것 같기도 하고 어찌보 면 격식을 갖춘 관공서를 보는 듯도 하다. 또한 관아와 관련있는 외부건물과도 연계해 보면 더욱 답사가 즐거워질 수 있다.
관아건물은 사찰이나 향교처럼 특정인들의 유물이 아닌 모든 백성들을 아우르는 동시에 중앙관료와 궁궐과도 연결되어 있어 개별적인 특성을 찾아내는 일 또한 답사의 한 즐거움에 속한다. 예를 들어 전주객사는 이씨조선의 뿌리와도 맞닿아 있어 다른 곳과는 다소 특별한 건축물들을 들여다 볼 수 있다. 변방에 위치해 있거나 외적의 출몰이 잦은 곳에 위치한 관아는 거기에 맞는 독특한 건물배치와 연결성을 읽어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