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출처: ☆-묵향마을-☆ 원문보기 글쓴이: 익명회원 입니다
21세기 중국 서단의 현주소
소전(중국 산동예술대학교 교수) 1. 들어가는 말 한국 서예는 그 출발에서부터 지금까지 주변 국가들의 서예와 함께 같은 발걸음을 유지하며 발전해 왔다. 주변 국가들의 서예와 직접 혹은 간접적으로 영향을 주고받으며 오늘에까지 끊임없이 이어져 오고 있다. 그 가운데서도 서예의 종주국이라 할 수 있는 중국과의 관계에서는 그 어느 영역보다도 많은 교류가 있었다. 그러나 20세기 중반 이후에는 이데올로기 등 여러 가지 요인으로 말미암아 약 반세기 동안 직접적인 교류가 이루어지지 못하였다. 한국 서단에서는 중국 서예의 변화에 많은 관심을 기울이지도 못하였고 또 그렇게 할 분위기도 아니었다. 중국에서도 한국의 서예에 관심을 가지지도 못하였을 뿐 만 아니라 문화대혁명 기간 동안에는 그 자신들의 서예에도 크게 관심을 기울이지 못하였다. 1992년 50년 동안의 적대 관계를 끝내고 한국과 중국은 수교를 하였으며 이미 10주년이 지났다. 10년 동안 한중간에는 그동안 막혀 있던 물고가 한꺼번에 터진 것과 같이 여러 분야에서 많은 교류가 이루어 졌다. 21세기에 들어선 지금 한중간의 서예 교류는 역사이래 그 어느 때보다도 많은 인적 물적 교류가 이루어지고 있는 것이 현실이다. 양국의 많은 서예가들이 서로 왕래하면서 교류전을 가지고 있으며 문방사우를 포함하여 각종 서적들이 수입되고 판매되고 있다. 또한 한국의 서예 학도들이 중국으로 유학을 하거나 견학을 하기도 한다. 그러나 몇 번의 교류전과 견학을 통해서는 중국 현대 서단을 제대로 이해하기가 아무래도 쉽지가 않을 것이다. 중국 현대 서예의 현주소를 잘 안다고 하는 사람도 어쩌면 그들의 외형만 보았거나 혹은 그들의 일부분만을 보고 평가하는 경우가 많을 것이다. 혹 한국 서예의 심미적 고정 관념에 사로잡힌 사람은 맹목적으로 비판하거나 무시해 버리기 일쑤이다. 또 중국의 인기 있는 몇 명의 서예가에 사로잡힌 젊은 서예 학도는 그들이 추구하는 서예 창작을 중국 서예의 정수로 이해하고 외형을 그대로 따르는 경우도 없지 않은 것이 현실이다. 지금은 한중 수교 10주년을 넘기면서 그동안 한중 서예 교류의 허와 실을 거울삼아 새로운 서예 교류의 이정표를 세우고 우리 서예의 정체성을 구현하는 작업이 절실히 필요한 때이다. 이에 한중 수교 이후 줄곧 중국에서 서학을 공부하고 또 대학에 남아 서예를 업으로 삼고 있는 필자는 그 사명감과 의무감을 느끼게 되었다. 10년 가까이 중국에서 생활하면서 서예계 일선에서 보고 듣고 또 몸으로 체험한 21세기 중국 현대 서단의 현주소를 독자 재현께 소개하려고 한다. 필자의 생각이 혹은 주관적이고 혹은 전체를 대표하지 못하는 경우도 있겠지만 그 가운데 많은 부분은 객관적 자료를 근거로 한 내용들이 포함되어 있으니 21세기 현대 중국 서단을 이해하는데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생각한다.
2. 중국의 서예 교육 1) 초 중 고등학교의 서예 교육 중국의 서예 교육도 한국과 마찬가지로 그 체계가 완벽하다고는 할 수 없다. 이렇게 말 할 수 있는 가장 큰 이유는 학교에서의 서예 교육이 회화나 음악 등 다른 예술 영역의 교육에 비해서 체계를 갖추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초, 중, 고등학교 과정 가운데 서예가 정식 과목으로 채택되어 있지 못하므로 엄격하게 말해서 정상적인 서예 교육은 이루어지지 못하는 형편이라고 할 수 있다. 또한 사설 학원이나 교습소가 거의 없기 때문에 실질적인 사회교육도 한국보다 못한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초, 중, 고등학생 가운데 서예 수준이 뛰어난 학생들이 매우 많다는 것을 우리는 여러 경로를 통해 이미 알고 있다. 그 까닭은 어디에 있을까? 인구가 많으니 자연적으로 서예를 잘 하는 학생들이 많을 수 있다는 당연한 이유 이외에도 몇 가지 이유가 있다. 중국의 초등학교 국어 교육은 거의 대부분이 문자 교육이라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한국의 학생들은 초등학교에 들어가기 전에 거의 대부분이 한글을 배우고 학교에 입학하지만 중국에서는 표의 문자의 특성상 그렇게 하지도 못하고 또 그럴 수도 없다. 따라서 일 학년 때부터 학생들은 표의문자의 삼대 요소인 문자의 음, 뜻, 형을 익히기에 여념이 없다. 문자의 음과 뜻을 익히는 것은 한국의 초등학생들이 단어의 음과 뜻을 익히는 것과 큰 차이가 없으나 문자의 형태를 익히는 훈련은 우리나라 초등학교 교육보다 많은 시간과 노력을 들인다. 물론 한국의 초등학생들도 쓰기 시간이 있고 경필 교육도 받고 있다. 하지만 그 교육은 1-2학년의 저학년 때 잠시 이루어지고 또 한글 필획의 형태보다는 그 구성에 치중한다. 그러나 중국에서는 측(側), 늑(勒), 노(弩), 적(趯), 책(策), 약(掠), 탁(啄), 책(磔) 등 한자 필획과 형태의 특성상 우선 필획의 형태를 중시하면서 그 구성을 강조한다. 1학년에 입학하자마자 이루어지는 한자의 필획과 결구의 학습은 6년 동안 매우 큰 비중을 차지하며 높은 경필 수준을 요구한다. 이와 같은 경필 학습은 해서 서예의 학습과 완전히 동일한 방법이기 때문에 해서의 필획과 결구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밑거름이 되고 있다. 중국 초등학생들의 서예 교육은 한국의 초등학교 예체능 전문 교육과 같이 학교에서 전담 교사제로 이루어지거나 아니면 소년궁(少年宮, 중국에서 예체능을 전문적으로 교육하는 국공립 사회교육 기관)에서 주로 이루어지고 있다. 소년궁의 교육은 토요일과 일요일 그리고 방학을 통해 이루어진다. 또한 소수이기는 하지만 개인적으로 선생님을 찾아가서 사사하는 경우도 있다. 학교에서 이루어지는 전담 교사제는 사설 학원이 없는 현실적 상황에서 서예를 배우려는 욕구를 충족시켜 주기는 하지만 그 실질적 효과는 크게 높지 못한 형편이다. 그러나 소년궁에서의 서예 교육은 다른 예체능 영역과 마찬가지로 양과 질적 수준이 매우 높다. 각 성(省)이나 대 도시에 있는 소년궁의 입학에는 경쟁이 치열하기 때문에 입학하기 전에 상당한 실력을 쌓아야 한다. 우리가 가끔 텔레비전 등을 통해 볼 수 있는 중국 어린이들의 뛰어난 서커스나 미술 작품 등은 대부분 소년궁에서 배운 실력들이다. 전체 학생에 비해서 소년궁에서 배출한 학생들이 비율적으로는 얼마 되지 않지만 그 곳에서 졸업한 학생들은 대부분 계속해서 서예를 하기 때문에 기본적 실력을 갖추고 중 고등학교에 진학한다. 중국의 중 고등학교 서예 교육은 한국과 마찬가지로 공백기에 해당된다고 해도 큰 무리는 없다. 대부분의 중고등 학생들은 대학에 진학하기 위해 새벽부터 학교 수업에 매달리고 있다. 유명한 고등학교에서는 시험을 통해 학생들을 뽑기 때문에 중학교에서부터 입시 공부에 치중하고 있다. 참고로 중국의 중 고등학교는 아침 7시에서 7시 30분 사이에 정식 수업을 시작한다. 따라서 학교에서는 서예 교육이 거의 이루어지지 못하고 있는 형편이다. 다만 예술에 특기가 있거나 예술대학에 진학하려는 학생들은 청년궁(소년궁과 비슷한 성격의 국공립 사회교육 기관)에 입학해서 수업을 받거나 선생님을 모시고 서예를 배우고 있다. 따라서 중 고등학생들의 서예 교육은 전반적이거나 다양성에 기초를 둔 교양 교육이 아니라 소수 정예의 전문화된 서예 교육이라고 할 수 있다. 이들 가운데는 대학에서 서예를 전공하기도 하지만 대다수의 학생들은 다른 과목을 전공하거나 사회에 진출해 서예를 계속하며 중국 서단의 저변이 되고 또 어떤 사람은 서단의 핵심으로 부상하기도 한다.
2) 대학에서의 서예 교육 중국에서 서예 교육의 대부분은 대학에서 이루어지고 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니다. 물론 한국과 같이 개인적으로 스승을 모시고 사사하는 경우도 있으나 사설 학원이 많지 않은 까닭에 사회 교육이 체계를 잡지는 못하는 형편이다. 대학에서의 서예 교육은 여러 가지 단계가 존재한다. 우리가 통상적으로 이해하는 학부나 석 박사 과정 이외에도 전문대학 과정, 성인 전문대학 과정, 통신대학 과정, 주말대학 과정, 석사생 과정(課程)반, 석사생 동등학력 과정반 등 대학에서의 서예 교육은 매우 다양하게 이루어지고 있다. 현재 이상의 과정을 이수하고 있는 재학생 수는 적어도 수 천명은 넘을 것으로 예상된다. 학부와 석 박사 이외의 과정에서 서예 공부를 하는 학생들도 초급대학 과정의 졸업장은 모두 받을 수 있으며 학사 학위와 석사 학위도 일정한 과목을 이수하고 영어와 정치 등의 시험을 통과하면 받을 수 있다. 이는 한국의 대학에서 실행하는 예능 과목의 전문인 과정과는 다른 정식 과정으로 매우 높은 경쟁률을 기록하고 있다. 중국의 대학에서 서예를 전공하는 학생을 정식으로 모집하기 시작한 것은 1962년 절강성 항주에 있는 중국미술학원(당시의 이름은 절강미술학원)에서부터였다. 그 후 중국의 여러 대학에서 서예를 전공하는 학부생을 모집하여 교육하고 있다. 20세기에 말기까지 서예를 전공하는 학부 과정이 있는 대표적인 대학으로는 중국미술학원 이외에 북경의 중앙미술학원과 수도사범대학, 절강의 절강대학, 남경의 남경예술학원, 산동의 료성대학 등이 있었다. 그러나 엄격하게 말해서 아직까지 중국에서 서예과(중국에서는 계(系)라고 함)는 존재하지 않으며 대부분 중문계나 미술계에서 서예반을 개설하여 학생을 모집하고 있다. 중국에서 석사와 박사 과정의 개설은 매우 까다로우며 국무원과 교육부의 허가를 받아야 하기 때문에 서예를 전공하는 석 박사 과정은 비교적 늦게 개설되었다. 1979년 중국미술학원에서 처음으로 석사 과정을 개설하여 학생들을 배출하였으며 그 후 수도사범대학과 중앙미술학원에서도 석사 과정을 개설하여 학생들을 배출하고 있다. 중국의 대학에서 박사 과정을 설치하는 것은 매우 까다로워 국무원의 허가를 얻어야 한다. 중국에서 서예 전공의 박사 과정을 처음으로 설치한 곳은 수도사범대학으로 1995년에 정식으로 서예 전공 학과인 미술학의 박사점이 설치되어 있으며 현재까지 유일한 대학이다. 이 밖의 대학에서는 미술사학, 고고학, 문예미학 등의 학과가 설치되어 있는 박사점에서 서예 전공의 박사 과정을 모집하여 교육하고 있다. 최근에 들어서 중국의 대학에서는 서예 교육의 붐이 일어나 미술대학이나 예술대학은 물론 종합대학의 미술원과 예술원에서도 서예 전공의 학부생과 석사생 그리고 그 외 과정의 학생을 모집하고 있다. 기존의 수도사범대학, 중국미술학원, 남경미술학원 이외에도 산동대학, 절강대학 등에서도 박사 과정의 학생을 모집하고 있으며 그밖에 다른 대학에서도 박사 과정을 신설할 움직임을 보이고 있다. 앞으로 2-3년 안에 더 많은 대학에서 서예 전공 과정을 신설할 것으로 예상되기 때문에 중국은 당분간 서예 교육의 붐이 일어날 것으로 전망된다.
3. 공모전 상황 어느 발표에서 한국에서 일년 동안 공모되는 전람회가 근 300개에 이른다는 기사를 본 적이 있다. 공모전의 양적으로만 본다면 한국의 서예는 저변이 매우 넓고 붐이 일어난 것으로 보인다. 그렇지만 실제로는 그렇지 못한 것이 현실이다. 중국에도 서예 공모전이 있지만 그렇게 많다고 할 수는 없다. 중국의 서예 공모전이 적은 이유로는 여러 가지가 있을 수 있겠지만 중국에는 전국 규모의 서예 단체가 중국서법가협회(中國書法家協會) 하나로 통일되어 있는 것이 가장 큰 이유라 할 수 있다. 거의 대부분의 공모전은 서법가협회의 주최나 주관으로 이루어진다. 또 하나의 이유는 중국에서는 공모전을 마음대로 할 수 있는 것이 아니라 허가를 받아야 되고 또 출품료는 얼마 되지 않는데 미술관 대관료는 엄청나게 비싸기 때문에 공모전을 해서 돈을 벌 수는 없고 도리어 많은 돈이 들뿐만 아니라 단체나 개인을 선전하는 것도 거의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중국의 공모전 가운데 가장 권위 있는 것은 전국서법전각전(全國書法篆刻展, 약칭 全國展)이고 그밖에 전국중청년서법전각전(全國中靑年書法篆刻展, 약칭 中靑年展), 전국영련서법대전(全國楹聯書法大展), 전국정서서법전(全國正書書法展) 등이 유명하다. 이는 모두 중국서법가협회가 주최하는 전시이다. 이 밖에 중국서법가협회의 지부라 할 수 있는 각 지방의 서법가협회가 주최하는 공모전과 또 몇몇의 단체들이 주최하는 공모전이 있다. 최근에 와서 점차 많아지고 있는 추세이지만 아직 크게 많지는 않다. 중국서법가협회가 주최하는 전국 규모의 전시회는 개인적으로 작품을 출품하는 경우도 있지만 대부분 우선 각 지부에 작품을 출품하여 일차적인 심사를 거치고 난 후 지부에서 본부로 출품하여 본선을 한다. 전국전은 매년 개최되는 것이 아니라 3-4년에 한번씩 개최되는 중국에서 가장 규모가 크고 권위 있는 전람회이다. 한국의 예전 국전과 비슷한 성격을 띠고 있지만 운영 면에서는 많은 차이가 있다. 우선 매년 열리는 것이 아니라 4년에 한번 열리기 때문에 이제 겨우 4회가 지났을 뿐이다. 초대작가의 제도가 있기는 하지만 수상 횟수에 따라 초대되는 것이 아니라 사회적 지명도에 의해 초대된다. 따라서 거의 대부분이 서단의 원로이거나 각 省에 있는 서법가협회 주석들로 구성되어 있다. 작품을 출품해서 전시가 되는 것은 이들 초대작가들과 운영위원 그리고 심사위원을 제외한 서예가들은 모두 공모를 통해 입선을 해야 한다. 한 번 특선하고 큰상을 받아 실력을 인정받았다고 해서 전국전에서 초대작가가 되는 것은 아니다. 전국전에 매회 출품되는 작품은 약 3만점을 넘고 있으며 이 가운데 약 500점 정도가 입선 이상으로 선정되어 전시된다. 입선 이상에 선정되는 작가들은 대부분 기성작가이고 잘 알려져 있기 때문에 신인들은 여간한 실력이나 수단으로는 입선하기가 매우 어렵다. 그러나 여기에도 줄서기와 같은 것이 존재하기 때문에 전국전에서 영향력을 가지고 있는 서예가들 주변에는 신진 서예가들의 발길이 끊이지 않고 있다. 전국중청년서법전각전, 전국영련서법대전, 전국정서서법전과 같은 전국 규모의 유명한 전람회도 그 운영 방법은 전국전과 비슷하지만 거의 매년 혹은 격년제로 거행된다 중청년전은 말 그대로 중 청년들이 참가하는 전시회로 55세까지 출품할 수 있다. 젊은 신진 서예가들은 전국전을 통해 지명도를 얻기가 매우 어렵기 때문에 중청년전이나 영련전, 정서전에 많이 참가하여 이름을 알리고 있다. 이 밖에 작 지방의 서법가협회에서 공모하는 지방전도 매년 있는 것이 아니라 2-3년에 한번씩 거행되고 있다.
4. 잡지와 기타 정기 간행물 최근 몇 년 사이에 한국에도 몇 개의 새로운 서예 잡지가 출판되었다. 이는 축하할 만한 일이고 또 서예가 발전할 수 있는 좋은 계기가 될 것이라고 생각된다. 그러나 대부분 서단의 행사나 작품을 소개하는데 그치는 교양지 성격을 띠고 있을 뿐 전문적 학술 잡지가 없는 것이 큰 아쉬움이다. 중국에는 서예 잡지와 그 외 정기간행물의 인터넷 사이트의 종류가 매우 많을 뿐 아니라 그 출판 형식이나 내용상의 성격도 매우 다양하다. 또한 중국의 서예 잡지는 수도인 북경에서만 발행되는 것이 아니라 상해, 천진, 남경 등 전국 각지에서 스스로 독창성을 추구하며 서로 다른 성격으로 발행되는 것이 특징이다. 중국에서 정기간행물을 발행하는 것은 그 등록 절차가 보통 까다로운 것이 아니고 허가도 잘 나지 않기 때문에 아무나 발행할 수가 없다. 그러나 일단 등록이 되면 상당 부분 정부나 공공 기관에서 자금이 지원되고 또 나라가 크고 인구가 워낙 많기 때문에 운영이 순조롭다. 중국에서 출판되는 서예 잡지 가운데 비교적 권위가 있고 유명한 잡지로는 <서법지우>(書法之友), <중국서법>(中國書法), <청소년서법>(靑少年書法), <서법>(書法), <서법총간>(書法叢刊), <현대서법>(現代書法), <서법연구>(書法硏究), <서법상평>(書法賞評), <전각>(篆刻) 등이 있다. 잡지 가운데 <중국서법>은 중국서법가협회에서 발행하는 월간지로 전국에서 가장 많은 독자를 가지고 있는 서예 잡지이다. 잡지의 성격은 중국 서단의 상황을 소개하는 교양지의 성격을 띠고 있다. <중국서법>을 제외한 기타의 잡지는 모두 격월간이나 계간지이다. 이상에서 소개한 잡지 가운데 <서법연구>와 <서예평론>은 서예 학술지이며 <서법지우>는 교양지와 학술지의 중간 성격이다. 서예 신문으로는 <서법보>(書法報), <서법도보>(書法導報), <청소년서법보>(靑少年書法報), <중국서화보>(中國書畵報) 등이 있다. 이들 신문은 대부분 주간지로서 주로 전시회나 공모전 등 서단에서 일어나는 그때 그때의 일을 신속하게 전달하는 역할을 한다. 중국에서는 서예 잡지나 신문을 구독하는 방법도 한국과 좀 다르다. 잡지는 보통 서점에서도 팔지만 대부분 정기 구독을 한다. 정기 구독하는 방법도 한국과 달리 잡지사에 직접 신청하는 것이 아니라 일년에 한번 씩 우체국을 통해서만 신청할 수 있다. 전국에서 발행되는 잡지와 신문을 우체국에서 지역과 종류별로 나누어 번호를 정하고 전국의 각 기관으로 배포하여 10월 달에 다음해의 신청을 받아 독자에게 우편으로 보내 주고 있다.
5. 현대 중국의 서풍 한국의 서예를 걱정하는 많은 사람들은 공모전이나 회원전의 작품들이 마치 공장에서 찍어낸 물건과 같이 너무 닮아 있다고 한다. 예술이 가치 있는 이유는 그것이 창작이기 때문이다. 그런데 다른 사람과 같은 형태의 작품을 한다면 그것은 창작이 아니다. 바꾸어 말한다면 그러한 행위는 예술이 아니라고 할 수 있다. 한국의 내부에서 한국 서예를 보면 각 유파에 따라서 서풍이 다른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한 걸음 물러나 바라보면 그 유파의 차이도 미미하여 거의 나타나지 않고 한가지 서풍으로 나타난다. 현대에 들어와 젊은 작가를 중심으로 개성이 특출한 작품을 창작하는 경우가 종종 나타나 이와 같은 우려 가운데서 조금이라도 위안이 된다. 현대 중국 서예의 서풍은 크게 세 가지로 나눌 수 있다. 하나는 역대의 관방 서체나 유명 서예가의 서체를 계승한 소위 말하는 ‘전통서예’이고 또 하나는 소위 말하는 ‘현대서예’이다. 나머지는 역대의 민간 서체이나 개성이 많은 서체의 영향을 많이 받은 서풍으로 ‘전통서예’와 ‘현대서예’의 ‘당대서풍’(형성된 이름이 없어서 이해의 논술의 편의상 붙였음)이다. 전통서예는 주로 원로 서예가들과 그들에게서 배운 서예가를 중심으로 형성되어 있고 당대서풍과 현대서예는 문화대혁명 이후 서예를 전공한 서예가들을 중심으로 한다. 전통서예는 주로 서예가가 아닌 일반인들의 지지를 받고 있기 때문에 사회 각 계층에서 널리 애호하는 것이 특징이고 당대서풍은 서예 공모전에서 주류를 이루고 있는 서풍으로 공모전에 참가하는 신진 서예가들이 주류를 이루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현대서예는 주로 그림과 서예를 함께 하는 서예가들이 주류이며 전국전에는 참가 할 수 없고 중청년전에만 참가할 수 있다. 그리고 일반인들의 관심을 끌지 못하기 때문에 저변이 넓지 못하다. 한국 서단과 다른 점은 전통서예 보다는 당대서풍이 공모전의 주류를 차지하고 있으며 특히 중청년전에서는 전통서예보다 당대서예와 현대서예가 차지하는 비율이 더 높다는 것이다. 중국 서단에 한국과 달리 당대서풍이 탄생하여 유행하고 서단의 중심 세력으로 성장할 수 있었던 것은 여러 가지 이유가 있겠지만 그 가운데 특이할 만한 것은 전통의 단절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이 공산 혁명으로 새로운 역사를 맞은 것은 예술 장르에까지 많은 영향을 끼쳤다. 그러나 서예는 그 형식으로는 사회성을 크게 반영하지 않기 때문에 별 영향을 받지 않고 전통을 계속 이어나갔다. 그러나 1966년 문화대혁명이 발발하고부터는 상황이 달랐다. 책으로만 본 문화대혁명의 참혹한 상황은 그 실제의 십분의 일에도 미치지 못한다는 것은 그것을 경험한 사람들의 이야기를 통해서만이 알 수 있다. 대학은 문을 닫고 수많은 지식인들과 예술가들이 박해를 받았고 혹은 죽임을 당했다. 서예가들도 예외는 아니었다. 더 심한 것은 선전 활동 이외의 모든 예술 활동이 금지되었고 학문을 하거나 예술을 배우는 것조차도 금지되었다. 따라서 문화대혁명이 끝나고 몇 년 후 정상을 되찾을 십 수년 동안 서예의 전통은 완전히 단절되었다. 현재 대학 교수이면서 중국서협의 핵심 멤버들은 대부분 40대와 50대인데 그들은 대부분 문화대혁명으로 인해 대학을 다니지 못하고 석사 과정을 하였거나 10대와 20대에 스승을 통해 정식으로 서예를 배우지 못한 세대이다. 이와 같은 역사의 단절과 일정한 스승이 없는 것이 오히려 서예의 창작에 장점이 되었는지도 모른다. 일정한 기법에 구속되거나 스승의 눈치를 볼 여지가 적기 때문에 자신의 예술적 감각과 개성에 따라서 창작할 기회가 많아 전통에 바탕을 두었지만 전통서예와 다른 새로운 서풍이 탄생할 수 있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는 예술적 감각이 뛰어나고 행정과 정치력이 뛰어난 사람들이 많아 서단의 중심 세력으로 부상하게 되었으며 그들을 추종하는 세력도 많아져서 그들이 추구하는 서풍이 현대 중국 서단의 중심 서풍으로 정착할 수 있었다. 이와 같은 이유가 설득력이 있다는 것은 같은 대만이나 홍콩의 서풍을 보면 좀 더 분명해진다. 대만과 홍콩도 같은 중국권이지만 공산 혁명과 문화적 단절을 격지 않았기 때문에 대체로 전통에 바탕을 둔 전통서예가 주류를 이루고 있으며 대륙의 당대서풍은 많지 않다.
6 전각계 많은 사람들이 한국과 중국의 서예 가운데 어느 쪽이 수준이 높은지 물을 때 필자는 각자 장점과 단점이 있다고 대답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나 전각에 대해 물으면 대답은 달라진다. 우선 중국은 전각을 하는 인구가 많기도 하지만 그 새기는 양이 한국의 보통 전각가들이 따라가지 못할 정도라고 말한다. 그러면 직접적으로 대답하지 않아도 정답은 분명해진다. 한국의 전각을 하는 사람 가운데 손에 꼽을 만한 몇 명을 빼고는 평생 2천 과를 넘게 새기는 사람이 적을 것이다. 그러나 중국에는 일년에 그보다 많은 양을 새기는 사람이 수두룩하다. 한국에는 대체로 학원을 운영하며 학생들의 수강료로 생활하는 사람들을 전업 서예가라고 부르지만 작품을 팔아서 생활하는 진정한 의미의 전업 서예가는 거의 없다. 그러나 중국에는 전업 서예가가 상당히 많으며 그보다 전업 전각가가 더 많은 비중을 차지하고 있다. 이들이 비록 서협의 중심 세력이 되고 있지는 못하지만 서단의 폭넓은 저변을 확보하고 있다. 이들 가운데는 보통 순전히 업으로만 하는 사람도 있지만 전각계에서 활동하면서 높은 실력을 갖추고 있는 사람들도 적지 않다. 중국의 큰 도시에는 거의 대부분 문화시장이라는 것이 있다. 이곳은 규모가 매우 크며 골동품과 서화와 관련된 물건을 팔고 있다. 전업 전각가들은 주로 이 문화시장을 중심으로 활동하고 있다. 이들은 보통 고객들의 주문에 의해 전각을 하기도 하지만 한편으로는 자신의 예술성을 표현하면서 작품 발표도 하고 작품집을 발간하기도 한다. 중국 서단에서 전각 분야는 상당한 세력을 형성하고 있다. 중국의 서예가들은 대부분 전각을 하고 있으며 서단의 역량 있는 중 청년 서예가들은 가운데에서는 전각에 뛰어난 사람들이 많이 있기 때문이다. 전각의 인풍도 서풍과 비슷하여 한인(漢印)과 민국인(民國印)을 계승한 전통적 인풍과 ‘현대서예’와 맥락을 같이하는 초현대적 인풍, 그리고 당대서풍과 맥락을 같이 하는 인풍 등이 있다. 이와 같은 인풍과 예술가의 예술 영역 사이에는 어떤 공통된 연관성이 있는 것을 발견할 수 있다. 서예와 전각만을 주로 창작하는 예술가는 전통적 인풍의 전각을 주로 창작하고 있으며 서예와 그림 그리고 전각을 동시에 하는 예술가들은 당대 서풍과 비슷한 회화적 구성에 중점을 둔 전각을 주로 창작하고 있다. 초현대적 전각을 하는 예술가는 아직 크게 많은 편이 아니라 몇몇 서예가와 서각(書刻)을 하는 전각가를 중심으로 유파를 형성하고 있다. 한국 서단에는 대가를 중심으로 한 계보별 서풍 이외에 영남권과 호남권 그리고 경기권의 서풍이 조금씩 차이가 난다. 중국은 국토가 넓은 관계로 지역적 서풍의 차이가 더 뚜렷하다. 북경은 비교적 종합적 서풍을 형성하고 있으나 상해와 항주를 중심으로 한 절강권, 하얼빈과 심양을 중심으로 한 동북권, 제남을 중심으로 한 산동권, 중경을 중심으로 한 사천권, 남경을 중심으로 한 강소권 등이 있다. 따라서 작품을 보면 대체로 누구의 계보인지 알 수 있을 뿐 아니라 어느 지역의 작품인지도 알 수 있다. 그러나 전각은 상해를 중심으로 하는 초현대적 인풍을 제외하고는 지역적 차이가 많지 않다. 그러나 대가를 중심으로 한 유파별 차이와 개인적 차이는 아주 많아서 매우 다양한 인풍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 특징이다. 유파별 특징은 청말(淸末)과 민국시대의 대가인 오창석(吳昌碩)과 제백석(齊白石)을 중심으로 하는 것이 가장 분명하다.
7. 마치는 말 중국은 21세기와 함께 경제적, 사회적, 문화적 여러 방면에서 매우 큰 발전을 하고 있다. WYO에 가입하고 2008년 올림픽을 유치한 것을 계기로 중국은 대대적 개혁을 시도하고 있다. 서단에서도 몇 년 동안 서리제로 유지하던 서협의 주석을 정식으로 선출하고 새로운 발전을 위해 노력하고 있다. 중국의 대부분 협회가 그렇듯이 서협도 국영 단체이기 때문에 중앙은 물론 지방 서협과 지부의 주석과 상무 임원진은 모두 국가에서 봉급을 받는다. 따라서 서협의 주석은 권위가 있고 운영 체계는 계통과 질서가 분명하다. 이와 같은 체계를 바탕으로 중국 서단에서는 공모전이나 축제 등의 행사가 이루어지고 있을 뿐 아니라 서예가의 권익이 보호되고 있다. 중국 서예가들의 사회적 지위와 경제적 수준은 매우 높은 편이다. 서예가들이 서예와 관련되거나 그렇지 않거나 대부분 직업을 가지고 있지만 수입의 많은 부분은 서예 활동에서 얻고 있다. 일부 대가의 작품은 서화 경매장에서도 일정한 가격으로 판매되고 있기 때문에 화상을 통해서도 매매가 왕성하다. 따라서 대가들의 수입은 매우 높다. 대부분의 대가들은 자신의 작품에 대한 윤격(潤格)을 정해 놓았는데 이 가격은 시장에서 거래되는 가격보다 조금 낮아서 글씨를 부탁하는 사람이 줄을 서고 있다. 보통의 서예가들 중에서도 윤격을 정해 놓고 공개하는 사람이 많은데 화선지 전지 한 장에 우리 돈으로 300만원이 넘는 대가들도 몇 명이나 된다. 이 밖에 중국에서는 서예 작품이 고급 선물로 인기가 있기 때문에 작품이 필요한 지방의 기업이나 단체에서는 서예가를 초청하여 며칠 동안 접대하면서 휘호하게 하는 경우가 많다. 그러면 서예가는 짧은 기간에 많은 수입을 올릴 수 있고 작품이 필요한 사람들은 저렴한 가격에 작품을 구할 수가 있다. 또한 각 지방에 있는 서협에서 다른 지방의 서예가를 초청하여 서로 휘호하면서 작품을 교환하는 등 서예가들의 교류 가 매우 활발하다. 이와 같은 상황을 기초로 중국 서예가들은 현재 중국 서예는 역사이래 가장 많은 예술가를 배출하고 있으며 서예술은 최고의 황금기를 맞이하였다고 한다. 중국 서단에서도 서예가들의 개인전이나 사회 단체들의 단체전은 많이 열리는 편이나 한국과 같이 한 스승을 중심으로 하는 문하생들의 전시회나 뜻을 같이하는 서예가들의 그룹전은 적은 편이다. 그 이유는 여러 가지 있겠지만 스승의 문하에서 사사하는 경우가 적기 때문에 중국 서예가들은 한 스승에게 얽매이는 경우가 적기 때문이다. 스승을 중심으로 한 횡적인 계보가 넓지 않기 때문에 회원전과 같은 성격의 전시회는 이루어지기가 어렵다. 이는 서예가의 필법이나 작품의 구성을 구속하지 않을 뿐 아니라 심리적인 속박에도 얽매이지 않게 되므로 서예가에게 자신의 능력을 최대한 발휘하여 창작할 수 이는 기회를 제공한다. 어떤 힘이나 규칙에 구속됨이 적기 때문에 중국 서예의 작품들이 덜 획일화되어 있고 통일성이 적으며 다양한 서풍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다. 물론 중국의 서단에도 고쳐야 할 점이 없는 것은 아니다. 역삼각형 형태의 서예 교육 제도, 기초 교육의 홀시, 활성화되지 않은 개인간 그룹간의 교류, 맹목적인 유행 서풍의 학습, 서협 운영의 비 민주화 등 다양한 문제점들이 노출되어 있다. 그러나 이와 같은 것은 중국 서단에서 해결해야 할 문제점이고 우리는 저들의 좋은 점은 배우고 나쁜 점은 타산지석으로 삼아야 하겠다. 먼저 서예 창작의 다양성, 다양한 필법과 서법, 입문과 파문을 구분하는 창작 태도, 규격 제한이 없는 공모전, 서예나 전각 작품의 객관적이고 동정한 가격 형성 등은 우리가 배워야 할 점이다. 지금까지 소개하였던 내용과 중국 서단의 현주소가 구석구석까지 완전히 일치하는 것은 아니겠지만 다양한 영역에서 대체적으로 객관적으로 소개하였다. 서예를 배우는 사람들이나 중국 서단에 대해 궁금한 사람들에게 조금이라도 도움이 되었으면 좋겠다는 바램을 가지고 여기서 졸문을 줄이려 한다.
2002년 10월 29일 산동에서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