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경기도 = 양주별산대놀이, 거북놀이, 안성 남사당풍물놀이 ★
양주별산대놀이
서울과 중부지방에 전승되어온 산대놀이의 한 분파.
1964년 12월 7일 중요무형문화재 제2호로 지정되었다.
초파일·단오·추석에 주로 연희되었고, 그 밖에 명절이나 기우제(祈雨祭) 때도 연출되었다. 놀이 전에 탈고사를 지내는 것이 상례인데 고사에는 조라(산제에 쓰는 술)와 떡과 삼색과일·소머리·돼지다리 등 푸짐한 제물이 준비된다. 제물과 제주를 음복하여 취기가 돌면 앞놀이(길놀이)가 시작되는데, 서낭대와 탈들을 앞세우고 풍물을 울리며 마을을 순회한다.
연희의 내용은 산대도감 계통의 공통된 내용으로 남녀의 갈등, 양반에 대한 풍자·모욕, 서민생활의 빈곤상 등 당시의 현실 폭로와 특권계급에 대한 반항정신을 나타내는 것들이다. 오늘날 산대놀이라 하면 이를 가리킬 만큼 대표적인 것이 되었다.
거북놀이
경기 남부와 충북 일부에서 음력 8월 15일 한가윗날에 하는 민속놀이.
수숫대를 벗겨 거북 모양을 만든 다음, 그 속에 2명(앞에 1명, 뒤에 1명)이 들어가서 마치 거북처럼 집집마다 찾아다니면서 노는 놀이이다. 거북 앞에는 거북몰이가 거북의 목에 줄을 매어 끌고 가고, 그 뒤에는 농악대가 꽹과리 ·북 ·소고 ·징 ·장구 등 타악기를 치면서 동네를 한 바퀴 돈 다음, 비교적 부유한 집을 찾아가는데, 대문 앞에서 농악대가 농악을 울린다.
거북놀이도 지방에 따라 약간의 차이가 있다. 경기 광주 지방을 일례로 들면, 거북이 땅에 엎드려 움직이지 않는 것을, 집주인이 보면 거북몰이가 배가 고파 떡이 먹고 싶어 그런다고 말한다. 그러면 집주인이 음식을 차려 내놓는다. 그리고 거북을 만드는 재료도 수숫대만 사용하는 것이 아니고, 왕골이나 만초(蔓草), 나뭇잎 등을 사용한다. 거북은 바다 동물 중에서는 가장 오래 살고, 또 병이 없는 동물로 알려져 있어, 십장생(十長生)의 하나이다. 거북놀이는 거북처럼 마을 사람들의 장수(長壽)와 무병(無病)을 빌고, 또 마을의 잡귀 ·잡신을 쫓는 데서 발생된 것이라고 생각된다.
안성 남사당풍물놀이
경기도 안성시 서운면 청룡리에서 발생한 남사당의 풍물놀이.
1997년 9월 30일 경기도무형문화재 제21호로 지정되었다.
남사당놀이 중의 풍물은 일종의 농악놀이로, 24명 내외가 한 조를 이뤄 인사굿으로 시작하여 돌림버꾸에서부터 네줄백이·마당일채 등 판굿을 돈다. 그런 후 상쇠놀이·따버꾸놀이·징놀이·북놀이·새미발기·채상놀이 등을 이어간다.
유래
1865년(고종 2) 흥선대원군은 재정의 어려움을 무릅쓰고 경복궁의 재건을 강행하여, 1867년에 준공하였다. 이때 공사를 촉진하고 독려하기 위하여 나라의 모든 일꾼들과 더불어 농악대가 동원되었다. 흥선대원군은 전국의 농악대 중에서 가장 뛰어난 재주를 보인 안성 돌우물 농악대에게 옥관자(玉貫子)를 하사하였다.
그 뒤부터 그 옥관자를 두레기의 윗부분에 달고 깃발의 아랫부분에는 오방을 상징하는 빨강·파랑·노랑·검정·흰색의 오색 삼각기를 달고 다녀 안성의 돌우물 농악대의 두레기가 나타나면, 어느 마을의 두레기이든지 기수를 숙여 기배(旗拜)를 드렸다고 한다. 그때부터 안성 돌우물 농악대의 두레기를 일러 영좌농기(領座農期)라 하였으며, 이 농악대를 일러 영좌농악대라고 하였다.
★강원도 = 강릉가면극놀이, 강릉단오제★
강릉가면극놀이
강원 강릉지방에 전승하는 가면극.
관청에 딸린 노비[官奴]들이 놀잇꾼을 하였으므로 한국의 가면극 가운데 유일하게 대사가 없이 춤과 몸짓으로만 연희되는 무언극인 점이 특징이다.
유래
1910년대까지 연례적으로 거행되었으나 일제강점기의 전통문화 말살정책으로 맥이 끊겼다가 1965년 전국민속예술경연대회 때 재연되었다. 1967년 강릉단오제가 중요무형문화재(13호)로 지정되는데 큰 역할을 하였으며, 지금까지 강릉단오제의 중요한 행사로 거행되고 있다
강릉 단오제 [江陵端午祭]
음력 3월 20일에 제사에 드릴 술[神酒]을 빚고 4월 1일과 8일에 대성황사에서 헌작(獻爵)·독축(讀祝)·무악(巫樂)으로 제를 지낸다. 4월 15일에는 대관령 국사성황사에서 헌작·독축·무악으로 제를 지낸 후 신대[神竿木]를 베어 대관령 국사성황을 모시고, 강릉으로 돌아와 구사성황사 정씨집(범일국사 전설에 나오는 집) 여성황사를 거치며 차례로 제를 지내고 대성황사에 모신 뒤, 4월 27일에 굿을 하고 5월 1일에는 강릉 남대천에 설치한 본제청에서 본제를 시작하여 며칠간 무당굿과 관노놀이를 하며, 갖가지 민속놀이가 벌어진다. 5월 7일에는 소제를 하고 대관령 국사성황을 보내드리는 소제 및 봉송(奉送)을 끝으로 마친다.
★경상도★
오광대놀이, 한장군놀이, 하회별신굿탍놀이, 안동의 놋다리밟기, 영산줄다리기, 감내게줄당기기 등
고성 오광대놀이(오광대놀이 중에서 고성이 제일 유명합니다)
무형문화재 7호
오광대놀이는 고성의 대표적 문화유산이다. 경남 합천군의 초계 밤마리장터에서 대광대(竹廣大)패들에 의해 시작되었던 오광대놀이는 의령,진주,산청,통영,고성 등지로 전파되었는데, 고성에서 가장 아름답게 꽃피었다.
고성군에 전해오는 속전에 따르면 조선 왕조 말엽 고성골에 두 파의 선비들이 살았다고 한다. 북촌의 부유한 선비들은 주로 귀족 음악을 애호했고, 좀 가난한 남촌의 선비들은 풍물 등의 민중 오락을 즐겼다고 한다. 이들 남촌 선비들이 고성 오광대를 주관, 전승했다고 하는 설이 있다.
한장군놀이 [韓將軍-]
경북 경산시 자인면(慈仁面) 서부리(西部里) 일대에 전승되는 민속놀이.
1971년 3월 16일 주요무형문화재 제44호로 지정되었다. 강릉단오제나 은산별신제과 흡사한 놀이이다. 유래는 마을굿의 일종으로 먼 상고시대의 축제의식에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한장군이 실존 인물이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임진왜란 때 여자로 가장하여 여원무(女圓舞)라는 춤을 추다가 넋을 잃고 구경하는 왜군을 일시에 찔러 물리쳤다는 무용담이 전해지고, 한장군의 산소라는 무덤이 있다.
하회별신굿탈놀이
경북 안동군의 하회동과 병산동에서 전해 내려오는 탈춤으로서 하회별신굿 탈놀이라는 놀이가 있는데, 이는 동네의 서낭신에게 제사를 올리고 풍년을 기원했던 풍습에서 유래한 것으로 여겨지고 있다. 섣달 그믐날이나 정월 초이튿날 아침에 놀이패들이 마을의 서낭당에 올라가, 의식적인 절차로서 신을 불러내어 마을 집회장소인 동회로 돌아온다.
안동의 놋다리밟기
해마다 음력 정월의 대보름날 밤에 몸단장을 곱게 한 젊은 부녀자들이 모여서 행하는 놀이이다. 놀이를 할 수 있을 정도의 사람들이 모이면 모두일렬로 늘어서서, 각자 앞사람의 허리를 두 손으로 껴안은 채 엎드린다. 그 다음에는 어린 소녀를 뽑아서 사람들의 등을 밟고 지나가게 하고, 키큰 사람 둘이서 양쪽으로 그 소녀의 손을 잡아 부축해 준다. 이 때, 놋다리 밟기의 노래가 불리워지며 그 가사 속에는 이 놀이가
생겨난 배경이 잘나타나 있다. 고려시대의 공민왕이 중국의 홍건적에게 쫓기어 안동지방으로 파천했던 일이 있었는데, 당시 함께 갔던 왕비인 노국공주가 시내를 건널 때, 쉽게 건널 수 있도록 사람다리를 놓았던 데서 유래한 것이라고 한다.
그래서 이 노래속에는 여러 가지 궁중의 의복, 집기, 음식 등을 지칭하는 말이 나오며, 이 ‘놋다리’라는 말의 뜻은 “시냇물 위에 놓은 다리”라고 한다.
영산줄다리기 [靈山-]
경남 창녕군 영산면(靈山面)에 전승되는 민속 놀이.
1969년 2월 11일 중요무형문화재 제26호로 지정되었다.《동국세시기(東國歲時記)》에 의하면, 줄다리기는 한국에서는 오래 전부터 중부 이남 지방에서 널리 하였다고 하며,
싸움이 시작되면 수많은 남녀노소가 줄을 잡는다. 심판의 신호에 따라 경기와 휴식이 번갈아 진행된다. 줄은 암줄과 수줄로 나뉘는데 암줄이 이겨야 풍년이 든다고 한다. 이긴 편의 밧줄과 꽁지줄을 풀어 짚을 한 웅큼씩 떼어다가 자기집 지붕 위에 올려놓으면 좋은 일이 생긴다고 하며, 또 그 짚을 소에게 먹이면 소가 튼튼하게 잘 크며 거름으로 쓰면 풍년이 든다고 한다.
마산 사람들은 이 짚을 사다가 풍어를 빌었다. 줄다리기가 끝나면 농악대를 앞세워 집집마다 다니면서 지신밟기를 한다. 영산줄다리기는 풍농과 풍어를 기원하는 속신이 있으며, 집단적인 신체 단련과 경기의 즐거움 등이 깃들어 있는 놀이이다.
감내게줄당기기(밀양)
경상남도 밀양시 부북면(府北面) 감천리에서 정월 대보름날을 전후하여 마을 사람들이 즐기던 민속놀이.
1983년 8월 12일 경상남도무형문화재 제7호로 지정되었다. 일명 끼줄땡기기라고도 한다. 언제부터 시작되었는지는 알 수 없으나 마을 단위 줄다리기류의 민속놀이라고 할 수 있다. 감내 게줄당기기는 예부터 감천리에서 이웃과의 반목해소와 주민화합을 위해 창안되었다.
마을 중심을 흐르는 이 감천에 예부터 게가 많이 잡혔다. 주민들은 서로 좋은 목을 차지하려다 보니 자연히 인심이 거칠어졌다. 그러자 마을 어른들은 게줄당기기 시합을 하여 그 결과로 구역을 할당하기로 했다. 그후부터 마을사람끼리 반목하는 폐단이 사라졌다.
게의 생산이 줄어들면서 놀이는 한동안 중단되다가 근대 이후에 부활되어 정월 보름과 7월 백중날 등의 농한기에 하게 되었다. 농한기 때 보를 고치는 일이나 농토를 고르는 일 등의 부역을 걸고 이 놀이를 하기도 한다.
★전라도 = 고싸움놀이, 띠뱃놀이, 진도다시래기★
고싸움놀이
전남 광산군 대조면 칠석리 윷돌 마을에서 매해 음력 정월 10경부터 2월 초하루에
걸쳐서 벌이던 놀이다. 큰 줄을 꼬아 앞쪽에 고를 짓고 이것을 양쪽에서 밀어서
부딪게 한 다음 상대방의 고를 땅에 내려뜨린 쪽이 이기게 된다.
이 놀이의 유래에 대해 마을 주민들은 윷돌 마을이 황소가 쭈그리고앉은 와우상이라터가 거세기 때문에 이를 풀어주기 위해 시작하였다고들 한다.
띠뱃놀이
서해의 '위도'라는 섬에 전해져 내려오는 특유의 민속놀이이다.
매해 정월 초사흗날이 되면 위도 사람들은 풍어와 섬마을의 안녕을 기원하는 마음으로 띠뱃놀이를 한다.
섣달 스무날경 산마루 절벽위에 서있는 원당에 금줄을 쳐서 사람들의 출입을 막아 부정을 타지 않게 하는 '원당제'로부터 시작된다.초사흗날 아침 농악대가 풍물을 울리면 마을 사람들은 춤을 추며원당으로 향한다. 원당에 도착하면 동쪽에 청색기,서쪽에 백색기,남쪽에 적색기, 북쪽에 흑색기, 중앙에 황색기를 꽂고 제사를 지낸다. 이때 촌장이 나와 축원을 올리며 사람들은 차례로 절을 하며 저마다의 소원을 빈다.
진도다시래기
전라남도 진도지방에서 출상(出喪)하기 전날 밤 초상집에서 상두꾼들이 벌이는 민속놀이.
1985년 2월 1일 중요무형문화재 제81호로 지정되었다. 출상 전날 밤에 상두꾼들이 놀이판을 벌이는 것은 전국 어느 고장에서나 볼 수 있으나, 진도 지방에서는 상두꾼뿐만 아니라 놀이패까지 불러들여 놀이를 벌인다.
놀음은 여러 가지이나, 맹인(盲人)·부인·중[僧]이 벌이는 삼각 관계를 연출하는 놀이가 가장 뛰어나다.
★충청도 = 연산백중놀이, 서산박첨지놀이 ★
연산백중놀이
충청남도 논산시 연산면 일대에서 전승되어온 민속놀이. 조선 성종 때부터 시작되어 500년의 전통을 지닌 민속놀이이다.
백중놀이는 쌍룡기(雙龍旗)와 용기(龍旗)를 가진 동리로 각각 나누어 놀이마당으로 들어오는 길놀이로 시작해 기싸움을 벌인다. 기싸움이 끝난 뒤 용기 집단이 쌍룡기에게 기세배(旗歲拜)를 올리고 농신제(農神祭)를 지낸다.
조선시대부터 시작된 연산 일대의 백중놀이는 일제강점기에도 계속되었는데, 1940년 무렵 중단되었다가 1989년에 재현되었다. 특히 연산의 백중놀이는 효자, 효부와 머슴을 표창하고 불효자는 징벌하여 충효와 근면을 강조한 민속놀이이다.
서산 박첨지놀이
2000년 1월 11일 충청남도무형문화재 제26호로 지정되었다. 양반사회의 모순을 해학적으로 풍자해 건강한 웃음을 자아내게 하는 인형극이다. 내용은 남사당의 꼭두각시놀음(중요무형문화재 3)과 비슷하다..
첫댓글 까치까치 설날은 어제께고요 우리우리 설날은 오늘이래요(더도말고 덜도말고 설날만 같아라 ) 맛난 음식 드시고 올해도 건강하세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