반지의 제왕얘기를 듣고 책을 읽어야 겠다는 마음은 안들었다.
하지만 영화로 본다면야... 얼마든지 환영이지...
그렇게 해서 6학년짜리 아들, 형곤이와 영화를 보기 시작했다.
그런데 무슨 영화가 한번 시작하면 기본이 세시간인지...
정말 길었다. 아~ 그렇게 긴 영화를 보는 게 얼마만인지?
1.
이 영화를 보면 반지에 대해 생각하지 않을 수 없다.
무슨 놈의 반지가 근처에만 가도 이성을 다 말아먹게 하는지?
재미있는 건 골룸과 스미골이다.
스미골로 돌아오면 온순해지지만
반지에 대한 욕심을 갖게 되는 순간 골룸이 된다.
그래서 한 몸에 골룸과 스미골이 같이 있으니 얼마나 힘들까, 싶다.
끝없이 반지를 탐하는 골룸과
그래도 사람으로서의 도리를 아는 스미골이
반지를 운반하는 프로도에게 길안내를 한다는 설정 자체가
괴로움인 것 같다.
그 괴로움이 자신을 파멸시킬거라는 걸 알면서도 멈출 수 없다.
그건 스밀골 뿐만 아니다.
마지막에 반지를 용암 속에 던져버려야 하는 그 순간.
프로도 또한 반지를 버리지 못하고 손가락에 끼어 버린다. 물론
그것을 알게 된 골룸이 프로도 반지낀 손가락을 잘라 먹음으로 해서
반지를 빼게 되긴 하지만.
나는 사람을 죽이고도 남을 욕구에 대해 생각하게 된다. 욕구에 사로잡히면
정말 괴롭다. 무슨 일이 있어도 그 욕구를 풀어야만 괴로움에서 벗어날 수 있다.
그런데 삶이란 욕구를 채워주기 보다 욕구대로 살 수 없음을 절감하게 하는 것 같다.
욕구에 사로잡힐 때, 욕구충족이 안돼서 괴로울 때,
그리고 그 순간이 자의든 타의든 지나고 나서 되돌아 보게 될 때,
그런 전 과정이 다 괴로움인 것 같다.
(하지만 수행의 관점에서 욕구가 일어나는 것을 보고, 알아차리면
그 욕구에 먹히지 않는 길도 있다.)
반지의 제왕에서는 반지를 용암 속에 던져버리는 것으로
악에 대한, 절대 권력에 대한
끝없는 욕구가 소멸된 것으로 나오지만,
현실에는 좀더 잔잔하고 일상적인 욕구들이
파도처럼 숨쉬고 있는 것 같다.
어쩌면 이런 개개인에게 숨어있는 욕구가
하나의 거대한 욕구를 만들어 내는 게 아닌가 싶다.
그러니 정말 잘 산다는 것은
평범한 시민이 자신을 잘 다스리는 것에서 시작될 수도 있다.
2.
반지운반자인 프로도를 도와
모르도르의 계곡까지 함께 간 샘이라는 인물!
정말 매력적인 인물이었다. 아니 내 생에서 이런 사람과 우정을
나눌 수 있다면 더 없이 행복하겠다는 생각이 들 정도로 훌륭한 사람이었다.
(내가 샘같은 사람이 되겠다는 생각보다 샘같은 사람이 나를 밀어주기 바라는 마음!)
어쩌면 프로도보다 더 훌륭한 것 같다.
프로도에게 충성을 다하는 헌신적인 모습이 보기 좋았다. 그리고 샘은
때때로 시인이 되기도 하고, 이야기꾼이 되기도 한다. 그가 읊조리는 대사를 기억하지
못하는 게 너무 아쉽다.
다음부터는 영화를 보든, 책을 보든 메모하면서 봐야 겠다는 생각이 든다.
지나치고 나니까, 감정만 남지 그 감정을 전달 할 수 있는
자세한 이야기는 남지 않았다.
3.
핍핀과 메리가 엔트를 만나는 장면도 참 좋았다. 거인사냥꾼을 조심하세요.라는
동화가 생각났다. 나무 자체가 하나의 생명체가 되어 말하고, 걷고,
엔트어로 회의하고...
또, 엔트족은 미나스 티리스 싸움에 참여하지 않기도 했다가,
핍핀과 메리를 남쪽으로 데려다 주러 가는 길에
쑥대밭이 되어 있는 자신들의 숲을 보고 나서
싸움에 참여할 것을 결의하게 된다.
여기서,
아~ 누구나 자기를 건드리는 무언가가 있어야 움직이게 되는 걸까 싶었다.
자기 동족의 죽음을 본다거나,
자기 가족의 죽음을 본다거나,
아니면 자기 동족이 그렇게 될 것을 확신하게 될 때 움직이게 되는 건가 싶다.
그것이 내게 직접적인 연관이 없어 보일때, 움직인다는 건 보통일이 아닌 것 같다.
그렇지만 영화를 보던 내 입장에서는
그 남쪽의 나무가 죽어간 것을 보지 않아도
사우론이 전쟁을 계속하는 한, 엔트족의 멸망은 현실로 보여졌다.
결국 보다 크게 보는 눈이 있어야 할 것 같다. 나라는 테두리 안에서
내 동족이라는 테두리 안에서 보는 것은 한계가 있다.
더 나가서 크게, 멀리, 높이 봐야만,
하나로 연결돼서 하나의 유기물로 살아가는 우주만물이 보이지 않을까 싶다.
4.
죽음에 대한 관점이 참 새롭다. 빌보와 프로도와 간달프가 결국 죽는다.
물론 전쟁에서는 죽지 않았지만,
그 후로 4년이란 시간을 더 살다가
빌보삼촌은 나이가 많아서 그런 것 같고,
간달프는 발록하고 싸우다가 죽을 뻔 했는데,
할일을 다 마치고나서 죽기로 예정되어 있었고,
프로도는 반지를 낀 상태에서 마법의 왕에게 찔린 상처가 낫지 않아
죽는 것 같았다.
보편적인 죽음은 숨쉬다가 숨이 끊어지고,
몸에서 온기가 빠져나가고... 뭐 이런데,
영화에서는 엘프족(?)이 배를 갖고 와서 가는 곳까지 태워주기로 한다.
빌보삼촌은 아직도 새로운 모험을 할 수 있다면서 웃으며 올라타고,
간달프는 있는 그대로 받아들이는 느낌이었다면,
프로도는 약간 아파하는 것 같았다. 물론 나중에 매력적인 웃음으로
그 느낌을 지워주긴 했지만...
세명다 여행을 떠나는 것처럼 보였다. 그 행선지가 죽음이라는 것이 다르긴 한데,
아마도 그들은 죽음이라고 해서 그걸 특별하게 여기는 것 같지 않았다.
간달프가 미나스 티리스에서 핍핀에게 죽음에 대해 얘기하는 부분이 너무 좋았는데
메모해두지 않아서 기억나지 않는다.
죽음을 이렇게 표현할 수 있다는 것이 새로운 발견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