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300년 묵은 내수 타령.. 한국의 꿀벌들은 언제 진화하나 | ||||||
버나드 맨더빌 《꿀벌의 우화》로 되돌아보는 진정한 '자유주의 경제'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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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좋은 일자리를 만들어내는 사람은, 옳든 그르든 사회의 가장 큰 친구다." 딱 2010년에 대한민국 누군가가 삼성을 변호하기 위해 한 말일 것 같지만 그렇지 않다. 이 말은 약 300년 전에 발간된 책 《꿀벌의 우화》의 한 구절이다. 《꿀벌의 우화》는 영국 학자, 버나드 맨더빌이 1723년 발표한 책이다. 개개인의 이기적인 경쟁이 사회에도 이익이 된다, '소비'가 경제를 발전시키는 원동력이다 등등 현재 자유주의 경제사상의 근간을 이루는 발상과 개념들이 모두 이 책 한 권에서 나왔다.
하지만 어느 날, 이들의 뻔뻔한 모습을 참지 못한 신이 벌집에서 속임수를 없애고 모두를 정직하고 성실하게 만들어 버렸다. 그러자 벌집 속 세상은 완전히 변해버린다. 물건 가격은 거품이 빠져 폭락하고, 범죄자를 다루기 위한 경찰, 법조인 같은 이들은 모두 직업을 잃는다. 소비에 큰 돈을 들이는 이들이 없으니 귀중하고 만들기 어려운 물건들도 모두 시장에서 사라져 버린다. 할 일이 없어지자 벌들이 자꾸 떠나고 군대도 약해져 다른 벌통과의 전쟁에서 큰 피해를 입는다. 결국 이 우화를 통해 맨더빌은, 현실 사회에서는 근면과 검약은 미덕이 아니며, 사치스러운 소비와 남에게 일을 시키고 싶어하는 게으름이 사회를 유지하는 데 필수 불가결한 요소라고 주장한다. 물론 종교적 엄숙주의와 권위주의에 지배되던 18세기 당시에 이같은 생각은 쉽게 받아들여지지 못했다. 그의 책은 출간되자마자 고발을 당했으며, 프랑스에서는 책을 불사르기도 했다. 하지만 한 가지 반드시 짚어야 할 것은, '그러므로 맨더빌이 옳았다!'라고 단순하게 결론지을 수 있는 문제가 아니라는 것이다. 그러나 맨더빌의 시대는 중상주의가 대두하며 사회의 부가 폭발적으로 늘어나던 시기였다. '식민지'로부터 자원과 노동력이 끝도 없이 밀려들어왔으며(비록 눈에 보이지 않는 곳에서 이를 위한 착취가 일어나고 있었지만) 사회는 폭발적인 발전가능성으로 넘치고 있었다. 사람들의 경제관 역시 이에 따라 바뀌어야 할 때였다. 하지만 부의 급격한 증가는 사회를 발전시키는 동시에 시민 계급을 성장시켜 귀족과 성직자들의 지위를 위협했다. 따라서 기존 기득권층은 이전 시대의 도덕 잣대를 가지고 부를 모으기 시작하는 시민 계층을 압박했다. 한 때 공동체를 수호하는 가치였던 '도덕'이, 이제는 특정 계급의 이익을 위해 구성원의 자유를 억압하는 도구가 된 셈이다. 이 때 등장한 버나드 맨더빌은 새 시대에 맞는 새로운 세계관을 제공함으로서, 시민들이 발전한 시대상을 누릴 '자유'를 주장했다. 그는 과감하게 탐욕와 사치의 미덕을 말함으로써 궁극적으로는 이후의 사람들이 '자유를 억압하는 권력'과 싸울 수 있도록 도왔다. 맨더빌의 아이디어는 절대적 진리여서가 아니라, 그 시대 그 순간에 필요한 것이었기에 센세이션을 일으켰고 흄과 애덤 스미스를 비롯한 많은 이들에게 받아들여진 것이다. 그리고 맨더빌의 시대로부터 300년이 흘렀다. 현대인들은 맨더빌의 뜻대로 '돈 벌 자유'와 '돈 쓸 자유'를 무궁무진하게 누리고 있다. 맨더빌의 관점이 훌륭하게 제 역할을 다 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세계의 경제적 상황은 18세기와는 또 엄청나게 달라졌다. 아직도 사회의 발전 가능성은 무궁무진하지만, 우리는 이제 지구 자원이 한정되어 있고 지구 곳곳에 기아와 환경 파괴가 창궐하고 있다는 것을 안다. 맨더빌의 시대가 사람들이 불가능하고 불필요한 근검 절약을 강요받던 시기였다면, 반대로 오늘날은 사람들이 미디어와 광고로부터 불가능하고 불필요한 소비를 강요받는 시대다. 그렇다면 지금까지도 그의 말을 앵무새처럼 따라하는 사람들은 오히려 맨더빌의 뜻과는 반대로 구 세계의 질서를 강요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변화한 세계 경제에 정말로 맞는 '자유주의적 경제인'은 어떤 것일까? 이를 꿰뚫을 날카로운 통찰이야말로 우리가 정말 버나드 맨더빌에게서 배워야 할 것인지도 모른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