명사십리 넓은 모래밭 일품 ‘군산 선유도’
천혜의 비경, 신선들이 노닐다 가는 섬
살다가 문득 ‘나는 한 점 섬’이라는 생각을 하곤 한다. 무리 속에 있어도 섬이 된 느낌에 가끔 코를 실룩거린다. 그럴 때마다 알 수 없는 그곳, 이름 없는 섬이 그리워진다. 어떤 섬이라도 좋다. 신선이 노닐다 갈 만큼 비경이 숨어있는 곳이라면 더더욱 좋다. 비경에 취해 신선이 노닐다 간 전설이 깃든 군산 선유도를 향해 새벽녘 불빛을 밝혔다.
희미한 차량 불빛이 어둠을 곧잘 뚫었다. 4시간 여 만에 군산여객터미널에 도착했지만, 자욱한 안개로 인해 첫배, 두 번째 배가 묶여 있는 상태다.
다행히 우리가 예약한 오전10시20분배는 출항할 수 있다. 배를 놓친 여행객들과 함께 대기하고 있는데, 대부분 짐이 보통이 아니다. 섬에는 모든 물가가 비싸 웬만한 물품을 챙겨가야 하기 때문이다. 또한 은행이 선착장 부근 우체국 밖에 없어 근무시간 외에나 주말과 휴일에는 현금 인출이 불가능해 필요한 현금은 꼭 챙겨서 가야한다.
군산-선유도행 쾌속선은 50분 만에 선유도항에 데려다 주었다. 보통 하루4번 운항하지만 여름철에는 수시로 운행하고 있다. 이곳에는 버스나 택시, 승용차가 거의 없다. 교통수단은 자건거와 오토바이, 그리고 골프장에서 볼 수 있는 전동카 등이다.
고려시대 이곳에 군산이란 진영이 있었는데 지금의 군산으로 옮겨가면서 ‘고군산’이 되었다. 선유도의 상징인 망주봉(152m)이 가는 곳마다 눈에 들어온다. 귀양 온 선비가 임금을 그리다 그만 굳어져 바위산이 됐다는 전설을 안고 있는 이 바위산에는 한 여름 폭우가 내릴 때만 7~8개 정도의 폭포가 나타난다는 망주폭포가 폭포물 대신 긴 흔적을 남기고 있다.
민박집에서 여장을 풀고 갯벌체험에 나섰다. 명사십리 해변은 실제3km 정도다. 고운모래길이 비단 같다 해서 붙여진 이름인데 솔섬을 기점으로 모래사장과 갯벌로 나눠진다. 갯벌에서 대합을 캐는 동네 여인의 날쌘 호미질을 엿보면서 흉내를 내보았다. 허탕 치기 일쑤지만, 오래 호미질을 하다 보면 이력이 생겨 대합을 캐낼 수 있었다.
더욱 흥미로운 것은 준비한 맛소금을 모래를 파고 구멍 안에 쏙 집어넣으면 맛조개가 ‘쏙’ 올라오는 것. 시간가는 줄 모르고 갯벌 체험에 빠지다보면 자칫 몸에 무리가 올 수도 있다.
갯벌체험으로 지쳐있었지만, 이곳에서 자전거 하이킹을 하지 않으면 후회할 일이다. 민박집이 선유3구에 해당해 명사십리 끝에서 조금 더 들어간 곳에 위치해 있다. 이곳 지명은 1구,2구 등으로 불리어 낭만이 떨어지는 느낌이다.
이곳에서 쭉 뻗은 해안도로를 하이킹하는 동안 몇 대의 전동카를 만나고 가장자리에 서서 이들 차를 피하는 동안 길가에 핀 해당화가 눈을 즐겁게 한다.
밀물로 인해 조개를 캐던 길이었던 솔섬이 섬이 되고, 맛조개를 캐던 곳도 물에 잠겨 바다에 흡수되었다. 망주봉 아래에도 물이 차올라 망주봉이 반영돼 한 폭 동양화를 그려낸다.
망주봉 산 정상이 마치 두 신선이 마주 앉아 바둑을 두는 것처럼 보인다 해서 선유도(仙遊島)라 이름이 붙여졌다. 선유도와 함께 고군산군도는 군산 서남쪽으로 45km떨어진 섬으로 선유도, 방축도, 신시도, 말도 등 16개의 유인도와 63개의 무인도로 이루어졌다.
본섬인 선유도와 무녀도, 장자도, 대장도는 아치형 다리로 연결돼 있어 도보나 자전거, 오토바이로 자연스럽게 넘나들 수 있는데 3~4시간 정도면 족히 둘러볼 수 있다. 자전거로 선착장까지 내달리다 춤추는 섬 무녀도를 향했다.
선유도에서 가장 길고 아름다운 선유대교를 건너는 사이 시원한 바람이 불어 더없이 평온해진다. 선유대교는 길이268m로 이곳 서쪽에는 선유팔경 중 하나인 삼도귀범의 섬이 눈에 들어온다. 섬이 장구처럼 생겨 무녀봉과 쌍이 돼 무당이 춤추고 장구 치는 모습을 하고 있다.
무녀도에는 선유도 유일의 ‘무녀초등학교’가 있다. 작은 운동장에는 잔디가 깔려있고 교실보다 사택이 더 크게 느껴진다.
초등학교를 지나 습지를 만나고 지나가는 사람에게 물어 염전을 찾아냈다. ‘무녀도 완영염전’ 낡은 간판이 빈 세월을 말해준다. 수차가 멈춰져 있고 염전은 땅만 드러내고 있는 폐염전이다.
선유도 백미인 낙조를 감상하지 못했다. 걷혔다가 다시 끼곤 하는 안개로 인해 아름다운 풍광이 흐릿하게 보여 아쉬움으로 남는다.
이튿날 망주봉 등산길에 나섰다가 억센 풀에 베이고 그냥 되돌아섰다. 간밤에 내린 비로인해 길이 미끄러워 바위산을 오르는 것을 포기해야 했다. 대신 선유봉을 향해 걸었다. 선유봉은 명사십리와 어우러진 망주봉을 관망하기에 더없이 좋은 장소다. 장자도와 대장도도 시원스레 펼쳐진다.
선유봉에서 내려와 지금의 선유도에 비해 작은 규모의 섬이 되었지만 약60여 년 전 까지만 해도 고군산군도에서 가장 풍요로운 섬이었던 장자도다. 장자교 위에도 바람이 시원스레 불어 열기에 가득 찬 몸을 식혀주었다. 이곳 바다는 잔잔한 호수와 같다.
대장도까지 둘러보고 이곳 콜택시인 전동카가 민박집까지 데려다주었다. 민박집에서 바다로 나가 홍합 따기를 시도했다. 자연산 홍합이 바위에 붙어 죽 훑기만 해도 떨어질 정도다. 육질이 연하고 담백한 자연산 홍합은 맛이 일품이다.
아름다운 선유도, 새만금 간척지를 ‘동북아의 두바이’로 육성한다는 발표에 따라 이곳도 휴양지로 개발하게 될 것이다. ‘섬’이 아닌 휴양지로 거듭나게 되지만 순박하고 때 묻지 않은 자연은 기대하기 힘들 것 같다. 그때는 섬이 내 가슴에 들어앉을 것만 같다.
고은희기자 gogo@newsis.com
사진설명 :
망주봉 : 선유도의 상징인 망주봉은 아빠봉과 엄마봉 사이 봉우리가 달마를 닮았다고 한다.
선유교 : 선유도에서 가장 긴 다리인 선유교
장자 : 선유봉에서 바라본 장자교
홍합 : 바위에 손만 훑으면 죽 떨어질 듯한 홍합
해당화 : 망주봉 아래 해당화 군락지
염전 : 수차도 염전도 이제는 옛날 일이 돼 버린 폐염전
고군산군도 : 선유봉에서 바라본 고군산군도
명사십리 : 명사십리가 망주봉까지 휘어져 길게 뻗어있다.
팬션 : 야경이 아름다운 주변 팬션
무녀초 : 선유도에서 유일한 무녀초등학교
솔섬2 : 썰물 때 길이던 곳이 밀물에는 섬이 된다.
첫댓글 아름다운 여행길이 되셨군요. 선유도에 대한 좋은 정보 잘 담아 두었다가 유익하게 쓰겠습니다. 감사...^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