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설로 느끼고, 드라마로 즐깁시다. 소설과 드라마를 역사책으로 착각하지 맙시다." {소설 동의보감}이 베스트셀러가 된 후, 예기치 않은 일이 발생했다. 대중들이 역사적 진실과 허구를 구별하지 못한 상태에 빠져버린 것이다. 경남 산청군의 허준 이벤트가 그 단적인 예다.
산청은 {소설 동의보감}에서 허준이 의술을 수업하던 곳으로, 그곳의 군청에서는 이를 근거로 허준의 자취를 느끼도록 하는 사업을 시작했다. 학자를 불러 세미나도 하고, 기념물도 만들고.... 역사적 뒷받침 없이 단지 소설 대목에 근거하여 나랏돈으로 이런 일을 벌인다니 쓴 웃음이 절로 나온다.
더 놀랄만한 일은 너무나도 많은 한국인들이 소설 속의 내용을 사실처럼 인식하고 있다는 점이다. 유의태를 실존인물인 줄 알고 있고, 허준이 유의태를 해부했는 줄로 안다. 독자의 무지만 탓할 수 없다. 책을 펴낸 출판사와 방송국은 너무나도 권위 있는 곳이기 때문이다. {소설동의보감}은 국내 최고의 양서만을 찍어내는 창작과비평사에서 찍은 책이며, 드라마 <허준>은 국내 굴지의 공공 기관인 MBC에서 내보냈던 것이다. 그 '권위' 때문에 허구와 사실의 판단능력이 크게 무뎌진 것이리라. 10%, 아니 1%의 내용도 허준의 삶과 관계가 없이 어차피 완전한 상상력으로 꾸미는 소설, 드라마였다면, 제목에 '허준' 또는 '동의보감'이라는 실명을 쓰지 않았다면 어땠을까? 그랬다면 독자 또는 시청자가 얼토당토않은 착각을 범하지 않았을 것이다.
상업주의 때문에 그렇게 못했던 것일까? 그게 옳다면 그 출판사와 방송국은 자신이 초래한 이 엄청난 비교육적 악영향에 대해 응분의 책임을 져야 할 의무가 있다. 그것은 그것이고, 그 드라마가 사회와 학계에 커다란 자극을 준 점을 일부러 깎아 내릴 필요는 없다. 언제, 어느 동기로 조선시대의 의학과 의술에 일반대중이 그토록 크게 관심을 가져봤던가? 그 드라마로 해서 조선시대의 일반 민중의 의료 생활에 대한 관심이 깊어졌다. 이를테면, 탕제 또는 침법의 효과, 약을 다리는 모습, 의원의 교육과 양성, 여성을 진료하기 위해 의녀 제도의 존재 등 매우 세세한 부분의 모습이 살아 나왔다. 비록 허준의 삶과 직접적으로 연결된 것이 아닌 허구였을지라도 이런 사실들은 우리가 우리의 조상의 삶을 이해하는 데 도움이 되는 것들이다. 실제로 극중에 나오는 많은 처방과 의료 제도는 '제법' 고증이 잘 된 편이어서, 그것이 허준의 삶과 직접 연결되지 않았다는 사실을 제외한다면, 대체로 역사적 개연성을 수긍할 수 있는 것들이었다.
드라마가 "뜨고" 있는 중간에 학계에서는 놀랄만한 일들이 벌어졌다. 그 드라마의 내용을 옹호하는 것은 드물었지만, 학계의 '허준' 연구가 한 군데로 집중해서 나타나는 모습이 보였다. 이미 어느 정도 허준에 대해서 연구하던 사람들이 일제히 자신의 목소리를 내기 시작했다. 그리하여 이전에 밝혀지지 않았던 새로운 자료들이 세상에 본격적으로 소개되기도 했고, 허준의 생애와 학문을 일관성 있게 엮여내는 굵직한 해석도 등장했다. 이 기간 동안 허준의 생애와 학문을 연구한 단행본이 무려 2권씩이나 나온 것이 그저 우연에 불과한 것일까?
또 새로운 연구서를 준비하는 사람들도 여럿 있을지도 모르겠다. 학계의 훌륭한 연구가 세간의 관심을 끄는 경우도 있지만, 세간의 관심이 학계의 연구를 끌어내는 경우도 있는 것 같다. {소설 동의보감}이나 드라마 <허준>이 후자의 경우이다. 그것이 너무 "오류투성이"이기 때문에 학자들을 자극해서 자료와 글을 짜내도록 했으며, 또 그것이 너무 분위기를 띄었기 때문에 그것이 식기 전에 "좀더 제대로 된 연구"를 내도록 한 측면이 있다.
나는 "드라마 속의 허준"과 "역사 속의 허준"을 평평한 저울에 올려놓고 싶다. 문제는 그것이 어느 한 쪽에 기울어 있다는 점에 있다. "드라마 속의 허준" 쪽으로 너무 기울어져 있는 것은 "역사 속의 허준" 쪽이 가볍기 때문이다. 그 균형을 잡기 위해서는 허준에 대한 깊이 있는 연구가 필요하다. 사실, "드라마 속의 허준"이 잘못 되었다고 맹렬히 비난하기 이전에, 과연 우리에게 허준에 대한 "무게 있는" 연구가 있었는지를 반문해 볼 필요가 있다. 솔직히 고백컨대, "그깟 한 드라마에 휘둘리지 않을" 정도의 연구가 없었다. 소설과 드라마가 뜨자
우리는 겨우 저울의 존재를 깨닫고, 저울의 불균형을 인식하게 되었다. 이제 비로소 그 불균형을 바로 잡기 위한 학계의 노력이 시작되었다. 우리는 상기한 출판사와 방송국이 {동의보감}을 활용하여 엄청난 금전적 성공을 거두었다는 것을 안다. 그런데, 그들이 그런 과정에서 생긴 "엄청난 비교육적 효과"를 바로 잡는데 힘을 기울인다는 얘기를 아직은 듣지 못했다. 수익금의 일부, 아니 일부의 일부만을 투여한다 해도, 현재 너무나도 빈약한 수준에 있는 허준과 {동의보감}에 대한 학술적 연구에 매우 큰 보탬이 될 텐 데도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