빈 클래식의 추억, 영롱히 빛나다 '고대 악기박물관'
(Musikinstrumentensammlung des Kunsthistorischen Museums)
한껏 차려입은 마부와 윤기가 자르르 흐르는 말이 이끄는 마차들이 미카엘 광장에 늘어 서 있다. 이곳 미카엘 광장에는 650년 전통이 있는 합부르크 왕가의 호프부르크 왕궁이 웅장한 모습을 뽐내고 있다.
궁전 안으로 들어서면 왕가의 자랑이었던 리피짜너(Lipizzaner) 승마 학교가 있고 그 맞은편으로 시시박물관 입구가 보인다. 시시박물관에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최고 미인으로 불리는 '황후 엘리자베스'의 유품과 의복이 수집, 비치되어 있다. 시시(Sisi)란 엘리자베스 황후의 애칭을 일컫는다.
구왕궁 뜰 옆의 스위스문 안으로 들어서면 일요일마다 빈 소년합창단이 연주를 하는 왕궁교회가 있다. 발길을 옮겨 제국보물 전시실에 들러 신왕궁 쪽으로 오면 탁 트인 영웅광장을 마주한다. 이 광장을 감싸 안은 반타원형의 신왕궁은 오늘날 오스트리아 국립도서관으로 이용되고 있다.
오늘 우리가 돌아볼 고대 악기박물관은 국립도서관 바로 입구 안쪽에 자리하고 있다. 수집광이었던 합스부르크 왕가의 유물들은 신왕궁 건너편에 위치한 미술사와 자연사박물관을 가득 채우고도 넘쳐 미술사박물관의 연장선상으로 신왕궁의 내부에 자리 잡았다.
뿐만 아니라 이곳에는 터키의 에베소 유물을 전시해 놓은 에베소박물관, 각종 무기와 갑옷 등을 전시한 무기박물관, 고대 악기박물관, 인종박물관이 함께하고 있다.
신왕궁 내부의 박물관은 미술사박물관과 연계되어 있어 미술사박물관 티켓 하나로 모든 박물관 관람이 가능하다. 다만 신왕궁의 박물관들은 수요일부터 일요일까지 닷새 동안만 개장하므로 여행 계획을 세울 때 염두에 두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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빈 고대 악기 박물관 내부
빈 고대 악기박물관의 기원
합스부르크 왕가의 악기 수집 역사는 400여 년 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대공 페르디난트 2세(Erzherzog Ferdinand II, 1529-1595)가 그의 부인 필리피네의 수집품을 정리하였는데, 그 안에 후기 르네상스 시대를 대표하는 갑옷, 동전, 금과 청동작품 그리고 다양한 악기들이 포함되어 있었다.
이 수집품은 대공 페르디난트 2세가 사망한 뒤 그의 성(城) 암브라스가 있던 인스브루크(Innsbruck)에 보관되어 있다가 나폴레옹과의 전쟁 당시 도난 위험이 있다하여 1806년 빈으로 옮겨졌다.
두 번째로 파두아(Padua)에 뿌리를 내린 오비찌(Obizzi) 가문의 피오 에네아 2세(Pio Enea 1525~1589)는 문화와 음악에 관심이 많아 자신의 성 안에 작은 소극장을 짓고 그에 맞는 악기들을 모으기 시작했다. 그런데 가문에 어려움이 닥치자 악기들은 1870년 비엔나의 모데나 성으로 보내지고 1914년 합스부르크 왕가의 수집품에 흡수되었다.
이 수집품들은 후기 르네상스와 초기 바로크 시대의 악기들로, 페르디난트 2세의 수집품과 잘 어우러져 오늘날 고대 악기박물관의 효시가 되었다.
1939년 400점에 이르는 합스부르크가의 악기 수집품들은 빈의 팔라비치니 성에 전시되었으며 이즈음부터 악기를 전시 용도뿐만 아니라 하우스콘서트에 사용하고 악기 복원에도 관심을 가지게 되었다.
당시 함머플뤼겔(Hammerflügel)이 전시의 중심에 섰고 자연히 비중 측면에서 다른 악기보다 커졌다.
제2차 세계대전으로 문을 닫아야 했던 전시관은 1947년 신왕궁으로 이전하면서 점차 오늘날의 모습을 찾을 수 있었다.
바이올린 제작자 가이센호프(Geissenhof)의 현악기 컬렉션
빈의 현악기
왕실의 현악기 수집군(群) 가운데 박물관에서 특별히 자부심을 갖는 것은 오스트리아의 바이올린 제작자였던 야콥 슈타이너(Jacob Stainer 1619-1683)와 프란츠 가이센호프(Franz Geissenhof 1753-1821)의 컬렉션이다.
기록에 의하면, 독일 바이올린의 대부라 할 수 있는 슈타이너는 어린 시절 크레모나의 아마티 문하에서 바이올린 제작을 배웠으며, 그 뒤 티롤 지방의 압잠(Absam)에서 활동을 했다. 그의 바이올린 음색은 풍부하고 다채로워 이탈리아의 거장 아마티-스트라디바리-과르네리의 3인방에 견주는 작품으로 인정받았다.
이와 함께 전문가들의 연구 활동이 한창인 가이센호프의 컬렉션도 흥미롭다. 그는 바이올린 제작을 시작한 지 얼마 되지 않아 “빈의 스트라디바리”라는 별칭이 붙을 정도로 정교하게 스트라디바리의 모델들을 복제해 냈다.
그의 악기들은 이탈리아 거장들의 장점을 갖춤과 동시에 소리는 야콥 슈타인너의 악기와 견줄 만큼 풍요로웠다. 전문가들은 그의 악기가 18세기 빈 바이올린의 형태를 완성시키는데 많은 영향을 끼쳤다고 평가하고 있다.
이외에도 2008년에는 스트라디바리와 과르네리 특별전을 개최하여 많은 관심을 받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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뵈젠도르퍼사의 1867년 함머플뤼겔 (Hammerflügel der Firma Bösendorfer aus dem Jahr 1867) 빈은 클라비어의 천국
빈은 클라비어(Klavier)라는 악기가 자신의 예술적 색채를 풍기며 음악가들에게 영감을 불어넣게 해준 도시다.
1781년 6월 2일에 모차르트가 자신의 아버지 레오폴드에게 보낸 편지에서 빈은 정말 클라비어의 천국입니다” 라고 쓰인 구절은 그 당시 함머클라비어(Hammerklavier)가 사람들의 이목을 끄는 악기였음을 시사한다.
17세기말 이탈리아의 바르톨로메오 크리스토포리(Bartolomeo Cristofori di Francesco 1655-1731)가 작은 망치로 현을 쳐서 울림을 만드는 메커니즘을 발명하여, 연주자 자신이 음을 작게 또는 크게 칠 수 있는 “피아노포르테”라는 악기를 개발하였다.
이를 계기로 18, 19세기에 많은 발명가들이 여러 형태와 종류의 클라비어 메커니즘을 발전시켰다. 예를 들어, 오늘날 3개로 고정되어 있는 피아노의 페달은 처음 무릎을 들어 올려 사용하던 양식에서 시작해, 북치는 효과음을 내는 페달이 고안되고 세밀하게 사용할 수 있는 8개의 페달을 가진 클라비어도 만들어졌다.
또 건반 옆쪽에 붙어있는 지렛대를 올리면 자동으로 이조가 되는 기능까지 갖춘 클라비어 등이 선보여 당시의 작곡가들에게는 눈을 떴다 하면 새로운 악기를 접할 수 있는 시대였다.
오늘날 연주회에서 보게 되는 검은 빛의 그랜드피아노 이전에 시도됐던 창의력이 풍부한 피아노 전신들을 빈의 고대 악기박물관에서 만날 수 있는 것이다.
이외에 함머클라비어의 전신인 쳄발로와 가정집에서 쓰인 스피넷(spinet), 타펠클라비어(Tafelklavier)의 모습도 볼 수 있는데 전시된 타펠클라비어는 직접 연주해 보는 것도 가능하다.
함머클라비어가 현재의 모습이 되기까지의 변천사를 돌아보는 것도 박물관 관람에서 흥미를 더하는 볼거리다.
이와 더불어 시대의 작곡가와 연주자들이 즐겨 쓰던 악기들을 직접 볼 수 있다는 것은 빈 음악가의 묘지에서 음악가들의 성지 순례를 하는 것만큼이나 숭고한 시간이 될 것이다.
현재 제공되는 오디오가이드는 영어, 독일어, 이태리어로 준비되어 있고 악기에 대한 설명뿐만 아니라 악기의 소리를 직접 들을 수 있다. 또한 박물관을 조금 더 능동적으로 관람할 수 있기 때문에 예술적 감각을 한층 높이는 기회를 가질 수도 있다.
안타깝게도 빈의 악기박물관은 2018년 새롭게 단장하는 「역사관」에 흡수될 예정이어서 전시 악기가 대폭 축소될 전망이다.
기사후원. 한국언론진흥재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