좋다. 살기 위해 소비한다고 치자. 그런데 카드 영수증과 교환한 물건들을 받아 들어도 인생을 탕진하고 있다는 불안감이 치미는 것을 왜일까?
인생을 소모한다는 느낌이 들지 않는 관계란 과연 어디에 존재하는 걸까? 그래서 사람들은 기꺼이 사랑 속에 몸을 던지나 보다. 순간의 충만함, 꽉찬 것 같은 시간을 위하여. 그러나 사랑의 끝을 경험해 본 사람들은 안다. 소모하지 않는 삶을 위애 사랑을 택했지만, 반대로 시간이 지나 사랑이 깨지고 나면 삶이 자장 결정적인 방식으로 탕진되었음을 말이다. 이번 사랑에서는, 부디 나에게 그런 허망한 깨달음이 찾아오지 않았으면 좋겠다.
참치를 먹은 뒤 김영수에게서는 다시 연락이 오지 않았다. 어쩌면 그 남자도 나와 똑같은 이유로 나를 한 번 더 만나 본 건지도 모르겠다. 관능을 자극하고 함께 있는 시간이 기쁘고 서로에 대해 더 많이 알고 싶어지던 여자들하고만 거듭하여 만나온 결과, 1005년 12월 현재 자신의 모습이 요렇게 되었다고 생각한 모양이다. 첫인상이 강렬하지 못했다는 이유만으로 놓쳐버린 인연의 숫자를 세어보다가 탄식하고, 그리하여 첫인상이 강렬하지 못한 여자 오은수에게 울며 겨자 먹기로 애프터 신청을 했으리라.
그렇지만 우리는 만남은 어떤 매듭도 없이 지리멸렬하게 끝나 버린 듯하다. 그래, 그것이 정답이라고, 쓸쓸하지만 분명하게 결론 내릴 수 있는 이유는 내옆에 태오라는 존재가 있기 때문일 것이다. 태오와 나는 어느새 여느 연인들처럼 데이트하고 있었다. 같이 밥을 먹고 커피를 마시고 영화를 보도 이야기를 했다. 연인 사이의 대화는 세 가지의 단계를 거친다고 한다. 처음에는 각자의 주변인들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다가, 그 다음에는 자기 자신에 대해 조금이라도 더 많이 이야기하려 들고, 종국에는 그냥 아무 말 없이 얼굴만 바라보고 있어도 편안해지는 상태가 온다는 것이다.
나와 태오는 첫 번째 단계의 끄트머리에서 두 번째 단계로 막 들어서려는 중이었다. 나는 그가 수유리에서 태어나 지금껏 살고 있으며, 그의 부모는 같은 자리에서 10년째 수퍼마켓을 운영하고 계시다는 것을 알게 되었다. 남동생과 여동생이 하나씩 있고, 가벼운 치매 기를 가진 외할머니와 함께 산다. 태오는 나에게 세무공무원으로 은퇴한 냉랭하고 까다로운 성격의 아버지와 평범하기 그지없는 전없주부 어머니가 있다는 것, 유희라는 이름의 친구는 멀쩡히 잘 다니던 회사를 때려치우고 뮤지컬배우 수업을 받고 있으며, 재인이라는 이름의 친구는 결혼을 앞두고 있는데 내 눈에는 그 남편감이 영 마뜩치 않다는 것 등을 알게 되었다.
태오가 자신이 중1 때까지 반에서 맨 앞줄에 앉는 꼬맹이였으나 중2 무려 20cm가 자라버렸다는 사실을 들려주었을 때, 나는 그 나이 때 그룹 소방차의 열혈 팬이었으며 여름방학엔 버스를 세 번 갈아타고 그들의 숙소까지 찾아간 영험이 있다는 얘기를 해주려다가 그만두었다. 태오가 "소방차? 그게 누구더라, 이름은 들어봤는데"라고 대꾸할까봐 겁이 났기 때문이다. 굳이 강조하고 싶지는 않지만 우리는 일곱 살 차이였다. 내가 '국민학교'에 입학했을 때 그가 돌쟁이 아기였고, 내가 처음으로 남자와 잤을 때 그가 까까머리 중학생이었다는 걸 상기하면 녹슨 화살촉이 허벅지를 스쳐간 것처럼 멍멍해지곤 했다.
우리의 첫 번째 크리스마스 이브를 위해 태오가 영화 '킹콩' 을 어렵사리 예매해 놓았다고 했다. 성탄 전야에 멀티플렉스 극장이라니, 인파에 떠밀려 다닐 생각만으로도 뒷골이 지끈지끈 쑤셔왔다. 연말의 들뜬 분위기가 설레지 않고 무덤덤하거나 차라리 짜증스럽게 느껴지기 시작한 지 한 2-3년 되었지만 어린 연인에게 일부러 고백할 필요는 없을 터였다. 선물에 대해 고민하다가 풀로랄프로렌에서 민트색의 단정한 옥스퍼드 셔츠를 샀다. 태오의 흰 피부와 썩 잘 어울릴 것 같았고, 무엇보다 큼지막한 구제 털점퍼에 헐렁한 건빵바지를 즐겨 입는 그의 패션 스타일에 서서히 변화를 주어 가고 싶었다. 허리선을 끈으로 묶는 쥐색 정장코트에 파시미나 머플러를 두른 삼십대 여자와 애인 관계를 지속하고 싶다면, 태오 입장에서도 이 정도쯤은 기꺼이 맞추어주어야 하지 않겠는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