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너무 오래전에 썼었던 이 글이... 이제야 빛을 보게 된 셈입니다. (물론, 일부 내용은 "개인적인 이유 등으로" 올리지 않았습니다.)
하여간, 평생 안 공개 하려던 글인데... 아래의 한신영님의 글을 읽고나니, 뭔가 생각이 나서 이렇게 올리게 되었습니다.
아무튼, 저도 참으로 오래간만에 (거의 5년만에) 다시 읽어보다보니... 마치 히틀러의 "나의 투쟁"을 읽는 것처럼... 다소 생경하게 느껴지는 분들이 적지 않게 보이네요... 부끄럽기도 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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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방인 5개월 더하기 16일
'이방인'을 5개월 하고도 15일을 추가하여 작성하게 되는 일이 생길줄을
누가 알았겠나! 오히려 4일 적게 작성하게 될 것이라고 생각했었던 판국에…. 역시, 인간의 일이란 한 치를 알 수가 없구나! 이러한 일도 알 수가 없는데, 하물며 그 죽을 날까지 어떻게 예측을 할 수 있겠는가! 하여간, 여러
가지로 일이 많았던 한달이었다. 일단, 8월말 경에 '이방인 4개월'이라는
아주 긴- 글을 완성한 이후 여러 시간이 흘렀다. 'PNE'(Pacific National
Exhibition)라고 불리는 이 나라의 농업 관련 축제도 구경하고 와서 '의천
도룡기 외전 제 8권'(일기장)에 모조리 정리하였고(완전히 '당일치기' 였다.), 새로운 060 FULL TIME CLASS(영어연수코스... 이방인 1개월 및 2개월 등 참조)에 들어가서 빡시게 굴렀고, 여전히 구르고 있다. 여기와서 새삼 깨달은 사실은 우리나라의 개같은 것들이 대거 해외로 진출해서는 사람을 무진장 열받게 만들면서 잘난체하고 돌아다닌다는 것과, 또한 이곳
VANCOUVER의 공항 시설이 TONNY 선생의 말과 얼마 전의 이곳 NEWS를 통하여 상고해봄에 60년대에는 아주 십쭈구리 했었던 모양이다. 활주로가 하나에 공항은 단층건물, 완전히 '충주 국제 공항'과 비슷했었던 모양이었구먼.
(중략 - 현지의 한국인 어르신들 몇명과의 충돌 관련 이야기) 어차피, 미나씨에게서 얻은 정보에 의하면, 현지인 GUARDIAN 이 차라리 한국인 GUARDIAN
보다도 일도 제대로 할 뿐만 아니라, 해외의 우리나라 사람들은 고국 사람들을 상대로 등쳐먹기를 잘하기에, 몇배로 받아먹으니만치 조심을 해야 한다고 한다. 하긴, 내가 이 나라에 처음와서도 당했었던 일이 아니던가! 어쩌다가 한국인들끼리 이지경이 되었는지 모르겠다. 하지만, 한가지 확실한
것은… 역시, 정치가들과 초등학교 교과서와 (어용) 언론인/학자들은 믿어서는 안된다는 점이다. 하여간, 무진장 바쁘게 살아온 한다 보름이었다. 그렇다고 해서 영어 실력이 획기적으로 향상된 것은 아니다. 어차피, 미나씨말이 '6개월만 지나면 귀가 트인다는 말은 사기다.'라고 하였는데 차라리
그것이 맞는 판국인 것이다. <<1998년 10월 2일 01시 14분 내-방.>>
11개월 더하기 3일, 그리고 그 이후…. (진짜 "최종회"는 바로 이 분량이었던 셈이다.)
'이방인의 작성을 중단한 지 6개월, 현재, 나 자신이 이룩한 것이라고는
463점의 TOEFL점수와 현재의 이러한 무기력한 상황뿐이다. 공부는 개판이고, 특히 'LISTENING & SPEAKING'의 경우 아주 심각한 상황이다. 일단, 오늘 TOEFL시험을 4월 26일 오후 1시로 연기하는데 성공하였고, 어제는 VISA연장의 신청을 완료하였으며, (중략) 이 방면에서도 신경 써야할 일은 사라진 셈이다. 그 외에 역시, 해외에서의 우리 나라 사람들 중에는 왜 이다지도 괴상하게 노는 사람들이 많은가! 수많은 말 잘하기 좋아하는 사람들의
주장과 달리 정말 우리 민족은 이 지경인가 하는 한탄을 해야하는 일이 한
두 번이 아니었다. 위에 적혀있는 '(중략) 사건' 외에도 요즈음에는 윤실씨의 친구였던 그 '율리아나'라는 여자도 신용하기가 좀-그렇고, 그 외에 '백골부대 출신인 듯 한 (여기 둘 모두... 군대시절 나의 뭣같은 고참들이었음
-_-;) 이민돌이와 똥칠이를 합쳐놓은 녀석'으로 인하여 이 자식을 어떻게
신경 쓰지 않고서 살아가나-하는 문제까지 생겼다. 왜 이다지도, 남의 일에
배놓아라 감 놓아라 하는 것인지-정유군 이나 마녀 이후로 또 한 명의 개떡이 생겨난 셈이다. 무조건하고 운동권 놈들이 그러하듯, 자기만 옳고 자기
이야기만 하며 남의 이야기는 들으려고 시도도 하지 않고 남을 이해하려는
마음조차 없는 새끼들! 과연 이런 것들로 인하여 도산 선생께서 인삼장수들의 싸움을 보시고 한탄하신 때를 전후하여, 해외에서의 우리 나라 사람들은
계속 서로 협력하여 생활해 나가기도 힘든데도, 여전히 싸움과 사기로 날을
보내고 있으니, 이 얼마나 한심한가! <<1999.3.20.>>
미 해군에 의하여 3월 12일에 실시된 '폐선(廢船)격침작전'. 이 작전에서
사용된 특수부대에 의하여 설치된 플라스틱 폭약, 60여 발의 5˝포탄, 한발의 530MM어뢰(일단, 원자력 잠수함에서 발사되었다고 했다.). 이러한 무기들에 의하여 파괴 된 배는 해전에서의 공격 방식들에 대한 우리의 생각들이
얼마나 잘못된 것인가를 보여준다.(지금에 와서는 정말로 그런지 판단이
잘 되어지지 않는다.) 플라스틱 폭탄은 분명 여러 곳에 다량 설치되었을 것이고, 포탄의 위력은 오늘날 통상 사용하는 그것이었으며, 또한 어뢰도 그것인데, 일단 어뢰를 맞고 가까스로 침몰하기는 했으나, 그전에 이미 60여
발의 포탄과 플라스틱 폭약의 더미를 때려 맞은 뒤였다. 어뢰/미사일: 두발
이상이 진실로 유효. 하지만, 배의 크기에 따라서는 한발로도 충분할 수도
있다. 일단, 대형선이었다. 군함으로 따진다면 '순양함'이 이에 속했을 지도 모른다. (하지만, 현대의 유조선이라면 부력 등이 높게 하여 안전성이
높지 않던가?) 포탄: 위력이 작은 것은 예나 지금이나 보조적인 능력 밖에는 없다. 함포의 위력이 적어서 '적함의 승무원들을 놀라게 하는 일'외에는
하지 못 했다던 중세 시대의 함포에 대한 그녀의 이야기가 옳았음을 증명하는 예인지도 모른다. 특수부대의 폭탄: 배 전체에 대한 침몰은 바랄 수 없다. 물론, 연료탱크나 화약고를 때린다면 이야기는 달라지겠으나(그 배는
연료가 없는 상태였다. 아니, 그렇게 들은 듯 하다. 솔직하게 말하자면, 확실한 것은 모르겠다. 역시, LISTENING 실력이 딸리는 탓이다.18!), 일단은
기관실을 파괴하여 움직이지 못 하게 하는 것만으로도 충분할 지도 모른다.
움직일 수 없으면 도망치지도 못 하니까! <<1999.3.20>>
3월 16일 이 나라의 육군 여군 병사와의 대화에서 얻어낸 정보. ①언제 변화되기 시작했는 지는 모르나, 이 나라의 군대도 P-77을 사용하였으며, 그것이 최근에 와서야 PRC-?(확실치는 않다. 내 기억이 불안정한 탓이다.)인가하는 무전기로 변화하기 시작하였다고 한다. 아마도, 우리가 P-99K로 바꾸기 시작한 것과 연유할 것이고, 또한 이것도 캐나다 자국산 일 것이라는
생각이 든다. 미국 장비에서 벗어나기 시작하였으며, 각자 자기 나라의 전자 산업을 육성하기 위한 것인지도 모른다. ②이날 전시되었던 무전기. 명칭은 잊었다. 혹시, 그것이? 18! 재수 황이다! 하여간, 보통 '워키토키'라
불리는 크기의 것으로서 우리 나라의 그것에 비하면 작은 편이다. 하지만,
비슷하다. 왜 1군 휘하의 부대는 소대용 무전기도 P-77을 사용하는 것인지… 아무래도 그 '워키토키'는 3/2군들에서만 사용하는 것인가?! 하긴, 소대
단위의 소부대 전술을 산악에서 펼쳐야 한다면… 김신조(현재, 개신교 목사님.)를 끌고온 북한군의 특수부대와 지리산에서의 빨치산들과의 전투가 분명 우리 병사들에게 산악에서는 역시 정규군도 소부대 단위로 흩어져서 싸워야 함을 가르쳐서 인지도 모른다. 하긴, 그러니까 월남에서 우리 군대의
전과가 그래서 좋았는지도 모른다. 빨치산 토벌대장을 역임했던 백선엽 장군의 '대게릴라전술'에 관한 저서가 일본인의 책에서도 참조된 이유가 그것이 아니겠는가!(호비스트社에서 번역한 'COMBAT BIBLE 제1권'을 보라! 하여간, 1권이 맞았을 거다.) 하여간, 말이 새어나갔다. 중요한 것은 그 캐나다
육군의 소형 무전기는 짧은 안테나 설치 시 1MILE, 긴 안테나 설치 시
5MILE은 통화가 가능하다는 점이며, 무전기 지갑 겸 손잡이에 달려있는 조그마한 주머니에 각각의 안테나를 보관할 수 있도록(물론, 긴 안테나는 접어서….) 되어있다는 점이다. ③적과의 거리 측정을 위하여 이들은 '사경도'(근무지 주변의 경관을 간략히 그려놓은 그림. 편편하고 검은 짱돌에 흰
페인트로 그리며, 경계 근무 시에 사용했었다.) 비슷한 것을 지참하고 다닌다. 각도기처럼 180°로 둘레를 친선들의 끝에는 각각 200M, 150M, 100M 식의 거리를 나타낸 숫자가 쓰여있고, 그만큼 떨어져 있을 경우 사물이 어떻게 보이는 가를 원근법을 사용하여 그려 넣었다. 즉, 집과 나무들을 그런
식으로 원근법을 사용하여 그려 넣은 것이었다. 우리는 그러한 것을 신교대에서 외우도록 교육받았던 것을 상기할 적에 마치, 베네치아 인들과 제노바
인들이 항해용의 그림(해안선과 해안 구조물의 형태와 모양 등을 설명한
것.)을 사용했는가, 안 했는가 식의 차이처럼 느껴진다. 물론, 시오노 나나미 선생은 그것을 사용한 베네치아인들 쪽이 쉽게 선원들을 확보할 수 있었기에 더 나았다고 했다. ④다른 구조의 탄대도 있었다. 우리의 것과 비슷하지만, 장구류는 조금 달랐고, 수통과 탄창통, 붕대 주머니(사실상 담배갑)
외에 우리 나라 병사들이 판쵸 우의를 링벤드로 말아 메다는 곳에 '잡낭'이
달려 있었다. 참으로 괜찮은 생각이나, 우리 나라에는 물론 판쵸 입고서 걸어야 할 때가 많으니 완전히 ABSOLUTELY NOT 이지-뭐. 완전히, 군장 안에
다- 때려 넣어야 하는 것 아닌가!. 그것 외에도 '체인 형태의 플라스틱 폭탄 보관용 주머니'도 있었다. 이런 폭탄은 우리 나라에서는 특수부대에서나
쓴다니까 오히려 놀라던 눈치. 하긴, 병력의 수가 너무나도 차이가 나고,
이쪽은 완전치 '직업 군인'이니…. <<1999.3.20.>>
한, 이-삼 십년 전에, 우리 나라의 사람들도 이 나라의 텔레비전에 우리
나라의 아이들을 도와 달라는 광고 방송에 출현했었을 것이다. 오늘날 이
나라의 광고방송에 자기 나라의 아이들을 도와 달라는 아프리카의 어느 나라의 선생께서 출현하는 모습을 보니, 그러한 것이 느껴진다. 하지만, 나
자신 그 아이들을 도울 힘이 없고, 우리 나라의 그 잘난 사람들은 이미 IMF
시대 전부터 그러한 사람들은커녕, 우리 나라의 그러한 처지의 아이들을 도와주는 일 조차도 거부하지 않았던가! 그러면서, 말들은 잘-하고, 착한 척은 잘-하는 게 우리네 사람들의 모습이 아니던가!
<<1999.3.20.>>
(이란인 친구였던) SAM이 페르시아 시대에 관하여 말하는 모습에서 우리
나라의 사람들이 고구려나 발해에 대해서 이야기하는 것과 비슷한 점을 느낀 적이 있다. 우리 나라 말고도, 이스라엘(솔로몬 시대에 유프라테스 강가까지를 지배했던…), 이란, 그리고 이탈리아도(일단 뭇솔리니 시대의…그리고 시오노 선생에 의하면 지금도…이탈리아의 바다에서의 깃발을 보면 안다고 했다.) '잘-나가던 시절'을 그리워함이 틀림이 없는 것인지도 모른다.
하여간, 모두들, 자신들의 나라들의 젊은이들을 그런 식으로 가르치고, 결국 전쟁터로 보내는 거겠지. '국가와 민족의 영광을 되찾기 위하여…'라는
미명하에…. <<1999.3.20>>
♥진정한 자기 희생이란 것은 무엇인가! 나는 오늘 본 영화 덕에, 작년 5월인가 6월부터 보기를 시도해왔던 이 영화 덕에, 나는 오늘 진정한 자기 희생에 대한 깨달음을 얻었다. 그리고, 주님께 빌었다. 나도 자기 희생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많은 사람들을 위하여 필요하다면 자기 희생을 할 수 있게 해달라고 빌었다. 주님! 이는 진심이옵나이다. 주님! 작년 10월부터의
고통스러웠던 삶의 연속, 작년 5월부터의 엄청난 고통이 따랐던 고생, 작년
3월부터 겪었던 삶에 대한 새로운 기대의 어그러짐, 2년 동안의 지긋지긋한
군 생활, 2년 동안 무시만 당해온 대학 생활, 8년 동안의 한국형 이지매,
(중략), (중학교 1학년 당시...) (배치고사)7등에서 (첫번째 모의고사)47등으로의 나락, 그 밖의 모든 고생이, 결국 삶을, 내일이라도, 아니, 지금 이
순간이라도 죽을 수 있는 삶을 고통 속에서 이어가느니 차라리 자신의 모든
것, 심지어 목숨까지도 버릴 줄 알아야 한다는 것을 깨닫게 하기 위함이었음을 알았습니다. '한 사람이 죽는 것이 여럿이 죽는 것 보다 낫다.'는 가야바의 헛소리는 진정 헛소리가 아니었습니다. 주님은 묵인하셨지만, 주님
한 분이 십자가에 매달리심으로써 지구의 전 인류가 원죄의 고통에서 해방되었습니다. 가야바의 말의 의도야 분명 그 '다수'의 의미가 자신을 포함한
이스라엘의 지도층, 엘리트층을 가리키는 말이었겠지만, 하느님께서 택하신
'다수'는 지구의 전 인류였음을 저는 깨달았습니다. 성자의 반열에 오른 토마스 아퀴나스는 '남을 위하여 죽은 것 또한 자살이다!'라고 했습니다만,
20세기의 군대보다도 더더욱 강력한 '천상의 군대'를 보유하신 주님께서 노비들로 구성된 오합지졸들에게 순순히 끌려가시고, 매를 맞으시고, 십자가에 못밖혀 돌아가신 것은 정녕 그자의 관점으로 본다면 정녕 '자살'이라 아니 할 수 없습니다. 하지만, 모두들 말합니다. 주님께서는 몸소 자신을 희생하셨다고! 진정 자신의 모든 것, 심지어 목숨까지 희생하기 위해서는 남들의 눈으로 보기에는 '자살'이라고 할 만한 것을 해야하지 않으면 안됩니다. 하지만, 하지만, 주님께서는 말씀하셨습니다. 당신을 따르려는 자는 정녕 자신의 모든 것을 다 버려야만 한다고-. 탈출만 하면 살 수 있었던 당신의 첫째가는 제자 베드로에게 당신께서는 그 유명한 아피아 가도에 나타나셔서 '정녕 네가 죽지 않는 다면 나는 다시 십자가에 의하여 죽임을 당해야
한다.'며 그의 희생을 촉구하셨습니다. 주여! 자기 희생. 정녕 남을 사랑하고 위하며, 또한 주님의 뜻을 따른다면, 자신의 재산뿐이 아니라 자신의 목숨까지도, 가장 중요한 재산인 목숨까지도 버려야만 합니다. 자기 희생! 진정 남을 위하여 자신의 목숨을 포기하는 것. 자살은 자신의 목숨을, 주님께서 주신 가장 큰 재산인 목숨을 쓰레기통에 버리는 것과 같지만, 자기 희생에 의한 죽음은 자신의 가장 중요한 재산을 남들에게 주는 것이기에 가장
잘 주님을 따르는 행위라고 생각합니다. 주여! 아까 저는 'DEEP IMPACT'라는 영화를 보면서 이러한 생각을 하였습니다. 만약 제가 아주 유명하거나
대단한 인사이고, 또한 저렇게 지구의 '표면'이 박살이 나게 생긴 경우, 나는 어떻게 할 것인가-라고 저 자신에게 물어 보았습니다. 그 경우 저는 저를 데리러 온 사람에게 '저기 있는 아이를 데리고 가시오. (아이가 무슨 죄가 있어서 일을 당해야 하겠소! 차라리 더 살게 하시오.) 나는 최후의 순간까지 하느님께 기도하겠소! 하느님께서 나와 함께 해주실 거요.'라고 말하는 광경을 상상하였습니다. 하지만, 저 자신이 정녕 그렇게 할 수 있겠느냐고 다시금 물어보았습니다. 그 결론은 '만약 살아난다면… 목숨을 유지 할
수는 있겠으나 평생을 고통 속에서, 욕을 먹으면서 살아야 한다. 어차피,
지금이라도 현실에서의 삶은 끊어질 수 있다. 차라리, 명예롭게, 칭찬을 받으면서, 누군가를 위하여, 아니, 정녕 누군가에게 도움이 되기 위하여 죽음을 택하는 것이 낫다.'는 생각을 하였습니다. 영화 'TITANIC'에서 로즈의
약혼자는 간악한 수단으로 살아남았으나, 그의 목숨은 17년 밖에 지속되지
못하였고, 또한 파멸의 고통 속에서 고통스러운 권총 자살을 하였습니다.
그러나, MR GUGENHAIM. 그는 정녕 명예로운 죽음을 택하였습니다. 구명 보트는커녕 구명 조끼조차 구걸하지 않고서 그는 귀족답게 죽었습니다. 자신의 품위를 유지하면서. 차라리, 그런 식으로, 죽게 되더라도 칭찬을 받으며
죽고 싶습니다. 살면서 욕을 먹느니, 죽어서 칭찬을 받는 것이 낫지 않겠습니까! 주여! 진정한 자기 희생을 하게 해주소서! 사랑하는 사람들을 살리기
위하여, 되도록 많은 사람들을 살리기 위하여 주님의 이름을 부르짖으며 죽을 수 있게 해주소서! 아멘! <<1999.MAY.4TH.00:15. NEO-MY-ROOM. 만약, 토마스 아퀴나스가 다시 살아나서 DEEP IMPACT에서의 가미가제 광경에 대하여
혹평을 한다면, 나는 그의 아구창을 갈길 것이다. 그가 성인(聖人)으로 모셔지고 있어도…. 그는 분명 평생을 진정한 자기 희생이라는 정신을 모르고, 자신의 어쭙잖은 지식만을 믿고서 살아간 인간임에 틀림이 없다. 중세의 모순된 세계가 분명 그를 성인의 반열에 올리는 실수를 저질렀음에 틀림이 없다. 하여간, 그들이 죽지 않았더라면, 그들이 그러한 식으로 죽지 않았더라면, 그들은 황폐화된 지구 위에서 얼마간 목숨을 더 부지하였을 수
있었을 것이다. 그 대신 그들의 어린 자식들과 아내들과 남편이 죽었을 것이다. 그런데…, 세상이 우스워져, 희생의 소중함을 피하려 하며, 모든 것을 혼자서 다- 짊어지는 희생자가 됨을 넘어선 영웅(英雄)을 요구하고 있으니…. 이기주의가 극에 달한 것인가!>>♥ (이 때로부터 시간이 이렇게 흘렀다. 정확히 4년 하고도 9일이 더 흘렀다. 그리고, 나는 지금 변했고, 또한
변해가고 있다. 이젠 나도 "현실"을 파악한건가... 아니면, 절망한 것인가... ㅋㅋㅋ 냉장고 안에는 막걸리가 한 통 있다. 만약 내일도 출근을 해야하지 않는다면, 지금 한잔 빨텐데... ㅋㅋㅋ)