善男子(선남자)야
선남자야
若有無量百千萬億衆生(약유무량백천만억중생)이
만일 한량없는 백천만억 중생이
受諸苦惱(수제고뇌)호대
여러 가지 고뇌를 받을 때에
聞是觀世音菩薩(문시관세음보살)하고
이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듣고
一心稱名(일심칭명)하면
일심으로 그 이름을 부르면
觀世音菩薩(관세음보살)이
관세음보살이
卽時(즉시)에 觀其音聲(관기음성)하야
즉시로 그 음성을 듣고
皆得解脫(개득해탈)케하나니라
모두 해탈케 하느니라
[고맙습니다 관세음보살] 법우 여러분 감사합니다 無量光明 합장
[부처님 말씀을 공경하는 마음으로 한 자 한 자 至誠 寫經합니다]
2. 세상살이의 일곱 가지 어려움
⑥ 도둑의 재난
만일 또 삼천 대천 국토에 도둑이
가득 찬 속을 한 상인의 우두머리가
여러 상인을 이끌고 귀중한 보물을
가진 채 험한 길을 지나갈 때,
그 중에 한 사람이 말하기를,
'여러 선남자들이여,
무서워말고 두려워 말라.
그대들은 진심으로
관세음보살의 이름을 부를지니라.
이 보살이 능히 중생들의
두려움을 없애 주리니,
그대들이 이 이름을 부르면
이 도둑들을 무사히 벗어나리라' 하고,
이에 여러 상인들이
이 말을 듣고 모두 소리를 내어
'나무 관세음보살' 하니
곧 그 난을 벗어났느리라.
무진의야, 관세음보살마하살의
위신력이 이와 같이 훌륭하니라.
도둑의 난, 즉 원적난(怨賊難)을 말하는 부분입니다.
경전의 문구 중 '도둑' 이란 말은 한문본에는
'원적(怨賊)' 이라고 되어 있습니다.
천태 지의대사는『관음의소』에서 이렇게 설명합니다.
"원수의 재난은 정도가 무겁다.
도적이란 본래 재물을 구하고,
원수는 목숨을 빼앗으려 하기 때문이다.
지금은 그 원수가 도적이 되었으니
반드시 재물과 목숨의 두 가지를
아울러 도모하게 될 것이다.
만약 과거에 피를 흘리고 싸운 일이 있으면
'원수(怨)' 라 부르며, 현재의 재산을
빼앗는 것을 '도적(賊)' 이라 부른다."
그러니 그저 재산 만을 노리는
도둑이 아니라 재산은 물론이요,
내 목숨까지 노리는 흉흉한 날강도들이
온 세상에 가득 차 있다는 말이 됩니다.
그 속을 귀중한 보물을 지니고
지나 간다고 상상해 보십시오.
안전한 길이라고 생각한다면
자못 즐거울 여행길이지만
도처에 강도가 나를 노리고 있다 생각한다면
내 마음 속에는 말할 수 없는 두려움이
가득 차 올라 한 걸음도 제대로
내딛지 못하게 될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두려움' 입니다.
정작 도둑을 만나기도 전에
두려움이 내 목을 조르는 것입니다.
결국 내 재산을 빼앗고 내 목숨을
빼앗는 자는 도둑이 아니라 내 마음
속에서 번져 나오는 두려움인 것입니다.
두려움이란 것은 외부의 대상으로 인해
일어나는 느낌입니다만, 그 내면을 들여다보면
죽음, 즉 자기 존재의 사라짐, 소멸,
무화(無化)에 대한 막연한 불안감이
바탕에 깔려 있습니다. 저 험난한 길
어느 굽이에 도둑이 숨어서 내 목숨을 노리는지
정확히 알지 못하여 갖게 되는 두려움은
죽은 뒤의 세상에 대해 알지 못하기 때문에
찾아오는 두려움과 정확히 일치합니다.
불교 기본교육 시간에
보살님들에게 제안을 한 적이 있었습니다.
"다음 시간까지 한 번 자신의
죽음을 생각해보시겠습니까?"
일주일 뒤에 만나서
사람들의 의견을 물어보았습니다.
하지만 대부분의 대답은
"내가 죽으면 자식들이 불쌍해서......",
"남편이 어떻게 살지 걱정이 되더군요",
"죽기 전에 살림살이 정리는
해놓아야 할텐데......" 라는 것들이었습니다.
이런 대답은 자신의 죽음에 대한
사색에서 나온 것이 아닙니다.
죽음을 생각한 것이 아니라
삶을 생각한 셈이 되었지요.
죽음을 살짝 비켜선 채 자신이
죽은 뒤에도 여전히 살아있을 지를
생각하는 대답들인 것입니다.
하지만 그 중 어떤 노보살님이
손사래를 치면서 이렇게 말하셨습니다.
"아휴, 난 생각하기 싫어......"
"왜 그렇지요?
"죽음을 생각하니 갑자기 무서워졌어."
연세 지긋하신 노보살님의 이 대답은
참 오래도록 저의 기억에 남아 있습니다.
우리처럼 아직 깨닫지 못한 중생들이
죽음을 똑바로 바라볼 때
느끼는 감정 - 이것이 바로 두려움인 것입니다.
보문품에서 상인 중에 한 사람이
"무서워말고 두려워 말라" 라고
말한 대목은 그런 죽음의 두려움을 이겨낼
비법을 담고 있는 바코드인 것입니다.
"무서워말고 두려워 말라."
읽을수록 저에게 힘을 주는 대목입니다.
두려움이 엄습하거든 큰소리로
관세음보살을 외치라는 이 대목은
『보문품』의 절정이라 해도 지나치지 않습니다.
전통적으로 한국의 사찰에서는
큰 소리로 염불하면 열 가지 장점
[高聲念佛十種功德]이 있다고 합니다.
첫째는, 잠을 없애 줍니다.
정신이 몽롱해지고 혼탁해지며
졸음에 빠져드는 무기력한 상태에서
일어나고 싶으면 큰소리로 염불하라고 합니다.
둘째는, 죽음의 신을 겁주어
쫓아내는 장점이 있습니다.
태만하게 생활하면서 정신이
한 곳에 통일되어 있지 않으면
온갖 잡념이 파고 들어 뜻하지 않은
악을 저지르거나 그릇된 길로 빠져 끝내는
바람직하지 못한 최후를 맞을 수 있습니다.
큰소리로 염불하면 그런 일을 막을 수 있습니다.
셋째는, 염불하는 목소리가
온 세상에 두루 퍼지는 것입니다.
관세음보살이나 석가모니불,
아미타불이라는 존재가 상징하는
커다란 덕성이 암암리에 퍼지는 것을 말합니다.
하지만 다른 측면에서 생각하면 대체로 염불을
오래하면 일정한 가락이 따라옵니다.
아름다운 노래는 듣는 사람들의 마음을
편하게 하고 기분 좋은 상상을 만들듯이,
간절한 마음을 담은 염불소리는 주변의
생명체들에게 아늑한 편안함을 안겨 줍니다.
넷째는, 악한 일을 하면 따라오게 마련인
나쁜 세상에서의 고통이 쉬게 됩니다.
염불을 하는 사람이 자기에게만
좋은 일을 하려고 마음 먹지는 않을 것이니
선업(善業)을 지을 것입니다.
선업에는 즐거운 과보가 따릅니다.
설혹, 염불하기 전에 악업을 저지른 경우,
인과법을 인정하지 않으려던 중생의
마음이었을 때는 당연히 받아야할 괴로운
과보가 쓰디쓰고 억울하게만 느껴졌지만,
염불을 하다보면 달갑게 받아들일 자신이 생깁니다.
자신이 저지른 악업의 과보는 기꺼이 받되
그에 따라서 또 다른 악업을 다시
짓지 않게 되니 큰소리로 염불을 하는
사람에게 이제 삼악도의 길은 끊긴 것입니다.
다섯째는, 바깥의 다른 소리들이 들리지 않습니다.
간절한 소망을 담아서 크게 염불을 하면
저절로 정신을 집중하게 되니
주변의 이런저런 소리가 들리지 않습니다.
묵묵히 정진을 하거나 속으로만 기도를
하는 경우와는 큰 차이가 납니다.
큰소리로 하는 염불은 비교적 쉽게
기도에 몰입할 수 있는 장점이 있습니다.
여섯째는, 마음을 잘 단속해 흩어지지 않습니다.
염불을 지속적으로 하게 되면 그것은
선(禪)의 경지와 이어집니다.
그래서 염불선이니 정토선이니 하는 말이 있습니다.
자꾸만 끼어드는 잡념을 떨쳐버리면서
오로지 관세음보살의 명호에 집중하며
큰소리로 불러대면 흩어지는 성품을 지닌
마음은 관세음보살에 묶이게 됩니다.
정신통일에 참 좋습니다.
일곱째는, 용맹정진하는 공덕이 있습니다.
가장 쉽게 할 수 있는
염불이 바로 고성염불입니다.
하다 보면 힘이 솟고 즐거워 집니다.
마음이 즐거워지면 일을 하는 것이 즐겁고,
자기가 하는 일이 다른 이에게도
도움이 되기를 바라게 됩니다.
저절로 생활에 자신이 생기고
실적이 오르게 됩니다.
큰소리로 염불하는 것은 이처럼
매사에 자신감을 심어 줍니다.
여덟째는, 모든 부처님이 기뻐하게 됩니다.
가장 선하고 가장 바른 존재가
바로 '부처' 입니다.
마음이 산란하여 유혹에 끌릴 때면
사람은 선(善)과 정(正)에서 멀어 집니다.
그럴 때 마음을 다잡고 큰소리로 염불하면
어느 사이 자신은 선과 정으로
돌아서 있음을 깨닫게 됩니다.
부처님이 기뻐한다는 것은 바로 이를 뜻합니다.
아홉째는, 삼매가 또렷하게 나타나게 됩니다.
앞서 여섯째 공덕의 설명과 큰 차이가 없습니다.
열번째는, 정토에 왕생하게 됩니다.
이 세상은 사바세계요 예토(더러운 땅)입니다.
원하는대로 이루어지지 않고, 그렇다고
삶을 포기하자니 그럴 수는 없는 일입니다.
어느 순간 행복이 찾아온다고 해도,
'아! 행복해' 라는 탄성이 오래가지 않습니다.
이내 행복은 사라지고 예전의
불만족한 상태는 계속 이어집니다.
착한 일을 하고 바른 일을 하려해도 쉽지 않습니다.
바로 이것이 사바세계의 한계입니다.
훌훌 벗어 던지고 출가하여 오로지
수행에만 전념하고 싶어도 여의치 않습니다.
그럴 때 세속에 묶인 우리가 할 수 있는 일은
큰소리로 염불하는 일일 것입니다.
정토는 '부처님 되는 일만 남아있는 세상' 입니다.
이 세상에는 욕심과 성냄과 어리석음을
완전히 벗어버리지 못하였지만
정토에 태어나서는 정말 내 마음 속에
들끓는 번뇌를 잠재우고 진정한 행복을
완성할 수가 있는 것입니다.
큰소리로 염불을 하면 관세음보살님이
그 사람을 정토로 데려 간다고
『무량수경』과 같은 정토 계통의
경전에서는 누누히 강조하고 있습니다.
밖에서 오는 위협이나 고통 그리고
자신의 내부에서 일어나는 온갖 두려움도
오로지 "관세음보살" 이라고
크게 외치면 소멸된다는 것입니다.
왜냐하면 관세음보살은 우리들 마음
속의 두려움을 없애주어 떳떳하게
그 대상과 맞서도록 일러주는
부모와도 같은 존재이기 때문입니다.
틈새를 일러주고 도망갈 길을 열어주고
숨통이 트이게 해주는 존재!
이런 관세음보살을 가리켜 석가모니 부처님은
'시무외자[施無畏者]'
즉 중생에게 두려움을 없애주는
보시를 베푸는 자라고 딱 집어 일러주십니다.
우리는 법의 보시, 재물의 보시에 관해
경전들을 살펴보기도 하고, 배워 잘 알고 있습니다.
이제 보시의 종류가 세 가지로 늘어났군요.
"선남자야, 보시에 세 가지가 있으니
법의 보시,
재물의 보시,
두려움을 없애주는 보시이다."『해심밀경』
『해심밀경소』에는 두려움을 없애주는 보시에 관해
"사자 · 호랑이 · 이리 · 귀신 · 도깨비 등의
두려움을 없애는 것이고, 왕 · 도적 · 물 · 불 등의
두려움을 없애는 것이다" 라고 설명하고 있습니다.
재물의 보시는 누구나 할 수 있는 것이고,
법의 보시는 다른 이보다 한 순간이라도
빨리 법을 받아 지녔다면 할 수 있는 일인데
두려움을 없애주는 보시는 세상의 이치에 밝아
죽음의 두려움을 이미 벗어난 자만이 가능한 일입니다.
그래서 두려움을 없애주는 보시는 관세음보살이나
부처님만이 할 수 있는 보시이며 우리가
궁극적으로 베풀어야 할 보시도 바로 이것이겠습니다.
▲ 불편한 몸이심에도 오직 전법의 일념으로 부처님의 소명을 다 하고 계신
무비스님의 법체 강녕을 축원 드립니다. 스님 건강하십시오. 관세음보살 ▲
무비스님 염화실 인터넷 법문 관세음보살보문품 ①
찰나라도 의심하지 말지니 염념물생의(念念勿生疑)
관세음 거룩한 성인은 관세음정성(觀世音淨聖)
고뇌와 죽음의 재앙에서 어고뇌사액(於故惱死厄)
능히 믿는 의지처가 되어준다네 능위작의호(能爲作依怙)
[상당히 무덥습니다 건강 유의하십시오 (12)편으로 이어집니다]
'가장 행복한 공부' 無量光明 합장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