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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카이스트] 31 - 업그레이드 2
S#1. 면접장 앞 복도
양복을 입은 학생들이 우루루 차례를 기다리고 있고.
그 중의 정태, 혼자 서있다가 옆의 학생의 손목시계를 들여다본다.
S#2. 공중전화 앞
30회의 씬 58중에서 한 부분..
민재가 전화기로 저장된 만수의 메시지를 듣는다.
만수 : (E 다급해서) 민재냐? 나야. 만수. 야 클났다. 내가 가져온 TP자료가 잘못됐어. 너하구 뽑은 그 결과가 아니구 전에 한 걸
가져온 거야. 실험실 컴퓨터에 저장해놨는데.. 어.. 저장 안되있음 어뜩하지. 한번 봐줘. 그래서 그거 결과 정리해서
메일로 좀 보내줄 수 있냐? 너밖에 부탁할 사람이 없잖아.
민재 : (갑갑해서 시계를 본다)
S#3. 전자과 복도
민재가 빠른 걸음으로 걸어오고 있다. (아직은 달릴 필요가 없는 시간)
S#4. 실험실
급하게 컴퓨터를 켜고 부팅을 시작하는 민재. 넥타이가 갑갑한지 늦춘다.
S#5. 전자과 면접실 앞
정태, 민재가 갔던 쪽을 기웃거리고 있는데 누군가 등을 퍽 친다.
돌아보면 경진이다.
경진 : 아직 시작 안했어?
정태 : 우린 뒤쪽이야. 민재땜에 나까지 원서를 늦게 접수했잖아. 넌?
경진 : 아직 내 차례 멀었어. 근데 면접 때 교수들이 오래 물어보면 탈락이라 그랬냐. 그 반대냐.
정태 : 많이 물어보는 건 성적이 모자란 쪽.
경진 : (문득 바보같은 얼굴을 해보인다) 이 얼굴 어때.
정태 : 그 얼굴이 뭐.
경진 : 이런 얼굴이면 뭐 물어보고 싶은 생각이 안들거 같지 않니?
정태 : (한심해서 경진의 얼굴을 쓸어버리고)
경진 : 민재는 어디 갔어. 면접 들어간거야?
정태 : 전화한다고 가더니 소식이 없네. 이 자식 내 다음다음인데.
경진 : 오겠지뭐. 지각이라는 단어는 걔 사전에 없잖아.
정태 : (웃도리를 벗으며) 면접보기 전에 쪄죽겠구만.
경진 : 차가운 콜라 마실래?
정태 : 조오치.
경진 : (손바닥을 내밀더니) 동전.
정태 : 으이그. (주머니를 뒤지며) 너 처음부터 동전 얻을려구 여기까지 온거지? (동전 몇 개 내주는데)
경진 : (세보며) 삼백원 모잘라. 더 뒤져봐.
S#6. 실험실
모니터에 떠있는 메일 전송 프로그램..
민재, 초조해서 보다가 벌떡 일어나더니 전화기를 든다. 버튼을 눌러대고.. 상대가 받기를 기다리다가.
민재 : 지금 서버에 문제 있어요? 메일 전송이 안되는데요..... 점검중이요? (미치겠다) 언제 끝나는데요?
듣다가 그냥 수화기를 내려놓더니 주위를 둘레둘레.. 빈 디스켓을 찾는 것인데 실험실에 디스켓 같은 건 없다.
S#7. 복도 / 계단
민재가 뛰고 있다. 헉헉대며 계단을 뛰어 올라간다.
S#8. 이교수 랩
튀어들어온 민재, 미끄러지듯 자기 책상으로 가서 빈 디스켓 몇장을 뒤져들고는 다시 튀어나간다.
S#9. 기계과 면접실
자현이 아주 불편한 얼굴로 앉아있다. 치마정장을 입고 있는데 자세가 불편한지 자꾸 꼼지락거리고 있다.
자현의 앞에는 네명의 교수들이 앉아있다.
각 교수의 앞에는 다과와 음료수 잔이 놓여있고. 자현은 칠판 앞쪽에 앉아있는 위치.
교수들은 각자 앞에 놓여진 심사서류를 들춰보며 질문 중.
이 중에는 오교수도 있음.
기계1 : 맨홀뚜껑은 무슨 모양이야?
자현 : 동그란 모양인데요.
기계1 : 왜 네모나 삼각형으로 안 만든거지?
자현 : (좀 당황하고 있다) 그건... (열심히 생각하는)
기계1 : 간단하게 생각해. 모든 문제는 알고보면 간단한거야.
자현 : 네모로 만들면 뚜껑이 밑으로 떨어지지 않겠습니까? 그게 저 대 각선 방향으로 돌려놓으면 떨어지는데.. (눈치를 보는데)
기계1 : (맞다 틀리다 대답도 없이 앞의 서류에 뭔가를 적어넣고 있다)
기계2 : 헬리콥터가 비행하는 원리를 말해봐요.
자현 : 헬..헬리콥터입니까?
기계2 : 헬기 몰라요?
자현 : ...저.. 자동차가 달리는 원리를 설명하면 안될까요. (거의 울상이다)
S#10. 물리과 면접실
역시 네명의 교수들이 앉아있다. 서교수가 질문 중이다.
서교수 : 지구로부터 10만광년 떨어진 별이 대폭발했는데, 그때 그 대폭발 때문에 생긴 빛이 선형으로 편광되어
지구로 오고 있어요. 이 빛이 지구의 대기권을 통과하면서 어떻게 될까요.
경진 : (당황..) 저... 혹시 힌트같은 거 없을까요?
서교수 : (좀 웃고) 좋아요. 지구의 대기권에는 플라즈마가 존재하고, 또한 지자기가 존재하는데.. 이젠 머리가 돌아가나?
경진 : (드디어 머리 돌아간다) 아 선형된 빛이 들어오면서 자유전자와 이온들을 진동시키고, 진동하는 자유전자는 지자기로부터
나오는 자기장의 의해서 로렌츠 힘을 받습니다. 따라서 진동하는 자유전자는 자기장의 방향을 중심으로 돌게 되고,
따라서 빛의 편광방향 또한 같이 돌게 됩니다.
서교수 : (만족한 듯 미소짓고 서류에 뭔가 기입하고)
물리1 : 미국에 있으면서 영어공부는 열심히 한 모양이군. 토플 성적이 좋아.
경진 : 고맙습니다.
물리1 : 그럼 지금부터 내가 말하는 단어를 칠판에 써보겠나?
경진 : (냉큼 일어나서 칠판 앞으로 가서 분필을 집어드는) 준비 됐습니다.
물리1 : 한국과학기술원 물리학 석사과정 지망을 한문으로 써봐요.
경진 : (황당..) ..예?
물리1 : 한문으로 써보라고. 공학도들이 영어만 알고 한문을 모르는 건 문제니까. (옆의 서교수를 돌아보며) 안그렇습니까?
서교수 : (웃음 참으며) 동감입니다.
S#11. 실험실
민재 초조하게 시계를 보며 기다리다가 복사가 끝난 디스켓을 잡아뺀다.
이미 복사된 두세개의 디스켓을 들고 마악 나가려는데 호출기가 울린다.
민재, 속이 타지만 할 수 없이 전화기로 달려가 집어든다.
S#12. 전자과 면접실 앞
정태가 조교와 같이 서있다.
조교 : 수험번호 순으로 순서를 정한건데 그걸 어떻게 바꿔.
정태 : 금방 올겁니다. 올건데.. 뭐 문제가 생긴 모양이에요. 그러니까..
조교 : 시험 시간 늦는게 얼마나 치명적인지 몰라?
정태 : 혹시나해서 그러는건데요. 맨 뒤 순서로 좀 해주면 안되요?
조교 : (손에 들고 있던 명단을 뒤적이며) 맨 뒤래봐야 얼마 안 남았어. 니가 그 앞이지?
정태 : 예.
조교 : 그럼 니가 조금이라도 오래 끌어봐. 아무 질문이든 대답을 길게 하라고.
S#13. 실험실
민재가 수화기를 들고 만수의 메시지를 듣고 있다.
만수 : (E) 지금 미팅 시작했어. 민재야. 빨리 좀 보내줘. 더 이상 못 기다린단 말야. 민재야. 나 좀 살려줘.
(녹음 시간이 끝난 삐삐소리)
민재 수화기를 던지듯 놓고는 달려나간다.
S#14. 캠퍼스
민재가 자전거를 타고 달리고 있다. 달리면서 시계를 본다.
S#15. 전산과 면접실
역시 네명 정도의 교수가 배석하고 있고. 앞에는 지원이 앉아있다.
교수 중에는 박교수가 있다. 다른 교수들이 양복을 입고 있는데 박교수만 평소의 차림.
박교수는 머리를 긁어가며 열심히 생각 중이다. 옆의 교수가 보다못해서.
전산교수 : 질문하신다면서요.
박교수 : 예 지금 어려운 질문을 생각중인데 잘 생각이 안나네요. 에.. 맞어맞어. 현재 1기가 메모리가 개발되고 있지?
만약 이 1기가 메모리가 상용화되서 pc에 이용된다면, 컴퓨터구조상에 어떤 변화가 생길까? (의기양양)
지원 : (냉정하게) 현재의 컴퓨터는 폰노이만 컴퓨터구조를 기본으로 하고 있는데, 이 구조에 변화가 생길 가능성이 있습니다.
박교수 : 그런 컴퓨터구조는 현재 모든 컴퓨터가 이용하는데, 왜 문제가 있다고 말하는 거지?
지원 : 항상 데이터를 보조기억장치에서 읽어와야 하기 때문에, 버스(bus)에 로드(load)가 많이 갑니다.
즉, 버스에 병목현상이 오는 거죠.
박교수 : 버스라니 시내 버스를 말하는건가?
지원 : (웃을 수도 없는 얼굴로 박교수를 보다가) 컴퓨터의 버스란, 컴퓨터 내부에서 CPU 와 기억장소(memory),
그리고 보조기억장소 사이를 연결해주는 통신회로를 말하는건데요.
박교수 : 그런데 그러니까아 1기가 메모리를 사용하면, 어떤 변화가 생길 것이라구우?
지원 : 보조기억장소대신 메모리가 충분히 커지면, 버스의 사용이 줄어 들기 때문에,
폰노이만 컴퓨터의 약점이 많이 보완될 것입니다.
박교수 : (옆의 교수를 돌아보더니) 질문 더해야 되요? 사실 전 이런 면접 처음이거든요. 이거 정말 너무 긴장이 되는데요.
S#16. 기계과 면접실
자현이 좀 굳어서 보고 있다.
오교수 : 결혼은 언제쯤 할 생각이야?
자현 : 결혼..입니까? 남자 여자가 하는 그거요?
오교수 : 결혼이 뭔지도 몰라?
자현 : 압니다만 생각해본 적이 없는데요.
오교수 : 여학생들은 기쓰고 가르쳐놓으면 결혼하면서 포기해버리기 일쑤야. 나라 돈 써가며 공부가르치는 건데
그렇게 되면 국고 낭비란 생각해 본 적 없나?
자현 : (좀 어이없지만) 저는 중간에 포기할 생각 없는데요.
오교수 : 밤에 남학생하고 둘이 연구실에 있는다면 무섭지 않겠어?
자현 : (무슨 말인지 모른다) 연구실이... 무서워요?
오교수 : 석사는 학부때하고 틀려. 밤새우는 일도 다반사고. 그런데 밤에 남자들 틈에 혼자 껴있으면 사고가 나지 않겠냐고.
자현 : 사고요? ...(하다가 무슨 말인지 알았다) 그러니까 남자가 나를...여자로 보고 덤비는 거 말씀이십니까?
오교수 : 질문이 이상하겠지만 이건 어디까지나 현실적인 문제니까..
자현 : (흥분했다) 아니 그럼.. 그게 짐승이지. 사람입니까? 그럼 그.. 짐승을 그냥 놔둡니까?
사람한테 해를 끼치는 짐승은.. 그건 잡아야 된다고 생각합니다.
교수들 웃는데 오교수만 웃지 않고.
오교수 : 뭘 어떻게 잡어. 자넨 여자야. 여자는 남자한테 힘으로 당할 수가 없는거야. 물리적으로 그래.
자현 : (문득 오교수를 빤히 보다가) 지금 제가 여자기 때문에 제자로 두기 싫으신 겁니까?
오교수 : 면접 때 질문은 교수가 하는거야.
자현 : (저도 모르게 벌떡 일어났다가 겨우 자제하더니 조금은 버벅거리 면서) 저에겐 오빠가 셋이 있습니다. 제가 어렸을 때
오빠들이 저에게 물었습니다. 너 여자할래. 사람할래. 그래서 저는 물론 사람을 하겠다고 대답 했습니다.
그 다음부터 저는 반죽게 맞으면서 컸습니다. 그래도 저는 지금도 그 때 대답 잘했다고 생각합니다.
전 여자니 남자니 골치아파서 잘 모르겠습니다. 전 사람입니다. 그러니까 사람한테 질문을 해주시면 정말 감사하겠습니다.
(씩씩거리며 보는)
교수들 모두 자현을 보고 있는데, 오교수 냉정한 얼굴로 자현을 보다가 다시 앞의 서류를 뒤져본다.
S#17. 학교 외부 피시방 앞
간판에서 내려와 보면 민재의 자전거가 그 앞에 팽개쳐져 있다.
S#18. 피시방 내부
민재가 메일을 전송하고 있다. (화면에 메일 전송 프로그램이 떠있을 것)
민재 초조해서 넥타이를 아예 잡아빼더니 주머니에 쑤셔넣는다.
S#19. 전자과 면접실 내부
이교수와 다른 교수들이 앉아있다. 앞에는 정태.
전자1 : 반도체, 전자회로, 제어이론 중에 어느 게 자신있나?
정태 : 어떤 거라도 좋습니다. 질문해주시면 대답하겠습니다.
이교수 : (서류를 보다가 고개 들어 정태를 본다. 이것봐라..하는)
전자1 : (이교수를 돌아보며 어이없어 웃으며) 아주 자신이 있는데요.
이교수 : 일이학년때는 자신있을만한 성적이에요. 그런데 뒤로 갈수록 성적이 낮아지고 있어요.
자신감만큼 실력이 있는지 모르겠는데요.
전자1 : 그런가요. (정태에게) 먼저 고주파용 동축선의 구조를 그려보게.
정태 일어나 칠판 앞으로 간다.
칠판에 큼직하게 그려지는 고주파용 동축선 구조.
전자1 : 거기 동축선의 단면상의 전계와 자계의 벡터분포와 방향을 그려보지.
정태 : TEM Mode(티이엠모드)에 해당하는 전자계의 벡터 분포만 그릴까요?
교수들 좀 놀란 얼굴로 서로 본다.
전자1 : 모드 이론도 아는 거 같구먼. 그래 기본 TEM 모드의 벡터만 그려봐. (이교수에게) 학부생같지 않군요.
이교수 : 글세요. (차가운 얼굴로 정태를 보고 있다)
정태는 칠판의 동축선 그림 위에 빠른 속도로 전계, 자계의 벡터를 그려나간다.
S#20. 피시방 앞
달려나온 민재가 자전거에 올라타며 달리기 시작한다.
S#21. 골목 일각
민재가 주위를 볼 새도 없이 급하게 자전거를 몰고 있다.
민재의 자전거가 마악 골목을 돌아 달려온다. 순간 골목 다른 쪽에서 승용차가 튀어나온다.
민재 놀라서 자전거를 훽 틀다가 균형을 잃는데 바로 옆에서 세발자전거를 타고 있던 어린 아이의 위로 쓰러져 버린다.
승용차는 여전히 빠른 속도로 지나가버리고.
넘어졌던 민재, 황급히 일어나다가.. 아픈 부분 때문에 찡그리다가.. 바로 자기 앞에 쓰러져 있는 아이를 본다.
아이는 자기 자전거를 다리 사이에 낀 채 넘어져 있다.
민재, 놀라서 아이 위의 자전거를 치우며.
민재 : 야. 너 괜찮아? 어이..
아이가 뒤늦게 울음을 터뜨린다.
민재, 정신이 나갈 지경인데.
그런 지정신이 아닌 민재의 눈에 저만치 있던 아이의 엄마가 비명을 지르며 달려오는 것이 보인다.
아이의 엄마는 다른 여자와 수다를 떨던 중이었던 듯.
같이 얘기를 하던 여자도 소리를 지르며 달려온다.
S#22. 전자과 면접실
그림이 완성된 칠판 앞에 서서 정태가 답변을 하고 있다.
정태 : 고주파용 동축선의 임피던스를 50오옴이라고 할 때 그것은 저주 파의 저항에서 얘기하는 임피던스와 다릅니다.
고주파에서는 전 압파동과 전류파동의 비례관계를 특성 임피던스라고 하고 그것이 50오옴입니다. 따라서 저주파에서는..
이교수 : (잘라서) 책을 다 외울 필요는 없어. 하나만 더 묻겠는데 그 그림에서 동축선의 전류는 어떻게 흐르지.
정태 : 동축선의 가운데 도체로 흐릅니다.
이교수 : 틀렸어.
정태 : 예?
이교수 : (자기 앞의 서류에 뭔가 적으며) 공부를 더해야겠어.
정태 : (당황해서) 전류는 중심도체로만 흐르고 바깥 도체는 외부 잡음 차단을 위한 차폐기능을 담당하는 거 아닌가요.
이교수 : (옆의 교수에게) 제 질문은 더 없는데요. 다음 학생 받죠.
정태 : 다시 한번 생각해보겠습니다. 그러니까 이건.. (그림을 보는데)
전자1 : 이교수님 말이 맞어. 자넨 하나만 알고 둘을 모르는구만. 이만 나가봐요.
정태 : (저도 모르게 시계를 들여다본다)
S#23. 전자과 면접실 앞 복도
이제 남은 학생은 거의 없다.
대여섯명 정도가 남아서 그 중의 두셋은 모여서 나직하게 얘기를 나누고 있다.
조교가 명단을 뒤져보고 있다.
S#24. 복도 일각 계단 부근
정태가 뛰어온다. 마악 계단에서 올라오던 지원이 정태를 본다.
지원 : 면접 끝났니?
정태 : 민재 못 봤어?
지원 : 민재? 너하구 같이 있어야 되는 거 아냐?
정태 더 물어볼 것 없이 계단으로 뛰어내려간다.
그 계단으로 올라오던 경진이 정태랑 부딪힐 뻔해서 본다.
정태는 벌써 뛰어내려갔고. 경진이 지원을 보더니.
경진 : 쟤 왜 저래. 화장실이 급한거야?
지원 : 민재를 찾든데?
경진 : 뭐?
S#25. 전자과 면접실 앞 복도
이제 차례를 기다리는 학생들은 없다.
문이 열리더니 교수들이 얘기를 나누며 나온다. 저마다 서류들을 들고. 이교수도 나왔다.
교수들이 인사를 나누며 헤어져간다. 이교수도 저쪽으로 걸어가려는데..
정태 : (E) 교수님.
이교수 : (돌아보면)
정태 : (숨이 차서 뛰어오더니) 조금만 ..조금만 더 기다려주시면 안될까요.
이교수 : ...이민재 어떻게 된거야.
정태 : 금방 올겁니다. 그러니까. 십분만..
이교수 : (정태의 뒤를 본다)
정태도 후딱 뒤를 돌아본다.
저기 복도 저 끝에 민재가 뛰어오고 있다. 넥타이도 없고 양복 윗도리는 벗어서 들고 있는데 몰골이 아주 형편없다.
어느만큼 오다가 걸음이 차츰 느려지며 멈춰선다.
민재는 창백한 얼굴로 이교수를 보고 텅 빈 복도를본다.
이교수 : (말없이 자기의 손목시계를 본다)
민재 : (휘청거리듯 다가오며) 면접 보러 왔습니다.
이교수 : 어떻게 된거야.
민재 : 사고가 있었습니다.
이교수 : 무슨 사고.
민재 : 학교 밖에 잠시 나갔다가.. 그게.. (더 말을 못하는데)
이교수 : 면접을 앞두고 학교 밖에는 왜 나가.
민재 : 그게 실은.. (이교수를 보는데 차마 말을 못한다)
정태 : (답답해서) 말씀을 드려.
이교수 : 아니 얘기할 필요없어. 이민재. 면접은 끝났어.
이교수 돌아서 간다. 정태 초조해서 이교수를 보고 민재를 보다가 벌컥.
정태 : 야 이 미친 놈아. 도대체 무슨 일이야? 아까 그 호출 누구한테 온거야? 말 좀 해봐. 어?
민재 : (거의 정신이 멍한 상태에서 정태를 본다) 정말.. 다 끝난거야?
정태 : (답답해서 한손으로 민재의 멱살을 끌어잡더니 다른 손으로 이교수가 가는 쪽을 가르키며) 당장 쫓아가.
가서 무릎이라도 꿇어. 너 뭔가 사정이 있을거 아냐. 너 그냥 지각할 놈이 아니잖아. 가서 말씀드려. 어서.
민재를 밀어낸다. 휘청이며 몇걸음 가던 민재가 다시 선다.
서있는 민재의 얼굴에 만가지 생각이 교차하고 있다.
S#26. 캠퍼스 전경 / 저녁
캠퍼스에 어둠이 내리기 시작하고 있다.
S#27. 석학의 집
자현이 생맥주를 주욱 들이키더니 타앙 놓고는.
자현 : 우간다 어때 우간다. (어지간히 취해있다)
그 앞에는 진수. 대욱과 경진, 지원이 있다.
대욱 : (불안해서 자현이 쥐고 있는 맥주잔을 보고 지원에게) 이 선배. 이렇게 술이 약했습니까? 이거 겨우 두잔째잖습니까.
지원 : 그러게. 좀 약한 거 같네. 니가 좀 말려보지 그러니.
자현 : (그 순간 대욱의 멱살을 잡더니) 우간다면 우리 오빠가 못 쫓아 오겠지. 니 생각은 어떠냐.
대욱 : (캑캑대며) 아직 합격자 발표가 난 것두 아닌데 고만 좀 해애.
자현 : 이 자식아. 너같으면 합격시켜주겠냐? 교수한테 그렇게 대들었는데?
대욱 : 나같으면 합격시켜. 진짜야.
자현 : 에라이 입만 산 놈아. (손 놔주더니 버럭 소리지른다) 마이클. 술 떨어졌잖아아.
마이클 이만치에 진영 옆에 붙어있으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마이클 : 난 안 가. 난 술 취한 사람 무서워. 술 취한 사람은 귀뚜라미 같아.
진영 : 귀뚜라미요?
마이클 : 귀뚜라미는 어디로 튈지 몰라요. 그러니까 제일 무서워. (튀는 시늉하며) ?i! ?i! ?i!
자현 : (E) 마이크을..
미순 : (얼음물을 몇잔 들고 가며) 추자현 너 조용히 안할래. 여기 손님이 너 밖에 없냐?
자현 : (다가온 미순에게 고개를 박으며) 언니 난 이제 죽었어요. 나 여기 취직하면 안될까. 모든 기계 무상수리해줄게요.
미순 : (자현의 머리를 치우며) 근데 다른 4학년들은 왜 안오는거야? 일루 모이기로 했대매.
진수 : (시계를 보며) 좀 늦네요.
하는데 지민이 급하게 들어오더니.
지민 : 민재오빠 얘기 들었어? 민재오빠 얘기 못 들었지?
모두 의아해서 보면. 지민 얼음물 먼저 마시고는.
지민 : 민재오빠 면접 안봤대.
진수 : 뭐야?
지민 : 아까 정태오빠 만났어. 정태 오빠 화나서 민재 그 엑스엑스엑스.. 막 욕하면서...
지원 : 무슨 얘기야. 민재가 왜 면접을 안 봐.
지민 : 늦었대요. 면접 다끝나서 왔대. 이거 꿈이지? 내가 왜 민재오빠의 악몽을 대신 꾸고 있는거지? (넋이 나간 얼굴로 주저앉는)
미순 : 그래서 민재 그 녀석은 지금 어디 있는거야?
지민 : 모르죠. 누가 이거 꿈이라고 말 좀 해줘요.
모두 놀라서 술렁거리는데.. 자현은 혼자 술 마시며 맞어 꿈이야. 꿈.. 중얼거리고..
경진 : (문득 옆의 지원을 돌아보더니) 민재가 제일 자주 왔다갔다 하는 길목이 어딘지 알어?
지원 : 무슨 일인진 모르지만 잠시 혼자 놔두는 게 낫지 않겠어?
경진 : 무슨 소리. 이런 구경은 놓칠 수가 없지이.
S#28. 이교수 랩 앞 복도 / 밤
중희와 명환, 만수가 양복을 입고 오고 있다.
프레젠테이션을 마치고 오는 길. 만수는 의기양양해서 발걸음도 가볍다.
만수 : 선배님들 보셨죠? 이 정만수가 냉정하고 침착하게 브리핑하는거 어땠어요? 네?
중희 : 어떠긴 뭘 어때 임마. 박사면접 이후로 이렇게 긴장해보긴 처음이었지.
명환 : 아무튼 수고했어. 난 이교수님 방에 좀 들렀다 올게.
만수의 등을 쳐주고 앞서가고. 중희는 랩의 문을 열고 들어가고. 만수는 명환의 등을 보며.
만수 : 아무튼 수고했어? 아이구 하실 말씀이 고거뿐이야? 아무튼 단어 실력이 너무 모자르셔.
S#29. 이교수 랩
만수 까불거리며 들어서다 보면 가운데 민재가 우뚝 서있고 중희가 얘기하던 중. (민재는 아직 헝클어진 와이셔츠 차림)
중희 : 야야 얼굴이 왜 그래. 너같은 놈이 안붙으면 누가 붙냐. 근데 붙었다구 너 딴데 가면 안된다.
우리 랩으로 안오면 너 배신자야. 알지?
민재 굳은 얼굴로 만수를 돌아본다.
만수 : 아이구우 내 사랑하는 후배. 면접 잘 봤지?
민재 : (바로 만수에게 다가와 밖으로 끌며) 나하구 얘기 좀 해.
만수 : 얘기? 뭔 얘기?
남은 중희. 민재가 좀 이상해서 보는.
S#30. 복도
민재, 만수를 끌다시피 와 서더니.
민재 : 형.
만수 : 말해말해. 뭐? 뭐? 내 다 들어줄게.
민재 : 이교수님께 가서 이번 일 좀 다 말해줘.
만수 : 뭐?
민재 : 형이 프레젠테이션 하는데 자료를 잘못 갖고 간 거. 그래서 면접 기다리는 나한테 도움을 요청한 거.
그래서 내가 면접에 늦은 거. 다 말씀드려달라고.
만수 : 아 자식. 치사하게 사람을 도와줄거면 화끈하게 해주는거지. 그러게 생색을 내야 되겠...뭐? 지금 뭐라그랬어. 면접에 늦어?
민재 : 어. 그런데 내가 그런 말을 할 수는 없잖아. 형이 가서 해줘.
만수 : 설마.. 그래두 설마.. 면접을 못 본 건 아니지? 그냥 늦어서 점수 좀 깍인거지?
민재 : (거의 무표정) 못 봤어. 면접점수가 얼마나 중요한지 형도 알지? 나 지금 지푸라기라도 잡고 싶어. 형이 말 좀 해줘. 내 사정.
만수 : (넋이 나간 기분) 알았어. 그럼. 말해야지. 기다려. 내 가서 다 말하고 올게. (가다가 돌아보고) 걱정마.
내가 내 자리 비워서라두 너 대학원 오게 해줄거니까 걱정말라구. 나 갔다올게.
만수 뛰어간다.
민재, 만수가 뛰어가는 모습을 노려보고 있다. 뭐라도 발로 차고 싶은데 억누르고 있는 기분.
S#31. 이교수 연구실
만수가 벌컥 들어서다가 멈칫 선다.
안에는 이교수와 처장, 명환이 얘기를 나누다가 돌아본다.
이교수 : (표정이 밝다) 마침 오네요. (만수에게) 지금 니 얘기하고 있던참이야.
만수 : (얼결에 고개 숙여 절을 하고)
처장 : 이 학생의 활약이야 나도 잘 알죠. 로봇 축구 사회도 보고 비비에스에도 활발하게 글을 올리고.. 허허허.
이교수 : 만수 경우에 학부때 학점도 별로 좋지 않았어요. 실험때마다 제일 늦게 결과물 제출하기로 유명했구요.
그래도 입시사정회의 때 모든 교수님들이 합격을 시켜주자고 말씀해주시더군요.
처장 : 그게 우리 학교의 기본정신이죠. 학과성적만 보는 게 아니고 자기소개서라든지 면학계획서라든지 특기라든지
여러 가지 인성까지를 포함해서 학생을 평가하는 거 말입니다.
이교수 : 그런 점에서 전 우리 학교의 이런 입시제도가 좀 더 많은 대학에 확산되었으면 좋겠어요. 이번에도 만수가 아주 어려운
프로젝트를 맡았었는데요. 사실 석사 1년차가 하긴 좀 어려운 거였거든요. 랩 아이들이 모두 반대를 했었죠. (명환 보면)
명환 : (웃으며) 저희들 생각이 짧았습니다. 자기 혼자 힘으로 그렇게 잘해낼 줄 정말 몰랐습니다.
이교수 : 그래. 사실은 나도 놀랐어. (만수에게) 그동안 계속 밤샜지? 수고했다.
만수 : 예? 아.. 예.. (웃지도 못하고 말 할 기회를 못잡아 초조한..)
이교수 : (처장에게) 연구에서는 대기만성형이지만 원내 활동으로 치자면 누구 못지 않아요.
그래서 이번 인성장학생으로 추천하려구요.
처장 : 공부를 열심히 하는 건 어떻게 보면 쉬운 일이지요. 허나 괜찮은 인간성을 키워나가는 거 이건 쉽지가 않죠.
이교수 : 맞습니다. 가르치기도 어려운 문제구요.
교수들이 화기애애하게 말하는 동안 만수 입이 마르는 기분으로 보고 있고.
명환은 격려해주듯 만수를 툭툭 치며 웃어준다.
S#32. 연구실 앞 복도 / 밤
민재, 벽에 기대 서서 초조하게 기다리고 있다가 문소리에 고개 들어보고 바로 서는.
만수가 연구실에서 나오고 있다. 민재를 보더니 좀 쭈삣거리며 다가온다.
민재 : 교수님이 뭐라셔.
만수 : 그게..
민재 : 나 보자고 안하셔? 내가 들어가서 좀 더 말씀드려야 될까?
만수 : 그게 지금 처장님이 와 계시거든. 그래서.. (말을 잇지 못하는)
민재 : (보다가) 그래서 말 안했어?
만수 : 그냥 그런 말할 분위기가 아니라서 말이지. 내가 좀 있다가.. 나중에 말씀드릴게. 말할거야.
민재 : ... 나 형땜에 면접 못 봤어. 그거.. 미안하게 생각은 하는거야?
만수 : 말한대잖아. 그리고.. 사실 그런 사정을 말씀드린다고 면접을 다시 볼 수 있게 되는 건 아닐거구.
그냥. 입시사정회의때 정상참작이 되는 정도일거야. 그러니까 내 말은..
민재 : 형.
만수 : 야. 나도 여러 가지로 생각해보고 있어. 어떻게 하는 게 좋은가. 그냥 아까는 정말 말할 분위기가 아니라서 말야.
민재 : 괜찮아.
만수 : 어?
민재 : 그럴 수도 있지. 말안해도 돼. 어차피 떨어질 거 형까지 끌어넣어서 망신시키고 싶지 않어.
이렇게..응? 내가 여기서 이렇게 말하면 아주 멋진 놈이 되겠지?
만수 : 민재야.
민재 : 근데 나 그렇게 못해. 나 대학원 가고 싶어. 대학원 말고 다른 길은 생각해본 적도 없어.
만수 : 입이 열 개라도 할 말은 없다. 할말은 없는데..
민재 : 미안해. 나 형하고 더 이상 마주 서있기도 싫어.
돌아서더니 가버린다. 만수. 멍하니 혼자 남는다.
S#33. 복도 일각
빠른 걸음으로 민재가 지나쳐간다.
민재가 지나쳐간 자리에 칸막이의 휴게의자들이 있는 곳.
경진이 칸막이 위로 얼굴을 비죽 내밀더니 민재가 가는 것을 보고 다시 자리에 앉는다.
칸막이 안쪽. 지원이 무릎에 책을 놓은 자세로 경진의 옆에 앉아 있다가.
지원 : 길목 지키구 앉아서 남의 말 엿듣고 나니까 이제 속이 시원하니?
경진 : 아직 다 엿들은 건 아니지. 이민재와 정만수 사이에 어떤 일이 있었는가. 그걸 밝혀내는 일이 남아있잖어.
지원 : (어이없어 보다가) 너 민재를 위로해 주려구 찾아온 거 아니었어?
경진 : 위로는 무슨 위로. 축하를 해줘야지.
지원 : (찡그려 보는)
경진 : 생각을 해봐. 사람이 살아가면서 이렇게 처절하게 깨져볼 기회가 그렇게 많은 거 아니다 너.
그리고 사람이란 이렇게 완전히 엎어져서 코가 깨져봐야 성장을 하는거라구.
지원 : 넌.. 이 상황이 재밌니?
경진 : 재밌지이. 넌 안 재밌어?
지원 : (더 말하기 싫다. 책을 챙겨 가방에 넣는데)
경진 : 이거 다 경험에서 나온 말이야. 물론 당사자는 재미없지. 죽고 싶기도 하고. 누군가 죽이고 싶기도 하고 그렇지뭐.
지원 : (멈춰서 보면)
경진 : (두 다리를 앞의 테이블에 올려놓으며) 지금으로부터 이년 삼개월 전에 우리 어머니께옵서 메일을 보내 왔어.
경진아. 미안한데 니 아버지하고 난 이혼하기로 했다. 이해해주기 바란다. (지원을 보는)
지원 : ...이혼 하셨어?
경진 : 뭐 두분이야 이혼하건말건 두분 자윤데. 내입장에선 성질나잖아. 사실 난 중학교때부터 엄마아빠 얼굴도 잘 못봤단 말이지.
크리스마스때면 카드가 와요. 경진아 엄마 아빠는 세계의 행복을 위해서 연구하고 있단다. 그러니 이해해주기 바란다.
지원 : 너도 보기보다 복잡한 애구나.
경진 : 복잡할 거 없어. 그냥 내 꿈은 단순했어. 언제고 가족이 다 모여서 추석때 송편 빚는 거. 근데 몇번 엎어치기를 당하고 나서
꿈을 바꿨지.
지원 : 뭘루.
경진 : 우주의 지배자.
지원 : (좀 웃는)
경진 : 웃지 마. 난 진지하다구.
지원 : (보다가) 너하구 난 별로 친하지도 않는데. 그런 얘기 막 해줘도 되니?
경진 : 우주의 지배자? 괜찮아. 넌 별로 라이벌이 될 거 같진 않으니까. 나한테 잘 보이라구. 나중에 은하계 정도 떼줄수도 있다구.
경진은 하품을 하며 기지개를 켠다.
지원 그런 경진을 본다. 조금은 더 이해가 된 친구를 보는 느낌.
S#34. 정태. 민재의 방 / 밤
정태가 민재의 모친에게서 온 전화를 받고 있다.
테이블에는 정태가 마시던 맥주 캔이 두어개 놓여있다.
정태 : 예 아직 안 들어왔는데요. 오면 바로 어머님께 전화하라고 전하겠습니다. ....예? 면접이요.. 어... (난처하다가) 그럼요.
민재는 워낙 열심히 하는 친구니까 면접도... 잘 봤을 겁니다.... 글세요. 왜 아직 연락을 안드렸는지 모르겠네요.
아마 .. 어디서 머리를 식히고 있을 겁니다. 민재.. 정말 열심히 했거든요. 정말.. 아주 열심히 했습니다.
예.. 예.. 안녕히 주무세요. 어머님.
전화를 끊고. 방안을 서성거리다가 발에 걸린 쿠션을 차버리는데 문이 열리며 민재가 들어선다.
민재는 정태를 보지도 않고 들고온 양복 윗도리를 던져버리고. 갈아입을 옷을 꺼내는데.
그런 민재를 바라보고 있던 정태.
정태 : 일년 반 전에. 내가 너한테 아무 말도 없이 학교를 떠났을 때. 그때 너 이런 기분이었냐?
민재 : (내키지 않아서 돌아본다)
정태 : 내 딴엔 가장 친한 친구라고 생각했는데, 뒤통수를 맞은 기분. 이거 아주 더러운데.
민재 : 내일 얘기하자. 지금은 좀 피곤하니까. (와이셔츠 단추를 푸는데)
정태 : 방금 느네 어머니 전화하셨어. 전화 기다리실거야.
민재 : (잠자코 전화기로 가서 수화기를 들다가 망설이다가 다시 놓는)
정태 : 앉어봐. (먼저 앉으며 테이블에 종이와 볼펜을 끌어다 놓으며) 이번 시험 떨어졌다구 하고. 몇가지 길이 있어.
하나는 (적어가며) 그냥 졸업하고 군대 가는거지. 두 번째는 다른 대학의 대학원으로 진학하는거야.
민재 : (그저 선 채 보고만 있다)
정태 : 세 번째는 유학을 가는거야. 그런데. (민재를 보더니) 이 세가지는 다 내가 허락 못해.
민재 : (보다가 픽 웃는)
정태 : (웃지 않고) 난 대학원에 진학할거야. 이번에 떨어지면 재수를 해서라도 들어갈거야. 그러니까 너도 가야 돼.
민재 : (주저앉더니 테이블의 캔을 들어 흔들어보고 마신다)
정태 : 그래서 네 번째, (적으며) 오학년을 다니면서 대학원을 간다. 그러기 위해서 다음 학기에 졸업연구 포기해.
그리고 내년에 재시험을 치는거야. 알았지?
민재 : 넌 붙을거야. 넌 붙어서 대학원생이 되고. 난 5학년을 다니라고?
정태 : ...자존심 상한다는 거냐?
민재 : 자존심 상하고 분하지. 물론 너 일이학년땐 열심히 했지만 그리고 일년동안 놀았어.
돌아와서두 그래. 내가 리포트 쓰고 밤 샐 때 너 만화책 봤어. 이거.. 너무 불공평하지 않냐?
정태 : (말없이 보는)
민재 : (한모금 더 마시고) 내가 아주.. 유치하지? 니가 이해해라. 내 본성이 나오고 있는거니까.
정태 잠자코 일어서더니 수건을 찾아들고 문쪽으로 간다. 가다가 멈춘다. 돌아보면.
민재는 맥주캔의 마지막까지 목을 젖혀 마시고 있다.
정태 : 고주파용 동축선 있지. 거기서 전류는 어디로 흐르는지 알어?
민재 : (뭔소린가 해서 보는)
정태 : 동축선의 가운데 도체로 흐르는 거 아니냐?
민재 : (찌푸리더니) 자계를 차폐하기 위해선 중심도체에 반대되는 전류가 바깥 도체에도 흘러야 되는 거 아닌가.
자계의 임계 조건을 생각해보면 그런데?
정태 : ...난 그걸 몰랐어. 알았다면 니가 면접장에 올때까지 시간을 더 끌 수 있었을거야. 그래서. 생각했어.
대학원 가서 더 배워야겠다구. 이게 현재 내가 대학원 가고 싶은 이유야.
정태 나가버린다.
민재 빈 맥주캔을 조금씩 우그러뜨리고 있다. 기분이 아주 처참하다.
S#35. 박교수 연구실 / 밤
남희, 퇴실하기 위해 책상을 치우고 있는데.
소리 : (노크소리)
남희 : 네에...
문이 열리는 소리만 나고 조용하다.
남희, 돌아보면 만수가 문가에 선 채 보고 있다.
남희 : 너 프레젠테이션 성공적으로 끝냈단 얘기 들었어. 그 자랑하러 온거라면 다 들은걸로 할게. (서류를 탁탁 정리해놓고 보면)
만수 : (여전히 우울하게 보고만 있다)
남희 : 무슨 일 있어? 얼굴이 왜 그래?
만수 : 정만수한테 무슨 일이 있겠어요? 기껏해야 전도유망한 후배 발목 잡고. 대학원 면접도 못 보게 하고.
대신에 인성장학금이란 걸 받게 될지도 모른다.. 뭐 그 정도죠.
남희 : (뭔 소린가 해서 보는)
S#36. 주점 / 밤
만수 소주잔을 훌쩍 비운다. 그 앞에 앉아 안타까워 보는 남희.
남희 : 세상에.. 아니 어뜩게 하면 그런 자리에 자료를 잘못 갖고 갈수 있니?
만수 : 나야 뭐 실수가 전공이구 실패가 부전공이잖아요.
남희 : 그리구. 면접장에 있는 애한테 그런 걸 부탁하면 어뜩해.
만수 : 남희 선배. 그거 몰랐어요? 내 머리에 뇌세포는 남들의 반도 안되잖아요. 그러니 한번에 두개는 생각을 못하는 게 당연하죠.
(술 따르는)
남희 : 차라리 나한테 부탁을 하지 그랬어. 자료 카피해서 보내주는 거야 누구든 할 수 있잖아.
만수 : 감춰볼려구 그랬죠. 대학원생인 내가 학부생한테 도움 받은 거. 민재만 딱 눈 감아주면 나 이번에 폼날 수 있었거든요.
남희 : 아이구 폼난다 정말. 이렇게 술 퍼마시구 자기 욕을 늘어놓는 거 폼난다구. 공학도답게 생각을 좀 해봐라.
너 이런다구 민재한테 무슨 도움이 된다는 거야?
만수 : (술 마시는)
남희 : 이교수님께는 왜 말씀드리지 않았어. 아직 입시사정회의 안했는데 그런 얘기가 민재한테 도움이 될지 모르잖아.
만수 : 할려구 그랬죠. 근데.. 갑자기 내 칭찬을 하시잖아요.
남희 : 그게 무슨 상관이야.
만수 : 남희선배나 민재처럼 맨날 칭찬받는 사람은 이해 못하겠지만요. 나같은 사람은 갑자기 칭찬을 들으면
멍해지구 아무 생각두 안나요. 일년에 한번 듣기두 어려운 거니까.
남희 : (뭐라 할말 없어 보다가 만수가 드는 잔을 뺏는다) 고만해. 이제 점점 보기 싫어지구 있어. 가자 그만. (일어서려다 보면)
만수 : (고개를 숙인 채 앉아있다)
남희 : (보다가) 만수야.
만수 : (고개 숙인 채) 예.
남희 : 너.. 폼나지 않아도 괜찮아. 세상 사람이 다 폼잡느라구 애쓰는데 너처럼 안그런 사람이 있어두 괜찮다구.
만수 : ...
남희 : 그러니까 고만 궁상떨구 일어나 응?
만수 : (그저 고개를 숙인 채이다. 어쩌면 눈물이 나서 고개를 못 들고 있는지도)
S#37. 아침 캠퍼스
아무 일 없었던 듯이 평화롭게 시작되는 아침이다.
S#38. 캠퍼스 일각
오토바이 한 대가 고속으로 달려오고 있다. 헬멧을 써서 누군지 잘 안보이는 운전자는 경진이다.
그 뒤를 열심히 따라오는 백곰의 순찰차. 경적은 울리지 못하고 그저 기를 쓰고 쫓아오는 중이다.
헬멧 슬쩍 뒤를 돌아보더니 속도를 좀 줄이는 듯 하다.
백곰, 옆으로 따라 붙으며 세우라고 손짓을 요란하게 하는데..
헬멧, 경례를 하듯 한 손을 들어보이더니 다시 속도를 높힌다.
백곰 인상을 팍 쓰고 다시 그 뒤를 따르는데,
오토바이는 길을 벗어나 잔디밭을 가로질러 달려가 버린다.
백곰, 급브레이크로 차를 세우고는 벌컥 문을 열고 나와 본다.
오토바이는 벌써 저만치 달려가고 있다. 한 손을 들어 등 뒤로 흔들어 보이고 있다.
백곰 열이 올라 돌 지경이다.
S#39. 이교수 랩 앞 복도
명환과 중희가 복사자료를 보며 얘기를 나누며 걸어온다.
S#40. 이교수 랩
얘기를 하며 들어서는 중희와 명환.
중희 : 그럼 이 쪽은 제가 마저 해볼게요. 이번 주까지만 나오면 되죠? (하다가 보면)
컴퓨터 앞에서 만수가 엎드려 잠이 들어있다.
명환 : 야 정만수.
중희 : (만수의 등을 퍽 친다)
만수 : (놀라 부시시 일어난다)
명환 : 웬일이냐. 이렇게 일찍 나와서 주무시고.
중희 : 일찍 나온 게 아니라 간밤에 안들어간 거 같은데요.
만수 : (여전히 어제의 양복 바지에 셔츠 차림) 안녕하세요.
명환 : 뭐야. 인성장학생답게 마음잡고 연구하기로 한거야?
만수 : (일어서 비실거리며 나가며) 이따 뵙겠습니다.
중희 : 어디 가. 임마.
만수 : 자러요. 이제 아침이니까 자야죠.
만수 나가고 어이없는 선배들..
S#41. 이교수 연구실
소리 : (핸드폰 벨소리)
핸드폰의 벨이 계속 울리는데 이교수가 열심히 여기저기 뒤지며 핸드폰을 찾고 있다.
소리 : (노크소리)
이교수 : 들어와요. (계속 찾는)
민재가 들어선다. 이교수 드디어 창턱에서 핸드폰을 찾았다.
이교수 : 아니 이게 여기있지?
하며 집어드는데 벨소리 그쳤다. 그래도 열어서 귀에 대본다.
이교수 : 여보세요. 여보... (닫으며 그제야 민재를 보더니) 끊어졌네. (웃는)
민재 : (웃을 기분이 아니다) 저.. 말씀드릴 게 있어서 왔는데요.
이교수 : 그래? 무슨 일인데?
민재 : (좀 망설이다가 마음을 잡고) 이번에 면접때 늦은 거.. 사정이 있었습니다. 그 사정을 말씀드리려구요.
이교수 : (보다가) 거기 의자 당겨서 앉어. (자기도 앉는다)
S#42. 동아리방
진수가 들어서다 보면 지원이 프린트기에서 나오는 종이를 기다리며 서있다.
진수 : 좋은 아침이에요.
지원 : 어. 좋은 아침이야. 프린트기 좀 쓰고 있었어.
진수 : (자리 잡고 앉으며) 어제 면접 끝내고 바로 공부 시작하는 거에요?
지원 : 이력서 뽑는거야.
진수 : ... 산학할 회사 결정했어요?
지원 : 아직.. 고민 중이지 뭐.
진수 : 우리 아버지 회사요.
지원 : 그 얘긴 끝나지 않았니?
진수 : 다른 회사들하고 조건이 비슷하면 고려해 볼래요? 특혜가 아니구.
지원 : (돌아보는)
진수 : 누나같은 인재를 놓치기 아까워서 그래요.
지원 : (인쇄되어 나온 종이들을 추리며) 생각해볼게. 느이 회사, 놓치기 아까운 회사 중에 하나니까.
진수 : (좀 웃고) 역시 남 좋은 일 한다는 건 어렵네요. 민재형을 봐도 그렇구.
지원 : (보는) 민재가 뭐.
진수 : 아직 비비에스 못 봤어요?
지원 : 비비에스?
S#43. 이교수 연구실
책상을 사이에 두고 마주 앉은 이교수와 민재.
이교수 : 그러니까 이번 면접을 놓친 건 니가 선배를 돕다가 그렇게 되었다. 그 얘긴가?
민재 : (이런 말을 하는 자체가 아주 곤혹스럽다) ...예.
이교수 : (냉정한 얼굴) 그런 말을 나한테 하는 이유가 뭐지?
민재 : ...예?
이교수 : 너는 원래 남몰래 선배를 도우려고 했던 거잖아. 근데 이제와서 나한테 그런 말을 하는 이유가 뭐냐고.
민재 : (점점 더 괴로워지고 있지만) 입시사정회의에선 여러 가지 면으로 학생들을 평가한다고 들었습니다. 그래서..
(말이 잘 안나오는)
이교수 : 이런 사정 얘기를 하면 정상참작이 될 수도 있다.. 그렇게 생각한 거니?
민재 : ... 예 부탁입니다. 다시 한번 기회를 주시면..
이교수 : (잘라서) 다시 한번 그 때로 돌아간다면. 그럼 어떻게 할거니?
민재 : 예?
이교수 : 공학을 연구하게 되면 수없이 뭔가를 판단할 일이 생겨. 어느쪽이 더 중요한지를 판단해가는 것도 중요한 연구과제지.
다시 한번 니가 면접장에 있다고 치고. 만수의 호출을 받는다면 그럼 어떻게 할거니?
민재 : ....(망설이다가) 솔직히 말씀드리면. 너무나 후회하고 있습니다. 백번쯤 생각했습니다. 면접장에 왜 호출기를 갖고 갔는지.
만수형 메시지를 듣고 왜 좀 더 깊게 생각을 못했는지....
이교수 : 좀 더 깊게 생각했으면 만수의 도움을 거절했겠니?
민재 : ....(고개를 숙이는) 잘 모르겠습니다. 그렇지만.. 모른 척했으면 좋았을 거라고... 그런 생각은 했습니다.
이교수 : (말없이 보다가) 정만수. 이번에 인성장학생으로 추천했어.
민재 : (보는)
이교수 : 그런데 아까 만수가 이걸 가져왔어. (책상에 놓인 대여섯장짜리의 종이 들어보인다) 전자과교수들에게 보내는 진정서래.
자기 때문에 니가 면접에 늦은 과정을 자세히 써놓고. 이민재는 반드시 대학원에 진학해야 된다는 말에서 시작해서
자기는 인성장학생의 자격이 없다는 말까지 해놓았드라.
민재 : (얼어버리는)
이교수 : 이 글, 비비에스에도 올린 모양이야. 그렇게라도 너한테 사과를 하고 싶었나봐.
민재 : (아무 말도 할 수 없는 상태)
S#44. 복도 / 낮
민재가 걸어오고 있다. 멍하니.. 자기 생각에만 빠져서. 누군가와 부딪치지만 의식하지 못한다.
(음악 시작..)
S#45. 동아리방
(음악 계속..)
민재가 들어서다가 멈칫 선다.
지원이 컴퓨터를 들여다보고 있다가.. 진수가 책을 보고 있다가 돌아본다.
민재 어쩔줄 모르고 서있는데..
진수 : 어 민재형.. 얘기 들었어요. 만수형땜에 면접 못 본 거.. 어뜩게 해요? 그거 교수님들이 좀 참조해주지 않을까요?
민재 : (멍해서 진수를 본다)
지원 : 이민재. 너 괜찮아?
민재 : (지원을 돌아본다)
지원 : 좀.. 앉을래?
민재 : 어.. 아니 난 저기..
그냥 돌아서 나가버린다.
S#46. 캠퍼스 길 / 낮
멀리 긴 언덕길을 민재가 걸어내려오고 있다. 날도 덥고. 가까이 본 민재의 마음은 더 덥고 답답하다.
S#47. 석학의 집
쟁반을 들고 지나가던 미순이 돌아본다. 민재가 들어서고 있다.
미순 : 이민재. 아이구 이 녀석아. 다들 니 걱정하고 있었잖아.
민재 당황해서 보면..
모여있던 대욱과 지민이 마이클이 민재를 보고 일어선다.
마이클 : 혀엉 민재형. (달려와 민재를 잡아끌고)
대욱 : 민재형은 참 그게 문젭니다. (의자 잡아빼주며) 남들을 위해서 희생을 하는 것도 좋지만 말입니다.
세상이 그걸 다 알아주는게 아니잖습니까 예?
지민 : 오빠. 마실 거 시켜줘요? 찬거요? 뜨거운 거요?
마이클 : 우리도 친청서 낼거야. 민재형은 대학원 가야된다.. 이렇게 원장님한테 친청서 낼거야. 잘했지?
민재, 마이클에게 잡힌 팔을 빼며 뒤로 물러난다.
미순 : 찬 거 마셔. 응? 콜라 줄까? 맥주 마실래?
민재 돌아서 나가버린다. 마이클이 민재혀엉 부르는 소리 잠시.
S#48. 학생회관 내부
민재 뛰듯이 계단을 내려와 걷는데 그 앞을 오던 정태, 경진과 마주친다.
경진은 오토바이 헬멧을 들고 있다. (앞서의 것과 같은 것)
경진 : 여어. 오랜만이다. 하루만인가?
민재, 정태를 본다. 정태, 무뚝뚝하니 마주 보는. 경진, 양쪽을 번갈아 본다.
민재, 그들을 비켜서 가버린다.
경진 : (정태에게) 니들 말 안하기로 했냐?
정태 : 저 놈 얼굴을 봐라. 말 걸면 받아주게 생겼나.
경진 : 그래? 그럼 말 걸어봐야지.
하더니 민재를 쫓아 간다.
S#49. 학생 회관 외부
민재 걸어오는데. 그 뒤를 따라나온 경진이 그 옆으로 붙으며.
경진 : 이민재. 해앨로우.
민재 : (말없이 걷는)
경진 : 오늘 무지하게 덥네. 그치?
민재 : 나중에 보자.
경진 : 왜애?
민재 : (멈춰서더니) 나중에 보자구. 지금은 아무 말도 하고 싶지 않어.
경진 : 너 만수형한테 미안해서 그러지? (경진은 남자선배를 대충 형이라 부름)
민재 : (보는)
경진 : 니가 만수형한테 떽떽거리는 거 들었어. 그봐라. 그러니까 사람은 남한테 잘해줄려면 끝까지 잘해줘야 되는거야.
첨에 좀 잘해주다가 나중에 그거 갖구 생색내면 그게 더 치사한 거다 너. 그렇지만..
민재, 경진의 어깨에 한 손을 올리더니 옆으로 밀고는 가버린다.
저만치 뒤에 따라와 보던 정태가 어슬렁거리며 경진 옆으로 온다.
정태 : 뭐래?
경진 : 민재가 뭐라 그런 건 없어. 나 혼자 떠들었지.
정태 : 넌 뭐라고 떠들었는데.
경진 : 끝까지 말 다 못했어. 사실은 여기까지 말하려고 했거든. 그렇지만. 미안해할 필요 없다.
이게 다 인간이 서로 비비고 살아가며 성장해가는 모습이 아니겠냐. 여기까지.
정태 : 뭔 소리야.
경진 : 그냥.. 헛소리야. (손부채질을 하며 민재가 간 쪽을 본다) 에구 더워라..
정태 : 경진아.
경진 : 와이.
정태 : 헛소리도 좀 때를 가려서 해. 지금 민재한테 헛소리하는 건 너무 잔인하다고 생각하지 않냐?
경진 : (정태를 뻔히보며 계속 손부채질) 차암 이상하지. 내가 사람들한테 큰맘먹고 좋은얘길 해주면 꼭 화를내. 내가 이상한거냐?
S#50. 교수 식당 / 낮
박교수와 서교수, 식반을 들고 자리를 찾아 들어오다가 박교수 한곳을 보고는.
박교수 : 아이구 우리 이교수님 잘 만났네.
먼저 뽀르르 가버리는 바람에 서교수 할 수 없이 따라간다.
거기 이교수 혼자 앉아 밥을 먹고 있다가 별로 내키지 않아하며 인사를 하는데.
박교수 그 앞에 자리를 잡으며.
박교수 : 이민재. 우리 이민재군 얘기 들으셨죠?
이교수 : (옆에 앉는 서교수에게 인사하며) 예. 알아요.
박교수 : 방금도 우리 서교수하고 민재군 얘기하고 있었는데 말이죠. 민재 대학원 시험 붙일거죠?
이교수 : 그야 입시사정위원회에서 결정할 일 아닌가요.
박교수 : 글세에.. 거기 참가하실거잖아요. 그러니까 말씀을 좀 잘 하셔가지구 그런 학생은 우리가 델구 있어야 된다구요. 그쵸?
이교수 : 그런 학생이 정확히 어떤 학생을 말하는지 모르겠지만요. 사정회에서 학점이나 기타 여러 가지를 고려해서 결정할거니까
미리 편파적인 말씀은 안하시는 게 좋겠네요.
박교수 : 아이구 답답해. 저는 그 희생정신에 대해서 말하는 거에요. (서교수에게) 좀 설명 좀 해줘. 우리가 여기오면서
얘기한거 있잖아. 그 희생정신.
서교수 : (웃고) 무슨 소릴 하는거야. 우리가 말한 건 우리별 랩에 있는 학생들 얘기였지.
박교수 : 글세 그게 다 그 얘기잖아.
이교수 : (서교수를 보는)
서교수 : 별 얘기 아니구요. 우리별 1호를 만들 때 학생들 얘긴데요. 그 아이들이 인공위성 기술을 배우기 위해 고생했던 거요.
남의 나라에 가서 안 가르쳐 주는 기술을 배우기 위해 밤을 새가며 어깨 너머로 훔쳐보고. 쓰레기통 뒤져가며 공부하고..
뭐 그랬던 얘길 했죠.
박교수 : 그게 다 희생정신이라는 거잖아. 연구는 희생정신이 없으면 못하는거에요. 아무도 알아주지 않는 거 배곯아가며 붙들고
있는거. 그건 이기적인 인간이 할 수 있는 게 아니라구요. 그래서! 이번 사정위에서는 민재군의 면접 성적이 아니라,
그 인간성을 놓고 평가를 해야 된다.. 이 얘기죠.
이교수 : 옳으신 말씀이에요.
박교수 : 글세 제 얘기는.. 예? 제가 옳다구요?
이교수 : 네. 저도 그렇게 생각해요.
박교수 : (서교수에게) 들었어? 그봐아. 이교수께선 내 말이라면 일단 진지하게 들어준다구 그랬잖아. 하하.
인제 밥먹어야지. 드세요.
S#51. 화장실 내부
민재 세수를 하고 있다. 어푸어푸 세수를 하다가 멈추고, 물이 흐르는 것을 보다가 고개를 들어 거울에 비친 자신을 본다.
문득 돌아보면 뒤에 낯모르는 학생이 차례를 기다리고 있다.
민재 물을 잠그고 비켜준다. 그 학생 물을 틀고 손을 씻으려는데.
민재 : 혹시 그럴 때 없습니까?
학생 : (돌아보면)
민재 : 거울을 봤더니 거기 세상에서 가장 한심하고 징그러운 놈이 나를 보고 있을 때요.
학생 : (뭔소린가 해서 보는)
민재 : 그리고 사람들이 왜 쥐구멍이 있으면 들어가 숨고싶다는 말을 하잖아요. 그런데 그게 내가 들어가 숨을수 있을 정도가 되면
벌써 쥐구멍이라고는 할 수 없지 않을까요. (심각하다)
학생 : (왜 이러나싶지만 예의상) 글세요. 생각해 본 적이 없는데요.
민재 : 그러실 거에요. 저도 전에는 이런 거 생각해 본 적이 없어요.
민재 우울한 얼굴로 나간다.
S#52. 회의실 앞
과사무실의 직원이 입시관련 서류뭉치를 들고 들어간다.
나타나는 교수들 두세명, 서로 인사하며 들어선다. 뒤늦게 이교수도 회의실을 향해 온다.
S#53. 노천극장 / 낮
아무도 없는 노천극장. 빈 공간 계단 밑에서 몇번째쯤 줄에 민재가 혼자 앉아있다.
S#54. 이교수 랩
만수가 무릎을 끌어안은 자세로 의자에 올라앉아 모니터를 보고 있다.
중희가 과자를 먹으며 그 뒤를 지나가다가 보면 모니터에는 화면보호기가 작동하고 있다.
중희, 들고 있던 과자 봉지에서 두어개를 빼서 잠시 갈등하다가 봉지쪽을 만수의 앞에 놓아주고 간다.
S#55. 도서관 내부
지원이 공부를 하다가 한쪽을 돌아본다.
저만치에 정태가 창 앞에 의자를 가져다 놓은 채. 뒤로 기대 앉아 창 밖만 쳐다보고 있다.
S#56. 회의실
이교수와 다섯명 정도의 교수들이 둘러앉아 각자 서류들을 잔뜩 앞에 놓고 회의중이다.
위원장 : (서류를 넘기며) 다음은 이민재 학생을 심사하겠습니다. 에.. 이 학생은 학부 성적은 3.3 토플점수는 550 등
서류심사 점수는 상위 40퍼센트 안에 드는데요. 면접에 불참을 했군요. 현재로 보면 탈락권인데 말씀들 해주시죠.
교수1 : (서류 뒤져보며) 자기소개서는 아주 충실하게 작성을 했는데요. 로봇 공학에 대한 의욕과 의지도 넘쳐보이고..
제가 본 중에 가장 성의있는 글이었거든요.
위원장 : 이 학생의 경우에는 면접에 참석하지 못한 이유가 있었던 모양입니다. 여기 진정서를 보낸 학생이 있는데..
교수2 : 저도 받았습니다. 아침에 읽어봤어요. 선배라는 학생이 보낸거드군요.
이교수 : (말없이 앞의 서류만 뒤적여 보고 있다)
교수1 : 저도 읽어봤는데 저는 납득이 잘 안되든데요. 어떤 경우든 이건 자기 관리능력이 없다는 얘기 아닐까요.
교수2 : 그래도 여기 보면 말이죠. 학부 성적이 1,2학년때 3.0에 비해서 3,4학년때는 3.7로 점점 높아지고 있어요.
장래성이 있는 학생으로 봐지는데요.
위원장 : 지도교수가.. 이희정교수신데 어떤 학생입니까?
이교수 : 민재는.. (잠시 망설이고) 그동안 로봇 축구동아리 활동을 통해서 책임감..리더쉽.. 성실성을 보여왔습니다.
우리 학교의 로봇 축구 동아리의 활발한 활동은 민재의 노력에 힘입은 바 크다고 할 수 있을 거에요.
S#57. 노천 극장
민재, 발로 땅을 긁으며 시간을 보내고 있다가 문득 고개를 들어본다.
거기 경진이 빈 무대 위에 올라가고 있다.
민재, 찡그려 보는데 경진은 무대 가운데 서더니 두 손을 모으고 노래를 부르기 시작한다. (짧은 가곡으로 아주 진지하게 열심히)
민재, 뭐하는 건가 싶어서 보는.
경진, 중간에 높은 음에서 소리가 걸려 캑캑대더니 다시 아아. 발성을 하고는 아까 끊긴 부분에서 계속 부른다.
(한옥타브를 아예 낮춰서 불러도 됨)
민재, 자세를 좀 더 편히 하고 본다.
경진 노래를 마치더니 정중하게 절을 하고는.
경진 : 감사합니다. 그럼 앵콜곡 신청을 받겠습니다.
민재 : (어이없어 보고 있는)
경진 : 없으시면 이것으로 오늘 공연 및 민경진식 사과를 끝내겠습니다. 감사합니다.
다시 절을 하더니 무대에서 내려온다.
민재 보는데, 경진은 민재를 보지도 않고 나가버린다.
민재, 멀뚱이 보다가 그만 허 웃는다.
S#58. 회의실
이교수의 발언이 계속되고 있다.
이교수 : 이런 여러 가지 점으로 볼 때 이민재는 저로서도 아주 욕심이 나는 학생이에요.
그렇지만 원칙적으로.. 면접에 불참한 학생을 합격시킬 수는 없다고 봅니다.
위원장 : 그게 이교수의 결론입니까?
이교수 : 네. 아쉽지만 그렇습니다. 이건 형평의 원칙을 봐서도 그래요. 이제까지 저는 면접에 불참한 학생은 두 번 볼 거 없이
탈락을 시켰습니다. 그 학생들에게도 다 사정이 있었을 거에요. 내가 아는 학생이라고 해서 예외로 할 수는 없습니다.
그리고 내가 아는 이민재군은 이런 일로 공부를 중단 할 아이는 아닙니다.
다른 교수들 수근거리며 얘기를 나눈다. 위원장 끄덕이며 뭔가 서류에 기입을 하고 있다.
이교수, 말해놓고 마음이 아프다.
S#59. 캠퍼스 전경
S#60. 도서관 컴퓨터 일각
학생들이 여럿 컴퓨터에 둘러서서 보고 있다.
그 한쪽에 지원이 컴퓨터의 화면을 보고 있고. 그 뒤에 정태가 서있다.
확인을 하던 지원이 정태를 돌아본다.
지원 : 너 합격이야. 축하해. (그렇게 맘놓고 기뻐할 수는 없는 분위기)
정태 : 너도 합격이잖아. (역시 우울한 얼굴)
지원 : 경진이도 됐지?
정태 : 응.
지원 : 그러네.. (기운없는) 그렇게 됐구나. (다시 화면을 보는...)
S#61. 복도
자현이 기뻐 날뛰며 달려온다.
기게실에서 작업중이었던 듯, 작업복에 얼굴에는 시커먼 기름칠이 좀 묻어있다.
S#62. 동아리방
문을 벌컥 열고 들어오는 자현.
자현 : 야. 니들 봤어? 나 합격이야. 합격. 추자현. 드디어 2년간의 자유를 얻어낸거야.
떠들다가 보면 진수와 대욱 지민 마이클이 우울하게 컴퓨터 앞에 있다가 돌아본다.
대욱 : (별로 기쁘지 않은 목소리) 축하해 선배.
자현 : 야 임마 짜샤 축하를 맨입으로 하냐. 마시러 가자. 어?
지민 : 언니. 민재오빠 떨어졌어.
자현 : 뭐?
지민 : 우리 지금 명단 확인하고 있는거야. 민재오빤 안됐어.
마이클 : 세상은 너무 언페어해. 난 세상이 무서워. 미워.
진수 : (말없이 일어나서 책을 챙기는)
자현 : 뭐가 잘못됐겠지. 민재가 왜 떨어져. 토플도 학점도 나보다 높은데.
지민 : 언니. 그동안의 사정을 통 모르나봐.
자현 : 그동안의 사정이 뭐야. 내가 고물차 하나 분해하는 동안 학교규칙이라도 바뀐거야?
애들 아무도 대꾸 안하고 한숨만 쉬고..
진수 : (문득) 만수선배도 걱정인데. 앞으로 주눅이 들어서 다니는 거 아닌가.
S#63. 이교수 랩
명환과 중희가 걱정스러운 얼굴로 보고 있는 곳.
만수가 컴퓨터 앞에서 일어나더니 비실거리며 나가고 있다.
S#64. 복도
만수 문을 닫고 돌아서는데 그 앞에 걸어오던 민재가 만수를 본다.
만수, 뭐라 말을 못하고 보는데 민재 무뚝뚝하게 다가오더니.
민재 : 형. 전에 병따개 찾지 않았어?
만수 : ... 병따개?
민재 : (주머니에서 병따개를 꺼내 보인다) 이거.
만수 : (보는)
민재 : 그리고 이거. (다른 주머니에서 소주병의 주둥이를 슬쩍 꺼내 보인다)
만수 : 저기 민재야.
민재 : 이거.. 이민재식 사과방법인데.. 받아줄래?
만수 : 니가.. 나한테 사과를 해?
민재 : 부탁인데 길게 말 시키지 말아줘. 여기까지두 좀 닭살이라구 생각하고 있거든. ..가자. (먼저 가는)
만수 : (한참을 보고 있다가 훌쩍 코를 문지르더니 소리쳐서) 이민재.
민재 : (돌아본다)
만수 : (소리쳐서) 소주는 한병뿐이냐?
민재 : 쉬잇. (얼른 입에 손가락을 세워보이는)
만수 : 아아 쉬이..
주위의 눈치를 보고 슬금슬금 민재에게 다가가는데 그 얼굴에 미소가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
민재, 웃으며 보고 있다.
만수 걸어가는 발걸음이 점점 경쾌해지더니 민재 옆에 도달해서는 활짝 웃어 민재를 본다.
민재 역시 으이그..해서 웃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