추신: 이번에 제가 활동하고 있는 '국토기행단' 이라는
학교 답사동아리에서 부여로 답사를 다녀와서 흔적을 남겨 보았습니다.
주로 정보보다는 느낌위주로 써서 여러분들에게 도움될 건 없지만
재미나게 읽어주세요.^^
부여답사의 백미(白眉)는 '금동대향로' 였다.
솔직히 내가 상상하던 부여답사의 초점은 왕릉(王陵)에 맞춰져 있었다. 공주의 '무녕왕릉'과 함께 부여 '능산리 고분군'! 얼마나 많이 들었던 친근한 단어인가....
대개의 사람들은 유명하면 좋은 것인지 알기 때문이다. 나도 그랬다.
삼천궁녀로 유명한 '낙화암' 정도까지는 기대했었다.
하지만 '금동대향로'는 부여로 향하는 버스 안에서도 내 상상 속에는 없었다.
사랑은 예고 없이 찾아온다 했던가!
부여답사 하루 전.
웬일인지 준비해야 할 일도 많은데 집에 가기 싫었다.
그러다 결국 내 마음은 친구와 단둘이 함께 하는 술자리로 날 이끌었다. 이미 시간은 1시를 향해 가고 있었다.
그래도 나를 누르는 부담감. 4학년. 뭔가 주기를 요구하며 바라보는 사람들이 많기에...
부담을 떨치지 못해 4시까지 덜거덕 덜거덕 취중에 준비를 한다.
새벽이다. 다행히 일찍 일어났다. 무서운 의무감.
전철을 타는데 자꾸 내리고 싶다. 발길이 안 떨어진다.
왠지는 모르지만 마냥 가볍게 가고 싶었던 게지.
아무 생각 없이 쉽게 간 적도 있으면 많은 생각으로 무겁게 가기도 해야 한다고, 시간이 흐른다는 게 그런 거라고 위로하며 겨우 버스 터미널에 도착했다.
버스를 기다리는 동안 숙취를 풀려 연신 물을 마시는 나를 걱정해 주는 어린 후배가 사랑스럽다.
좀 부끄럽기도 하다. 티 안 내려고 애를 쓴다.
버스에 오른다. 마음의 준비가 안 되어서일까? 부여의 풍경(風景)들이 눈에 들어오지 않는다.
잠을 자기도 하고, 김밥을 먹기도 하고, 후배와 이야기도 나누다, 책도 조금 본다.
눈을 떠보니 이제 서야 포근한 풍경이 눈에 들어온다.
여기가 충남이라는 걸 그냥 느낄 수 있다.
부담스럽지도 너무 볼품 없지도 않은, 그래서 편안한 충청도다.
야트막한 산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다. 그러면서도 훤히 뚫려 있어 눈이 시원하다.
서산답사 때 내포 땅을 맞이했던 느낌과 비슷하다.
역시 여느 지방의 터미널과 다름없이 시설은 구닥다리고 세련되진 않았지만 정겹다.
딱히 마땅한 이름도 없이 검은색 아크릴판에 '2층 다실'이라고 써 있는 다방간판도 이런 내 느낌에 한몫 거든다.
점심을 먹는데 유쾌하다. 내 선택이 탁월했다는 느낌이 들 때의 유쾌함이다.
역시 밖에서는 흰쌀밥과 집에서 그렇게 먹기 싫어하던 변변찮은 반찬도 진수성찬이 된다.
김밥을 싸 온 아이들이 내 지진김치 하나로 즐거워 하니 나도 기분이 좋다.
문화유산 해설사님을 만나 여러 이야기들을 듣는 데 괜히 집중도 안되고 자꾸 산만해진다.
내가 사진기로 자료사진 찍는데 정신이 팔려 그런가보다.
그런데 출입이 금지된 고분모형이 전시된 곳에서 '부여의 내사랑'을 만난다.
국사 책에서 두어 번 봤던 '백제 금동 대향로'!
"부여에 답사 와서 이걸 볼 줄은 몰랐는데....무식이 죄지 뭐."
특별히 향로에 관심이 없었던 난 설명도 대충 흘려 들었다.
내 마음을 사로잡은 해설사님의 한마디.
"산 사이사이에 구녕이 있어서 향을 피우고 뚜껑을 닫으면 연기가 서서히 올라오면서
마치 안개 낀 봉래산을 보는 것 같쥬. 이게 얼마나 멋진 건대유.......대단한 거에유∼ "
충청도 특유의 허풍 섞인 말투다.
"안개 낀 봉래산의 모습. 아아∼ 너무 보고싶다."
그제서야 답사에 몰입되기 시작한다. 모든 관심과 눈길이 향로에 쏠린다.
그 향로에 그렇게 많은 사람들과 동물이 사는지 몰랐다.
내 마음 속에 신선이 노니는 살아 있는 봉래산이 드디어 그려진 것이다.
진품이 부여박물관에 있다는 소리를 들으니 빨리 그 곳에 가고 싶어진다.
백제 왕의 능은 조선 왕의 능보다 더 앞선 시대의 것이어서 그런지
아니면 그 나라 고유의 특성인지 외관상 아무 장식도 없고 위엄보다는 친근하고 엄마 품처럼 푸근하다.
그래도 역시 왕의 능이어서 그런지 산세 좋고 명당자리에 터를 잡은 건 조선이나 백제나 비슷한 것 같다.
잔디가 펼쳐진 낮은 언덕이 평화로움을 가져다 준다. 뒹굴고 싶을 만큼.
모두가 삼삼오오(三三五五) 무리 지어 그 언덕을 걷는데 하이틴 드라마 속에서 건강한 청년들이 푸른 잔디 위를 달려가는 그런 장면이 떠오른다.
혹시 신문에서 이런 기사를 봤는지 모르겠다.
'단체답사 간 대학생, 버스비 깎다.'
정림사지로 가는 버스에서 한 푼이라도 아끼기 위해 순간 눈빛으로 통한 우리는
아저씨에게 온갖 애교를 부려 가며 여우 짓을 했다.
아저씨는 신문에 날 일이라고 말씀하시면 서도 못이기는 척 만 오천원만 내라며 투박하게 말씀하신다.
답사지 마다 가면서 느끼는 그 고장 특유의 사람냄새다.
그 후로도 재미 들린 우리는 거의 자해 공갈단처럼 호흡이 척척 맞아 타는 차마다 할인혜택을 받았다.
그렇게 싸게 탄 버스를 타고 정림사지에 내려서 매표소 아주머니와 약간의 실랑이가 생겼다.
좀 전의 버스아저씨와 아주 대조적인 모습이다.
물론 고등학생으로 속인 건 우리 잘못이지만 참 바늘구멍만큼도 융통성 없이 사신다는 생각도 든다.
정림사 5층석탑은 익산 미륵사지 탑과 백제(百濟)의 탑으로 꼽힌다.
역시 신라의 것과는 다르다는 생각이 바로 든다.
끝 매무새를 둥글둥글하게 다듬어서 그런지 부드럽다.
그리고 정돈된 느낌이다. 둥글둥글 마모된 돌이 빈틈없이, 마치 원래 둘이 하나인 것처럼, 퍼즐을 보는 듯하다.
그런데 왠지 일류라는 생각은 들지 않는다. 신라의 그 것에 길들여져서 일까?
하지만 그렇다고 하찮게 보이는 것도 아니다. 석가탑, 다보탑만큼 정교하고
날카롭고 날아갈 듯 세련된 느낌은 없지만 소박하고 편안하다.
희한하게도 내가 느끼는 충청도, 부여의 자연환경 그리고 백제 이미지와 탑(塔)에서 느껴지는 감이 비슷하다.
부담스러운 부르주아 친구보다는 점포정리 물건을 함께 고를 수 있는 친구 같다.
이제 드디어 '진짜 금동대향로'를 만나러 부여박물관에 간다.
생활한복을 입고 관람객을 맞이하는 직원들이 눈길을 끈다.
들은 이야기로는 부여박물관이 박물관 중에서 잘 만든 축에 속한다고 하는데
무엇 때문에 그런지 찾아보려는 생각은 안 들고 향로는 언제 나오나..... 향로의 화려한 등장을 기다리는 데 목이 탄다.
진품 대향로는 모조품보다 금빛이 조금 더 난다는 것말고는 별 차이가 없었다.
그리고 또 한가지. 모조품에 마구 들이댔던 카메라를 차마 못 들이댔던 것.
혹시라도 기념품점에 가면 금동대향로에 향을 피우는 걸 볼 수 있나 해서 가봤지만
실제 향을 피울 수 있게는 되어 있지만 우리에게 보여주진 않았다.
그 앞에서 그 아름다운 모습을 직접 보여주면 기념품이 더 잘 팔릴지도 모를텐데....
그래도 기분 좋은 건 답사를 다니며 보는 기념품들이 해마다 조금씩 나아지고 있다는 것이다.
아직은 부족한 게 많지만 사고 싶은 관광기념품이 더욱 많아졌으면 좋겠다.
다들 지쳐 있다. 인상을 찌푸리고, 누워 있고, 졸고.... 오늘 답사가 끝나가고 있음을 말해준다.
힘들어하는 회원들을 보면서 문득 드는 생각.
"이렇게 힘든데 왜 답사를 다닐까?"
그건 나도 모르겠다. 왜 그런지.......... 저 마다 이유가 있겠지.
부여에서 갑자기 제주도로 비행기를 타고 날아왔다.
우린 '궁남지'로 가려던 거였는데 와보니 제주도의 유채꽃밭을 연상시키는 노오란 창포 꽃밭이 물결을 이룬다.
전체적으로 조금 인위적인 느낌이 들고 꾸며 놓은 곳이 '궁남지'와는 안 어울리긴 하지만
관광객들에게는 예쁜 사진의 배경을 제공하고 시민들에게는 편안한 휴식처를 제공해 줌에는 틀림없다.
연못 위에 있는 사각 정자는 처음 봐서인지 이색적이다.
주위 능수버들의 하늘거림과 '궁남지'의 고요함이 잘 어울린다.
해도 뉘엿뉘엿 져가고...... 연못 위에서 반짝거리는 붉은 노을 빛이 마냥 발걸음을 붙들어 둔다.
우리의 밤은 길었다. 내가 제일 좋아하는 밤. 나를 국기에 지금까지 있게 해 준 밤.
후배들에게도 그런 밤이었길 바래본다.
해가 떴다. 오늘은 부소산성에 간다. 낙화암도 보고, 고란사도 간다.
토성이라 그런지 성이라기보다 그냥 가벼운 산책로의 느낌이다.
큰 특징은 없고 기대했던 낙화암도 유람선도 고란사도 실망이다.
마치 한 번쯤 봤으면.. 하고 오랫동안 만날 날을 그렸던 첫사랑을 만났을 때처럼 허무하고,
차라리 그냥 추억으로 남겨 둘 걸 괜히 들추어서는.....하는 후회 같다.
삼천궁녀의 전설이 너무 애절해서일까?
낙화암과 백마강이 그 어마어마한 전설을 커버하기엔 조금 역부족인 듯 하다.
유람선을 타고 구드래 선착장에 내리는 데 굿판이 벌어졌다.
하얀 소복에 빨간 옷과 화려한 깃털 모자, 그리고 꽹과리와 징 소리가 묘한 분위기를 연출한다.
한(恨)이 실려 있는 듯한 가락이었다. 왜 이리도 구슬픈지...
알고 보니 삼천궁녀 진혼제란다. 굿 가락이 다 그렇지만 강 위에 떠서 들으니 더 그런 것 같다.
저런 것도 외국인이나 굿을 자주 못 보는 도시사람들에게는 좋은 관광상품이 될 것 같다.
내가 만난 부여는 경주의 명성에 가려진 마이너리그 같은 곳이었다.
부여는 관광객에게는 참 좋은 도시다.
도시의 규모나 인지도에 비해 관광객을 배려하는 편의시설이 너무 잘 돼 있었다.
곳곳의 PHOTO POINT, 보기 쉽게 잘 정리된 관광안내판, 안내지도, 자주 눈에 띄는 관광안내부스, 한 곳에 모여 있는 관광지, 후한 인심.
아쉬운 게 있다면 과거의 '시각만 만족시키는 죽어 있는 관광지'가 대부분이었다는 점이다.
좋은 프로그램 등을 엮어 활기를 불어 넣어줬으면 좋겠다.
그리고 부여를 대표하는 개성 있는 먹거리가 없다는 점.
하지만 과거 80∼90년대 유행했던 관광지라면 제2의 전성기를 맞이할 만한 충분한 자원을 가지고 있는 곳이었다.
부여에서 맡을 수 있는 특유의 포근한 향이 다시금 많은 이들이 부여를 찾게 만들 거라고 나는 믿는다.
제가 경주를 너무 좋아하거든요. 경주는 제 맘 속의 메이저리그죠. 백제와 신라의 우월성을 따지는 건 아니구요. 그리고 경주는 참 사람들이 많이 찾는데 경주의 유명세에 가려져 백제가 빛을 못 보는 것 같아 마이너리그 같은 느낌이 드네요^^ 그래서 제목이 나만의 마이너리그입니다.
첫댓글 여고생 지연님 백제가 마이너 리그였다면 신라는 역사의 하이라이트 메이저 리그 였나요? 좋은 여행 부럽습니다.
제가 경주를 너무 좋아하거든요. 경주는 제 맘 속의 메이저리그죠. 백제와 신라의 우월성을 따지는 건 아니구요. 그리고 경주는 참 사람들이 많이 찾는데 경주의 유명세에 가려져 백제가 빛을 못 보는 것 같아 마이너리그 같은 느낌이 드네요^^ 그래서 제목이 나만의 마이너리그입니다.
부여는 천여년전을 상상하는 도시이고, 그 백제인들의 완성품을 보려면 경주 불국사를 보면 알겠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