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죽음의 모습은 한 순간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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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44〉관계지한 선사 - 걷다가 열반에 들다 |
閑禪師示衆云 不生想念 本來無體 大用現前 不說時節 後臨遷化時 問侍者云 坐去者誰 侍者曰 僧伽 又云 立去者誰 侍者曰 僧會 師 乃周行七步 垂手而終
지한 선사가 대중들에게 말하였다.
“생각을 내지 아니하면 본래 형체가 없고 큰 작용이 앞에 나타나면 시절을 말하지 않는다”라고 하였다.
뒷날 열반함에 임하여 시자에게 물었다.
“앉아서 간 사람이 누구냐?”
“승가 대사입니다.”
“서서 간 사람은 누구냐?”
“승회 대사입니다.”
지한 선사가 이에 일곱 걸음을 걷고는 손을 드리우고 목숨을 마치었다.
어떻게 죽는가를 보기보다는
평생 어떻게 살았는가가 중요
강설 : 관계지한(灌溪志閑, ?∼895) 선사의 열반상을 보인 내용이다. 사람이 일생을 살다가 죽음에 임하여 그 최후를 보이는 모습은 참으로 여러 가지다. 당나라 때의 고승 약산유엄(藥山惟儼, 751∼834) 선사는 태화(太和) 8년(834) 2월에 입적했다. 임종 직전에 “법당이 쓰러진다. 법당이 쓰러진다”고 외치자, 대중이 모두 기둥을 잡고 버텼다.
선사는 손을 흔들면서, “그대들은 나의 뜻을 모른다”고 말한 뒤 입적하였다.
또 중국의 오대산 스님인 은봉(隱峯) 선사는 복건(福建)의 소무(昭武)사람으로 성은 등(鄧)씨이다. 어릴 땐 어리석은 듯하였다. 처음 출가하여 마조(馬祖) 선사의 문하에 있었으나 오묘한 진리를 보지 못하였고, 다시 석두(石頭) 선사에게 가서도 이치에 계합하지 못했다. 이렇게 왕래하기를 두세 번 거듭했으나 모두 깨닫지 못하다가 끝내 마조 선사의 한마디에 깨달음을 얻었다.
스님께서 오대산 금강굴 앞에서 열반에 들려 할 때에 대중에게 물었다.
“그대들은 제방의 선사들이 죽을 때에 앉아서 가거나 누어서 가는 것을 보았으리라. 서서 가는 이도 있던가?”
“있습니다.”
“그러면 거꾸로 서서가는 이도 있던가?”
“아직 보지 못했습니다.”
대사가 거꾸로 서서 열반에 들었는데 옷자락이 고스란히 몸에 붙어 있었다. 이때에 대중들이 의논하여 화장장으로 운구해 가려 했으나 움직이지 않으니 사람들이 우러러 보고 탄복하였다. 이때에 등은봉 선사의 누이동생이 여승이었는데 가까이 가서 허리를 굽히고 나무랬다.
“애석하구나, 오라버니는 살아서도 율행(律行)을 지키지 않더니 죽어서 마저 사람들을 미혹시키는 구려”하고는 손으로 슬쩍 미니 덜컥 쓰러져 다비 장소로 옮길 수 있었다고 한다.
앉아서 가면 좌탈(坐脫)이라 하고 서서 가면 그것을 입망(立亡)이라 한다. 불가에는 이와 같은 열반상을 흔히 볼 수 있다. 그와 같은 입멸의 모습들이 특별하고 기이하기는 하지만 그것을 가지고 그의 도가 높고 낮음을 평가할 수는 없다고 하였다.
어떻게 죽는가를 보기보다는 평생 어떻게 살았는가가 더욱 중요하다. 죽음의 모습은 한 순간이다. 그러나 삶은 오래다. 설사 1000년이나 2000년을 죽지 않고 살았다 하더라도 어떻게 살았는가를 가지고 그 사람의 위대성을 평가한다. 아무런 가치도 없는 일을 가지고 혹세무민하거나 스스로 미혹할 일은 아니다.
[불교신문 2730호/ 6월25일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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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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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생 어떻게 살았는가가 더욱 중요하다. 죽음의 모습은 한 순간이다.,,,,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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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의불 귀의법 귀의승_()()()_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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감사합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