돌하르방
돌하르방은 제주도를 상징하는 석상으로 널리 알려져 있다.
또한 성문을 지키는 수문신(守門神)이요 성신(城神)이었다고 할 수 있다..
돌하르방이라는 말은 근래에 생겨난 말이며 조선시대에는 옹중석, 우석목 등으로 불려왔다.
그 유래에 대해서는 몽골유래설, 인도네시아를 비롯한 남방유래설 등이 있지만
분명한 것은 제주의 읍성과 관련하여 생겨나고 있는 사실이다.
제일 먼저 세워진 것은 1413년(태종 18년) 대정성 성문이었으며
다음에 1423년(세종 5년) 정의성 성문이었다.
제주성의 경우는 그 이전에도 있었던 것으로 보이지만 지금 남아있는 석상들은
1754년 (영조 30년)에 당시 목사 김몽규가 세운 것으로 볼 수 있다.
3읍의 돌하르방을 합하면 모두 48기가 있었는데, 1기가 유실되고 2기가 경복궁(景福宮)에 옮겨져있으며
나머지 45기는 도내 3개 지역(제주, 대정, 성읍)에 분산되어있다.
이 돌하르방은 제주도 지방민속자료 제12호(71.8.26)로 지정보호되고 있다.
산붐구리 분화구(천연기념물 제 263호)
산붐구리는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 해발 400m에 위치하며
표고 438m 외부주위둘레 2067m 내부주위둘레 756m 깊이 132m에 달해 한라산 정상의 백록담보다도 크고 깊다.
제주도에는 360여개의 기생화산이 분포되어 있으며 대부분의 기생화산은 분화구를 갖지 않거나 갖고 있더라도
대접을 엎어놓은듯한 형태 또는 말굽형의 형태를 하고있다.
그러나 산붐구리 분화구는 용암이나 화산재의 분출없이 폭발이 일어나 그 구멍만이 남게되는
마르(Marr) 형 분화구로서 한국에서뿐만 아니라 세계적으로도 아주 희귀한 형태다.
분화구 안에서 자라는 식물들은 같은 제주도의 한라산에 있는 식물들과도 격리된 상태에서 오랫동안 살아왔으므로
식물분포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됨과 동시에 진기한 형태의 분화구는 지질학 연구에 귀중한 자료가 되므로
천연기념물 제263호로 지정보호하고 있다.
화산탄
화산이 폭발하면서 공중으로 분출 낙화된 용암쇄설물의 하나라고 할 수 있다.
액체 상태의 용암이 공중으로 비상 회전하면서 마찰하고 굳어지면서 특수한 형태로 생겨난 것이다.
그 모양은 공중에서 회전하면서 형성되는만큼 고구마 모양을 한 방추형이 많이 나타난다.
표면은 균열이 심한 빵껍질 모양을 볼 수 있다.
방사탑
마을 입구나 주변 특히 지정학상으로 보아 뚫린 지역에 쌓아놓은 석탑이다.
제주돌을 이용하여 원뿔모양으로 쌓아올리고 있지만 그 중에는 사각형으로 쌓아놓은것도 드물게 볼 수 있다.
탑위에는 석상을 세우거나 나무 등을 이용 솔개나 가마귀 같은 형상물을 꽂아놓고 있다.
이 방사탑은 마을에 따라 거욱, 거욱대, 걱대, 가마귀, 까마귀동산 등으로 부르기도 한다.
한마디로 미을에 재앙이 침입하는 것을 막고 액을 막아주는 방재시설이었다고 할 수 있다.
마을에 불행이 닥치거나 불상사가 자주 발생했을때 쌓아놓았다고 생각되며 특히 전염병이 돌았을때
많이 생겨난 것으로 보인다.
한편으로는 마을의 허를 돋구는 구실도 했다고 할 것이다.
방사탑의 크기는 마을마다 일정하지 않으며 높이는 2-3m 기단 지름은 3-5m 정도로
마을에 따라 1-2기이거나 많은곳은 5-6기까지 세운곳도 있다.
사려니숲길
사려니숲길은 제주시 봉개동 절물오름 남쪽 비자림에서 물찻오름을 지나
서귀포시 남원읍 한남리 사려니 오름까지 이어지는 약15km의 숲길을 말한다.
해발고도 500-600m에 위치하고 있는 사려니 숲길은 완만한 평탄지형으로
주변에는 물찻오름, 괴평이오름, 마은이오름, 거린오름, 사려니오름 등과
천미천계곡, 서중천계곡 등이 분포하고있다.
전형적인 온대산지인 사려니 숲길에는 자연림으로 졸참나무, 서어나무가 우림하고
산딸나무, 때죽나무, 단풍나무 등이 자생하고 있으며
산림녹화의 일환으로 삼나무 편백나무 등이 식재되어 있다.
"사려니숲길 " 이란 이름은 사려니오름으로 이어지는 길이라서 붙여진 것이다..
사려니란 산(山)을 뜻하는 제주 방언인 " 솔 " 에다가 안(內)을 뜻하는
" 안이 " 가 붙어 " 솔아리 " 로 불려오다가 " 소래니 " 에서 " 소려니 " 로
다시 " 사려니 " 라고 바뀌어 불리면서 붙여진 이름이다.
남원쪽 사람들에게 사려니오름은 멀고 깊은 중산간에 자리잡고 있어 " 신성한 숲 " 으로 여겨져 왔다.
그러나 1112번 도로가 놓이면서 물찻오름을 지나 사려니오름까지 닿는 사려니숲길이 조성되면서
이제는 쉽게 찾아가 볼 수 있게 되었다.
"사려니 숲길이란 이름은 "동그랗게 포개어 감다" 는 뜻의 " 사리다" 에서 왔다고도 한다.
천미천
천미천은 한라산 해발 1400m 어후오름 일원에서 발원하여 물장올, 물찻오름, 부소오름,
개오름 등을 지나 표선면 하천까지 이어지는 하천으로 유로가 약 25.7km로 제주도에서 가장 긴 하천이다.
천미천을 비롯한 제주도 하천의 대부분은 화산지질구조의 특성상 절리대, 균열대, 파쇄대의 발달로 인해
연중 거의 물이 흐르지 않는 건천의 형태를 띠나 폭우시에는 엄청난 급류가 형성되기도 한다.
분석구( 噴石丘 cinder cone )
분석구는 스트롬볼리형 분출에 의하여 분출된 분석, 화산탄, 스패터 등이 화구 주위에 쌓여
형성된 산체로 구성 암석이 단일성분이며 넓은 화산지대에 독립한 산체들을 이루고 있다.
제주도에 분포하는 오름의 대부분이 분석구에 해당하며 원형, 말굽형, 원추형, 복합형 등의
분화구를 갖고있다.
물찻오름
제주시 조천읍 교래리에 있는 봉우리이다.
예로부터 물찻오름이라 불렀으며 한자 표기로는 수성악으로 표기하였다.
오름꼭대기에 물이 차있는 호수가 있는데다 오름의 형세가 마치
성과 같이 이루어져 있다는데서 물찻오름이라 한 것이다.
물찻오름의 전사면에는 참꽃,꽝꽝나무,단풍나무, 등의
자연림이 우거져 울창한 숲을 이루고 있다.
높이는717.2m이며 모양은 복합형으로 되어있다.
꼭대기에는 검푸른 못이 있는데 붕어와 개구리 등이 서식한다.
외돌개
서귀포시 천지동에 있는 바위로 높이 20m이며 삼매봉 남쪽기슭 바닷가에 있다.
바다 한복판에 우뚝 솟아있다하여 붙여진 이름으로 장군석이라고 부른다.
150만년전 화산폭발로 섬의 모습이 바뀔때 생긴 바위섬으로 꼭대기에는 작은 소나무들이 몇그루 자생하고있다.
고려에서 중국 명나라에 제주마를 보내기위해 말을 징집하는 일을 자주 행하자
고려말 탐라에 살던 몽골족의 목자들이 이에 반발하여 목호의 난을 일으켰다.
최영장군은 범섬으로 도망가는 이들을 토벌하기위해 외돌개를 장군의 형상으로 치장시켜놓고
결전을 벌였는데 목자들은 외돌개를 대장군으로 알고 놀라 스스로 목숨을 끊었다는 이야기가 전한다.
또 다른 이름으로는 할망바위라고도 불린다.
한라산 밑에 어부 할아버지와 할머니가 살았는데 어느날 바다에 나간 할아버지가
풍랑을 만나 돌아오지 못하자 할머니는 바다를 향해 하르방을 외치며 통곡하다
바위가 되었다고 하는 전설이 전해진다.
어리목탐방로
한라산은 해발 1950m의 높이로 제주의 중앙부에 솟아있다.
정상화구호인 백록담을 중심으로 그 규모가 동서로 약14.4km 남북으로 9.8km 뻗어있다.
국립공원의 면적은 153.386 제곱킬로미터로서 2002년12월16일 한라산국립공원을 핵심지역으로 하는
UNESCO 제주도생물권보전지역으로 지정관리 되고있으며 국립공원 면적의 약 60%에 달하는
91.62 제곱킬로미터가 1966년10월12일에 천연기념물 제182호(한라산천연보호구역)로 지정되고있다.
어리목은 길목이라는 뜻이다.
사제비동산의 아름다운 숲길과 산철쭉, 털진달래가 장관을 이루는 초원이 있고
아고산대의 초원에서 희귀한 동식물과 야생화 등을 관찰할 수 있다.
만세동산 전망대(만수동산, 망오름) - 예전에 한라산에서 우. 마를 방목했을때 높은 곳에서
말이나 소들을 감시했다고 하여 망둥산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민오름(민대가리 동산) - 예로부터 민오름정상 부분에 나무가 자라지 않아 민대가리 동산이라고 한다.
장구목오름 - 장구목오름과 삼각봉으로 이어지는 능선이 장구같이 좁아져있어 장구목이라고 한다.
왕석발 - 오름주변에 큰 돌들이 있어 왕석발이라고 한다.
한라산주봉(화구벽) - 백록담 외곽인 화구벽에서 제일 높은 부분이 한라산 주봉이다.
윗세오름은 높은 지역에 3개의 오름인 붉은오름, 누운오름, 죽은오름을 통틀어서 부르는 속칭이다.
우도(牛島)
고려 목종 5년 6월에 화산 폭발이 있었다.
이 섬은 <세종실록지리지> 제주목에 " 목종 7년(1004) 서산(瑞山)이 해중에서 솟아 조정에서는
태학박사 전공지(田拱之)를 보내자 탐라인들은 밤낮 7일간 폭발하여 높이 일백여장(丈),
주위가 40여리의 섬이 되니 무서워 접근할 수 없었습니다 " 고 기록되었다.
성종 19년(1488)1월 제주경차관으로 부임한 최보는 이렇게 <탐라 36>을 지었다.
바다는 서산을 토하여 참으로 멋있네
용틀임 끝에 우도를 상서로운 안개 밖으로
중종 16년(1521) 유배온 충암 김정(金淨)도 우도가(牛島歌)에서 이렇게 읊었다.
구름안개 걷쳐 홀연히 솟아
소섬을 새로 그려 임금께 날렸네
서산의 서는 동쪽 혹은 새롭다는 뜻도 함유하고 있다고 본다.
올해는 소섬이 태어난지 바로 일천년이 되는 해이기도하다.
고려사의 " 瑞山湧出 " 이란 바로 우도(牛島) 이다.
제주 올레길
올레는 제주도 주거형태의 특징적인 구조로 볼 수 있으며
큰길에서 집까지 이르는 골목을 의미하는 제주어이다.
제주어로 거릿길에서 대문까지의 집으로 통하는 아주 좁은 골목길을 뜻한다.
중세어로는 " 오라 " " 오래 " 이며 " 오래 " 는 문(門)을 뜻하는
순 우리말 " 오래 " 가 제주에서는 " 올레 " 로 굳어진 것으로 보고있다.
제주의 거친 바람으로부터 가옥을 보호하기 위해서 집주변을 돌담으로 쌓았다.
하지만 돌담의 입구로부터 불어오는 바람을 막지를 못하기 때문에 입구에서부터 좁은 골목을 만들었는데,
바람부는 섬 제주에 많은 구멍 숭숭한 현무암을 쌓아 만들었다.
구불구불 이어진 아름다운 제주의 돌담길을 많이 걸었습니다~~~~~
첫댓글 제주의 여행이 한눈에 들어온다~~
돌담길, 숲길, 올레길, 오름길..... 그림처럼 아름다운 풍광을 바라보며 길 많이 걷었네~~~~~
부스신고 걷든추억 평생에 추억일거야ㅎㅎㅎ
어르신은 용감하셨다! 기억하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