민족의 자존심 인천대교를 달리며
-산행버스 투어를 다녀와서-
요즘 山行인들의 화두(話頭)가 인천대교를 다녀왔느냐는 것이다.
인천국제공항이 있는 영종도와 송도국제도시를 연결하는 총연장 18.38km의 다리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길다는 다리다.
6차로이며 시원하게 바다를 가로지르는 다양한 형식의 특수교량으로 구성되어있다는
Incheon Bridge, 즉 인천대교 (仁川大橋)를 말하는 것이다.
대화중에 아직 인천대교를 보지 못했다면 은연중에 축에 빠지는 생각이 들었고
낙후된 삶을 살고 있다는 기분이 생기기도 했었다.
금광산악회는 10월의 마지막 주 산행으로 인천대교를 다녀오기로 했었다.
광주역광장은 오늘따라 산행버스와 관광버스가 혼재되어 소란스럽고 복잡했었다.
앞서 떠나는 빈 공간으로 어김없이 다른 버스가 진입해 주차를 하고 회원들이나 손님을
실고 바쁘게 떠나는데 대부분 인천대교를 관광하는 차들이었다.
07시30분: 짙은 회색빛깔 산악회버스가 도착을 했었는데
이게 왼 일이 다야!
좌석을 거의 메운 상태로 산행버스가 도착을 한 것이다.
역에 대기하고 있던 회원들이 버스에 오르다 보니 자리는 벌써 만석이 되어버렸다.
뒷좌석부분은 양동매씨들로 꽉 차있어 “위풍당당” 그 위용을 나타내고 있었고
항상 23번 좌석을 고집하던 나는 명함도 못 내밀고 겨우 끝 좌석에 앉았다.
총무는 서방방면에서 참여하는 회원들의 좌석을 미리 고민해야하는 걱정에 빠졌다.
나주에서, 여수에서 원거리 참여를 해준 회원들도 있었고 부쩍 는 신입회원들로
차속은 시클 벅적했다.
이런 생소한 환경에 익숙지 못한 회원이 하차를 하겠다는 행복한 소동도 있었지만
오늘 참여회원은 만석+8명이었으니
“금광에 경사 났다, 더도 말고 덜도 말고 오늘만 같아라!”
내가 금광에 참여한지 2년 만에 처음 있는 일이었다.
우리회장님 기분 좋아 특유의 근엄한 표정으로 차내를 휘 둘러보고 산행이사님도
기뿐 얼굴로 회원들과 인사를 나눈다.
산행버스는 이 모든 즐거움과 행복을 함께 실고 장성을 지나 서해안고속도를 신나게
달리고 있었다.
초록빛 가득한 산이 빨간색 옷을 갈아입는데 걸리는 시간은 딱 한 달이라는데.
“나 이제 가노라. 서러워 말라”며
낙엽이 비장하게 떨어지는 시간은 단 3초 밖에 걸리지 않는다고 한다.
어느덧 두 팔 벌리고 가을을 만끽하는데 남은 시간이 얼마나 남았을까?
10월도 이제 이틀이면 끝이 난다.
“지금도 기억하고 있어요, 10월의 마지막 밤을
뜻 모를 이야기만 남긴 채, 우리는 헤어 졌지요 (중략)
언제나 돌아오는 계절은, 나에게 꿈을 주지만
이룰 수 없는 꿈은 슬퍼요, 나를 울려요 (후략)
이용의 “잊혀 진 계절”이란 노랫말이 저절로 흥얼거려지는 계절인 것이다.
퇴장하는 가을.
칼바람 날리며 무서운 그림자 드리우고 그 뒤로 서서히 등장하는 겨울.
단풍놀이, 가을여행, 진한 커피한잔에 보사노바 한곡, 목숨 건 사랑,
가을이 떠나기 전에 가을 “님” 바짓가랑이라도 잡아야지 놓치면 안 되지!
여름의 폭염은 어느덧 온화한 햇살로 바뀌었다.
농촌들녘은 가을 추수로 한창 바쁘다.
우리에 山河는 원색으로 돌아갈 것이다.
산행버스는 5시간을 달려 오후 l시에 서부전선 최전방인 애기峰에 도착했다.
애기봉(愛妓峰)은
경기도 김포시 하성면 가금里와 조강里 경계에 있는 산이다.
높이는 155m로, 한강과 임진강이 만나 서해 바다로 흘러가는 곳에 솟아 있다.
병자호란 때 평양감사와 기생 애기와의 슬픈 일화가 서려 있다 하여 애기峰이 되었다.
사연인즉 전쟁이 나자 평양감사와 기생애기는 한양으로 피난을 떠났다.
그런데 도중에 감사가 청군에게 포로가 되어 끌려갔고 애기 혼자만 남게 되었다.
애기는 월곶면 조강里에 머물면서 감사가 돌아오기를 학수고대 했었다.
날마다 쑥갓머리山 정상에 올라 북녘을 바라보며 애타게 기다리다 병이 들어 죽음을
눈앞에 두게 되었다.
애기는 죽으면 자신이 매일 감사를 기다리던 산꼭대기에 묻어 달라는 유언을 남겼고,
애기의 유언에 따라 동네 사람들은 애기를 쑥갓머리山 꼭대기에 묻어주었다.
애기봉은 154고지로 불렸으나
박정희 대통령이 이곳을 방문하여 이 봉우리에 얽힌 전설을 듣고,
애기의 한은 江하나를 사이에 두고 오가지 못하는 천만 이산가족의 恨과도 같다하며
그동안 이름이 없었던 이 봉우리를 애기峰 이라 정식 명명하고 친필 휘호로 비석까지
세웠다한다.
애기봉은 군사통제지역이지만 주간에는 관광객을 위해 시설을 개방해 두었으며,
관광객과 실향민들이 많이 찾고 있었다.
이북5도민 연락소도 있었고 관광객을 위한 편의점도 민간인이 운영하고 있었다.
임진강을 사이에 두고 남북이 첨예하게 대치하고 있는 비정한 현실 앞에서
우리는 할 말을 잃고 숙연해졌다.
정상 전망대에서는 망원경으로 북한의 선전마을과 송악산 등을 볼 수 있었다.
손만 내밀면 닿을 듯이 아니 소리치면 이내 돌아 볼 것만 같은 우리 땅에서 내 민족이 적으로
돌아서서 총칼을 들고 있다니.
해병대 전적비와 해병용사의 동상이 세워져 있었고 해병전우회의 詩碑도 세워져있었다.
애기峰이라 새겨진 자연석도 있었다.
1993년에는 실향민들을 위한 망배(望拜)단이 세워졌다.
크리스마스 때는 북녘을 향해 대형 트리를 세우고 성탄 축하예배를 드리며
석가탄신일에는 법회가 열리는 등 각종기념행사가 열리고 있다한다.
애기峰 나무그늘 밑에서 떨어지는 낙엽을 쳐다보면서 점심을 먹었다.
땅에는 떨어진 낙엽이 황금카펫처럼 깔려있었다.
“시몬, 너는 좋으냐? 낙엽 밟는 소리가.”
우리가 낭만적 시상에 잠겨있을 때 휴게 터 한쪽에서는 큰 소동이 벌어지고 있었다.
나이가 연로한 여성회원 한분이 급체를 해 사경을 해매고 있었다.
급히 달려가 보니 상황이 급박했었다.
얼굴은 창백하고 수족이 차가웠으며 의식도 없었다.
삶과 죽음의 간극이 그렇게 길지도 넓지도 안타는 것을 예감할 수 있었다.
사람들은 우왕좌왕 어찌할 바를 몰랐고 나 또한 마찬가지였다.
산행이사가 달려왔다,
이 명희회원이 수지침을 가져와서 손가락과 발가락 끝을 찔러 피를 뽑았다.
회원들이 몰려와서 등을 두드려주고 팔다리를 주물렀더니 한참 후에 큰 트림을
하면서 의식이 돌아왔다.
다급한 총무가 119에 신고했다가 산행이사님 말을 듣고 취소하는 일도 있었다.
나는 금광회원들이 정이 많고 남의 고통을 내 몸처럼 아파할 줄 아는 아름다운
마음을 가진 사람들이라는 것을 새삼 느꼈다.
긴장했던 총무도 체기를 느껴 약을 먹어야했고 나도 가슴이 먹먹함을 느꼈다.
이것은 장거리여행과 급하게 먹은 점심, 산행이 없어 운동부족에서 온 현상이리라.
이 소동으로 시간을 뺐긴 산행버스는 인천대교를 향해 바쁘게 출발했다.
영종대교를 지나 인천공항을 들렸고 인천대교를 향했다.
인천대교의 완공으로 인천과 서울 남부, 수도권이남 지역에서 인천국제공항까지
그리고 인천국제공항에서, 송도국제도시까지
소요되는 주행시간이 40분 이상 단축되었으며 물류비와 이산화탄소 발생량이
감소되는 효과가 있다고 한다.
제2경인고속도로, 영동고속도로와 연결되어 동북아 경제의 핵심 인프라의 역할을
할 것으로 기대하고 있다.
산행버스가 大橋톨게이트를 통과하자 회원들은 한마음으로 박수를 치며 기뻐했다.
인천대교 海上구간은-
사장교(1,480m), 접속橋(1,778m)와 고가교(8,400m)로 구성되어 있으며,
主항로부에 있는 사장교의 주경간장은 800m로 사장교 형식으로는
준공시점을 기준해서 세계에서 4번째로 길다고 했다.
주塔의 높이는 230.5m, 국내에서 가장 높다.
국고(國庫)구간은-
다양한 형식의 특수교량과 토공부도로로 이루어져 있었다.
주요교량으로는 하이브리드 중로아치橋(213m), 스트럿이부착된 박스거더橋(2,209m),
나비型사장교(230m) 및 엑스트라도즈橋(308m)가 있었다.
인천대교는-
설계와 시공을 병행하는 패스트트랙(Fast Track)방식으로 진행하였으며,
초속72m의 강풍과 진도Ⅶ(7)의 지진에 견딜 수 있도록 설계되어 있다고 했다.
主항로부에는 선박과 교량의 충돌을 방지하기 위한 세계최대 규모의 돌핀型 충돌방지
시설이 설치되어 있었다.
국내 최초로 교량의 하부구조 및 상부구조 설계에 하중, 저항계수설계법(LRFD)을
적용한 것을 비롯해 세계적 수준의 최신 토목기술을 총동원하여 건설하였다한다.
인천대교를 지난 산행버스는 경인고속도로를 경유해 서해대교 위를 달리더니
서해안고속도로를 내달리기 시작했다.
도심권직장인들의 퇴근시간 안에 빠져나오기 위한 수도권 엑소더스(대탈출)였다.
대탈출에 성공한 우리는 기억할 수 없는 휴게소 한쪽에 차를 주차시켰고
하산酒를 준비했다.
오늘 하산酒는 오리 탕이었는데 정국장님이내셨고 부부간에 참여한 최 남옥회원은
아침부터 떡과 농장에서 따온 단감으로 우리들의 허기진 배를 채워주었다.
이 모든 것은 누가 요구하지 않았어도 자비(自費)로 배 푼 아름다운 인정이었다.
여성회원들은 솔선하여 음식 준비를 해주었고 젊은 여성회원들은 모두가 싫어하는
설거지까지 묵묵히 해주었으니
남성회원들이여! 감사할 줄 아는 마음을 가집시다.
오늘도 금광로드쇼는 미녀삼총사가 주도를 했었다,
오늘은 칠공주파가 되어 왔으니 그 위세와 율동은 현란하고 가히 예술이었다.
서해안의 하늘에는 별이 총총했고 산행버스 안은 오예! 오예! 을 연발 하는
미녀 칠公主들의 소란스러움으로 가득했었다.
호사다마(好事多魔)라지만 오늘은 희한한 일까지 생겼었다.
하산酒를 먹고 산행버스가 출발을 했는데 한참을 가다보니 운전석계기판에서
경고등이 켜지고 경고음이 울리기 시작했다.
길가에 차를 세우고 최기사가 점검을 해보니 냉각수부족이라는 것이었다.
부랴부랴 냉각수보충을 했지만 고장현상은 개선되지 않았다.
운전과 정비는 분리된 기능이었기 때문에 최기사가 정비사한테 전화자문을 구했고
정비사의 전화 지시대로 엔진부분의 냉각수접지봉을 뽑아 확인해보았더니
접촉 불량이었다.
이 일련의 사건으로 우리는 밤늦게 광주에 도착을 했었고, 집에 도착해서보니
11시가 넘었다.
(2009년 10월 30일)
인천대교 건설 사업은 인천국제공항이 있는 영종도와 인천경제자유구역인 송도국제도시를 잇는
최대 6차로, 총길이 21.38 km의 고속도로를 건설하는 사업이다.
서해를 횡단하며 연속적으로 이어지는 교량 구간이 인천대교이며,
그 길이는 18.38 km로 우리나라에서 가장 크고 긴 다리이다.
바다를 건너는 구간은 민간자본투자 사업으로 건설하였으며,
영종도 내 고속도로와 송도국제동시 통과 구간은 국가재정사업으로 진행하였다.
한국도로공사가 전체 사업을 총괄 관리하였으며,
민간투자사업구간에 대해서는 인천대교주식회사가 시행을 담당하였다.
2005년 7월 착공하여 4년 4개월 만인 2009년 10월 완공하였다.
또한 BTO(Build-Transfer-Operate) 방식으로 추진되어 국내 최초로 사회간접자본
사업에 외국인이 시행자로 참여하였다.
인천대교(주)가 민간사업구간 사업비 중 약 52%인 8,200억원의 자금을 조달하고
완공 후 30년 동안 운영권을 가진다.
한국도로공사의 관리 아래 민간투자사업과 국가재정사업으로 병행 추진하여 건설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