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뮤지컬 ‘스칼렛 핌퍼넬’(연출 데이빗 스완)에서 쇼블랑으로 분하는 양준모 배우의 모습.(뉴스컬처) © 사진=랑 | | (뉴스컬처=김현진 기자) 그의 앞에서 누군들 주눅 들지 않을 수 있을까. 일대일로 대면한 양준모는 무대에서 봤을 때와 마찬가지로 상대를 움츠러들게 하는 ‘특유의 아우라’를 풍겼다. 무표정에 잠긴 모습은 서늘했고, 종종 가늘게 뜨는 눈은 날카롭다 못해 매서웠다. 목소리는 또 어떻고? 성악으로 다져진 중저음의 목소리는 공기를 무겁게 메웠다. 그렇게 양준모의 아우라에 장악당해 인터뷰를 진행하던 중, 눈에 띄는 무언가를 발견했다. 큰 표정 변화 없이 술술 답을 이어가던 양준모가 인터뷰 도중 힐끔힐끔 쳐다보던 종이였다. 집요하게 그 정체를 묻자 그는 “인터뷰가 끝나면 항상, ‘이 이야기 왜 안 했지’하고 후회하는 타입이라, 미리 할 말을 좀 써봤다”며 멋쩍게 웃었다. 백지를 빼곡하게 채운 색색의 글자는 양준모가 예상 질문에 대해 미리 적어 놓은 모범답안이었던 것이다. 양준모의 진짜 매력은 이렇듯 거친 외모 뒤에 감춰져 있던 은근 귀엽고, 인간적인 구석에 있었다. 그가 그동안 보여줬던 강렬한 캐릭터(‘오페라의 유령’의 팬텀, ‘지킬 앤 하이드’의 지킬과 하이드, ‘서편제’의 유봉 등)들을 ‘악역’이라는 단어로 단순화할 수 없는 이유가 바로 여기에 있다. 그는 극악무도한 악인도, 인간적으로 표현한다. 현재 연기 중인 뮤지컬 ‘스칼렛 핌퍼넬’(연출 데이빗 스완)의 ‘쇼블랑’도 마찬가지. 양준모의 쇼블랑은 죄 없는 사람을 죽이고, 연약한 여인을 협박하는 등 악행을 일삼으면서도 이상하게 관객의 마음을 흔든다.
▲ 뮤지컬 ‘스칼렛 핌퍼넬’(연출 데이빗 스완) 공연장면 중 쇼블랑(양준모 분)이 파리 시민들을 박해하며 노래하고 있다. ©고아라 기자 | | 프랑스 공포 정권의 권력자인 쇼블랑은 정권에 대항하는 퍼시와 퍼시의 아내이자 과거 쇼블랑과 연인 사이였던 마그리트와 삼각관계를 이룬다. 쇼블랑은 한때 혁명동지였던 마그리트를 향해 자신에게 돌아와 함께 새로운 세상을 열어보자고 유혹한다. 양준모는 “자신만의 착각에 빠져 사는 모습을 최대한 강조하고자 했다”고 설명했다. “쇼블랑은 마그리트가 퍼시와 결혼한 것을 잠깐의 외도라고 판단해요. 마그리트가 언제든 돌아올 것이라고 여기는 거죠. 또한 그는 사람을 죽이거나 하는 악행을 벌일 때도 이를 ‘대의를 위한 희생’이라고 생각합니다. 사실은 잘못된 행동이지만 스스로는 잘하고 있는 일이라는 확신을 가지고 있어요.” 자신을 악으로 인정하고 있지 않으니, 인간적으로 흔들리는 경우도 잦다. 퍼시와 혁명 동지로 활동 중인 마그리트의 동생 아르망을 잡았을 때가 대표적이다. “쇼블랑은 공포 정권의 대항자들을 잡으려는 거였지, 아르망을 쫓던 게 아니었어요. 아르망은 한 때 연인이었던 여인의 동생인데, 과거에 한 번쯤 쇼블랑과 만난 적이 있지 않았을까요? 쇼블랑도 사람인데, 아르망을 인질로 삼는 게 유쾌했을 리는 없죠. 그를 감옥에 넣은 후 마그리트에게 미안한 감정을 느끼고, 그 탓에 아르망을 구하러 온 마그리트를 대면할 때 제대로 눈을 마주치지 못하는 겁니다.” 그러다 보니 전반적으로 가볍게 흘러가는 이 작품에서 쇼블랑의 감정은 유독 무겁게 이어진다. 그를 따라가다 보면, 사실은 웃음이 터지는 장면에서도 가슴 찡한 대목을 발견할 수 있다. 쇼블랑이 한참동안 ‘병맛’ 유머를 떠들다 퇴장한 퍼시를 두고, 마그리트에게 “네가 원한 게 이런 거였니?”라고 말하는 장면이 그중 하나다. “퍼시의 감정선으로 보면 웃기는 장면이죠. 쏟아내듯 토해내는 대사가 상당히 재미있잖아요. 하지만 쇼블랑의 입장에서는 슬픈 부분이에요. 자신을 떠난 마그리트를 향해 ‘이렇게 말 많고, 방정맞은 남자와 살려고 나를 떠난 거니?’하고 안타까워하고 있는 거니까요.” 지난 7월 막을 연 ‘스칼렛 핌퍼넬’은 남다른 뒷심을 발휘하며 순항 중이다. 자칫 진부할 수 있는 영웅 드라마에 한국적 개그 코드를 담아 관객의 웃음보를 잡는 것이 작품의 첫 번째 성공 요인으로 꼽힌다. 양준모는 여기에 “캐릭터의 색이 분명하고, 캐스트 마다 그 해석이 조금씩 달라서 인기가 있는 것 같다”고 덧붙였다. 캐스트 별로 해석이 다른 만큼 양준모가 전하는 관극 포인트도 ‘배우’에 있다. “관객 입장으로, 제가 이 작품의 티켓을 세 장 가지고 있다면, 저는 세 번 다 다른 방식으로 관람할 것 같습니다. 첫 번째는 퍼시, 두 번째는 마그리트, 세 번째는 쇼블랑의 캐릭터에 집중해서 보고 싶어요. 다른 인물이 대화할 때도 해당 주인공은 자신만의 감정을 끌고 가기 마련인데, 이 선이 굉장히 굴곡지기에 캐릭터별로 색다른 재미를 느낄 수 있기 때문입니다.” 그렇다면, 같은 배역을 연기하는 에녹과는 어떤 차이가 있을까? “‘얼마나 친절하게 캐릭터를 그리느냐’는 정도 차이가 있을 거로 생각해요. 무대에 올라간 이후부터는 배우 본인의 색에 따라 같은 캐릭터도 다르게 표현되기 마련이니까요. 에녹의 무대를 관람하지는 못했는데, 그가 자신만의 대사를 추가하거나 하는 등의 모습을 보면 보다 친절하게 쇼블랑을 표현하면서 관객에게 다가가고 있을 거라고 추측됩니다.” 반면 양준모는 관객에게 최대한 열려있는 쇼블랑을 보여주고 싶다고 했다. 생각의 여지가 있는 캐릭터를 개인적으로 더 좋아하기 때문이란다. “결론적으로는, 에녹과 저 모두 매력이 있습니다. 쑥스럽지만, 굳이 그 내용을 설명하자면... 에녹의 쇼블랑에게서는 공감을, 제가 그린 쇼블랑게서는 생각 거리를 얻을 수 있을 것 같네요.”(웃음) 양준모의 쇼블랑 이야기를 듣다보니 앞으로 그가 그릴 다른 캐릭터들이 자못 궁금해졌다. “확정된 사항이 아니라 공개할 수는 없지만, 대형 뮤지컬 두 편에서 관객분들을 만나게 될 것 같습니다. 색다른 캐릭터가 될 듯해요. 계약이 다 끝나면, 그때 알려드리겠습니다.(웃음) 또 12월에는 일본에서 열리는 ‘뮤지컬 브로드웨이 콘서트’에 한국 뮤지컬 배우를 대표해서 참석해요. 누가 되지 않도록 멋진 모습을 선보이고 돌아오겠습니다.” 올해로 데뷔 10년 차를 맞이한 양준모의 2013년은 그 시작부터 참 알찼다. 뮤지컬 ‘지킬 앤 하이드’, ‘아르센 루팡’, ‘스칼렛 핌퍼넬’에 연달아 출연했고, 하반기 역시 공백기는 없을 예정이다. “이 정도면, 노멀한 스케줄입니다. 딱히 힘들지는 않아요. 오히려 찾아주시는 분들이 있어서 감사하죠. 앞으로도 제가 할 수 있는 최선의 연기를 보여드릴 수 있도록, 항상 갈고 닦겠습니다.”
▲ 뮤지컬 ‘스칼렛 핌퍼넬’(연출 데이빗 스완)에서 쇼블랑으로 분하는 에녹, 양준모 배우의 분장실 문 앞에 붙은 종이의 내용. 양준모는 “‘없는 거’에 대한 것은 잘못된 사실이다”며 슬쩍 해당 내용을 가렸다. ©김현진 기자 | | 양준모는 마지막 인사를 마치고, 대화가 진행됐던 분장실 밖까지 나와 손을 흔드는 등 훈훈하게 현장을 마무리했다.
그런데, 돌아서려던 그 순간! 또다시 눈에 띈 것이 있었으니. 바로 문 앞에 붙여진 ‘종이’였다. 여기에는 분장실을 번갈아 사용하는 에녹과 양준모에 관한 재미있는 특징들(이름, 있는 거, 없는 거)이 기재돼 있었다. 이 글에 의하면, 양준모에게 있는 것은 ‘대두와 괴수’, 없는 것은 ‘맞는 모자’란다. 그는 황급히 이 내용을 가리며 이렇게 말했다. “아... 제 머리 크기가 다른 배우들에 비하면 좀 크기는 하죠. 하지만 맞는 모자는 있습니다. 오해하지 마세요. 저 모자 많아요!” 양준모는, 끝까지 귀여운 남자였다.
[프로필] 이름: 양준모 직업: 뮤지컬배우 생년월일: 1980년 6월 4일 학력: 단국대학교대중문화예술대학원 뮤지컬 석사 (연기전공) 수상: 제1회 서울뮤지컬페스티벌 예그린어워드 연기예술부문 남우조연상, 제1회 KBS 신작가곡제 대상 데뷔작: 뮤지컬 ‘금강’(2004) 출연작: 뮤지컬 ‘오페라의 유령’, ‘지킬 앤 하이드’, ‘영웅’. ‘아르센 루팡’, ‘스칼렛 핌퍼넬’, ‘서편제’, ‘천사의 발톱’, ‘명성황후’, ‘삼총사’ 외/ 오페라 ‘마술피리’, ‘피가로의 결혼’, ‘람메르무어의 루치아’ / 연극 ‘아일랜드’/ 영화 ‘R2b 리턴 투 베이스’, ‘광해, 왕이 된 남자’ (감성을전하는문화신문=뉴스컬처) 연극 뮤지컬 클래식 무용 영화 인터뷰 NCTV 공연장 전시장 <저작권자 ⓒ 뉴스컬처(http://www.newsculture.tv).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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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하악!~ 두 작품씩이나 준비되어있다니...두근두근 *-*
배우님 차기작이 뭘지 너무 궁금합니다..♥♥
대형뮤지컬~~정말 궁금하네요~! 울 배우님은 하반기에도 쭈~욱 달리십니다~~ㅋㅎ
저는 사실, 이번에 맨오브라만차 다시 한다고 해서 배우님이 하시는 줄 알았어요~ 하지만, 더 좋은 작품도 많으니 꼭 다시 뵈었으면 좋겠네요^^
저도 사실 맨오브라만차 많이 기대하고 있었는데 ㅠㅡㅠ 과연 어떤 작품으로 놀래켜주실런지 기대되요 ^-^
기자분께 제가 증인이 되어드리겠습니다..배우님 모자 맞는거 많다고..ㅎㅎ// 하반기 무대도 기대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