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국 런던의 택시운전사들은 제각기 '전문직 사장'이다. 런던의 명물 '블랙캡'을 몰면서 남부럽지않게 생활한다. 자부심도 대단하다. 반면 한국의 택시기사들은 경제적 빈곤층으로 통한다. 사회적 냉대와 제도적 모순 속에서 하루하루 아등바등 살아야 하는 고달픈 이웃이다. 이들에게 '하루 벌이'를 묻는 것은 실례되는 일이다.
■고달픈 현실
윤순복(45·부산 사하구) 씨는 O택시회사 소속 여성 운전사다. 아이 학원비라도 벌어야겠다며 택시 운전대를 잡은 지 2년. 너무 힘들어 몇 번이고 그만둘 생각을 했지만 차일피일 하다 여기까지 왔다.
"다 알잖아요. 못해먹을 일이라는 거. '뼈 빠지게' 뛰어야 월 120만 원, 운이 좋으면 130만 원 정도예요. 아르바이트를 해도 이 정도는 벌겠지요."
지난 16일 김해공항 국내선 청사앞 택시 승강장. 2시간째 공항에서 '뻗치기 대기'를 했다는 윤씨는 취재를 요청하자 막힘없이 택시영업 실태를 털어놓았다.
-수입이 좀 됩니까.
"말하기가 뭣 하네요. 난 1인 1차로 운행하는데, 월 25일 만근을 해도 돈이 안 돼요. 한달에 5~7일은 사납금(12만2000원)도 못 맞추고 있어요."
-하루 몇 시간 일하나요.
"오늘 아침 5시에 나왔어요. 저녁에 들어가는데 대충 쳐도 하루 14~15시간이지."
-어디에 무슨 문제가 있는 겁니까.
"정부와 부산시, 사측, 노조에 다 문제가 있어요. 시청에 들어가면 공무원들은 왜 그렇게 고압적인지. 잘못하다 불친절 또는 질서문란 스티커라도 받게 되면 벌점 15점에 과징금이 20만 원이야. 그땐 하늘이 노랗죠."
■개인택시도 호시절 끝나
"서비스, 서비스 하는데 그럴 수 있는 환경을 만들어줘야지…."
윤씨와의 얘기 중간에 D택시 소속의 김태화(65·부산 수영구)씨가 슬거머니 끼어들었다. 그는 2인1차 영업을 하며 하루 12시간 뛴다고 했다. 2명이 교대로 한 대를 운행하니 회사로선 유리하다.
"어제는 공항서 줄창 대기하다 3시간만에 손님을 태웠는데 강서구청이야. 거긴 6500원 나와. 장거리가 아니니 내리라고 할 수 있나? 시간당 1만 원은 벌어야 사납금(8만8500원) 내고 1만~2만 원이라도 남기는데 그게 안 되는 거예요."
김 씨는 이날 하루 커피 3잔을 마셨고, 점심값으로 4000원을 썼으며, 벌써 담배 한갑을 태웠다고 했다. 회사에서 주는 가스(LPG)가 30ℓ인데 모자라 10ℓ 더 넣었다. 이런 경비는 모두 개인 부담이다.
개인택시는 사정이 어떨까. 부산역 앞 택시승강장에서 만난 개인택시 기사 최상규(55·부산 동래구) 씨는 "새벽 5시에 나와 오후 3시까지 번 돈이 고작 '5만6000원'이야"라며 보란듯 '실적'을 공개했다. "개인택시도 호시절은 다 갔나 봐요. 하루 15만 원을 찍어도 실제 수입은 7만~8만원밖에 안돼요. LPG값은 오르지, 손님은 줄지, 수리비에 보험료에 뭐가 남겠어? 게다가 이틀 일하고 하루는 무조건 쉬잖아."
■택시기사 건강 적신호
부산 수영구에 사는 임모(56) 씨는 요즘 병마와 싸우고 있다. 회사생활을 하다 퇴직, 택시기사를 시작한 지 6년만에 희귀병이라는 파킨슨병을 얻었다. 파킨슨병은 신체적 피로와 정신적 스트레스 등 심리적 압박이 가해지면 생기는 병으로 알려져 있다. 임 씨는 "새벽에 이유없이 시비를 거는 승객과 실랑이를 하고 나면 온 몸이 두들겨 맞은 듯 늘어지고 두통이 찾아온다"고 했다. 설상가상 그는 관절염과 위장병까지 앓고 있다.
택시 운행 중 교통사고를 내고 보험처리에 고민하다 자살한 기사도 있다. 부산 M사의 법인택시를 몰던 송 모(54) 씨는 지난해 3월 운전 중 일반 차량과 충돌사고를 일으켰다. 운전중 교통사고(인사·대물 등)는 회사가 부담한다는 임단협 규정에도 불구하고 회사는 송 씨에게 면책금 30만 원을 요구했다. 보험 처리에 고민하던 송씨는 집 인근에서 목매 자살했다.
사납금을 맞추고 일당을 벌어야 하는 택시기사들은 일의 속성상 교통사고가 잦다. 한 사람이라도 더 태우려면 바삐 움직여야 하기 때문이다.
택시기사들의 건강은 오래 전 적신호가 켜졌다. 노동환경건강연구소의 '택시 노동자 건강조사 사업 보고서'에 따르면 뇌졸중, 뇌출혈, 심장마비, 심근경색 같은 뇌심혈관계질환 발병률이 택시기사의 경우 전체노동자 평균보다 3.45배 높았다.
홍희덕 민주노동당 의원이 지난해 4~6월 버스·택시 노동자 1000명을 대상으로 조사한 결과, 택시 노동자의 외상후 스트레스장애는 34.1%로, 버스노동자 25.2%, 소방관(25%), 지하철 기관사(17.5%) 등에 비해 크게 높았다. 전문가들은 "택시기사들의 건강은 승객의 안전과 직결되므로 사회적 관심이 요구된다"면서 "과로를 야기하는 운행 여건의 개선, 승객과의 마찰 해소를 위한 교육, 운전자 정신건강 진단 체계가 함께 마련돼야 한다"고 지적했다.
# 택시 문제 대책은 없나
- 대기·호출택시제 의무화 하면 수백억 유류비와 혼잡비용 줄여
택시 문제를 일거에 푸는 해법은 현실적으로 존재하지 않는다. 정부와 지자체, 택시 노사, 이용시민 간의 이해관계가 복잡하게 얽혀 있기 때문이다. 하지만 단기적인 개선책이 없지는 않다.
택시 운행의 효율성을 꾀하는 방안으로 업계 일각에서는 대기택시와 호출택시의 의무화를 제시한다. 손님을 찾아 무작정 배회하는 택시를 특정 대기 장소를 만들어 대기하게 하고, 콜 시스템을 강화해 낭비 요소를 줄이자는 것. 이를 위해선 전용 택시베이(Taxi Bay)가 확보돼야 한다. 현재 부산에는 폴사인형(안내판식) 100개, 셀파형(박스형) 58개가 설치돼 있으나 별도의 주차 차로 확보 등 대책이 필요하다.
부산택시문화운동본부 관계자는 "일본과 독일에서는 오래 전부터 호출에 의해서만 택시를 탑승할 수 있고, 프랑스에서는 아예 제도화돼 있다"면서 "대기 및 호출택시제를 도입하면 연간 수백억 원의 유류비 절감과 교통혼잡비용이 줄어들 것"이라고 했다.
'콜택시 문화'가 확산되고 있는 것은 긍정적 변화다. 부산지역 콜택시는 개인택시인 등대콜 자비콜과 법인택시인 부산콜 천사콜 마린콜 나비콜 등 1만2820대로, 전체 택시의 절반이 넘는다.
버스와 마찬가지로, 택시에도 이른바 '택시이용정보시스템'(TIS·Taxi Information System)을 구축해야 한다는 목소리도 나온다. 이게 구축되면 통합 콜 관제가 가능해지고, 정보안내 시설 및 택시운행 관리기 장착 등 연계시스템을 통해 이용 승객의 안전과 서비스 강화, 나아가 공차 운행이 줄어 업계의 경영개선까지 꾀할 수 있다는 것이다.
부경대 윤영삼(경영학) 교수는 "택시 운행의 인프라를 확충하는 것도 과제지만 근본적인 대책은 '운송수입금 전액관리제'의 시행일 것"이라며 정부와 지자체의 대책 수립을 촉구했다.
# 택시회사 다양한 경영실험
- 노조에 경영 맡기고, 초과수입은 배분
울산 택시업계 가운데 처음으로 월급제를 시행했던 화진교통 노사는 한시적으로 '자주관리제'라는 독특한 경영 형태를 도입, 시행 중이다. 이 회사 권정덕 사장은 적자 타개와 투명 경영을 위해 지난 연말부터 향후 20개월간 노조가 회사를 맡아 운영하도록 했다. 회사 대표직은 권 사장이 유지하되 입출금 통장 등 회계관리는 노조가 맡고 있다. 사장도 월급을 받아간다.
시행 8개월째. 성과를 속단할 단계는 아니지만 투명 경영을 통한 노사 신뢰는 다져지고 있다고 한다. 김철민 노조위원장은 "조합원들에게 모든 경영 정보를 공개하고 있고, 흑자가 나면 성과를 배분하게 될 것"이라고 말했다.
화진교통에는 98명의 택시기사가 있으며, 모두 1인2차제 하루 12시간을 일한다. 사납금은 5만1000원, 고정 월급은 40만 원이다. 단 연료는 본인 부담이다. 초과 운송 수입금은 물론 기사가 가져간다. 김 노조위원장은 "개인별로 월급 차가 있지만 대체로 150만~170만 원선의 수입을 올리는 것 같다"고 전했다.
화진교통은 지난 2002년 울산에서는 처음으로 월급제인 전액관리제를 실시했다가 경영이 여의치 않자 지난해 9월 사납금제로 다시 전환했다.
민주노총 계열의 민주택시본부 사업장인 서울 강동구의 K교통은 기존에 시행하던 전액관리제의 일종인 '가감누진형 성과급제' 대신 '6대4 업적급제'를 도입해 눈길을 끈다.
6대4 업적급제는 정액급여에 성과수당을 지급하는 방식으로, 택시근로자가 벌어온 돈을 전액 회사에 입금하면, 회사가 정액급여를 지급하는 기준인 기준수입금 외에 초과 수입금을 근로자와 사업자가 6대 4의 비율로 나눠가지는 방식이다. 유류비는 전액 회사가 부담한다. 노조 관계자는 "정액제로 가는 징검다리로 보면 된다"고 말했다. -끝-