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易)에 이르기를 “동동(憧憧)[자주 왕래함]하게 왕래하면 벗만이 네 생각을 따를 것이다.” 하니,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였다. “천하(天下)가 무엇을 생각하며 무엇을 생각하겠는가. 천하(天下)가 돌아감은 같으나 길은 다르며, 이치는 하나이나 생각은 백 가지이니, 천하(天下)가 무엇을 생각하고 무엇을 생각하겠는가.”
굴신(屈信) 왕래(往來)의 이치를 말함으로 인하여 또 미루어서 학문도 자연의 기틀이 있음을 말한 것이다. 그 의(義)를 정하게 연구하여 신묘(神妙)한 경지에 들어감에 이름은 굽힘이 지극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바로 나와서 씀을 지극히 하는 근본이 되며 시용(施用)을 이롭게 하여 가는 곳마다 편안하지 않음이 없음은 폄이 지극한 것이다. 그러나 이는 바로 들어가서 덕(德)을 높이는 자뢰가 되는 것이니, 내(內)·외(外)가 서로 길러주고 서로 발명하는 것이다.
過此以往은 未之或知也니 窮神知化 德之盛也라
이를 지난 이후는 혹 알 수 없으니, 신(神)을 궁구(窮究)하여 조화를 앎이 덕(德)의 성함이다.
아래로 배우는 일은 의(義)를 정하게 하고 씀을 이롭게 함에 힘을 다하여 서로 길러주고 서로 발명하는 기틀이 저절로 그칠 수 없으니, 이로부터 이상은 또한 그 힘을 쓸 곳이 없는 것이다. 신(神)을 궁구(窮究)하여 조화를 앎에 이름은 바로 덕(德)이 성하고 인(仁)이 익숙하여 스스로 이루어지는 것이다. 그러나 알지 못함은 가서 굽힘이요 스스로 이룸은 와서 펴짐이니, 이 또한 감응(感應)하는 자연의 이치일 뿐이다. 장자(張子)가 말씀하였다. “기(氣)는 음(陰)·양(陽)이 있으니, 미루어 행함에 점점함이 있는 것이 화(化)이고 하나로 합하여 측량할 수 없는 것이 신(神)이다.”
역(易)에 이르기를 “돌에 곤(困)하며 질려(
藜)에 앉아 있다. 집에 들어가도 아내를 만나보지 못하니 흉(凶)하다.” 하니,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였다. “곤(困)할 바가 아닌데 곤(困)하니 이름이 반드시 욕될 것이요, 앉을 곳이 아닌데 앉으니 몸이 반드시 위태로울 것이다. 이미 욕되고 또 위태로워 죽을 시기가 장차 이르니, 아내를 볼 수 있겠는가.”
역(易)에 이르기를 “공(公)이 새를 높은 담 위에서 쏘아 잡았으니, 이롭지 않음이 없다.” 하니,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였다. “준(
)은 새이고 궁시(弓矢)는 기물이며 쏘는 것은 사람이니, 군자가 기물을 몸에 보관하여 때를 기다려 동하면 어찌 이롭지 않음이 있겠는가. 동함에 막히지 않는다. 이 때문에 나가면 얻음이 있는 것이니, 기물을 이루고 동하는 자를 말한 것이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였다. “소인(小人)은 불인(不仁)을 부끄러워하지 않고 불의(不義)를 두려워하지 않는다. 이익을 보지 않으면 권면되지 않고 위엄으로 두렵게 하지 않으면 징계되지 않으니, 조금 징계하여 크게 경계시킴이 소인(小人)의 복이다. 역(易)에 이르기를 ‘차꼬를 신에 달아 발을 멸함이니, 허물이 없다.’ 하였으니, 이것을 말한 것이다.
선(善)이 쌓이지 않으면 이름을 이룰 수 없고, 악(惡)이 쌓이지 않으면 몸을 멸할 수 없으니, 소인(小人)은 작은 선(善)을 무익(無益)하다 하여 행하지 않고 작은 악(惡)을 무방(無妨)하다 하여 버리지 않는다. 그러므로 악(惡)이 쌓여서 가리울 수 없고 죄(罪)가 커져 풀 수 없으니, 역(易)에 이르기를 ‘차꼬를 메서 귀를 멸하니 흉(凶)하다’ 하였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였다. “위태로울까 함은 그 지위를 편안히 하는 것이요, 망할까 함은 그 생존을 보존하는 것이요, 어지러울까 함은 그 다스림을 두게 하는 것이다. 이 때문에 군자는 편안해도 위태로움을 잊지 않고 보존되어도 망함을 잊지 않고 다스려져도 어지러움을 잊지 않는다. 이 때문에 몸이 편안하여 국가(國家)가 보존될 수 있는 것이니, 역(易)에 이르기를 ‘망할까 망할까 하고 두려워하여야 총생(叢生)하는 뽕나무에 매어놓듯 튼튼하다’ 하였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였다. “덕(德)이 적으면서 지위가 높고, 지혜가 작으면서 꾀함이 크고, 힘이 작으면서 짐이 무거우면 화가 미치지 않는 자가 드물다. 역(易)에 이르기를 ‘솥이 발이 부러져 공상(公上)에게 바칠 음식을 엎었으니, 형벌이 무거워 흉(凶)하다’ 하였으니, 그 임무를 감당하지 못함을 말한 것이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였다. “기미를 앎이 그 신묘(神妙)할 것이다. 군자는 위로 사귀되 아첨하지 않고 아래로 사귀되 모독하지 않으니, 기미를 아는 것이다. 기(幾)는 동함의 은미함으로 길(吉)·흉(凶)이 먼저 나타난 것이니, 군자는 기미를 보고 일어나서[떠나가서] 하루가 마치기를 기다리지 않는다. 역(易)에 이르기를 ‘돌처럼 절개가 굳은지라 하루를 마치지 않으니, 정(貞)하고 길(吉)하다’ 하였으니, 절개가 돌과 같으니, 어찌 하루를 마치겠는가. 결단함을 알 수 있다. 군자는 은미함을 알고 드러남을 알며, 유(柔)를 알고 강(剛)을 아니, 만부(萬夫)가 우러른다.”
【本義】此는 釋豫六二爻義라 漢書에 吉之之間에 有凶字하니라
이는 예괘(豫卦) 육이효(六二爻)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한서(漢書)》에는 ‘길지(吉之)’의 중간에 흉자(凶字)가 있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였다. “안씨(顔氏)의 아들은 거의 도(道)에 가까울 것이다. 불선(不善)이 있으면 일찍이 모른 적이 없고, 알면 일찍이 다시 행하지 않았다. 역(易)에 이르기를 ‘멀리 가지 않고 회복하여[돌아와] 뉘우침에 이르지 않으니, 크게 선(善)하고 길(吉)하다’ 하였다.
【本義】殆는 危也라 庶幾는 近意니 言近道也라 此는 釋復初九爻義라
태(殆)는 위(危)[거의]이다. 서기(庶幾)는 가깝다는 뜻이니, 도(道)에 가까움을 말한 것이다. 이는 복괘(復卦) 초구효(初九爻)의 뜻을 해석한 것이다.
천지(天地)의 기운이 얽히고 설킴에 만물(萬物)이 화(化)하여 엉기고, 남녀(男女)가 정(精)을 맺음에 만물(萬物)이 화생(化生)한다. 역(易)에 이르기를 ‘세 사람이 가면 한 사람을 덜고, 한 사람이 가면 그 벗을 얻는다’ 하였으니, 하나에 지극히 함을 말한 것이다.”
공자(孔子)께서 말씀하였다. “군자는 몸을 편안히 한 뒤에 동하며, 마음을 화평히 한 뒤에 말하며, 사귐을 정한 뒤에 구하니, 군자는 이 세 가지를 닦으므로 온전한 것이다. 위태로움으로써 동하면 백성들이 더불지 않고, 두려워하면서 말하면 백성들이 응하지 않고, 사귐이 없으면서 구하면 백성들이 친하지 않으니, 친하지 않으면 해롭게 하는 자가 이를 것이다. 역(易)에 이르기를 ‘유익하게 해주는 이가 없다. 혹은 공격할 것이니, 마음을 세움에 항상하지 말아야 하니, 흉(凶)하다’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