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출처: 시인의 방 [蒜艾齋 산애재] 원문보기 글쓴이: 松葉
▲사화집 [☆한남문학 선집☆]의 앞표지(좌)와 뒤표지(우)
============ ============
한남문학 60년
1956~2016
[한남문학 선집]
2017. 한남문인회 / 시와정신(2017.11.11) / 값 37,000원
================= =================
섬강에서
도한호
섬강에 배를 띄우면
마음이 먼저 흐른다.
바람도 흐르고
구름도 흐르고
갈대숲 너머 기웃한거리는
낮달도 흐르는 듯
피이 피이 부는휘파람에
내 온갖 삶의 영욕이
해동하듯 풀려나고
바람 부는 선미에 앉아
나도 흐른다.
가을의 향기
이운룡
가을 속에서 햇살의 뉘를 골라내었다. 햇살을 가슴속에 퍼 담고 보니 가을 맛, 햇살 맛이 상큼 달다. 천사의 하늘말도 붉게 익어 향기가 천지사방 촘촘히 번져 난다.
가을에는 슬픔도 향기롭다. 속빈 과일 상자를 접는 노파의 땀에서도 쓸쓸한 향내가 난다. 낙엽에서는 주검의 향내가 낯선 길을 묻는다. 눈먼 지팡이처럼 세상을 더듬어보는 다슬기의 눈 그늘에도 향내가 묻어 있다.
저녁 햇볕에 말라가는 바람의 속살이 향기롭고, 투명한 주홍을 쟁여 넣은 홍시와 새까만 단내를 톡톡 터뜨리는 포도의 속내도 향기롭다.
나의 손금에서는 사과 깎는 냄새가 배어난다. 얼굴에는 햇볕의 향기, 가슴에는 사랑의 향기, 오곡백과가 붉고 노랗게 타는 것은 가을이 방화했기 때문이다.
사랑은 눈짓만으로도 인화된다. 가을에는 해걸음 늦은 저녁연기도, 밥이 다 된 당신의 사랑 한 그릇도 모두, 모두가 배부르고 향기롭다.
영혼의 눈
허형만
이태리 맹인가수의 노래를 듣는다. 눈먼 가수는 소리로 느티나무 속잎 틔우는 봄비를 보고 미세하게 가라앉는 꽃그늘도 본다. 바람 가는 길을 느리게 따라가거나 푸른 별들이 쉬어가는 샘가에서 생의 긴 그림자를 내려놓기도 한다. 그의 소리는 우주의 흙 냄새와 물 냄새를 뿜어낸다. 은방울꽃 하얀 종을 울린다. 붉은점모시나비 기린초 꿀을 빨게 한다. 금강소나무 껍질을 더욱 붉게 한다. 아찔하다. 영혼의 눈으로 밝음을 이기는 힘! 저 반짝이는 눈망울 앞에 소리 앞에 나는 도저히 눈을 뜰 수가 없다.
별
권선옥
나의 어둠은 네 배경이다
이 땅의 사람들은
너를 바라보면서도
왜 네가 별이 되었는지는 모를 것이다
내 가슴에 떨군 숱한 눈물과 그리움
뉘우침 같은 것들로
빛이 되었음을 짐작이나 하겠는가
애초에 다만 하나의 별이 되어
반짝이고 있다는 무심한 사람들에게
나의 어둠을 말할 수는 없다
너의 배경에서 아무 흔적도 없이
사위어 가는 그 많은 날들의 그림자를
아무도 보지 못하였으리라
다만다만 하나의 반짝이는 너를
나는 가슴에 담고
앞으로도 너를
사람들은 별이라고 부르리라
향일화向日花
-잃었던 아들이 돌아오다(녹15:11~32)
정순량
흐린 여러 날 동안 당신을 못 뵈은 채
주룩 주룩 비가 내리고 온 몸이 젖었는데도
마음은 떠돌이 구름 돌아 올 줄 모릅니다
나는 당신을 잊어도 당신께선 나를 못 잊어
하늘 밖 땅 끝까지 지켜보고 계시면서
언젠가 돌아올 날의 그 기약에 목멥니다
천둥치고 벼락 때려도 놀랄 줄 모르던 내가
문득 어느 날 밤 밝혀드는 말씀으로
오늘은 당신을 따라 지친 발 길 옮깁니다
바람 따라 구름 보내고 새 하늘 맑힌 후에
당신은 예처럼 미소 지어 반기오니
향일화 한 판 꽃으로 해를 쫓아 돌렵니다
무게에 대하여
구재기
무게를 가졌다는 것은
슬픈 일이다. 제 주어진 길을
가다가 멈춘 울산바위는 슬프다
멈춘다는 것은
제 무게로 제 자리를 가진다는 것
울산바위는 제 몸의 무게로
자리하여 멈추고는 마냥 슬프다
민들레꽃에게도 무게가 있다
그 꽃의 무게만큼
질기고 긴 곧은 뿌리를 가지고 있다
그 뿌리로 제 몸의 무게를 감당하다가
마침내 꽃을 피우고 씨를 맺는다
생애 중 가장 큰 무게를 가진
그 꽃자리에 돋아난 꽃씨
무게를 버리고 나니 가볍다
가벼울수록 멀리 날 수 있다
민들레 꽃씨는
바람과 함께 바람에 실려
울산바위 위를 가볍게 날아, 설악을 넘어
울산바위가 훤히 보이는 동해 바닷가
너르고 푸른 밭 언덕에 사뿐 자리했다
모래의 잠
이관묵
어제는
흰 눈 맞은 계룡산 연봉連峰 아래서
삼십년 전 제자들과 밤새 소주잔 높이 들었고
봉우리들 곁에 내 뜻 없는 삶을 꿇어 앉혔다
허옇게 마른 개울바닥에 마음 부딪치다가
바닥에 바싹 말라붙은 갈팡질팡한 물길로도 닿을 수 있는 마음이 있다는 것을
나는 왜 아직도 이해하지 못하는 건가
잠 덮어주고 혼자 거실로 나와 나를 따라 마신다
아까징끼 번진 상처처럼 피어 있는 불빛들
캄캄한 삶 기슭에 돋아난 부스럼들
저들을 무릎 아래 둘러앉히고 도대체 연봉連峰은 내게 또 어떤 하문下問을 놓는 건가
나는 또 저들에게 어떤 불빛으로 마주해야 하는 건가
퍼먹다 남은 안주냄비처럼 나는
식어버린 나를 삶 바깥으로 내 놓는다
龍山里
정진석
이슬을 행주질하고
봄조보리랑 눈情 나눈
햇살이 내울 건너
열리는 마을
山 66번지 바람에
밀리고 밀리는 독새풀이여
참새들은 풀파도를 타고
달구지 길 따라
山寺의 염불 내리고
씻김굿 巫女인 양
춤추고 鶴두루미
鶴춤에 고부라졌던 해가
소나무에 걸려
노을 가루가 날린다
들녘에 녹아드는 어스름
옥싸라기 뿌리듯
정갓길 청솔바람이
달빛을 흩이고 간다.
적소일지 4
- 부르는소리
김석환
와글거리던 개구리 합창이 잠시 멈춘 사이에 누가 부르는가 돌아누워 침대에 귀를 대 보면 지축이 흔들린다 몇 겹 지층을 뚫고 들려오는 굉음의 근원이 어디일까 천장이 흔들리고 벽이 기울며 홀연히 이는 회리바람에 모자와 옷이 벗겨지고 빈 내장이 드러난 채 쓰러져 눕는 허수아비의 허상
침대 밑 어둠 속에 나 몰래 누가 숨어 있는 것일까 살점이 벗겨지고 뼈마저 풀어져 흩어졌다 다시 돌아와 제 모습을 찾은 내 귀를 당기며 들릴 듯 말 듯 소곤거리는 그에게 가까이 귀를 댈수록 멀어지는 음성
내가 몇 켤레의 신발을 갈아 신으며 여기까지 왔는지 길을 걸어오면서 무슨 말을 했는지 다 알고 있다고 자백을 강요하다 두려워 떨고 있는 내게 이전 일은 다 덮어 줄테니 이름을 버리고 아침이 오면 새 이름표를 달고 새 길을 가라고 침묵으로 일러 주고 홀연히 사라지는 그의 행방
일어나 창문을 열어 보니 사자 별자리는 성큼 기울고 짙어지는 어둠 속 텃논 구석 웅덩이에 샘물이 솟아나는 소리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얼마 전 심어 놓은 모들이 땅 냄새를 맡으며 진흙 속으로 뿌리 내리는 소리뿐
영혼의 닻
김상환
달뜨지 않은 밤에 나는
심천 미루나무 숲속에 짐승처럼 쭈그리고 앉아
그리스도를 증거하는 타는 음성을 듣는다
원무를 그리며
우리를 에워싸고 있는
간증의 불꽃은 삼경을 지나
더욱 간절한 몸부림으로 떤다
나는 살을 쥐어 뜯으며
본향을 생각하다
꿈에만 출항하는 영혼의 뱃고동 소리에
시선이 멎다
어짜피 모래알처럼 부서질
너와 나는
일어나 숲속을 헤매이다,
깊이도 모를 바다의 숲속에
닻을 내린다
점등
변재열
그믐밤
한 녘
그어댄 성냥불
까만 방
튕겨 나와
꽃불 밝히는
적요寂寥
왜가리
김명아
정뱅이
용바위 숲 속
왜가리 마을
엄마 어디가
꾸르륵 끼룩
어딜 가긴
갔다 올게
왜가리
가을언덕
이은봉
은행나무 줄줄이 서 있는
월산리 가을 언덕
샛노란 죽음들 우수수 떨어져 내린다
가득가득 널브러져 쌓이는
샛노란 죽음들 밟는다
밝을 때마다 샛노란 냄새가 난다
샛노란 구린내가……
생명들 만들며
자연이 제 뱃속에서 밀어내는
지독한 냠새들이다
단단한 정신들이다
깊고 그윽한 알들이다
저 알들 진설해 놓고
제사 지내야지 기도해야지
진실한 기도 끝에 다시 태어나는
샛노란 사랑들
밟을수록 싱싱한 저 생명들!
승전목
류도혁
비가 내리네
이배산 굽이굽이 찔레꽃 지네.
지금도 구룡리 골목엔
왜적들 총탄 소리, 웃음소리 들리는데
저 호아토산에 무너져간 사람들
떨어져 하얗게 쌓이네.
푸른 하늘에 서러운 묘비명을 새기고
이제는 잊혀진 사람들.
채운벌 어디메쯤 다시 오고 있을까.
보덕포 흐린 바다에
맺힌 한을 씻고 있을까.
지금도 승전목에 가면
그 총탄소리 웃음소리 들리는데
비가 내리네.
잊혀진 이름들 위에
하염없이 꽃이 지네.
暴雪
전인순
살아생전 입맛만 다시던
맛 좋은 영광굴비
끄여 한 마리 잡숫지 못하고
외할머니 고만 돌아가시니
그것이 영 마음에 걸려
외삼촌은 볼일도 없으면서
장날이면 꼬박고박 장에 가시나
살아생전 못 잡숫고 돌아가신 외할머니의
허옇게 센 머리카락 같은
폭설 헤치며
노근리
전무용
봄이면 온 산에
진달래 철쭉 지천으로 피는 내 고향
앞산 자락에 죽어 있던
겨레의 가슴에 총 겨누며 내려온 젊은이들,
태평양 건너온 이국의 흑백 청년들,
그들은 알았을까,
자기들이무엇을 위항해서
왜 그 낯선 언덕에서 죽어야 했는지.
어릴 적에 동무들과 놀던
철도 쌍굴 다리 아래
그 시멘트 벽에 움푹움푹 패인 자국이
에므앙 총알 자국이라고 했지만,
우리는 아무도 몰랐다,
우리가 다니던 그 기차 공굴 길에
남녀 노소 할 것 없이
등에업힌 사람들
보따리 지게 솥단지 숟가락들과 뒤섞여
발 딛고 지나갈 틈도 없이
두 겹 세 겹으로 죽어 있었다는 것,
철길 위 곳곳에
흰 옷 입은 주검들 서넛 대여섯씩
지천으로 널려 있었다는 것,
우리는 아무도 몰랐다,
오십 년이 지나서야 입을 여신 아버지가
핏자국도 마르지 않은 수십 수백의
그 엄청난 주검들을 보셨다 하고
어머니는 쉬쉬하시면서도
피난 나선 사람들을 죽인 것이 누군지
마을 사람들은 다 알고 있었다 했다.
봄이면 온 산에 지천으로 피어나는
진달래 철쭉 붉은 자국이
그렇게 죽어가면서 남긴 핏자국인 것을
우리는 아무도 몰랐다, 오십년이 되도록
그 주검들이 내 어릴 적 동무들의
형제 친척들의 주검인 것을 몰랐다.
아버지의 주검이 될 수도 있었다는 것을
몰랐다, 몰랐다,. 몰랐다.
뒤적이다
이재무
망각에 익숙해진 나이
뒤적이는 일이 자주 생긴다
책을 읽어가다가 지나온 페이지를 뒤적이고
잃어버린 물건 때문에
거듭 동선을 뒤적이고
외출복이 마땅치 않아 옷장을 뒤적인다
바람이 풀잎을 뒤적이는 것을 보다가
햇살이 이파리를 뒤적이는 것을 보다가
달빛이 강물을 뒤적이는 것을 보다가
지난 사랑을 몰래 뒤적이기도 한다
뒤적인다는 것은
내 안에 너를 깊이 새겼다는 것
어제를 뒤적이는 일이 많은 자는
오늘 울고 있는 사람이다
새가 공중을 뒤적이며 날고 있다
당신의 물가에서
황재학
내가 당신의 물가에 가만히 발을 들여 놓으면
당신은 흙탕물을 피우고 돌 틈 사이로 몸을 숨깁니다
잠시 뒤 뿌옇게 흐려졌던 물이 다시 말개지면
나는 어린 아이처럼 당신이 몸을 숨기고 있을 돌을 찾아
조심스레 하나하나 들추어 봅니다
그러면 그 중 어느 하나의 돌 밑에서
물살에 투명한 몸을 맡기고 가만히 흔들리고 있는
아 당신은 거기에 그렇게 있었습니다.
내 사랑은 47
신웅순
누군가를
사랑하면
일생
섬이 된다
유난히
파도가 많고
유난히
바람이 많은 섬
그래서
가슴에는 평생
등불이
걸려 있다
추석
조기호
둥두렷이 달이 떴다
마을회관에 모인 우리는
풍장을 쳤다
꽹매기를 들고 힘껏 두드리지만
어느새 어깨에 힘이 빠졌다
홀어머니 모시고 농사짓는 산근이가
어느새 가져온 막걸리
한 대접씩 돌려 마시고
돼지고기를 씹어도
남은 우리들이 안쓰러웠다
도회지 나간 친구들은 모두 떠났다
제 집 가서 쉬겠다고 일찍 떠났다
달빛만 저 혼자 환했다
.♣.
============ ============
[목차]
■ 발간사
전체는 부분의 합보다 위대하다
김완하 시인. 한남문인회장
전체가 부분의 합보다 더 훌륭하다. 전체가 부분의 합보다 더 훌륭하다. 화합이 갈등을 이긴다. 현실이 사상보다 더 중요하다. 시간이 공간보다 우위에 있다. 이 말은 2014년 한국을 방문했던 프란치스코 교황께서 한 말입니다. 이 말은 총체성을 찾아보기 힘든 우리시대에 대한 진정한 메시지라 할 수 있습니다. 저는 이 말을 한남문학과 함께 생각할 때마다 더 큰 울림으로 다가옵니다. 그것이 바로 문학의 힘이고 우리 한남대학교 동문들의 힘이라 생각하기 때문입니다. 우리 대학은 개교 60주년을 맞이하였고 그것을 기념하는 의미를 이곳에 담고자 하였습니다.
한남대학교가 낳은 큰 성과 중에 하나로 문학의 활동을 들고 있습니다. 그동안 한남대학교는 중앙 일간지 신춘문예와 주요 문예지를 통해 수많은 시인과 작가들이 배출된 곳입니다. 최근에 한국문단의 권위 있는 가톨릭문학상, 소월시문학상, 시와시학상, 김수영문학상, 송수권문학상, 풀꽃문학상 등 유수한 문학상을 휩쓸고 있습니다. 그것은 그간에 우리 대학이 쌓아온 저력이자 새로운 동력으로 한남대학교 발전에 힘을 더할 것으로 생각합니다.
한남문인회 회원은 이제 200여 명을 훨씬 넘어서 있습니다. 이들은 전국에 흩어져 활동해 가며 각자의 문학세계를 일구어 우리 대학 동문들의 자부심과 긍지를 살리고 있습니다. 또 매년 등단을 통해 새로이 늘어나는 회원, 꾸준히 이어지는 작품 활동과 작품집 발간 등으로 펼치는 문학 활동은 그 자체로도 대단히 가치 있고 소중한 것입니다. 그리고 동문들이 함께 어울리며 큰 정신으로 이어갈 때 더 큰 의미로 작용한다고 믿습니다.
개교 60주년을 기념하는 『한남문학선집』은 긴 시간과 공을 들여 완성이 되었습니다. 여러회원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협조로 빛나는 성과를 이룬 것입니다. 이를 계기로 회원 간의 결속과 동문의 힘으로 한남대학교 발전에 큰 힘을 보탤 수 있을 것입니다. 그동안 선집이 발간될 수 있도록 도와주신 주변의 모든 분들게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이 책이 동문뿐만 아니라 우리 주변을 밝게 하는 한남정신의 작은 촛불이 될 수 있기를 기원합니다.
.♣.
=============== == = == ===============
한남문인회 [※1956~2016 한남문학선집※]
-
한남문학 60년사
김지숙
1. 들어가며
한남대학교의 역사는 1956년 3월, 미국 남 장로교 세계선교부 한국선교회 유지재단(이사장 인돈William A.Linton)이 4년제 ‘대전기독학관’을 설립하면서 시작되었다. 개교 당시 성문학과 120명, 영어영문학과 120명, 화학과 120명 등 총 360명의 학생들로 출발하였는데, 현재는 학생 수가 17,720명(2017.4.1 재적생 기준)에 이르는 대학으로 성장하였다.
학교의 발전과 더불어 한남대학교 출신 작가도 다수 배출되었다. 1959년, 우리대학 1호 작가로 알려져 있는 오승재 소설가의 《한국일보》신춘문예 등단을 시작으로 한남대학교 출신 작가는 현재 200여 명에 이른다.
전국 각지의 문단에서 활동하는 한남의 문인들이 한 자리에 모인 것은 1996년 4월 27일이었다. 당시 국어국문학과 박요순 명예교수를 중심으로 60여 명의 동문 작가들이 모여 동문 간 결속력을 바탕으로 진취적인 문학활동을 이어나가고자 ‘한남문우회 창립총회’를 가졌다. 이후 ‘한남문우회’는 1대 회장 도한호․ 2대 회장 신익호․ 3대 김완하 현 회장을 주축으로 우리 대학 출신문인들의 발전을 공동으로 모색하기 시작하였다.
‘한남문우회’가 본격적인 활동을 전개해 나가면서 1998년 7월에는 한남대학교 출신 문인들의 작품을 모아 『한남문학』창간호를 발행하였다. 『한남문학』의 창간은 한남문인의 응집력을 도모하고 문학적 발전을 함께 실천할 수 있는 문학의 장을 만들었다는 점에서 의의가 있다. 뿐만 아니라 앞으로 성장해 나가는 회원들의 문학적 성과를 충실히 담으면서 한남문학의 역사를 기록 할 수 있는 가능성을 열었다. 현재『한남문학』은 2집 (2003년 12월)․ 3집 (2006년 10월)․ 4집(2012년 12월)․ 5집(2015년 12월)으로 이어졌다.
2006년에는 한남대학교 개교 50주년을 맞이해 ‘한남문인상’이 제정되었다. 이은봉(운문 대상)․ 한창훈(산문대상)․윤선아(젊은작가상)가 제1회 수상의 영광을 안았으며 이후 2016년에는 한남대학교 개교 60주년을 맞아 회원들의 적극적인 의지와 중지가 모여 2017년 『한남문학선집』을 발행하게 되었다.
이러한 흐름 속에서 60여 년 동안 꾸준하게 한남 문학의 명맥을 이어온 작가들이 문단 활동을 시작하였던 시기의 기록을 모아 ‘한남문학 60년사’를 정리한다. 우리 대학 출신 문인들을 한 명 한 명 소개하고 조명하는 것이 옳겠지만 부득이 1959년 1월부터 2017년 9월까지 본격적인 작품활동을 시작한 문인 중 『한남문학선집』에 작품이 수록된 작가를 대상으로 했다는 점을 미리 밝힌다.
2. 한남문학의 형성(1950-70년대)
한남문학의 역사는 1950년대부터 시작되었다. 이 시기 한국 사회는 매우 혼란스러웠다. 1950년 6․25전쟁이 시작되면서 이데올로기에 대한 고민과 이로 인한 사회적 갈등이 최고조에 달하였다. 특히 대전은 문자 그대로 쑥대밭이었는데, 전쟁의 참혹한 피해 현장 속에서도 대전의 문인들과 서울에서 피난 온 문인들이 교류하며 활약하던 시기이기도 하였다. 대전에서는 1951년 11월 11일 공식적인 창립 행사를 가지면서 ‘호서문학회’가 만들어졌고 현재 이 단체는 한국 최고(最高)의 종합문학단체로 평가받고 있다.
1955년에는 ‘한국문학가협회 충남지부’가 결성되었다. ‘호서문학회’ 회원 중 중앙문단에 등단한 작가들이 ‘호서문학회’를 탈퇴하고 ‘한국문학가협회 충남지부’에 합류하면서 대전문단은 분열 양상을 보이고 있었는데, 대전 문단의 이러한 혼란한 분위기 속에서 한남대학교 역사의 시작인 ‘대전기독학관’이 설립되었다.
‘대전기독학관’이 정규 4년제 대학으로 승격된 것은 1959년 4월의 일이었는데, 그 해 1월은 한나문학의 역사가 태동한 시기이기도 하다. 수물과 오승재의 소설「제3부두」가《한국일보》신춘문예에 당선된 것이다. 1933년 전라남도 강진군에서 출생한 오승재 작가는 이후 미국 텍사스주립대에서 박사학위를 취득하고 모교 교수로 재직하다 1998년 정년퇴임을 한 작가로, 『아시아제』,『급매물 교회』,『신 없는 신 앞에』등 4권의 작품집과 9권의 에세이집 그리고 4권의 번역집을 펴냈다. 한국문학비평가협회 작가상과 한국장로문학상을 수상하였으며 ‘북한의 계관시인’으로 불리는 오영재 시인의 형으로도 알려져 있다. 이러한 실적으로 오승재 소설가는 제11회 한남문인상 특별상을 수상하였다.
1959년 4월에는 ‘대전기독학관’이 ‘대전대학’으로 교명을 변경하였고 이후 4․ 19혁명과 5․ 16군사정변으로 시작되는 1960년대가 이어졌다. 문단에서는 전쟁이라는 비극적 체험과 이데올로기의 격심한 대립으로 혼란스러웠던 사회 현상을 작품에 담아내려는 노력과 언어 형식의 실험 등을 통해 새로운 창작기법을 실현하려는 분위기가 형성되고 있었다. 동시에 문학의 전통과 순수를 지키려는 움직임도 나타났는데, 이처럼 한국문단이 다양한 흐름 속에 전개되었던 1960년대 한남문학사의 시작을 알린 것은 도한호 시인이다.
1939년 경상북도 경주 출생인 도한호 시인은 1962년 9월부터 《중도일보》에 매주 1편씩 40-50편의 시 작품을 발표하며 작가 활동을 시작하였는데 이후 1983년 『월간문학』신인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감격시대』,『나무를 심으며』,『언어유희』등의 작품집을 출간하였으며 2008년에는 한남문인상 대상을 수상하였다.
1964년 추천을 시작으로 1969년 3회 추천을 완료한 이운룡 시인은 1937년 진안 출생으로『현대문학』을 통해 등단하였다. 이후 문학평론가로도 활동한 그는『이운룡 시선집』외 단행본 15권, 이론서 11권을 냈으며 한국문학평론가협회상, 월간문학 동리상, 조연현문학상, 한성기문학상, 대한민국향토문학대상, 전라북도문화상 등을 수상하였다. 전북문학관장을 역임하였으며 우리 대학 국어국문학과 대학원을 졸업하였다.
1970년대에 들어서 우리대학은 당시 ‘소수정예의 질적 교육’이라는 설립목적과 이념이 동일했던 서울 소재 숭실대학과 통합을 진행하였다. 그리고 숭실의 ‘숭’자와 대전의 ‘전’자를 모아 교명을 ‘숭전대학교’로 변경하였다. 한국 최초 양 캠퍼스 체제의 시작이었다.
그즈음 한남 문단에서는 계속해서 시인들의 활약이 눈에 띄었다. 1973년『월간문학』을 통해 허형만 시인이 문단 활동을 시작하였는데 시집으로 『영혼의 눈』,『불타는 얼음』,『가벼운 빗방울』등 15권을 펴냈다. 한국예술상, 펜문학상, 한구시인협회상, 영량시문학상, 인산문학상 등을 수상하고 현재 목포대학교 명예교수이다.
1976년에는 권선옥 시인이 『현대시학』을 통해 등단하였다. 같은 해 정순량 시인은 《대구매일》과 『시조문학』천료를 통해 작가의 길로 들어서게 된다. 1978년에는『현대시학』을 통해 우리 대학 출신 두 명의 시인이 배출되었는데, 바로 구재기 시인과 이관묵 시인이었다. 다음 해인 1979년에는『현대문학』을 통해 정진석 시인이 창작 활동을 시작하였다. 정진석 시인은 이후 1986년『월간문학』평론 부문에 당선하면서 문학평론가의 길을 걷기도 하였다.
*1950~1970년대 등단 문인
연도 | 이름 | 장르 | 지면 |
1959 | 오승재 | 소설 | 한국일보 |
1961 | 도한호 | 시 | 중도일보 |
1969 | 이운룡 | 시 | 현대문학 |
1973 | 허형만 | 시 | 월간문학 |
1976 | 권선옥 | 시 | 현대시학 |
1976 | 정순량 | 시 | 대구매일 |
1978 | 구재기 | 시 | 현대시학 |
1978 | 이관묵 | 시 | 현대시학 |
1979 | 정진석 | 시 | 현대문학 |
3. 한남문학의 성장(1980년대)
1980년대를 이야기할 때 빼놓을 수 없는 것이 5․18 광주 민주화 운동이다. 광주시민과 전라남도민이 중심이 되어 민주 정부 수립과 전두환 보안사령관을 비롯한 신군부 세력의 퇴진 그리고 계엄령 철폐 등을 요구하면서 한국 사회는 억압에 대한 저항을 실천하고 민주화에 대한 강한 의지를 드러내게 된다. 이러한 과정 속에서 사회적 분노와 좌절 그리고 절망감이 극대화되고 동시에 우리 앞에 야기된 비극적 상황을 극복하려는 움직임이 끊임없이 나타났다.
우리 대학도 이 시기 새로운 국면을 맞는다. 1980년 캠퍼스의 봄을 맞이하여 숭전대학교 서울캠퍼스와 대전캠퍼스가 분리를 주장하여 성취하였다. 그리고 1982년 12월, 지역사회와 구성원들의 요구에 의해 ‘학교법인 대전기독학원’을 설립하고 교명을 ‘한남대학’으로 변경한 것이다. 곧이어 1985년 11월에는 종합대학으로 승격하여 지금의 ‘한남대학교’로 인가를 받게 되었다.
문학에서도 새로운 움직임이 나타나기 시작하였다. 신군부세력의 언론통폐합조치로『창작과 비평』․『문학과 지성』등 문학잡지들이 강제 폐간되었고, 기존 문예지가 보수적이라는 생각을 갖는 작가들이 나타나기 시작하면서 무크지 운동이 전개된 것이다. 책과 잡지의 성격을 동시에 지닌 부정기간행물인 무크지는 강한 현장성과 기동성 그리고 문화 게릴라적 성격을 바탕으로 작가들의 현실에 대한 비판정신과 진보적 이념을 담기 시작하였다.
이 시기 한남 문단에는『실천문학』․『삶의 문학』등 무크지를 비롯한 다양한 문예지를 통해 작품활동을 시작한 작가들이 늘어나면서 오늘날 한남문학사를 성장시키는 원동력이 된다. 1981년에는 다섯 명의 문인이 등장하는데 『월간문학』의 김상환 시인․『충청일보』의 김석환 시인․『현대문학』의 변재열 시인․『현대문학』의 신익호 문학평론가․『창 그리고 벽』의 전인순 시인이다. 눈에 띄는 것은 문학평론가의 등장인데, 1980년대 한국 문단은 ‘비평의 시대’라 불릴 만큼 비평문학이 활성화된 시기이기도 하였다. 1970년까지만 해도 문학비평은 몇 몇의 경우를 제외하고는 대부분 외국문학을 전공한 사람들이 중심이 되어 있었다. 그러다 1980년대에 들어 국문학 전공자들의 평론 활동이 시작되고 무크지를 비롯한 다양한 문예지들의 등장으로 작품 발표 지면이 확대되면서 신진 평론가들의 활동이 활성화되었다.
1982년에는 『호서문학』을 통해 김명아 시인이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고, 이어 1983년에는 강병철 소설가와 김미영 소설가가『삶의 문학』으로 등단하였다. 같은 해 김영호 문학평론가는 창비에서 펴낸『한국문학의 현단계Ⅲ』에 작품을 발표하면서 본격적인 평론활동을 시작하였다. 그리고 이 시기 한남 문단에는 아동문학이 등장하였는데, 1983년 『아동문예』를 통해 아동문학가 박진용이 작가로서의 길을 걷는다. 같은 해 연용흠 소설가는 《중앙일보》를 통해 등단하며 한남문학사의 시작을 알린 오승재를 비롯하여 강병철․ 김미영으로 이어지는 소설사의 명맥을 이어나갔고 이은봉 시인․ 이재무 시인․ 전무용 시인․ 조기호 시인․ 채진홍 소설가는『삶의 문학』에서 문학적 역량을 펼쳐나갔다. 주목할만한 점은『삶의 문학』을 통해 많은 작가들이 배출되었다는 것인데, 당시『삶의 문학』은 1978년 창간되어 1982년 4호로 종간한『창 그리고 벽』의 정신을 계승하며 대전․ 충남 지역의 현실주의 문학을 이끌어나가고 있었다. 그리고 이러한 문학적 흐름의 중심에는 우리 대학 출신 작가들의 활약이 있었던 것이다.
1984년에는 백남천 시인이『월간문학』․ 황재학 시인이『삶의문학』으로 등단하였고, 1985년에는 신웅순 시조시인이『시조문학』․ 안용산 시인이『좌도시』․김영숙 시인이『시문학』을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1985년은 《대전일보》가 대전지역 최초로 신춘문예 작품을 공모하여 당선자를 배출하던 해였는데, 이는 우리 대학 출신들이 지역 신문사를 통해 작품 활동을 시작하는 계기가 되기도 하였다.
1987년에는 김완하 시인이『문학사상』으로 등단하며 현실의식을 바탕으로 서정성을 추구하는 신서정의 작품을 발표하기 시작하였고, 같은 해 박순길은『시문학』을 통해 한남의 시문학사를 이어나갔다. 이어 서울 올림픽대회가 열렸던 1988년에는 김광순 시조시인이 《충청일보》로 등단하였으며 1989년에는『한맥문학』에 문희봉 시인․『심상』에 송계헌 시인․『실천문학』에 이강산 시인․『시와 의식』에 이돈주 시인이 등단하며 1980년대 한남문학사 성장의 주춧돌이 되었다.
1980년대에는 희곡 장르에서의 활동도 눈에 띄는데, 이 시기부터 도완석 극작가는 지역 연극 활성화를 위해 노력하며 100여 편의 연극을 연출하고 드라마와 희곡을 집필하는 등 활발한 활동을 펼쳐오고 있다.
*1980년대 등단 문인
연도 | 이름 | 장르 | 지면 |
1981 | 김상환 | 시 | 월간문학 |
1981 | 김석환 | 시 | 충청일보 |
1981 | 변재열 | 시 | 현대문학 |
1981 | 신익호 | 문학평론 | 현대문학 |
1981 | 전인순 | 시 | 창그리고벽 |
1982 | 김명아 | 시 | 호서문학 |
1983 | 강병철 | 소설 | 삶의문학 |
1983 | 김미영 | 소설 | 삶의문학 |
1983 | 김영호 | 문학평론 | 창비 |
1983 | 박진용 | 아동문학 | 아동문예 |
1983 | 연용흠 | 소설 | 중앙일보 |
1983 | 이재무 | 시 | 삶의문학 |
1983 | 전무용 | 시 | 삶의문학 |
1983 | 이은봉 | 시 | 삶의문학 |
1983 | 조기호 | 시 | 삶의문학 |
1983 | 채진홍 | 소설 | 삶의문학 |
1984 | 백남천 | 시 | 월간문학 |
1984 | 윤중호 | 시 | 실천문학 |
1984 | 황재학 | 시 | 삶의문학 |
1985 | 신웅순 | 시조 | 시조문학 |
1985 | 안용산 | 소설 | 좌도시 |
1985 | 김영숙 | 시 | 시문학 |
1987 | 김완하 | 시 | 문학사상 |
1987 | 박순길 | 시 | 시문학 |
1988 | 김광순 | 시조 | 충청일보 |
1989 | 문희봉 | 시 | 한맥문학 |
1989 | 송계헌 | 시 | 심상 |
1989 | 이강산 | 시 | 실천문학 |
1989 | 이돈주 | 시 | 시와의식 |
1980년대 | 도완석 | 희곡 | - |
4. 한남문학의 다양화(1990년대)
1989년 1월 1일, 하나의 행정권이었던 대전과 충청남도가 분리되면서 1990년의 길목으로 들어서는 이 시기 대전 문단에는 많은 변화가 있었다. 먼저 문인협회의 분리작업이 진행되었는데, 1989년 4월 23일 ‘한국문인협회 대전직할시지부’가 창립총회를 가졌다. 더불어 대전의 문인들은 20호까지 발행되었던『충남문학』과 결별하고『대전문학』창간호를 발간하였다. 이 시기『대전시단』이 창간되고 장르별 문학단체로는 ‘대전아동문학회’가 만들어졌으며 1990년에는 ‘대전문인총연합회’의 창립과『문학시대』의 발간이 이어지는 등 대전 문단에 다양한 움직임이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한국 사회는 정치적 억압과 긴장이 선명했던 시기를 힘겹게 지나고 있었고, 자연스럽게 문학작품 속에서도 사회 문제보다는 개인 실존에 대한 물음과 삶에 대한 고민 그리고 미학적인 탐문을 지속하는 작품들이 발표되었다.
이처럼 변화의 움직임과 새로운 시도들이 끊임없이 이어졌던 1990년대 한남문단은 1950~1970년대의 형성기와 1980년대의 성장기를 바탕으로 문학의 다양화를 꾀했던 시기였다. 이 시기 작품 활동을 시작한 작가들을 살펴보면 시․소설․동시․동화․문학평론 등 다양한 장르에서의 활동이 눈에 띄며 등단 지면도 확대된 것을 알 수 있다.
먼저 1990년대 한남 문단에 첫 발을 내딛은 것은 1990년 《중앙일보》신춘문예를 통해 등단한 임영봉 시인이었다. 바로 이어 1991년에는 월간 『아동문학』을 통해 김숙자가 아동문학가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고 이면우 시인은 시집『저 석양』을 펴내며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1992년 이봉직 아동문학가는《동아일보》에 당선되었고 한창훈 소설가는 《대전일보》에 단편소설「닻」이 당선되며 작품 활동을 이어나갔다. 1993년에는 여섯 명의 작가가 배출되었는데, 먼저 김해미 소설가는 《대전일보》를 통해 작품성을 인정받았으며 박헌영 시인은 시집『나 사는 집』을 발간하며 본격적인 창작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어 빈명숙 시인은『문예한국』․정덕재 시인은 《경향신문》․함순례 시인은 『시와 사회』․안일상 소설가는『문예사조』를 통해 등단하며 다원화된 시대 속에 자기 개성을 담은 작품들을 발표하였다.
1994년에는 안용산 시인과 주용일 시인이 등단한다. 안용산은『실천문학』을 통해 다시 작품성을 인정받았고 주용일은『현대문학』을 통해 시인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어 1995년에는 이섬 시인이 《국민일보》국민문학상에 당선되었고 이은심 시인이 《대전일보》를 통해 등단하였다.
1996년은 한남대학교가 교육부로부터 교육개혁우수대학에 선정되고 한국대학교육협의회 주간대학종합평가 우수대학으로 선정되는 등 대외적으로 그 우수성을 인정받는 해였다. 그리고 그해 4월, 국어국문학과 명예교수였던 故 박요순 선생의 제안으로 동문 작가 60여 명이 모여 ‘한남문우회 창립총회’를 개최하고 ‘한남문우회’를 발족하는 등 우리 대학 출신 문인들의 발전과 문학의 진취적 활동을 공동으로 모색하기 위한 활동이 전개되었다. 이러한 한남 문단의 다양한 모색안에서 임익문 시인은『문학21』로 조완수 시인은『창조문학』으로 등단하며 이름을 알렸다.
다음 해 1997년에는 조해옥이 《서울신문》 신춘문예에 당선하면서 1981년 신익호, 1983년 김영호로 이어졌던 평론 문단의 명맥을 이어나갔다. 그리고 이 시기에 여섯 명의 시인이 나타났는데, 1998년 김동준(오늘의 문학)․ 양선규(현대시학)․윤임수(실천문학), 1999년 고완수(동양일보)․안후영(한맥문학)․이현옥(조선문학)이 그들이다. 그 사이 1998년 7월에는 『한남문학』이 창간되면서 한남문학사의 새로운 지평을 열었다.
*1990년대 등단 문인
연도 | 이름 | 장르 | 지면 |
1990 | 임영봉 | 시 | 중앙일보 |
1991 | 김숙자 | 아동문학 | 아동문학 |
1991 | 이면우 | 시 | 『저 석양』출간 |
1992 | 이봉직 | 아동문학 | 동아일보 |
1992 | 한창훈 | 소설 | 대전일보 |
1993 | 김해미 | 소설 | 대전일보 |
1993 | 박헌영 | 시 | 『나 사는집』출간 |
1993 | 정덕재 | 시 | 경향신문 |
1993 | 함순례 | 시 | 시와 사회 |
1993 | 안일상 | 소설 | 문예사조 |
1994 | 안용산 | 시 | 실천문학 |
1994 | 주용일 | 시 | 현대문학 |
1995 | 이 섬 | 시 | 국민일보(국민문학상) |
1995 | 이은심 | 시 | 대전일보 |
1996 | 임익문 | 시 | 문학21 |
1996 | 조완수 | 시 | 창조문학 |
1997 | 조해옥 | 문학평론 | 서울신문 |
1998 | 김동준 | 시 | 오늘의문학 |
1998 | 양선규 | 시 | 현대시학 |
1998 | 윤임수 | 시 | 실천문학 |
1999 | 고완수 | 시 | 동양일보 |
1999 | 안후영 | 시 | 한맥문학 |
1999 | 이현옥 | 시 | 조선문학 |
1980년대 | 도완석 | 희곡 | - |
5. 한남문학의 융성(2000년대 이후)
2000년대 이후의 문학은 현재 진행 중이다. 문학은 고정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끊임없이 움직이고 변화하며 새로운 의미를 찾아다닌다. 2000년대 이후의 문학이 지니고 있는 이러한 변화의 속성 때문에 이 시기의 문학사를 개관한다는 것은 어려운 일이다. 그러나 2017년 현재까지 진행된 한남 문단의 흐름을 되짚어 보면 신진 작가의 활약이 60여 년 동안 이어져온 한남문학사의 전개를 탄탄하게 이어나가고 있음을 확인해 볼 수 있다.
2000년에는 우리 대학에 문예창작학과가 신설되면서 문학에 대한 관심이 증폭되었는데, 특히 창작에 대한 작가로서의 고민뿐만 아니라 창작 방법론에 대한 학문적인 접근과 체계적인 연구가 활성화되면서 한남 문단도 한층 활기를 띄었다. 첫 번째 교수로 부임한 김완하 시인의 노력으로 많은 제자들이 문단으로 진출하기 시작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먼저 이강철 시인이 2000년『오늘의 문학』을 통해 작가 활동을 시작하였고, 2001년에는 강흥수 시인(시집 발간)․ 길상호 시인(한국일보)․ 노금선 시인(오늘의 문학)․ 이가희 시인(대전일보)․ 이명식 시인(아동문예)이 문단에 나왔다.
2002년에는 세 명의 시인이 배출되었는데, 김숙과 정대중은 『문학사랑』을 통해, 양인경은『시현실』을 통해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어 2003년에는 박세아 시인이『포스트모던』에 작품을 발표하였고, 양동길 시인과 오희용 시인은 각각 작품집『무지랭이의 노래』와『박꽃』을 펴내며 주목을 받았다.
한남대학교 문예창작과 교수 김홍진은 2004년 『시와정신』을 통해 등단하며 문학평론가 활동을 시작하였다. 같은 해 안현심 시인은『불교문예』로 등단했는데 이후 2010년에는『유심』에 평론이 당선되면서 시창작과 평론창작 활동을 활발하게 전개해 나가고 있다. 2004년 오유정과 윤선아는『시를 사랑하는 사람들』을 통해 문단에 나왔다. 특히 윤선아는 우리 대학 문예창작과 1기 졸업생인 동시에 첫 등단자로 주목을 받았다.
2005년에도 문학적 성과는 이어졌는데 특히 아동문학 분야에서의 활동이 주목할 만했다. 먼저 오진원이 장편동화『플로라의 비밀』로 역대 최연소 대산창작기금을 받으며 한남의 위상을 높였고, 같은 해 임선아 역시 《조선일보》신춘문예 당선을 통해 동화작가로서의 길을 걷기 시작하였다. 두 명의 시인과 한 명의 문학평론가도 있었다. 김종익 시인은『문예연구』로 정용재 시인은『시와정신』으로 등단하며 문학적 성과를 이뤘으며 천영숙 문학평론가는『문제연구』를 통해 본격적인 작품 활동을 시작하였다.
2006년에는 한남대학교 개교 50주년을 맞아 ‘한남문인상’을 제정하였다. 현재까지 36명의 문인이 수상하였으며 연도별 수상 내역은 다음과 같다.
*한남문인상 수상 문인
회차 | 연도 | 부문 | 수상 작가 |
제1회 | 2006 | 운문대상 | 이은봉 |
산문대상 | 한창훈 | ||
젊은 작가상 | 윤선아 | ||
제2회 | 2007 | 젊은 작가상 | 오진원 |
제3회 | 2008 | 운문대상 | 도한호 |
산문대상 | 강병철 | ||
젊은작가상 | 노금선 | ||
제4회 | 2009 | 운문대상 | 구재기 |
산문대상 | 조혜옥 | ||
젊은작가상 | 최창수 | ||
제5회 | 2010 | 운문대상 | 이재무 |
산문대상 | 김조년 | ||
젊은작가상 | 손 미 | ||
제6회 | 2011 | 운문대상 | 허형만 |
운문대상 | 정순량 | ||
젊은작가상 | 임선아 | ||
제7회 | 2012 | 운문대상 | 김석환 |
아동문학대상 | 이봉직 | ||
젊은작가상 | 안현심 | ||
제8회 | 2013 | 운문대상 | 이관묵 |
운문대상 | 신웅순 | ||
젊은작가상 | 성은주 | ||
제9회 | 2014 | 운문대상 | 함순례 |
산문대상 | 김영호 | ||
젊은작가상 | 전건호 | ||
제10회 | 2015 | 운문대상 | 길상호 |
산문대상 | 이강산 | ||
젊은작가상 | 신영현 | ||
제11회 | 2016 | 특별상 | 오승재 |
운문대상 | 안용산 | ||
운문대상 | 김광순 | ||
젊은작가상 | 김명이 | ||
제12회 | 2017 | 특별상 | 도완석 |
운문대상 | 정진석 | ||
운문대상 | 천영숙 | ||
젊은작가상 | 박송이 |
‘한남문인상’이 제정되었던 2006년 『문예연구』에 김은순의 시와 최창수의 소설이 당선되었고, 같은 해 전건호 시인은『시와정신』을 통해 문단에 나왔다. 2007년에는 백명자 수필가(문학세계)․ 이태진 시인(문학사랑)․이혜경 시인(문예연구)이, 2008년에는 김종덕(시와 정신)․신영연(시에)․ 이장근(매일신문)․ 조재숙(시와정신)․ 한정근(시와세계)이 시를 통해 문단활동을 시작하였다.
2009년에는 손미 시인이『문학사상』신인상을 수상하였는데 이후 김수영문학상을 수상하는 등 활발한 창작활동을 펼치고 있으며 같은 해 신현자 시인이『월간한울』, 이광석 시인이『오늘의문학』을 통해 등단하였다. 한기훈은 우석동화문학상을 수상하며 아동문학가로서의 활동을 시작하였다.
이어 2010년에는 일곱 명의 시인이 주목을 받았다. 먼저 강은미 시조시인은『현대시학』을 통해 문단에 나왔고, 김명이(호서문학)․ 김채운(시에)․ 박인정(작가마당)․ 박정선(호서문학)․ 백혜옥(시와정신)․성은주(조선일보)가 한남문단에 합류하였다. 특히 성은주의 등단은 문예창작학과 졸업생으로서 첫 번째 신춘문예당선이었다.
2011년에는 구지혜((시와정신)․ 노수승(문학시대)․ 도복희(문학사상)․ 박송이(한국일보)․ 설동호(서울인문학)시인이 등장했으며 같은 해 이순진은『강원일보』신춘문예에 당선되며 아동문학의 명맥을 이었다.
2012년부터 현재 2017년까지는 12명의 등단자 모두가 시 장르에서 두각을 나타냈다. 박영섭(대전문인협회)․ 박한라(내일을여는작가)․ 우기식(시와정신)․ 곽은희(시와정신)․ 배세복(광주일보)․ 정우석(시와정신)․ 오영미(시와정신)․ 장용자(시선)․ 김선환(문학사랑)․ 박은주(애지)․ 김다은(시와정신)․ 박종영(시와정신)등 신진 작가들이 앞으로 지속될 한남문학사의 든든한 버팀목이 되기를 기대한다.
*2000년대 이후 등단 문인
연도 | 이름 | 장르 | 지면 |
2000 | 이강철 | 시 | 오늘의문학 |
2001 | 강흥수 | 시 | 『마지막불러보는그대』출간 |
2001 | 길상호 | 시 | 한국일보 |
2001 | 노금선 | 시 | 오늘의문학 |
2001 | 이가희 | 시 | 대전일보 |
2001 | 이명식 | 시 | 아동문예 |
2002 | 김 숙 | 시 | 문학사랑 |
2002 | 양인경 | 시 | 시현실 |
2002 | 정대중 | 시 | 문학사랑 |
2003 | 박세아 | 시 | 포스트모던 |
2003 | 양동길 | 시 | 『무지랭이의노래』출간 |
2003 | 오희용 | 시 | 『박꽃』출간 |
2004 | 김홍진 | 문학평론 | 시와정신 |
2004 | 안현심 | 시 | 불교문예 |
2004 | 오유정 | 시 | 시를사랑하는사람들 |
2005 | 김종익 | 시 | 문예연구 |
2005 | 오진원 | 아동문학 | 『플로라의비밀』출간 |
2005 | 임선아 | 아동문학 | 조선일보 |
2005 | 정용재 | 시 | 시와정신 |
2005 | 천영숙 | 문학평론 | 문예연구 |
2006 | 김은순 | 시 | 문예연구 |
2006 | 전건호 | 시 | 시와정신 |
2006 | 최창수 | 소설 | 문예연구 |
2007 | 백명자 | 수필 | 문학세계 |
2007 | 이태진 | 시 | 문학사랑 |
2007 | 이혜경 | 시 | 문예연구 |
2008 | 구삼리 | 수필 | 국제문인협회 |
2008 | 김종덕 | 시 | 시와정신 |
2008 | 신영연 | 시 | 시에 |
2008 | 이장근 | 시 | 매일신문 |
2008 | 조재숙 | 시 | 시와정신 |
2008 | 한정근 | 시 | 시와세계 |
2009 | 손 미 | 시 | 문학사상 |
2009 | 신현자 | 시 | 월간한올 |
2009 | 이광석 | 시 | 오늘의문학 |
2009 | 한기훈 | 아동문학 | 우석동화문학상수상 |
2010 | 강은미 | 시조 | 현대시학 |
2010 | 김명이 | 시 | 호서문학 |
2010 | 김채운 | 시 | 시에 |
2010 | 박인정 | 시 | 작가마당 |
2010 | 박정선 | 시 | 호서문학 |
2010 | 백혜옥 | 시 | 시와정신 |
2010 | 성은주 | 시 | 조선일보 |
2011 | 구지혜 | 시 | 시와정신 |
2011 | 노주승 | 시 | 문학시대 |
2011 | 도복희 | 시 | 문학사상 |
2011 | 박송이 | 시 | 한국일보 |
2011 | 설동호 | 시 | 서울인문학 |
2011 | 이순진 | 아동문학 | 강원일보 |
2012 | 박영섭 | 시 | 대전문인협회 |
2012 | 박한라 | 시 | 내일을여는작가 |
2012 | 우기식 | 시 | 시와정신 |
2014 | 곽은희 | 시 | 시와정신 |
2014 | 배세복 | 시 | 광주일보 |
2014 | 정우석 | 시 | 시와정신 |
2015 | 오영미 | 시 | 시와정신 |
2015 | 장용자 | 시 | 시선 |
2015 | 김선환 | 시조 | 문학사랑 |
2016 | 박은주 | 시 | 애지 |
2016 | 김다은 | 시 | 시와정신 |
2017 | 박종영 | 시 | 시와정신 |
6. 나오며
지금까지 한남대학교의 역사와 더불어 60년간 꾸준하게 발전을 이어온 한남문학사를 개관해 보았다. 1950년대 오승재 소설가로부터 시작된 한남문학의 태동은 한국전쟁 이후 혼란했던 사회적 분위기 속에서도 한남문학의 오랜 역사와 전통을 지켜나갈 문학의 뿌리를 만들었다. 1950년대부터 1970년대까지 이어진 이 시기를 한남문학의 형성기로 보았다.
이어서 1980년대에는 언론통폐합조치로 주요 문예지들이 강제 폐간되는 상황 속에서 기존 문예지가 가지고 있던 문제점들을 보완한 새로운 형태의 문학잡지가 모색되던 시기였다. 그 결과 작가들이 작품을 발표할 수 있는 지면이 확대되면서 다양한 문예지를 통해 작품을 발표하며 창작 활동을 시작한 문인 또한 늘어나게 되었다. 이 시기 등단한 문인들은 한남문학의 성장기를 만들며 현재 한남문학의 명맥을 이어나가는 중심인물들로 성장하였다.
1990년대에는 한남문단의 형성과 성장을 바탕으로 변화의 움직임과 새로운 시도가 끊임없이 이어져 한남문학의 다양화를 꾀하던 시기였다. 1990년대 작품 활동을 시작한 작가들을 살펴보면 장르와 등단 지면이 이전 시대보다 확대되어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었다.
2000년대 이후에는 신진 문인들의 등장과 활약이 눈에 띄었다. 특히 우리 대학 내 문예창작학과가 신설되면서 창작방법론에 대한 학문적인 접근과 체계적인 연구가 활성화된 것을 확인해 볼 수 있었다. 더불어 2017년부터는 국어국문학과와 문예창작학과가 통합되어 국어국문창작학과로 운영되면서 문학 이론과 창작 활동의 교류가 보다 활발해졌다. 이 시기 등단한 문인은 70여 명에 이르며 60여 년 동안 쌓아온 한남문학의 역사를 탄탄하게 이어나가고 있다는 데 큰 의의가 있다고 하겠다.
한남문학사의 흐름을 읽는 과정에서 동문 문인들의 다양한 문학적 실험과 성과를 함께 확인할 수 있었다. 200여명에 이르는 우리 대학 출신 문인들이 추구해온 개인의 역사는 곧 한남문학의 역사이며 전통이 된다. 앞으로 ‘한남문우회’와 그들이 만들어가는『한남문학』을 통해 한남문학의 역사와 전통이 더욱 발전하기를 기대해 본다.
그동안 한남대학교 동문 문인들이 일궈온 문학적 성과는 한남을 넘어 한국문학 전체의 큰 틀 속에서도 하나의 빛나는 업적으로 평가될 수 있다. 이제 21세기의 새로운 지평 속에서 한남문학은 한층 도약하여 세계문학 속으로 웅비하는 계기가 마련되기를 기대해 본다.★.
.♣.
=================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