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하루 일과 중 걸으면서 명상하기를 좋아한다. 평일 근무 때는 틈이 쉽지 않아도 가급적 시간을 내려고 노력한다. 주말이나 방학이면 여유가 있어 자유롭다. 아파트 베란다에 제대로 된 화분 하나 가꾸지 않아도 내 마음 속 정원은 아주 넓다. 산책 방향을 사림동이나 용호동 주택가를 잡으면 그렇다. 이른 봄 매화와 목련부터 라일락이나 넝쿨장미까지 한껏 감상한다. 가을의 포도송이나 조롱박도 울 너머 느긋하게 감상한다.
주택가 남의 화초나 송이를 감상하기는 아무래도 인적이 뜸한 아침 시간이 알맞다. 이때 우유나 신문을 넣는 부지런한 사람들도 만난다. 대개 아주머니나 아저씨이나 일선에서 물러난 나이든 분도 있었다. 예전 같이 야학하듯 청소년들이 활동하는 경우는 드물었다. 한 번은 울타리 장미꽃 송이를 멍히 바라보는데 덩치 큰 개가 와락 달려 나왔을 때였다. 그때 얼마나 놀랐었던지 간이 철렁했다.
주택가 정원을 내 집 정원 구경하듯 공짜로 하는 감상도 겨울은 재미없다. 동백이나 향나무 같이 상록수가 있어도 삭막할 수밖에 없다. 반짝 소한 추위가 왔다간 후 날씨가 풀려 겨울비가 살짝 내리는 어느 날이었다. 마음 둔 산행을 가기가 어중간했다. 어떤 모임에서 맡고 있는 회지 편집을 마무리했다. 그러고도 오후엔 시간 여유가 있어 우산을 들고 집을 나섰다. 우산을 폈다가 다시 접을 정도의 실비였다.
자주 가지 않은 방향을 잡았다. 기능대학 후문에서 창원여고 뒷동산으로 들어갔다. 여기는 평소에는 시간대 구분 없이 산책객이 더러 오가는 곳이다. 그런데 이날은 비가 살짝 오는지라 산책 나선 사람들이 드물었다. 산책길에서 딱 한 분 할머니를 만났다. 이날 산책은 도심 속 새소리를 들을 수 좋은 기회였다. 도시에서까지 애물단지인 까치와 사람이 주는 모이에 익숙한 ‘닭둘기’라는 비둘기는 예외로 하자.
“아침에 일찍 일어난 새가 모이를 먼저 차지한다.” 그만큼 새는 밤에 둥지에 들고 이른 아침부터 활동한다. 그러기에 “낮 말은 새가 듣고 밤 말은 쥐가 듣는다.”는 속담이 있다. 이날은 아침부터 비가 부슬부슬해서 일찍 일어난 새나 늦게 일어난 새나 별 차가 없었을 것이다. 새들을 관찰하려면 당연히 활동을 많이 하는 아침에 개체수를 많이 볼 수 있다. 텃새라도 겨울철이 다른 계절보다 나뭇잎들이 없기에 사람들 눈에 쉽게 띈다.
도심 공원 숲길엔 아침 산책객들이 많은지라 제 영역에 사는 텃새라도 노출을 조심한다. 그래서 일반 시민들은 숲을 스치면서도 텃새들의 활동에 무관심하고 눈길도 주지 않은 것이다. 나는 실비 오는 겨울 오후 도심 야산을 걸었다. 새들의 청아한 소리를 호젓하게 들은 멋진 산책을 했다. 아주 몸집이 작은 쇠딱따구리가 ‘또르르 딱딱’하면서 연이어 썩은 나무둥치를 쪼고 있었다. 박새인지 곤줄박이인지 모를 새들도 '찌르르 찍찍' 지저귀고 있었다.
새가 서식하는 생태계는 그래도 아직 오염이 덜 되었다는 증표다. 내가 사는 도시 대기나 수질이나 토양이 오염이 안 되었을 리 없다. 아파트 불빛과 자동차 매연에도 불구하고 도심 산책길에서 새소리를 들을 수 있다는 다행한 일이다. 비오는 겨울날 오후, 인적 드문 도심 야산에서 청아한 새소리를 혼자 들으며 걸었다. 평소같이 사람들이 우르르 다녔다면 나타날 새도 아닐 것이다. 때맞추어 산책 방향을 이곳으로 잡은 것이 다행이라 생각했다.
새들이 지저귀는 소리는 제각각 달랐다. 모이가 있다고 가족에 알리는 소리. 위험하다는 신호로 보내는 소리. 은밀한 사랑을 고백하는 소리. 귀여운 제 새끼를 찾는 소리. 이제 둥지로 가자는 소리 등 다양했을 것이다. 나는 발걸음 소리 죽여 숲에서 한동안 머물다 극동방송국 있는 사거리까지 닿았다. 아직 여운이 남아 다시 되돌아 가보려다 생각을 바꾸었다. 사거리 신호를 건너 늘푸른전당 방향을 택했다.
충혼탑 뒤를 돌아 야트막한 야산으로 올랐다. 역시 인적 드문 산책길이었다. 아까보다 개체수가 좀 적어도 새들이 지저귐에 귀가 즐거웠다. 바로 곁에서 덩치 큰 까투리가 퍼드덕 날아올랐다. 골프연습장 그물망 안에서 운동하는 사람들이 부럽지 않았다. 이 세상이 내가 보살피는 새장이라는 생각에 미치자 어깨가 으쓱했다. 대숲 집으로 돌아온 새들은 잠들기 전까지 종알거릴 것이다. 창원컨벤션센터 건물 뒤의 숲까지 연장해서 들었다. 귀는 당분간 씻지 않으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