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공주시 태화산(활인봉.423m & 나발봉.417m)을 가다.
글 쓴 이 旲 熀 高 達 五
8월23일 조석(朝夕)으로는 제법 시원해 져서 긴 소매옷을 입고 나선다. 반월당, 반고개, 서남시장, 성서홈플러스를 거쳐 칠곡IC를 최종 벗어나니 앉을자리가 모자란다.(52명)
칠곡휴게소에서 간단한 조식을 할 동안 주위를 둘러보니, 넓은 광장에는 대 소형차들로 넘쳐나고 대형버스 전면에는 산악회와 결혼식에 동원됀 차들이 울긋~불긋~ 전광판을 반짝이며 어지럽게 움직인다.
지금 한반도는 북의 무력도발로 인하여 南 北간에 군사적 긴장감이 팽배하여 일촉즉발(一觸卽發)의 위기감속에서 판문점에서는 ‘南北 고위급회담’이 열리고 있는데, 세속(世俗)의 분위기는 너무나 조용합니다. 우리 군(軍)에 대한 믿음인가? 아니면 무관심인가? 모든게 잘 될것이라는 바램일 것이다!
차는 신나게 달려 옥천휴게소에서 잠시 휴식한 다음 마곡사(麻谷寺) 주차장에 당도하니 시계는 10시를 조금 지나있다. 넓은 광장에는 이른 시간인데도 차와 사람들로 넘쳐나고 사하촌(寺下村)의 상점들은 손님 맞이에 분주하시다.
모든님들이 “공주시 관광안내판”을 배경삼아 단체로 기념촬영을 마치고 일렬로 줄지어 진행하시니 선두와 후미가 어찌나 긴지 끝간데를 모르겠슴니다. 5~6분을 걸어서 일주문 근처에 이르니 도로 좌우측으로는 산나물과 이곳의 농산물을 판매하는 아줌씨들이 구경해 보시라고 손짓을 하신다!
일주문을 배경으로 모처럼만에 참석하신 염종우님과 서부장님에게 사진촬영을 해 드리고 한참을 나아가니, 숲 사이로 저만큼 마곡사의 극락교(極樂橋)에 연화등(蓮花燈)이 오색(五色)으로 찬란하다.
들머리에 “영은암, 泰華山 麻谷寺”라는 이끼 낀 돌비석을 지나 좌측 둔덕 위에는 근래에 지은 다루정(茶樓亭)이 비켜서 있고, 그 옆으로 경사진 언덕에는 상사화(相思花:꽃무릇)가 무리를 지어서 자태를 뽐내고 있다.
작은개울 옆에는 활인봉으로 가는 이정표가 서 있어 진행에 한결 수월하며, 후미에 벽송대장님을 비롯하여 디카맨 김해진님, 황까페지기님, 박태옥님, 능선님 등 이 도착하여 함께 오르시니 언제나 든든 합니다.
가는 여름이 아쉬운지 숲속의 매미는 목청껏 노래하고 하늘은 푸르고 높아서 초가을의 정취를 느끼게 합니다. 산행 시작 후 2~30분간은 산기운에 적응시간이라 쉬엄 쉬엄 선두와 후미간에 거리를 조정해 가며 진행합니다.
산색은 푸르다 못해 검푸른색으로 보이고 산천초목들은 더는 성장을 멈추고 서서히 가을채비를 하는가 봅니다. 등산로도 잘 가꾸어져서 거의 산책로에 가깝고 경사진 곳은 나무계단을 시설해 놓아서 걷기에도 편합니다.
오늘따라 노장님들은 선두에서 걷는데~ 중 장년층 님들이 되려 뒤쳐진다. 삶의 연륜이 더 해 갈수록 가는 세월이 아쉬운지 모든일에 더 열심이다. 속언에 “50대는 50Km, 60대는 60Km, 70대는 70Km라!”하드니... 허투루 한말은 아닌 것 같슴니다.
중간 중간 쉬면서~ 가져온 포도와 땅콩을 나누어 드시니... 퍅퍅하던 입안에 침이돌고 한결 기운이 솟슴니다. 40여분을 걸었을까? 작은 고갯마루에는 "“백범 명상길(백련암), 제2코스, 활인봉0.6Km”라는 이정표가 보인다.
잠시 쉬면서 후미와 거리를 조정한 다음 두어개의 작은 봉오리를 넘어니, ‘활인봉(423m) 정상표석(頂上標石)’이 보인다. 표석 뒤로는 거대한 육각정자를 세워서 오가는 등산객들이 휴식을 취하도록 배려하였다.
얼마를 쉬면서 남산님들이 도착하시는대로 차례 차례 기념촬영을 해 드리고 잠시 주위를 둘러봅니다. 이곳 활인봉(423m)은 멀리 백두대간의 속리산 부근에서 서북쪽으로 뻗어나온 금북정맥을 따라 칠장산 부근에서 다시 서남으로 성거산, 고려산, 국사봉을 지나 광덕산과 금계산 부근에서 작은지맥이 동남으로 흘러나와 태화산(646m. 갈재고개), 건달이고개, 국사봉(590m), 나발봉(螺髮峰417m)을 거쳐 활인봉에 이르고, 그 잔여지맥은 유구천에 드리우고 있다.
산은 순하고 바위가 거의 없는 육산(肉山)이며, “조계종 제6교구 본산”인 “마곡사”의 영역에 속해서인지 ‘백범(김구) 명상길’의 이정표가 많이도 보인다. 봉우리 이름도 불교와 관련된 이름들이다.
시계는 11시40여 분을 조금지나 있어 모두들 나발봉 까지 가서 중식을 들자며 다시 진행을 서두름니다. 이정표에 나발봉 까지는 근 2Km의 거리다. 솔숲은 우거져서 마치 숲터널을 걷는 기분이며 솔향기 그윽하여 온 몸에 배어드니 향물에 목욕한 듯 향기도 좋을시고!
몇 개의 작은 봉우리를 지나 나발봉(417m)에 이르니 정상에는 육각정자가 세워져 있으며, 정상표석은 보이지 않고 두분의 여자 등산객이 중식을 맛나게 들고 있다. 맛있게 드시라고 수인사를 하니 과자를 여러개 건네주신다.
감사를 드리면서~ 여러회원님들에게 하나씩 나누어 드린 후 다시 100여 미터를 더 내려와 적당한 곳에서 모두들 둘러앉아 점심을 드심니다. 밥은 한 그릇에 반찬은 또 얼마나 많은지... 그 중에서도 이원우님께서 싸 오신 닭발요리는 단연 일품이라! 모두들 극찬을 하며 맛나게 드신다.
식후 디저트로 과일을 먹고 있는데~ 나발봉에서 과자를 주신 여성 두분이 알맞게 도착하신다. 과일 몇조각을 드리며 온 곳을 여쭈니 공주시에서 오셨단다. 필자 왈! “공주시에 사시는 분들은 모두 공주님이라!”고 하니 모두들 폭소를 하신다. 지나는 인연이지만 山 만큼이나 푸근하고 아름답슴니다.
또 식사중에 전화가 빗발치는데~ 서부장님은 나발봉에서 몇몇 회원님들과 함께 중식을 들고 있으며, 박태옥 부회장님은 일행 3명과 활인봉 부근에서 백련암 3코스 방향으로 하산 한다고 연락을 주신다.
모든 것에 감사를 드리며 30여 분을 걸어서 마곡천(麻谷川)에 당도하니, 선착하신 김은철님이 잠시 세수(洗手)를 하고 가자며 정답게 부르신다. 정겨움에 호응(呼應)하며 가방을 벗어놓고 세안(洗眼)을 하니 한결 개운합니다 그려!
개울을 뒤로하고 걸어 나오니 염종우님과 김광남님 등 일행 세분이 넓은 반석에서 중식후 몸을 씻고 계신다. 워낙 속보(速步)로 걷는 분이라~ 출발 때 뵙고는 처음이다! 반갑게 손을 흔들며 멀리서 렌즈를 당겨 기념촬영을 해 드림니다.
개울을 따라 산 모롱이를 돌아 나오니 우측 산기슭에는 여러 채의 수련원이 보인다. 근래에 지은 듯~ 건축양식이 자연과 별로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 한옥(韓屋)으로 지었으면 더 좋았을텐대...
다리를 건너 수련원을 지나는데~ 멀리서 김광남님, 염종우님 등이 다가오신다. 함께 걸어서 잠시 나려오니 반대편 개울건너 고즈넉한 곳에 “백범 삭발한 곳”이라고 자그마한 연못위에 전망대가 세워져있다.
조국의 독립을 위해 몸 바치신 영령(英靈)님들의 자취를 따라 몇걸음을 내려가니 마곡천의 작은 보(洑)에는 물놀이하는 꼬맹이들로 북적거리고, 보 위로는 반 듯 반듯한 돌로 징검다리를 놓았다.
충북 진천군 문백면 구곡리 세금천(洗錦川)의 “농다리”를 연상하며 징검다리를 건너서 마곡사 경내에 들어서니 널찍한 마당에 5층석탑과 대광보전, 그 뒤로 높은 언덕위에 2층의 대웅보전이 진좌하고 있다.
5층석탑은 비교적 날씬하여 탑신이 8.7m이며, 상륜부에는 금속으로 된 라마식의 단지모양을 하고 있는데 풍마동(風磨銅)이라고 한다. 본래 인도탑의 모양이 이러했고 라마교에서 받아들인 것으로 보물 제99호로 지정되어있다.
그 뒤로 대광보전은 정면5칸, 측면3칸의 다포계 팔작지붕의 건물이며 조선 정조12년(1788)에 세워진 건물로 보물 제802호로 지정되어 있고, ‘大光寶殿’의 글씨는 표암(豹菴) 강세황(姜世晃. 1713~1791)의 글씨이다.
또 높은 언덕 위에는 2층의 대웅보전(보물 제801호)이 있는데 1층이 정면5칸 측면4칸, 2층은 정면3칸 측면2칸의 웅장한 건물로 구례 화엄사의 각황전을 많이도 닮아있다. 내부에는 싸리나무 기둥이 4개 있는데 극락에 갈려면 싸리나무 기둥을 많이 돌아야 한다고 해서 나무기둥이 손때가 묻어 반질반질 합니다.
이 밖에도 이 절에서 가장 오래된 건물로 극락교 건너 영산전(靈山殿:보물 제800호)은 한켠에 고즈넉이 진좌하고 있으며, 정면5칸 측면3칸의 단층맞배지붕으로 효종 2년(1651)에 지어졌다고 한다. 세조가 매월당 김시습을 만나러 왔다가 만나지 못하고 ‘靈山殿’의 글씨만 남기고 갔다 한다.
연하여 응진전(應眞殿) 바로 옆에는 ‘白凡堂(백범당)’이 있으며, 안내문에 김구(1876~1949)선생이 명성황후 시해범인 일본놈 “쓰치다”를 살해하고 감옥에 갇혔다가 1898년에 탈출하여 마곡사에 은신한적이 있는데, 이 때 원종(圓宗)이라는 법명으로 잠시 출가 수도하였던 곳이라 한다.
조국 광복 후 이 곳을 다시 찾아 대광보전의 주련(柱聯)에 “却來觀世間(각래관세간) 猶如夢中事(유여몽중사)”(다시 세간을 관찰해 보니 모두가 꿈속의 일과 같도다.)란 글씨를 보고 더욱 감개무량하여 그 때를 회상하며 향나무 한 그루를 심었다고 한다.
또 백범선생의 사진 아래는 선생께서 생전의 애송시(愛誦詩)로 휴정 서산대사님의 시 한수를 걸어 놓았다. 2009년 10월8일 김구선생의 손자인 김양(현 국가보훈처장)이 조부를 추모하여 기증한 것이라고 한다.
踏雪野中去(답설야중거)(눈덮인 들판을 걸어갈 때)
不須胡亂行(불수호란행)(어지럽게 함부로 걷지 말라)
今日我行蹟(금일아행적)(오늘 내가 가는 이 발자취가)
遂作後人程(수작후인정)(뒷사람의 이정표가 될 것이니)
한데 이 시(詩)는 정조와 순조 때를 살다간 임연당(臨淵堂) 이양연(李亮淵. 1771~1853)의 “야설(野雪)”이라는 詩 이다. 다만 본문에서 1절에 천설(穿雪)이 답설(踏雪)로, 3절에 금조(今朝)가 금일(今日)로 다르게 고쳐져 있을 뿐 내용이 똑 같으며, 서산대사님의 선시(禪詩)로 잘못 알려져 있지만 스님의 문집인 “청허집(淸虛集)”에는 실려 있지도 않고, 이양연의 시집 “임연당별집(臨淵堂別集)”에 실려 있으며, “대동시선(大東詩選)”에도 임연당의 작품으로 올라 있어 논란의 여지가 없는 시 인데 ‘문화부 당국자’들은 신중을 기해야 할 것으로 봅니다.(2013년 2월 19일자 조선일보 참조)
님(백범)은 가셨지만 향나무는 살아서 온 누리에 향기를 적시며 오늘도 청청(靑靑)합니다 그려! 이 외에도 범종각을 비롯해서 매화당, 수선사, 종무소, 산신각, 군왕대 등 끝이 없으며 또 산내 암자의 수도 많아서 영은암(靈隱庵), 대원암(大元菴), 은적암(隱寂菴), 백련암(伯蓮菴), 청련암(靑蓮菴), 부용암(芙蓉菴), 북가섭암(北迦葉菴) 등 법열(法悅)의 향기가 넘치고 넘쳐남니다!
선채로 예(禮)를 드리고 극락교를 건너 ‘군왕대(君王垈)’에 오르니 마곡사 일대의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안내문에 군왕대는 마곡(麻谷)에서 가장 지기(地氣)가 강한 곳으로 가히 군왕이 나올 만하다 하여 붙여진 이름이며, 세조대왕이 이 곳에 올라 “내가 비록 한 나라의 왕이라 지만, 만세불망지지(萬世不亡之地)인 이곳과는 비교할 수가 없구나!”라며 한탄하였다고 전해진다.
태화산의 작은지맥이 동쪽으로 국사봉을 거쳐 뻗어내린 한 줄기 끝부분에 고즈넉이 자리한 마곡사(麻谷寺)는 천왕문 부근에서 두줄기의 계류(溪流)가 만나 태극모양으로 휘감아 흐르며, <택리지>나 <정감록>에서 삼재(三災)를 피할 수 있는 십승지지(十承之地)의 명당으로 꼽는 곳이다.
또 마곡사는 신라 자장율사가 창건하였다고 하나 정확한 연대는 알 수 없고, 고려시대에 와서 보조국사(普照國師. 1158~1210)가 중창하여 크게 일어난 절이며, 창건 당시에 운암리 계곡 일대에 삼(麻)밭이 많아 붙여진 이름이라고도 한다.
연하여 군왕대는 활인봉과 나발봉 부근에서 한 작은 용맥이 흘러나와 이 곳에서 단단히 뭉쳐 있으며, 마곡천(麻谷川)을 넘어 청룡(靑龍) 백호(白虎)가 서로 교쇄(交鎖)하여 그야말로 장풍득수(藏風得水)의 형국으로 국사봉, 갈미봉, 무성산 일대의 봉우리가 겹겹이 싸여있어 중중포리(重重袍裡)다.
군왕대 바로 아래 산기슭에는 산신각(山神閣)이 모셔져 있으며 산신각은 마치 군왕대를 섬기는 자리로 보인다. 다시 경내를 한바퀴 휘~ 돌아 나오니 능선님과 황까페지기님, 서부장님을 만나 기념촬영을 해 드리고 서둘러 일주문을 걸어 나옵니다.
삼밭이 변하여 절골이 되었으니
진리의 꽃 밭에 도인이 넘쳐 나는구나
승(僧)과 속(俗)은 무엇으로 구분하는지
속(俗)이 승(僧)이요, 僧이 俗인 것을
주차장에 당도하여 간단히 하산주를 마치고 3~40여 분을 달려 ‘세종호수’에 당도하니, 많은 인파와 차들로 넘쳐난다. “세종특별자치시”는 멀리 금북정맥의 전의면 국사봉(403m)에서 동남으로 뻗어나온 한 지맥을 따라 덕재고개, 공주고개, 동막고개, 국사봉(214m)을 지나 원수산(254m)을 주산(主山)으로 하여 전월산(260m)에서 그 맥을 금강에 떨구고 있는 ‘전월지맥’에 포근히 감싸여있다.
전형적인 배산임수(背山臨水)의 형국으로 동, 남으로는 미호천과 금강이 좌에서 우로 휘감아 흐르고, 그 사이에 ‘장남평야’가 펼쳐지는 대명당이다. 또 그 들녘에 ‘세종호수’라는 국내 최대의 인공호수가 조성되어 있어 주변의 아름다운 산세와 더불어 “연화부수형(蓮花浮水形)”의 도시라 볼 수 있다.
아울러 정부종합청사는 구불~ 구불~ 용(龍)이 꿈틀 거리는 형상으로 지어져 ‘세종호수’와 연결해서 목마른 용이 물을 마시는 형국으로 ‘갈용음수형(渴龍飮水形)’으로도 이해 되며, 이는 비룡승천(飛龍昇天)의 기운으로 도약과 약진, 전진을 상징하기도 한다.
전체적으로 서울의 지세와 비교적 닮아 있으며, 현재 국무총리실을 비롯한 18개 중앙행정기관과 18개 정부소속기관이 옮겨져 있고, 주변으로 세종호수공원, 국립세종도서관, 대통령기록관 등 여러 문화, 관광시설물도 들어서 있다.
이미 20여 만명이 거주하고 있으며 지리적으로도 대한민국의 중심부에 위치하고, 사통팔달(四通八達)의 전국 교통요지로 급부상하고 있어 국회도 함께 올 수 있다면, 21세기에 세계를 향해 웅비(雄飛)하는 조국의 발전이 있기를 간절히 기원합니다!
넓은 호수를 배경으로 몇몇 회원님들에게 간단한 기념촬영을 해 드리고, 시간이 여의치 못해 건성 건성 일 부분만 돌아보고 되돌아 나오니 아쉬움은 못내 큼니다 그려! 짧은 한 생애에 이토록 발전됀 조국의 모습을 볼 수 있는 것 만으로도 행복하며, 길이 길이 후손들에게 물려 줄 백년대계(百年大計)의 행정부가 되소서!!!
단기 4348년(서기 2015년) 8월 23일
공주시 태화산(활인봉.423m, 나발봉.417m)
및 세종특별자치시 ‘세종호수’를 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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첫댓글 고 고문님.산행후기 잘보았습니다 글중에 중장년들이 쳐진다는 말씀 부끄럽네요~저를두고 하신말씀같아서요 ~~ㅋㅋ다음부터 열심히 분발하겠습니다 후기올리시느라 고생많으셨어요 감사합니다^^.
경숙님! 사진게재를 다하지 못했는데~
벌써 다 읽어셨군요.
보잘것 없는 장문의 글을 읽어주셔서 감사하오며~
앞으로 남산의 발전을 위해서 많은 협조를 바라옵니다.
늘 건강하시고 가내 행복을 기원합니다.
산행당일 동참하신 모든분(52명)들께 다시한번 감사드리오며~
특히 진행에 수고하신 구회장님을 비롯하여 벽송대장님, 윤총무님, 김미소총무님,
능선운영위원장님 등 많은분들의 노고에 감사 감사 드림니다.
아울러 황까페지기님, 김해진님, 김은철님의 사진자료를 활용했음에 감사드리오며~
모든님들! 이틀 남은 8월 잘 보내시고 다가오는 9월에는 더욱 건강하시고 행복하세요!
태화산 마곡사에는 2010년7월에 서울동창들과 함께 갔었던 곳이며 45년 만에 만나는 친구가 있어서 감회가 새롭던 곳이지요,


후기를 만나면 모르던 역사 문화를 배우고 갑니다.
멋있고 맛있는 추억을 한아름 담아 갑니다.
보잘것 없는 장문의 글을 읽어 주셔서 고맙슴니다.
좋은 사진 자료들을 활용할 수 있어 감사드리며~
늘 건강하시고 가내 행복을 기원합니다.
긴장문쓰시느라 수고하셨습니다.
아름다운태화산을 품은 마곡사의 역사며 전경 뜻깊은 산행
늘고맙고 감사드려요,
벽송님이 다녀 가셨군요~
졸문의 장문을 읽어주셔서 감사드림니다.
항상 남산의 발전을 위해서 노력하심에 감사드리며~
늘 건강하시고 가내 행복을 기원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