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번 주의 사자성어(92)>
92. 계란유골(鷄卵有骨)
닭 계(鷄), 알 란(卵), ‘계란’이란 ‘닭알’을 말하며, 있을 유(有), 뼈 골(骨), ‘유골’이라함은 ‘뼈가 있다’라는 뜻이다.
따라서 ‘계란 유골’은 “계란에도 뼈가 있다”라는 말이다. 계란에 무슨 뼈가 있겠는가? 그래서 흔히 이 말은 계란처럼 약하고 깨지기 쉬운 것에도 뼈가 있을 수 있다 라는 뜻으로 절못 알고 있는 사람이 적지않다. 언중유골(言中有骨)이라는 말이 있다. 말 속에 뼈가 있다는 뜻이다. 무슨 말을 하는데 그 속에 감추어둔 뜻이 있을 때 언중유골이라는 말을 쓴다. 계란유골도 이 말이 주는 느낌 때문에 혼동하여 쓰이는 듯하다.
그러나 여기에는 재미난 이야기가 있다. 세종 때 영의정을 18년간이나 했던 황희(黃喜) 정승은 청렴한 성품을 지닌 사람이었다. 지위가 높았지만 집은 천장에서 비가 새고 ,옷도 관복 한 벌 뿐이었다. 집이 가난하여 먹을 것이 없었다. 이것을 안타깝게 여긴 세종 임금께서 하루는 이런 명령을 내렸다. “오늘 하룻동안 남대문으로 들어오는 물건을 모두 사서, 황희정승에게 드리도록 하여라”
그런데 마침 그날은 하루종일 폭풍우가 몰아치는 사나운 날씨였다. 사람들의 발길이 뚝 끊기어 남대문으로는 온종일 아무것도 들어오지 않았다. 저녁때가 다 되어서야 한 노인이 들고 오는 계란 한 꾸러미를 사서 황희정승에게 주었다. 그런데 황희정승이 집에 돌아와 달걀을 삶았으나, 모두 곪아서 먹지를 못하고 말았다. 겨우 계란 한 꾸러미가 들어왔다.그래서 그것이라도 삶아 먹으려고 하였더니 그나마 모두 곪(骨)아서 먹을 수가 없었다. 곪았다는 것은 상하였다는 것인데, 이를 한자로 옮기면서 마땅한 표현이 없어 유골(有骨) 즉 ‘골이 있다. 로 적었다. 그러니까 “계란유골‘은 계란에 뼈가 있다 라는 의미가 아니라, 계란이 곪았다“는 말이다. 운수 나쁜 사람은 모처럼의 좋은 기회를 만나도 역시 일이 잘 안됨을 이른다. 모처럼 복권이 당첨되어 너무 기뻐서 주머니에서 꺼내보고 또 보면서 집으로 오다가 길바닥에 복권을 잃어버린 것과 같다.
이러한 황희정승 이야기는 후대에 만든 이야기이겠지만, 청렴하고 바른 몸가짐을 자니고 참았던 옛 선인들의 아름다운 자세를 엿볼 수 있다.
황희 정승과 같은 세종때의 청백리로는 유관(柳寬)이 유명하다. 우의정이라는 높은 벼슬을 하면서도 항상 베옷과 짚신으로 검소하게 살았다. 음식은 밥과 국 ,나물이면 만족했고, 집에 귀한 손님이 오더라도 탁주 한 사발과 무우 몇 쪽으로 대접했다. 집은 담장이 없는 초가집에 살았다. 장마철에 천장이 새어 방안으로 비가 쏱아지자, 유관은 태연하게 우산을 받쳐들고 비를 피했다. 그리고 부인에게 “우산이 없는 집은 비를 어떻게 피하겠는가?”하면서 가난한 백성들을 걱정했다. 세상을 떠날 떼 “우리 집안에 길이 전하는 것은 오직 청렴결백뿐이니 대대로 이를 끝없이 전하라(吾家長物惟淸白 世世相傳無限人:오가장물유청백 세세상전무한인}”라는 유훈(遺訓)을 남겼다. 그가 살던 집은 우산을 받치고 살았다고 하여 그 집을 우산각(雨傘閣)이라 불렀다. 그의 청백함을 기리기 위하여 서울 신설동의 동대문도서관 앞에 ‘우산각 공원’이 조성되어 있다. 이러한 청백리들이 있었기에 세종 때 문화가 꽃피웠고, 조선조가 500년을 지속했는 지도 모른다.
참고로 계란유골(鷄卵有骨)과 더불어 계륵(鷄肋)이라는 말도 뜻이 있는 말이다. 닭 계(鷄), 갈비 륵(肋), 계륵은 닭 갈비를 말한다. 닭의 갈비는 먹을 만한 살도 붙어 있지 않지만, 그렇다고 버리기에는 아까운 것이다. 어떤 물건이 가치는 없지만 버리기에는 아까운 경우에 쓰이는 말이다.
계륵은 후한서(後漢書)에 나온다. 후한 헌제(獻帝)때 촉나라의 유비와 위나라의 조조는 한중(漢中)이라는 땅을 놓고 치열한 다툼을 벌였다. 싸움은 수개월이나 계속되었다. 유비의 병참은 후방에 근거를 확보하고 있는데 비하여, 조조는 병참이 부족하여 도망병이 생기고 전투가 어려운 처지에 놓이게 되었다. 그러던 어느날 저녁 조조가 야간 군호로 “계륵”이라는 명령을 내렸다. 조조의 수하 중에 양수(楊修)라는 사람은 조조가 왜 군호를 게륵으로 내렸는 지를 짐작하고 부지런히 장안으로 귀환할 준비를 하기 시작했다. 모두들 놀라서 그 까닭을 묻자 양수가 이렇게 대답했다. “ 닭의 갈비뼈는 먹을 만한 데가 없다. 그렇다고 내버리기에는 아깝다. 위왕께서 한중을 이에 비유하고 계륵이라는 군호를 내렸으니, 이는 군대를 철수하기로 결정하신 것이다.” 과연 조조는 그 다음날 군사를 한중에서 철수시켰다. 양수는 계륵이라는 말을 듣고 조조의 속마음을 정확히 읽어내었던 것이다.(2023.10.10)