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심경 지인들과 점심.. 짜투리 시간에 종묘 창덕궁 일원을 돌아보았다.. 종묘! 왕과 왕비의 신위를 모신 宗廟! 종묘는 크게 3곳으로 구분.. 입구에 있는 큰 공을 세운 신하들의 공신당.. 그리고 공덕이 지대한 왕을 모신 정전.. 정전에서 옮긴 조묘의 형식을 지닌 영녕전.. 유교를 통치이념으로 삼은 조선이기에 건국과 동시에 유교이념에 따른 통치철학인 忠孝의 실천과 정통성 확립을 위하여 가장 먼저 만든 건축물.. 임란때 왜군에 의하여 소실.. 토끼면서도 신주는 같이.. 백성을 그렇게 위하지..ㅠㅠ 그리고 재건! 1995년 유네스코 문화 무형 유산으로 지정되었으며, 전주 이씨 후손들이 1년에 2번 종묘 제례를 봉행.. 문화 유산이라는 의미는 있지만 그분들 조상들에 대하여 겸허하게 반성은 하는지..ㅠㅠ
1.입구의 정원에는 월남 이상재 동상.. 2.종묘 입구의 하마비.. 3.종묘는 해설사와 함께 입장해야하며 1시간 정도 관람.. 토일요일은 자유 입장! 처음 방문은 해설 입장이 바람직.. 4.오늘 해설사.. 길 중간은 조상신들의 통로.. 좌우는 왕과 왕세자! 5.별궁에 모셔진 신주 레플리카.. 6.왕과 세자가 제례전 머물던 재궁.. 몸과 마음을 정갈히! 7.제례때 왕의 복장.. 8.정궁.. 중앙에 19위의 신주가 모셔지고 죄우는 부속건물.. 제일 좌측이 태조.. 27대 조선 임금중 공덕이 큰 임금만 정궁에.. 통상 공덕은 후손 4대가 왕위에 있었던 임금.. 정종 문종 단종은 당근 없고.. 연산 광해는 폐위로 아예 종묘에서 퇴출.. 중간에 찌질이들 제외 철종 고종 순종이 끝자리.. 고종은 순종의 명으로 공덕과 관계없이 한자리.. 철종 순종은 결정할 사람이 없어서..ㅠㅠ 역사에서 귀중한 장소입니다만 민초의 기분은 착잡하네요! 27명의 임금중에 제대로 된 임금은 있었는지? 국가가 민족을 강대하게 만들수는 있어도 민족이 국가를 정립하기는 어려운 법.. 절대 권력 시절에는 왕이 곧 국가! 부강한 국가를 위해 노력한 왕은 그다지 많이 떠오르지 않습니다.. 대부분의 왕이 중국과의 "군신맹약"으로 자신의 자리 보전에 주력하지 않았는지. 그런중에도 민초들은 임금을 국가로 여겼고 지금도 그런 분이 여전히 남아있는 뿌리깊은 유교 국가.. 세뇌 교육이라는 것 무섭게 느껴집니다..ㅠㅠ 아직도 忠孝는 우리 사회의 부동의 이념! 착찹.. 9.영녕전입니다.. 중앙의 큰 건물은 처음 정전에서 넘어온 태조의 건국으로 추존된 4대조들.. 좌우 건물은 공덕이 부족하여 이관된 찌질이중의 찌질이왕들.. 단종과 영친왕은 영녕전으로 직행.. 역사를 바로 알자는 생각에 모처럼 방문한 종묘이지만 싱숭 생숭.. 일제강점기에도 종묘는 훼손없이 보전되고 대부분 친일 행각을 했던 이씨 후손들에 의하여 종묘제례도 지속되었습니다.. 민심 회유를 위하여! 민족의 혼이 말살되어도 가진 넘들은 꾸준히 기득권을 유지했습니다.. 다만 왕실의 기 차단을 위하여 창덕, 창경궁과 연결된 종묘는 길을 만들어서 그 기운을 차단.. 지금 다시 연결 공사가 진행중이네요! 종묘.. 10.전주 이씨들에게 자랑스러운 장소인지 겸허하게 반성하며 느끼는 장소인지 궁금! 아니 전주 이씨가 아니라 대한 민국 국민들이?
조선의 건국과 한양을 도읍으로 정하면서 처음 만든 건축물은 경복궁과 종묘.. 그리고 왕자의 난때 태조 이성계가 방원과의 사이가 멀어지며 기거를 위하여 건립한 이궁이 창덕궁.. 임란때 선조가 의주로 토사이를 하면서 경복궁과 창덕궁 대부분이 소실.. 이후 나라가 비실거리며 경복궁은 재건할 엄두도 내지 못하고 창덕궁 창경궁이 정궁으로.. 이후에도 수도 없는 내란으로 소실되기를 반복하며 최근에 보수되어 지금 모습을 유지하고 있습니다.. 모처럼 방문하니 새롭네요! 아들집으로 돌아오면서 북촌 그리고 익선동을 잠시 들렀는데 저는 별 매력이 느껴지는 않는 저잣거리..ㅠㅠ 창덕궁 정문 돈화문.. 왕족의 서재이자 공붓방 낙성재.. 정궁이었던 인정전.. 경복궁의 좌우대칭과 비교되는 자연 친화적인 배치.. 조선의 고락과 아픔이 더 많았던 창덕궁 그리고 인정전.. 을사년 치욕이 군신들과 논의되었던 곳도 대조전의 별실.. 급기야 별궁이던 창경궁은 왜놈들에 의하여 창경원으로 격하되고 친일 성향이 다분했던 박정희 정권까지 동물원으로 전락하기도..ㅠㅠ 위정자의 역사 인식이 이 수준이었으니..ㅠㅠ 능소화가 핀 북촌마을.. 왜 유명한지? 저는 현대 거래시절 계동 사옥 인근의 부대찌게 먹는다고 제법 방문.. 그런데 갑자기 관광지 운운..ㅎ 몽땅 보수 건물인디? 조선말기 영욕의 장소.. 운현궁! 운현궁의 봄은 민족 수난의 시작이었죠.. 고종.. 나라와 함께 뒤지기라도(과격하면 지송..ㅠㅠ) 했으면 조금 여운이라도 있었을텐데.. 그런 와중에도 비빈은 수두룩했더군요! 저잣거리 익선동.. 왜 이렇게 사람들이 몰리는지 궁금.. 누가 답 좀 해줘요..ㅎ