김봉한과 황우석의 영광과 몰락
경락을 발견했다던 김봉한은 1967년 이후 돌연 사라져 버렸다. 그 후 40년이 지나서 남한에서도 놀랍도록 유사한 황우석 박사 사건이 일어났다. 산알과 줄기세포의 맥이 닿는 연구주제, 국가와 언론의 전폭적 지원과 열렬한 찬사, 그리고 돌연한 침몰까지 1960년대에는 ‘봉한학설’을 발표하며 노벨상 후보로 거론됐던 평양의학대학에는 김봉한 박사가 있었다. 기이한 점은 1961년을 기점으로 5~6년간 “노벨상을 받을 만한 업적”이라며 국내외적으로 어마어마하게 칭송되던 연구가 1967년 이후 완전히 사라졌다는 사실이다.
김봉한 교수가 연구를 진행하다 갑작스레 좌초하는 일련의 과정은 황우석 교수와 매우 흡사했다. ‘사이언스’에 게재된 논문으로 황우석 서울대 교수의 줄기세포 연구도 세계적인 관심 속에 정점에 올랐었다. 정부 당국의 지원을 등에 업고 온갖 찬사를 받으며 대대적으로 추진되던 연구가 돌연 시들고 마는 상황전개가 놀랄 만큼 닮았다. 40년의 시차를 두고 남과 북에서 유사한 역사가 반복되는 것이었다. 김봉한과 황우석의 연구와 관련된 유사점을 발췌하여 정리해보자(황일도, ‘북한판 황우석’ 김봉한의 영광과 몰락, 신동아 2006년 2월호, 통권 557호, 128~139쪽 발췌).
신분과 국뽕
김봉한과 황우석의 첫 번째 공통점이 국내파 학자라는 것이다. 황우석은 외국유학을 거치지 않은 순수 국내파 학자이다. ‘국내파 학자’라는 입지에서 ‘대한민국의 원천기술’과 같은 용어나 ‘국익론’이 등장하여 과학 영역을 과학 외적인 영역 혹은 정치적 담론으로 연결하던 것이 김봉한과 황우석 두 사람의 공통점이다.
노벨상 넘보기
김봉한의 논문은 대대적인 찬사와 지원 속에 연구가 진행되어 국제학계에 소개되었다. ‘조신민주주의인민공화국 경락연구원’까지 창설하였고 김봉한 교수가 원장을 맡았다. 김봉한의 논문이 영어, 러시아어, 중국어, 일어, 프랑스어 등으로 번역되어 세계 각국에 배포된 것 또한 이 무렵부터였다. ‘On the Kyungrak System’ 제하의 이 논문은 공산권이 아닌 서구진영의 언어로 번역된 최초의 북한 논문으로, 노벨상 수상을 위한 행보까지 시작하였다. 황우석에게는 ‘세계줄기세포허브’의 연구 사업에 국가예산이 대대적으로 투입되었고 황 교수를 ‘최고과학자’로 선정하고, ‘노벨상 수상 추진위원회’ 발족, 각종 언론은 호의적으로 업적을 기사화하고 위인전의 출간까지 이어졌다.
경락과 줄기세포
김봉한의 연구는 경락논쟁에 종지부를 찍고 의학 자체를 새로운 영역으로 진전시키는 내용이었다. 제3의 순환계가 동물의 몸속에 그물처럼 퍼져 있으며, ‘봉한관’으로 명명한 이 순환계가 다름 아닌 경락의 실체라는 것이다. 그리고 봉한관을 따라 흐르는 액체 속 산알이 조직이나 세포의 손상된 부위에 다다라 치유하고 재생시키는 작용을 한다는 것이다. 이러한 결과는 산알이 사실상 ‘만능 줄기세포’의 역할을 한다는 의미가 된다. 그렇다면 김봉한의 연구와 황우석 팀의 줄기세포 연구 분야는 연결될 수 있다.
극찬과 자만
김봉한의 연구가 정점으로 치닫던 시기가 북한에서 ‘주체사상’이라는 말이 공식 사용되기 시작하였다. 황 교수팀의 논문이 세계적인 논문집에 발표되면서 “우리도 선진국을 능가해 세계일류가 될 수 있음을 보여준 쾌거”라는 찬사가 넘쳐났다. 김봉한과 황우석의 연구가 모두 ‘조국의 독자적인 역량’을 강조하는 자만(自慢)으로 보였을 것이다.
후속연구
두 학자의 연구가 세인의 관심에서 멀어졌지만 그 원인과 결과는 사뭇 차이가 있다. 황우석 연구의 추락과정은 낱낱이 밝혀졌지만, 김봉한의 연구과정을 기록하거나 암시한 북한측 자료는 아직까지도 밝혀지지 않았다. 하지만 후속연구는 방향성과 방법이 달라지고 있다. 봉한학설을 재확인하는 연구에 도전한 것은 아이러니하게도 남쪽의 학자들이었다. 2000년 서울대 한의학 물리연구실의 소광섭 교수팀이 연구에 뛰어들면서부터 많은 학자들의 다양한 연구가 쏟아져 나오고 있다. 소 교수팀은 새로운 염색법을 개발하여 ‘내봉한관’의 실체를 확인하는데 성공하고, 형광현미경을 통해 내봉한관으로 추정되는 실체를 확인하였다. 이어서 소교수는 봉한관 뿐 아니라 관끼리 만나는 봉오리인 ‘봉한소체’의 모습도 확인할 수 있었다고 발표하였다. 다른 학자들의 연구도 ‘제3의 순환계’가 존재한다는 점, 그 안에 미립자가 흘러 다닌다는 사실 자체는 거의 확실해졌다고 말해진다.
황우석 교수의 경우는 ‘논문 데이터 조작’이라는 분명한 증거와 본인의 시인을 통해 확인됐지만, 김봉한 교수의 연구사례는 국내외를 자세히 밝혀지지 않고 있다. 김봉한의 연구주제는 남한의 학자들이 주도적으로 외국학자들과 연구를 이어가고 있다. 황우석의 연구주제는 요즈음 본인이 주로 중동지역에서 반려견 복제라든가 전 세계를 상대로 반려견, 낙타, 종마 복제연구와 사업을 진행하며 이어가고 있다. 김봉한과 황우석, 남과 북에서 벌어진 아이러니한 역사의 반복이 남긴 뼈아픈 교훈이 과학의 발달로 인류사에서 대변혁의 계기로 승화되기를 바라고 싶다.
[2023. 4.18]