폴 토르틀리에 (Paul Tortelier ) 그의 아버지는 가구직공이었고, 하숙집을 하는 부모 사이에서 태어난 그는 어렵게 음악을 공부했다. 하지만 토르틀리에의 어머니는 아들을 음악 공부를 시키겠다는 일념으로 자신은 굳은 일을 마다않고 했다. 하숙집에서 음악가들의 점심을 제공하는 일도 했던 그녀는 어린아들을 이끌고 첼로 레슨을 시키러 다녔다. 거기다 토르틀리에의 타고난 재능도 한몫해 10세 때 파리 음악원에 입학할 수 있었다.
그는 피아르, 제라르 에킹에게 배운 후 16세 때 첼로 부문 1등상을 차지하며 졸업했다. 35년에는 대위법과 작곡에서도 1등으로 졸업했다. 어려운 서민사회에서 자랐기 때문에 유난히 따뜻한 마음을 가졌던 것일까. 토르틀리에는 전쟁으로 많은 사람이 죽어가는 것을 보고 상심, 연주활동을 잠시 중단했다.

첼로라는 악기 는 사람을 너무나 깊은 생각에 빠뜨리나 보다. 56년 파리 음악원 교수로 초빙되어 12년간 재직하며 대기만성 형의 연주가로서,새로운 기술은 그의 역동적이고 정열적인 라틴 민족의 본질과 어울려 후대에게 전달되었다. 필요하다면 전통 과도 과감히 맞서 새로운 장점을 증명하고 반영했다.
악기를 보다 수평으로 잡는 것이 음의 울림을 좋게 만들며, 보잉을 더 욱 자연스럽게 할 수 있다는 것을 인식해 구부러진 엔드 핀을 고안하기도 했다. 이는 일명 ‘토르틀리에 핀’이라 불리는데, 그와 친교가 있던 로스트로포비치는 이를 도입해 모스크바 음악 원에 보급하기도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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