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녕하세요. 김유진, 김연우 자매입니다.
저희 아빠를 위해 기도해주신 모든 분들께 진심으로 감사드립니다. 또, 소식 늦게 전해드려 죄송합니다.
결론부터 말씀드리자면, 아빠는 3월 10일 오전 11시 33분, 하나님의 한량없는 은혜에 둘러싸여 천국 문턱을 밟게 되셨습니다. 평생을 불신자로 사시며 가족을 핍박하던 아빠가 천국에 가셨다는 것은 기적입니다!
저희 가족은 오랫동안 아빠의 구원을 위해 기도해왔지만, 교회 이야기를 하려 하면 얼굴 색을 바꾸시는 아빠 때문에 복음 전하길 미뤄 왔습니다. ‘언제쯤 아빠가 하나님을 믿을 수 있을까? 과연 하나님을 믿고 천국에 갈 수는 있을까?’ 염려와 걱정 속에 살아오던 나날들 중 이런 일이 벌어진 것입니다.
그러나 저희는 이 사건을 통해, 한 영혼을 향한 하나님 아버지의 갈급한 마음을 직접 느끼게 되었고, 하나님께서 실제적으로 어떻게 일하시는지를 목도하게 되었습니다. 평생 하나님을 인정하지 않고 죄인으로 살아온 아빠를 영원한 사망에서 건지시고 천국으로 이끄신 하나님의 사랑이 어찌 이리 크고 위대한 걸까요…
저희가 직접 피부로 느낀 하나님의 완벽한 구원계획을 온전히 전할 순 없겠지만, 주님을 의지하며 한 글자씩 적어 올려드리기 원합니다.
사사모가 있던 3월 9일 토요일. 저는 사사모 설교를 듣고 있던 중 모르는 번호로 걸려온 전화를 받았습니다. 베트남으로 출장 갔던 아빠가 갑자기 쓰러졌다는 연락이었습니다. 아빠의 생사가 위독하며 제가 당장 베트남으로 들어오라는 말에 저는 너무 놀라 눈앞이 흐려졌습니다. 갑작스런 소식에 불안, 공포, 당혹스런 맘으로 어디든 누구든 당장 기도 받을 수 있는 분을 찾아야겠다는 생각으로 교회 안을 휘젓고 다녔지만, 한창 설교말씀이 진행되던 터라 아는 분을 발견할 수 없었습니다. 그러던 중 5층 복도에서 우연히 박세훈 목사님을 만나게 되었고, 저는 간절한 맘으로 목사님께 기도부탁을 드렸습니다. 목사님은 제 이야기를 다 들어주시곤 차분히 믿음의 말들과 함께 기도를 해주셨습니다. 불신과 혼란의 상황에서 기도로 모든 일을 시작하게 하심에 감사합니다.
어느 정도 맘이 진정된 후 또 다시 베트남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이번엔 병원비를 결제해야 한다는 연락이었습니다. 아빠가 있던 병원은 선불결제 시스템이라 당장 거금을 입금해야 치료를 받을 수 있었습니다. 수중에 큰돈이 없어 발만 동동 구르고 있던 찰나, 다른 곳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아빠가 다니던 회사 대표님이었습니다. 그분께서는 사람부터 살리고 봐야 하는 것 아니냐며 필요한 금액을 물어오셨고, 제가 병원비를 말씀드리자 곧 병원비의 2배가 넘는 금액을 통장으로 입금해주셨습니다. 저는 곧바로 병원비를 넣고 베트남으로 들어가는 항공권을 알아보기 시작했습니다. 그런데 다시 또 그 대표님으로부터 연락이 와서, 대표님의 사모님이 지금 항공권을 구매했다고, 사모님이 같이 동행해줄 테니 당장 짐 싸서 저녁 7시까지 인천공항으로 오라고 하시는 것이었습니다. 이분들은 아빠와 알게 된 지 단 1년 밖에 안 되시고 저희와는 생면부지의 낯선 분들이셨습니다. 모르는 사람을 위해서 선뜻 매우 큰 금액을 입금해주시고 베트남 항공권까지 구매해주시다니, 다시 생각해보면 이런 일이 가능한 걸까? 하는 생각이 듭니다.
저희가 공항까지 이동하려고 준비하는데 친한 교회 자매님이 걱정이 된다며 현지에서 쓸 여비를 주셨을 뿐만 아니라 직접 차로 데려다 주셨습니다. 그땐 제가 운전을 해서 공항에 갈수 있다고 생각했었는데, 다시 생각해보면 참 위험했던 상황이었어요.
3월 10일 밤 12시 50분. 베트남에 도착하자, 전화로 전해 들었던 현지 가이드(부)가 저희를 기다리고 있었습니다. 이 현지 가이드(부)는 쓰러진 아빠를 가장 먼저 발견해 병원으로 모셔 간 분입니다. 병원에 도착해서 보니 또 다른 분이 중환자실 밖을 지키고 있었는데요. 현지 가이드의 직장 동료(흐엉)였습니다. 한국말에 더 능숙하고, 현지 가이드(부)님이 저희를 픽업하러 왔을 때 아빠 옆을 지켜준 분입니다. 이 동료 분(흐엉)은 아빠와 전혀 일면식도 없었지만, 아빠가 생사의 기로에 있었기에 측은지심의 마음으로 나와준 것이었습니다.
그렇게 베트남 홍녹 국제병원에 도착해 아빠를 볼 수 있었습니다. 당시 아빠는 의식이 없고 자가호흡이 불가능하여 기계로만 겨우 호흡하고 있었습니다. 의사는 아빠가 이미 2번의 심정지가 왔고 낮은 혈압 그리고 심한 내부장기 손상으로 인해 24-48시간 내에 사망할 것이라고 이야기해주었습니다. 저희는 빨리 아빠에게 복음을 전하려 했지만, 중환자실엔 정해진 면회시간이 있었고 아빠는 수많은 기계들을 부착하고 있어서 저희는 아빠를 만질 수도 없었습니다. 급히 한국에 기도제목을 전하며 기도를 부탁하고, 저희는 뜬눈으로 면회시간이 되기만을 기다렸습니다. 이 시간 동안 얼마나 피가 마르던지요. 영혼들을 향한 하나님의 마음을 간접 체험한 기분이었습니다.
3월 10일 아침 7시 30분. 저희는 급히 중환자실에 들어가 아빠에게 복음을 전하기 시작했습니다. 진성원 목사님께서 선포해주셨던 영접기도 파일을 틀어놓고 아빠의 귓가에 따라하라고 외쳤습니다. 계속 영접기도문을 읊어주고, 지은 죄를 회개하시라고 이야기하고, 용서하라고 말씀드리며 하나님 아버지를 임금과 구주로 영접하시라며 끊임없이 이야기해 드렸습니다. 아빠는 의식이 없었고 뚜렷한 변화의 징후도 보이진 않았지만, 하나님의 행하심과 한국에서의 중보기도를 믿으며 계속 아빠에게 복음을 전했습니다. 30분의 면회시간은 금방 흘러 저희는 다시 병실에서 나와야 했습니다. 그리고 다음 면회시간을 기다렸습니다.
오전 11시 30분. 다시 다음 면회시간이 되어 아빠를 보러 들어갔습니다. 가만히 잠든 것처럼 누워 있는 아빠의 손을 잡으니 참 차가웠어요. 아빠의 혈압은 이전 면회시간보다 많이 떨어져 있었습니다. 저희는 아빠의 손을 잡고 고생했다고, 고맙다고, 사랑한다고 이야기했습니다. 그러자 아빠의 혈압이 급격히 떨어지며 다시 심정지가 왔습니다. 아빠는 그대로 소천하셨습니다.
한국에서 베트남에 들어갈 때만 해도 아빠가 살아나서 같이 한국에 올 것이라는 희망이 있었습니다. 하지만 막상 아빠가 돌아가시고 나니 주님께 감사한 마음은 있었지만 정말 속상했었습니다. 아빠의 사망 이후 처리해야 할 절차들이 많았는데, 사실 좀 버거웠습니다. 그때마다 가이드님(부), 동료(흐엉)이 직접 나서서 제가 해야 할 일을 대신 다 처리해주었습니다. 저는 말할 필요도 없고 생각할 필요도 없고 그냥 두 분과 병원 통역 분이 다 해주셨습니다. 전 하나도 한 게 없었어요. 자기 일처럼 나서서 일해준 베트남 현지 분들께도 정말 감사한 마음이 듭니다. (모든 일처리 비용에 대해서 물었는데, 두 분 다 절대로 돈을 받지 않는다고 하셨고 이런 일은 당연히 도와야 한다는 말을 해주셨습니다.)
베트남에서 국제화장을 하는 데는 꽤나 큰 비용이 듭니다. 저와 동생은 다시 또 돈 때문에 걱정하고 있었어요. 그런데 한국에서 베트남으로 날아오면서 많은 분들이 동생 편으로 거금을 보내주셨었습니다. 아빠의 화장 비용을 치르고도 좀 남아 저희 베트남 체류비용으로 사용할 수 있었습니다.
화장 후 서류를 처리(검역을 위한)하는 데에 2일 정도가 필요했습니다. 그래서 베트남에서 대략 3일 정도 시간이 비었는데요. 덕분에 하노이 이곳저곳을 둘러볼 수도 있었습니다. 올해 아빠와 베트남 여행을 가자고 했었는데, 이렇게라도 마지막 여행을 함께할 수 있어서 감사했습니다. 이 시간동안 슬픔을 조금 덜어낼 수 있었어요.
저희가 하노이에서 머물던 호텔은 아빠가 자주 묵던 곳이었습니다. 아빠 앞으로 무료숙박이 2일 정도 있었으나, ‘아빠가 쓰러지셨던 방’에서만 묵을 수 있다고 하여 따로 숙소를 알아보고 있었습니다. 그런데 현지 가이드님(부)이 그 호텔 사장님(베트남 분)에게 상황을 설명하여 다른 건물의 호텔에서 무료로 묵을 수 있게 해주었습니다. 마지막날, 호텔의 사모님이 저희에게 와서 인사를 해주었는데요. 저희가 그곳에서 무료로 지냈음에도 불구하고 저희에게 이 호텔에 와주어 고맙다고, 김사장님(아빠)은 참 좋은 분이었다고 말해주며 저희를 위로도 해주셨습니다. 베트남에서 만난 모든 분들께 많은 호의를 입었습니다.. 정말 감사했어요.
이런 모든 은혜에도 불구하고 저희는 한 가지 걱정거리가 남아 있었습니다. 바로 아빠의 핸드폰 잠금이 풀리지 않는 문제(아빠 지인들의 연락처가 필요했으므로)였습니다. 저희가 알고 있던 아빠의 핸드폰 패턴을 다 시도해보았지만 번번이 실패해 좌절하고 있었습니다. 핸드폰 제조사와 카카오톡에도 다 연락을 해봤지만 초기화만 가능할 뿐 별다른 도움은 줄 수 없다고 했습니다. 사설업체를 이용하려면 비용이 500만원이 넘었기에 저희는 ‘이 문제도 주님께 부탁하자!’ 하며 짧고 간절하게 기도를 했습니다. 그런데 다음 날 막내동생이 아빠의 패턴 몇개를 그려 보내줬었는데요. 그중 두 번째 시도한 것으로 아빠의 핸드폰 잠금을 풀었습니다!! 할렐루야!
한국에 들어와서도 물 흐르듯 장례식장도 정하고, 약간의 사건이 있었지만 또 기적적으로 아빠의 장지도 정해져 장례를 잘 마무리했습니다. 이 모든 순간 단 하나의 오점 없이 완벽한 계획을 이루신 하나님 아버지께 감사드립니다.
처음 아빠가 쓰러졌다는 소식을 듣고 베트남에 들어가면서 저는 주님께 ‘왜 한국이 아니라 베트남이에요?’ 하고 물었습니다. 그러자 즉시 주님께서 제게 말씀해주셨어요.
- 아빠는 혼자 살고 있기 때문에 아빠가 쓰러지면 발견해줄 사람이 없다.
- 현재 한국은 의료 파업 중이라 응급실에 들어갈 수도, 들어가도 제대로 된 치료를 받을 수도 없다.
이 사실을 알게 되고 저희는 주님의 계획에 놀라지 않을 수 없었습니다. 아빠가 한국에서 쓰러지셨다면 저희는 아빠에게 복음을 전할 수 없었을 거예요.
또 아빠가 있던 하노이 홍녹 국제병원은 다른 하노이 대형병원에 비해 병원비가 50% 저렴하다고 합니다(나중에 다른 분으로부터 전해들은 소식입니다).
한국에서는 아빠의 회사 대표님, 베트남에서는 현지가이드(부), 동료(흐엉), 또 수많은 도움의 손길들과 중보해주신 분들. 마치 누군가 미리 계획한 패키지 여행처럼 처음과 끝이 틀어짐 없이 딱 맞아 떨어지는 아빠의 구원 여정을 보며, 저는 인간적인 슬픔을 접고 하나님의 크고 위대한 사랑에 무너져 내릴 수밖에 없었습니다. 나의 생각과는 다른 차원의 계획을 갖고 계신 하나님 아버지. 나조차 믿지 못했던 기도제목을 손수 이루지는 하나님의 손길을 실제로 겪게 되며, 더이상은 하나님의 사랑과 그 존재를 의심할 수 없게 되어버렸습니다. 나의 신음을 관망만 하시는 분이 아니고 옆에서 세세한 손길로 보살피시는 분이구나 하는 것을 비로소 알게 되었습니다.
돌이켜 보면 쉽지 않은 일인데, 한국에서 베트남까지 또 베트남에서 한국으로 돌아올 때까지 저희의 마음은 평안했습니다. 모든 순간이 주님의 호의였습니다. 세세하고 긴밀하게 준비된 하나님의 구원계획을 다시금 상기해 보면 이 모든 것이 기적이라고 밖엔 말할 수 없습니다. 진정 감사합니다. 기도로 동참해주신 모든 분들께도 정말 감사합니다. 지옥에 끌려갈 수밖에 없는 죄인인 아빠를 구원하신 하나님의 헤아릴 수 없는 사랑에 감사합니다.
육신의 아버지가 돌아가시면 하나님께서 나의 아버지가 되어주신다는 이야기를 전해 들었습니다. 쉽지 않은 나날들이 되겠지만, 주님이 행하신 이 기적을 마음에 새기고 주님만 의지하며 살아가겠습니다.
한 영혼을 이토록 사랑하시는 하나님 아버지께 영광 찬송 올려드립니다.
김유진, 김연우 올림.
P.S 이 여정을 함께하지 못한 막내동생(김주은)이 있습니다. 생각날 때 기도해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