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18자유공원은 5·18광주민중항쟁당시 정권 찬탈을 기도하던 일부 정치 군인들의 강경진압에 맞서 민주주의를 지키기 위해 싸우던 이들이 구금되어 군사 재판을 받았던 상무대 법정과 영창, 헌병대식당, 헌병대 내무반, 식기세척장 등을 원형으로 복원 재현한 곳이다. 원래는 현 5·18기념공원내의 광주학생교육문화회관 자리에 설치하려 하였으나 영창이 원래 있던 곳으로 5·18자유공원을 분리하여 세웠다.
영창은 여섯 개의 넓지 않은 방이 부채꼴로 배치되어 있다.
한 방에는 백오십명까지도 수감하여 한여름에는 너무 더워서, 바로 옆사람을 증오하게 할 정도였다고 전해진다. 공원 입구에 서 있는 자유공원비가 서 있던 자리가 본래의 위치이나 도로가 신설되면서 이곳으로 옮겨 복원하였다.
자유관은 5·18관련자료를 전시해 놓은 곳이다. 이 곳에서는 횃불 시위, 쓰레기차에 던져진 주검, 헌혈을 위해 모인 수 많은 시민들의 행렬, 김밥과 주먹밥을 나누어 주던 아주머니, 투사회보를 제작해 배포하던 학생들의 모습 등의 사진이나 실물을 관람할 수 있다. 5·18민중항쟁의 사실을 한국어 책자는 물론 영어, 일본어, 중국어로 번역하여 안내하고
있다.
조성현황
위 치 : 광주광역시 서구 치평동 1161-6 (5·18기념공원내)
면 적 : 33,058㎡(10,000평)
사업기간 : 1996. 3 ∼ 1999. 5. 4 준공
보존건물 현황
보존시설 : 법정, 영창, 헌병대본부사무실, 헌병대중대내무반, 헌병대식당, 창고, 식기세척장
지원시설 : 자유관(영상실, 전시실 등)
편익시설 : 분수시설, 휴게시설 등
[자유공원 안내도]
영창
5·18당시 상무대 헌병대 영창이라고 불렸던 이곳은 일부 정치군인들의 정권찬탈에 맞서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던 분들이 구금되었던 곳이다. 이곳으로 강제 연행된 시민들은 폭도라는 누명을 씌운 계엄사 합동수사본부의 온갖 고문 수사에 몸과 마음이 상하였고, 하루 16시간의 정좌자세 수감생활과 가혹한 구타와 감시 등 인권유린을 당하였다. 수감기간 동안 한 방에 많게는 150명씩 수감되어 더위와 배고픔을 이겨내야 했던 시민들은 폭력 앞에 굴종을 강요받았지만, 진실은 반드시 승리한다는 믿음으로 서로 굳게 뭉쳐 꿋꿋이 극복해 나갔으며 1980년 10월 27일 광주교도소로 이감될 때까지 구금되어 있었다.
법정
5·18당시 민주화 운동에 참여했던 구속자들이 군사재판을 받았던 곳으로 1980년 8월에 5·18군사재판을 위해 지어졌다. 당시 군사재판은 5·18의 진상이 외부에 알려지는 것을 막기 위해 법정에 총으로 무장한 헌병을 입장시켜 공포분위기를 조성한 가운데 비공개로 421명의 약식재판을 진행하였으나, 구속자들은 재판 시작 전에 부당한 군사재판에 대한 항의 표시로 소리 높혀 애국가를 불렀다. 또한 구속자들은 재판과정에서 일부 정치군인들의 정권찬탈 행위와 양민학살 만행을 폭로하며 언젠가는 5·18의 진실이 만천하에 밝혀져 반드시 정의가 승리할 것이라는 굳은 신념으로 민주화 운동의 정당성을 주장하였으나, 군사재판부는 짜여진 각본에 따라 사형, 무기징역 등 실형을 선고하였다.
헌병대본부 사무실
당시 상무대 헌병대 본부 사무실로 5·18시민군 등 연행자들의 고문 수사와 재판을 지휘한 계엄사 합동수사본부 특별수사반의 임시본부였다.
헌병대중대 내무반
당시 상무대 헌병대 중대 내무반으로 5·18시민군 등 연행자들이 계엄사 합동수사본부 특별수사반의 강요된 각본에 따라 혹독한 고문과 조사를 받았던 곳이다.
헌병대 식당
당시 상무대 헌병대 식당으로 5·18시민군 등 연행자들이 끌려와 계엄사 합동수사본부 특별수사반의 혹독한 고문과 조사를 받은 임시취조실로 전용되었다.
문의처 : 5·18 자유공원 관리사무소 ☎(062) 376-51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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