꼭두각시놀음은 남사당패가 공연하는 것으로 일명 ‘덜미’라고도 하는 우리 나라 유일(唯一)의 인형극이다. 전통적인 인형극으로 만석중놀이, 영등희(影燈戱)가 있었다고 기록에 남아 있으나 현재는 전승되지 않고 있다. 만석중놀이는 부처님 오신 날인 음력 4월 초파일에 공연되었던 놀이인데, 인형에 줄을 매어 조종하며, 대사 없이 음악 반주에 의해 연희되었다. 인형으로는 만석중, 노루, 사슴, 잉어, 용 등이 등장하였다. 영등희는 그림자인형놀이인데, 많은 동물의 모습을 종이로 만들어 등불에 비추며 놀았다.
꼭두각시놀음은 남사당패와 같은 유랑(流浪) 연예인(演藝人) 집단뿐만 아니라 마을 주민들에 의해서도 공연되었는데, 이는 유랑 연예인 집단의 일부가 여러 지역에 정착하여 향인광대(鄕人廣大)가 되거나, 유랑 생활을 계속한 집단들이 여러 지역에 놀이를 보급한 결과라 하겠다.
1. 기원과 인형
꼭두각시놀음의 기원에 대해서는 외래 기원설과 자생설(自生說) 두 가지가 대표적이나, 외래적인 요소와 국내 자생적인 요소가 결합하여 현재의 모습을 갖추었다는 절충설(折衷說)이 가장 유력하다.
절충설에 의하면 중국의 곽독(郭禿)과 몽고의 qodor 영향을 받아서 우리 나라의 꼭두각시놀음이 형성되고, 이것이 일본으로 건너가 구구쯔가 되었다고 한다.
꼭두각시놀음에 사용되는 인형은 막대기인형과 손인형의 복합형, 손인형, 줄타기인형 등이 사용된다. 막대기 인형은 꼭두각시놀음의 주인공인 홍동지와 박첨지처럼 막대기 위에 인형을 만들어 놓고 그 막대기를 움직이는데, 줄을 매어 조종하는 줄인형과 복합되어 있다. 손인형은 인형 속에 손을 넣어서 움직이는 인형이고, 줄타기인형은 줄을 꿴 인형이 공중의 줄을 타듯이 움직이는 인형이다.
2. 공연 방식
꼭두각시놀음의 공연 장소는 빈터면 된다. 3m정도의 평지에 네 기둥을 세우고, 관중석을 향해 무대 면이 되는 쪽을 1m 20cm 정도의 높이 위에,
인형이 나와서 노는 가로 2m 50cm, 세로 70cm 정도의 무대 면만 남겨놓고 사방을 모두 포장으로 둘러친다.
인형 조종자는 포장 속에 들어가 의자에 걸터앉아 인형을 손에 쥐고 조종한다. 가운데 대잡이(주조종자)가 앉고, 양옆에 대잡이손(보조조종자)이 앉는다. 조종자는 왼 손에 큰 부채를 들고 있다가 인형이 등장할 때 무대 면 위로 먼저 부채질을 한다. 그 후에 오른 손에 인형을 잡고 있다가 부채를 내리면서 인형의 모습이 드러나게 한다. 인형들은 상반신만 포장 위로 올라와 관중들에게 보이게 된다. 포장 밖에는 꽹과리․징․장고․날나리 등을 연주하는 악사들이 앉는다. 악사들은 인형의 움직임에 맞춰 반주하면서 관중의 반응도 살핀다. 극은 대잡이와 상쇠격인 산받이의 재담으로 진행되는데, 탈춤과 달리 일정한 운율이 있으며 삽입 가요(揷入歌謠)가 많이 사용되는 것이 특징이다. 산받이는 기본적으로 극중 인물의 역할을 다양하게 할 뿐만 아니라, 놀이 전체에 대한 연출자 및 해설자의 역할도 하고, 관중의 입장에서 극을 비판하기도 한다.
3. 구성
꼭두각시놀음은 고정된 대본이 없이 전승되어 온 것이기 때문에 상당히 가변적인 양상을 보여준다. 그래서 채록된 대본들을 보면, 전체적인 과장의 구성과 등장인물 및 대사에서 많은 차이점을 보인다. 대표적인 채록본을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① 김재철 채록본 : 김강식․박영하 구술
② 최상수 채록본 : 노득필 구술
③ 최상수, 이두현, 심우성 채록본 : 남운용․양도일 구술
④ 황해도 장연 지방 대본 : 구술자 미상
⑤ 서연호 채록본 : 박용태 구술
위에 적은 것 중 김재철과 심우성 채록본의 구술자들은 모두 유랑 연예인 집단인 남사당패 출신들이다. 그리고 장연 지방 대본은 ꡔ조선 민간극ꡕ에 수록된 것으로, 지역성이 강하게 내포된 새로운 자료이다. 장연본의 연희자들은 한 지역에 정착하여 농사를 지으면서 틈틈이 공연하였다고 하는데, 홍동지와 꼭두각시가 전혀 등장하지 않는다. 따라서 내용이 빈약하다.
가장 먼저 김재철이 채록한 박영하 구술본을 대상으로 그 구성을 간단히 적어보면 다음과 같다.
제1막은 곡예장(曲藝場) 장면이다. 곡예장은 남사당 놀음판이다. 꼭두각시놀음판은 남사당 놀이 여섯 마당 중 제일 마지막에 하는 놀음이다. 따라서 남사당패 공연 순서 중 다섯 번째인 덧뵈기가 끝나고 바로 덜미가 어어지게 되니, 자연히 장면은 곡예장이 될 수밖에 없다. 가산(家産)을 탕진한 박첨지가 방방곡곡(坊坊曲曲)을 편력(遍歷)하다 우연히 놀이마당에 뛰어든다. 피로도 잊은 채 악사(새면)의 주악에 맞춰 서로 말장난을 하며 춤을 추고 노래를 한다.
제2막은 뒷절 장면이다. 상좌 둘이 나와 소무(小巫)들과 놀아난다. 이를 보고 박첨지가 꾸짖고, 다시 홍동지도 등장하여 중을 꾸짖고, 무녀(巫女)들을 때려 내쫓는다. 홍동지도 퇴장한다.
제3막은 최영노의 집 장면이다. 최영노와 박첨지, 잡탈중, 홍동지가 등장하여 서로를 희롱하고 퇴장한다. 여기서 박첨지는 사돈 최영노 집에 거처한다. 바쁜 추수철이라 곡식 먹는 새를 쫓느라고 사람들이 우르르 나서는데, 배고픈 이시미가 나타나 전부를 잡아먹는다. 박첨지 역시 잡아먹으려 하는데, 홍동지와 박첨지의 아우에 의해 구출되고, 이시미는 죽는다.
제4막은 동방노인 장면이다. 동방삭이 등장하여 새면과 대화하는 장면으로, 동방삭은 잠시 곡예장에 나와 가무를 한 후, “첩을 둔 표생원이 행방불명(行方不明)이 된 부인을 찾기 위해 강원도까지 갔다가 이곳에 들른다.”는 내용의 예언을 남기고 퇴장한다.
제5막은 표생원 장면이다. 표생원과 그의 부인인 꼭두각시와 돌모리집이 등장하는 삼각 관계를 묘사한다. 특히 이 장면에서 구장인 박첨지가 나와 표생원을 위해 재산을 분배하는데, 귀중한 것은 모두 첩에게 주고, 나쁜 것만을 본처에게 준다. 그래서 본처인 꼭두각시가 떠나게 된다.
제6막은 매사냥 장면이다. 평양 감사와 포수, 그리고 관속(官屬)이 등장하여 횡포를 부리는 장면을 묘사한다.
제7막은 평양 감사 장면이다. 평양 감사의 모친이 죽어 상여가 나가는데, 홍동지와 박첨지가 등장하여 평양 감사를 회롱한다. 이를테면 남의 상사에 애도의 표정도 없이 장타령과 양산도 등을 부른다.
제8막은 절 건립 장면이다. 화상(和尙)이 나와 평양 감사 모친이 죽은 후 백일의 법요식(法要式)을 거행하고자 절을 짓고 발원(發願)을 한다.
꼭두각시놀이는 일명 박첨지놀이라 한다. 이 놀이에서 중심적 역할을 하는 박첨지는 172세가 되는 헐렁한 노인이다. 박첨지의 박은 흔한 성씨로 우리 가까이 있는 서민을 대변한다.
박은 가면이나 얼굴을 만드는 재료인 박에서 나왔다는 의견도 있다. 그는 해설자이면서 동시에 출연 인물로, 전체 극을 이끌어 나간다. 첫 장면에서 악사(새면)와의 대화를 통해 자신이 낮은 출신임을 알리며 동시에 과장 선전을 한다. 그러면서 한량(閑良)인 자신의 모습을 한껏 보이며 놀이판에 뛰어들어 노익장(老益壯)을 과시한다. 꼭두각시놀이판은 바로 이 박첨지의 해설에 따라 구현된다 할 수 있다.
둘째 장면에서 박첨지는 조카딸인 소무들이 뒷절 상좌들과 어울리는 것을 보고 야단을 치다가, 결국 그들과 어울리는 극중 인물로 바뀐다. 이두현본에서는 이들에 대해 더욱 익살스럽고 인정 많은 기질이 첨가되어 성격의 다양성을 노출시킨다.
꼭두각시놀이는 또한 홍동지놀이라고도 한다. 홍동지는 이름 그대로 벗은 몸으로 머리에 검은 상투를 달고 사타구니에 커다란 남근을 달았다. 그 자체로도 기운차고 씩씩한 모습이 연상된다. 따라서 극중에서 그는 역사(力士)로서 조력자로서의 역할을 다 한다.
셋째 장면인 최영노 집에서 홍동지의 성격이 뚜렷이 부각된다. 잡탈중을 비롯해 박첨지가 이시미에게 먹히는 것을 용감하게 구해준다. 제7막의 평양 감사 상여 장면에서도 상두꾼으로 등장하여 양반의 협력자이면서 동시에 비판자 역할을 한다.
이 놀음은 그 명칭이 ‘꼭두각시놀음’임에도 불구하고 정작 주인공인 꼭두각시는 딱 한 번 등장하고 만다. 이 인형은 적갈색의 얼굴에 백색과 남색의 반점이 무수히 흩어져 있으며, 삐뚤어진 입 모양을 하고 있다. 쪽을 찐 머리에 분홍색 저고리와 남색 치마를 입은 초라한 여인의 모습이다.
4. 주제와 사회의식
꼭두각시놀음에는 가면극에서처럼 중과 양반을 풍자하고, 남성의 횡포를 폭로할 뿐만 아니라 모든 기존 도덕을 조소(嘲笑)한다. 양반의 신분적 권위는 물론, 노인에 대한 존중도 우습게 취급되며, 성적(性的) 금기(禁忌)도 여지없이 깨진다.
뒷절 장면(피조리거리)에서는 두 명의 중이 등장하여 소무(피조리) 둘을 희롱하고 있는데, 이를 꾸짖던 박첨지가 같이 그들과 어울려 이들의 성 문란을 고발한다. 여기서는 중을 풍자하는데, 맨 마지막 거리에서는 절을 짓는다. 중을 비판하면서 절을 세우는 것은 모순된다. 이는 남사당패가 절과 깊은 관련을 가졌기 때문에 생긴 것이라 하겠다. 이것은 꼭두각시놀음의 각 거리가 독립된 내용이라는 점에서 볼 때, 맨 마지막 거리에서 절을 지어 그 동안 진행되어 온 갈등을 극적으로 승화시키며 화해를 이루고, 관중의 안녕과 행복을 빌어 주는 것으로 해석할 수도 있다.
최영노 집 장면에서 이시미에게 물린 박첨지를 보고 홍동지는 “아저씬지 잡것인지 늙은 것이 신노심불로(身老心不老)라 조카 하는 대로 하지 쪼르르 건너서,
잘 됐네.”라고 말한다. 이것은 앞에서 그런 문란한 짓을 하였으니 봉변을 당해도 싸다는 것이다. 이러한 욕설은 현실에 대한 비판이자 야유의 표현이다.
양반에 대한 풍자는 평안 감사라는 구체적 인물에게 집중되어 나타난다. 평안 감사는 도임하자 꿩 사냥을 벌여서 백성을 괴롭힌다. 홍동지는 평안 감사의 부임, 매 사양, 장례 장면에서 길을 닦는 인부, 사냥 몰이꾼, 상두꾼의 역할을 함으로써 양반의 횡포에 시달리던 민중의 모습을 대변한다. 채록본에 따라서는 “평안 감사께서 꿩 사냥을 하시고 내려가시던 길에 낮잠을 주무시다가 개미란 놈한테 불알 땡금줄을 물려서” 죽었다고 하여 평안 감사의 죽음을 희화화(戱畵化) 하는가 하면(심우성본), 상주가 분상제(奔喪祭) 지내는 데 쓰려고 강아지를 메고 간다든가(김재철본), 상주가 타령을 부르면서 좋아하는 장면을 통하여(김재철본, 심우성본) 양반의 권위나 체통을 여지없이 무너뜨린다.
이시미거리에 등장하는 이시미는 뱀도 용도 아닌 상상의 동물인데, 아무것이나 닥치는 대로 집어삼킨다. 이시미는 청노새, 박첨지 손자, 피조리, 작은 박첨지, 꼭두각시, 홍백가, 영노, 표생원, 동방삭, 묵대사 등을 차례로 잡아먹는다. 청노새는 청국(淸國) 땅에서 곡식을 얻으러 왔다는 일종의 외세(外勢)이고, 박첨지 손자․피조리․작은 박첨지․꼭두각시는 박첨지의 가족이며, 홍백가와 표생원은 몰락한 양반의 후예이고, 영노는 영험한 괴물이며, 동박삭과 묵대사는 덕이 높다는 도인(道人)이다. 이들은 대부분 피지배층을 대표하는 인물들이다. 그러므로 이들을 잡아먹는 이시미는 어떤 절대적인 권력자의 상징으로 해석할 수 있다. 이러한 이시미를 민중을 대변하는 홍동지가 물리치는 것은 지배 계급의 패배와 몰락을 의미하며, 민중의 승리를 상징한다고 볼 수 있다.
홍동지는 여러모로 가면극의 취발이와 유사하나, 행동 양상이 취발이보다 더 노골적이며, 모든 도덕적 권위를 파괴하는 주역이다. 그는 닥치는 대로 부수고, 싸우고, 해결하는 공격적인 인물이다. 상좌중의 비행을 목격하고 그들을 쫓아내며, 아저씨인 박첨지에게 욕을 하며 비판하고, 이시미를 죽여 가죽을 팔아 치부(致富)하며, 평안 감사에게 야유와 조롱을 퍼붓는다.
박첨지, 꼭두각시, 덜머리집의 등장을 통해서는 여성에 대한 남성의 부당한 횡포를 고발한다. 남편의 박대와 첩과의 싸움으로 인해 집을 나가는 꼭두각시의 가련한 신세를 보여주는데, 특히 첩인 덜머리집은 가면극과는 달리 매우 저돌적으로 반항하며 꼭두각시에게 달려든다.
상좌중들과 피조리의 음란한 결합, 덜머리집의 저돌적인 반항은 성(性) 의식의 개방적인 성장이 반영된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홍동지가 벌거벗은 채 유난히 큰 남근(男根)을 내어놓고 뛰어다니며 욕지거리를 서슴없이 내뱉는다든가, 평안 감사가 사냥 도중 개미에게 불알을 물려 죽는다는 내용은 성적 금기를 깨뜨리면서, 강렬한 성적 충동과 풍요와 다산(多産)을 기원하는 의식을 느끼게 한다. 그리고 이시미와 홍동지의 싸움, 영노와 홍동지의 싸움, 깜벡이의 출현, 평안 감사와 홍동지의 갈등에는 선악의 대결이나 질병과 재난을 물리치려는 의식이 잠재되어 있다.
현재 꼭두각시놀음은 무형문화재 제3호로 지정되어 있으며, 공주 민속극박물관을 중심으로 활발하게 전승되고 있다.
발탈
발탈은 발바닥에 가면을 씌어서 노는 연희로 사람이 직접 출현하는 탈춤과 인형이 나오는 인형극의 중간 형태라고 할 수 있다. 놀이꾼은 포장 안에서 비스듬히 침대에 누워 베개를 베고 발에 탈을 씌운 후 발받침에 발을 받친 후 공연한다. 대나무로 만든 팔을 옆으로 벌려서 그 위에 저고리를 입혀 사람 모양을 만들어서 포장 밖에 앉아 있는 산받이와 재담과 노래를 주고받으며 춤으로 공연을 진행하는 것이 일반적인 형태이다. 악사들은 산받이와 함께 포장 밖에 앉아서 분위기를 돋운다.
탈과 주인, 여자 등 3인이 극을 이끌어 가는 주된 인물이다. 주인은 생선장수로 한 곳에 정착한 사람인 반면에 탈은 떠돌아다니는 사람으로 표현되어 있다. 두 사람은 여자가 등장할 때까지는 서로 재담을 주고받으며 극을 전개해 나간다. 그러다가 남편을 잃고 생선장수로 나선 여자가 등장하여 생선을 사는 데에서 갈등이 벌어진다. 탈은 여자를 동정하여 생선을 푸짐하게 퍼주다가 주인에게 들켜서 매를 맞는다. 그러다가 여자로부터 위로를 받고 탈의 마음씨가 착한 것에 감복한 주인으로부터 함께 살자는 제안을 받는다는 것이 주된 내용이다.
이러한 발탈은 중요무형문화재 제79호로 지정되어 있는데, 근래에 다시 조사가 이루어져 전에 조사된 자료가 문제점이 많다고 지적되었다. 이전에 조사된 발탈에서는 주인이 나오지 않고 어릿광대가 등장하고 있으며, 여자는 잠시 동안만 얼굴을 비추고 있다. 반면에 다시 조사된 자료에서는 여자가 극중에 등장하여 사건을 진행하는 역할을 하고 있으며, 어릿광대라는 말 대신에 주인이라는 말이 사용되고 있어 보다 연극적이다. 이렇게 서로 판이한 양상을 보여주는 발탈에 대한 조사는 사실에 충실하게 민속조사가 온전하게 이루어져야만 한다는 사실을 명확하게 보여준다.
발탈에는 여러 가지 삽입가요가 나타나고 있으며, 정해진 대본이 없이 공연 장소에 따라 쉽게 변개(變改)될 수 있다는 점에서 탈춤의 대사와 구별된다. 발탈에는 떠돌이지만 자유스러운 존재, 가난하면서도 마음이 풍요로운 존재를 표현함으로써