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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가부도낸 박정희을 근대화 아버지로 추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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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긍정적인면
1.경부고속도로 건설. 당시 건설비용이 1년 국가예산보다 많았다.일본이 주도한 아시아개발기금이 원조하는 자금을 바탕으로 착공한, 100명 이상의 사망자를 낸 역사였다.
경부고속도로 반대의 진실을 아십니까
http://blog.daum.net/kmcandle/6416551
http://newsmaker.khan.co.kr/khnm.html?mode=view&code=114&artid=201002041139461
2.섬유라든가 합판 가발 등을 수출하면서 우리 경제의 잠재력을 일깨운 것.
3.60년대 말부터 철강 자동차 조선 화학 등 네 분야에 대대적으로 투자했다. 과잉·중복투자로 국가 경제를 주름지게 했지만, 기간산업을 구축하고 우리 경제가 세계적 경제로 도약하는 데 발판이 된 것
*부정적인면
1.가장 큰 문제는 정경유착을 통한 불법지배체제 형성
(재벌과 불법공생관계를 형성한 것. 권력은 재벌에 각종 인·허가상 특혜를 비롯해 금융·차관·세제 특혜를 주고 그 대가로 재벌로부터 정치자금을 받았습니다.
그 결과 권력과 재벌의 유착이라는 불법구조가 우리 사회를 지배 그 정당성 없는 지배계층이 지금까지 사회·경제·정치를 좌지우지하고 있습니다.
정경유착 지배구조라는, 역사발전의 큰 걸림돌을 만듬)
2.빈부격차
(정경유착 테두리에서 돈을 마구 뿌리고 고속성장에 치중하다 보니 부동산 값이 폭등했어요. 권력의 특혜를 받은 계층은 부동산투기로 엄청난 부를 축적.
부동산 값은 일반 물가보다 몇 배 상승, 지배계층은 그걸 이권으로 삼았고 증권시장도 비슷한 성향을 띠어 부동산과 증권시장이 지하경제의
온상이 된 것은 고속성장의 큰 부작용)
3.재벌을 집중지원해 경제성장
(재벌을 집중지원해 경제성장 정책을 펴다보니 일반 중소기업이 빈사상태에 빠진 져 대기업과 중소기업은 수직적 주종관계가 돼버었다
중소기업은 산업의 풀뿌리로 상품 개발과 기술력 향상을 통해 경쟁력의 저변이 되는 것인데, 우리나라 중소기업은 재벌기업의 하청기업으로
전락해 산업발전에 엄청난 불균형이 생겼다 각종 인·허가 특혜를 받은 대기업이 조금씩 대주는 걸로 연명하다보니 자생적 기술이나 상품을 가지고
국가경쟁력을 키울 수 있는 기반이 완전히 무너져버렸다)
4.조립수출산업 위주로 산업이 발전
(외국에서 부품과 기계를 사들여 조립해 만든 상품이 주종을 이루다보니 수출로 해외에서 돈을 벌어와 봐야 부품값 갚고 기계값이나 기술료 주고 나면 남는 게
별로 없다. 진짜 이익인 부가가치는 뺏기고 조금씩 던져주는 먹이나 얻어먹고 사는 가마우지 경제를 만든 겁니다. 자생적 경쟁력의 기반이 처음부터 형성되지
않는다)
5.지역격차
(대개 동쪽에서 집권세력이 나오다 보니 영남 지역을 중심으로 산업이 발전 그 결과 동서간 경제력 격차가 커지고 그것이 지역감정을 일으키는 요인
지배계층은 그것을 또 정치적으로 이용하고. 경제의 동서분단선을 만든 겁니다. 그에 따른 사회갈등이 선거 때마다 극단의 형태로 표출되면서 극복하기
어려울 정도로 그 골이 깊어진 것)
6.도시 농촌간 격차
(재벌들에게는 한국은행을 독촉해 돈을 지원해주면서 농촌의 어려움을 덜어주는 지원엔 인색 지배자들의 횡포였다. 그렇지 않아도 산업화과정에는 농촌경제가
어려워지기 마련인데 인위적으로 육성하고 발전시키지는 못할지언정 거꾸로 황폐화를 가속시켰. 농촌 사람들이 안 되겠다 싶어 다 도시권으로 옮겨가면서
수도권을 비롯한 도시는 비대해지고 농촌은 황폐해지는, 기형적이고 비효율적인 국토발전)
7.관료주의 확대
(독재권력을 장기간 유지하려다 보니 입법부 기능을 축소하고 사법부를 마비시켜야 했다. 반면 행정부는 굉장히 비대 사회를 지배하고 경제를 통제하고
기업들을 길들이기 위해 엄청난 규제가 양산 관료주의가 엄청난 힘을 갖고 경제를 지배하다 보니 정부와 유착하지 못한 기업은 아예 발전 대열에
진입도 못하게 됐다. 말만 시장경제지, 사실은 관치경제였다)
8.빚경제
(정부로부터 금융특혜를 받은 기업들이 다들 자기 돈이 아닌 은행돈으로 사업을 벌이다 보니 부채비율이 엄청나게 높아졌다.
특정 기업이 좀 어려워지면 그때마다 한국은행 돈 풀어 구제해줬었다. 시장경제체제에서 좋은 기업이란 시장에서 자금을 지원받아 물건 판 돈으로 스스로
발전하는 기업 그렇지 못한 기업은 도태돼야 하는데, 거꾸로 됐다. 금융특혜를 받은 부실기업에 자꾸 돈을 대주니 빚은 산더미처럼 불어나고,
부실이 확대 재생산됐다. 기업들을 빚 먹고 사는 공룡으로 만든 것. 외국 차관도 끌어다 그런 기업에 대주고. 기업들이 시장에서 평가받고 스스로
자본을 축적해 투자하고 성장하는 것이 아니라 정부에서 돈 대줘 발전하는 기업이 경제의 중심이 되다 보니 산업구조가 매우 취약해졌다. 위험도도 높아졌다.)
9.부패공화국
(정경유착에 따라 재벌과 권력층이 경제를 독식하는 바람에 일반 국민경제가 희생됐다. 관료주의가 확대되고 규제가 양산되다 보니 뇌물이 판치는 비리구조가
위에서부터 형성됐고 그 영향이 민간부문에도 미쳤다)
박정희시절은 미국이 역사상 가장 경제적 활황을 이루던 시기였고,
미국의 지원으로 그당시 중국과 접하고 있는 한국, 대만, 홍콩, 싱가폴 등이
동반 성장을 하던 시기였고 대일경협차관과, 베트남 전쟁, 독일파견근로자, 독일간호사, 독일광산, 중동노동자들등 국민이 피땀흘려 벌어들인 돈으로 정부로 부터
특혜를 받은 기업들이 자기돈이 아닌 은행돈으로 필요할때 사용하여 기업발전해 산업구조가 매우 취약해졌고 불균형지역 경제를 발전시켰으며 동시에
노조나 노동3권 같은 것은 말만 꺼내도 빨갱이로 몰아 폭압의 사슬과 함께, 저임금 노동을 가능하게 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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http://blog.daum.net/yahooook/10777381
아마도 아래의 신기록은 앞으로 누가 대통령을 해도 나오기 어려울 것이다 하나하나 살펴보자
[소비자물가 상승률(cpi)]--역대최고
박정희시절의 소비자 물가는 평균 년 16.5%의 상승률을 보였고 63년 20%, 1964년 29%를 기록하는 등 60년대 동안 해마다 10% 이상 폭등.1974년 24.3%, 1975년 25.7%, 마지막해인 77년 12.1% 78년 21%(78년에 고추 한근에 1만원이었고, 배추 한포기에 3천원---정말 대단하다) 1979년에는 18.3%(79년에는 유류가격이 59%, 전기요금이 20-30% 인상) 살인적인 물가상승이었다. 70년대에 들어서도 1973년만 빼고 매년 10% 이상의 물가 상승을 기록
[은행대출금리]
60년대 은행대출 금리가 년17.5%-26%였다. 1965년도에는 금리가 년 30%까지 치솟았다. 이런 상황도 찬양의 대상인가?-노무현.김대중 같으면 살아 남을 수가 없었을 것이다.
[지가 상승률]--연평균땅값상승률 33.1%, 역대최고
63년 기준으로 하여 7년 후 강남의 부동산은 학동이 20배, 압구정동이 25배, 신사동이 50배로 올랐다. 충격적이지 않는가? 같은 기간 서울의 중구 신당동은 10배, 용산구 후암동은 7.5배 상승했다. 땅값상승에 따른 불로소득은 326조원이다(참고로 현재 우리나라 1년 예산이 200조 전후이다 그당시 국민소득 최대 1천불로쳐서 326조돈을 현재 국민소득 1만7천불로 계산하면 계산이 안나온다)
[노동시간, 산업재해, 소득상황]
1. 박정희시절은 노동자들의 노동시간이 세계에서 가장 길었다.
1. 산업재해는 세계 최고였다.
1. 피고용인 가운데 1976년 74.9%, 1978년 76.7%가 근로소득 면세점 이하였다. 즉 소득세를 낼 상황이 아니었다는 것(태반의 근로자가 최저생계비조차 못 버는 상황이었다)
1. 근로자들은 노조를 결성하거나 노조에 가입했다는 이유만으로 쫒겨 나든가 빨갱이로 몰리기도 했다.
[소득불평등도-지니계수 ]
속칭 ‘한강의 기적’ 뒤편에서 부의 불균등 분배는 박정희 시절부터 나타나고 있었다. 통계청에 따르면, 소득불평등도를 나타내는 지니계수(1에 가까울수록 불평등 심화)는 1965년 0.344, 1970년 0.332, 1976년 0.391, 1980년 0.389, 1993년 0.310으로 나타났다. 대개 1960∼70년대를 ‘절대 빈곤의 평등’ 시절이라고 말하지만, 사실 박정희 정권 시기에 소득분배의 불평등이 갈수록 커지고 있음을 볼 수 있다
[대외채무]
세계 4위 외채국, 1978년에는 148억달러에 이르러 1973-1978년간 총 112억달러가 늘어났으며 동 기간중 연평균 26.7%의 급격한 증가율을 보였다. 1970년 당시의 외채 22억 5천만불(GNP의 28.6%)에 지나지 않던 외채잔액이 72년 36억달러, 1975년에는 84억 6천만불(GNP의 41.8%)이었으며 당시의 원리금상환액은 각각 2억6천만불, 8억3천만불이었다 76년에 105억달러 77년에 126억달라 78년에 149억달라 79년에 205억달라. 외채가 3년만에 100%상승. 결국 죽기전에 180억달러 역대최고. 그당시에 갚을 능력도 없어 나라빚내서 나라빚갚았다(참고로 지금 대외채무 2000억달러라고 찌질이신문들은 난리다 그러나 김대중정부이후 순채권국으로 돌아선 사실과 현재 대외채권이 3000억달러가 넘는다는 사실은 아무도 말하지 않으며 그나마 외채2000억달러는 환리스크 방지로 인한 것이어서 심각한 수준도 아니고 박정희시절처럼 빚갚기위해 들여온 것이 아니라는 것도 더더욱 말하지 않는다)
[설비투자비율, 소득분배율, 실업률]
기업의 설비투자비율 11.7% 역대4위
노동소득분배율 43.7% 역대최하위
79년 실업률 17.9% 역대최고
*대만을 포함한 주요국(8국:미,카,영,독,프,이,일,대)의 연평균성장률을 비교하면 김대중 1위, 전두환 2위, 노태우 3위, 박정희 4위다. 그리고 성장율은 대체로 선진국에 갈수록 작아진다는 것을 참조하면 김대중과 전두환의 경제는 박정희보다 훨씬 나은 것이다. 이에 비해김대중의 경우 한국전쟁이후 가장 큰 국란이란 외환위기를 극복하고도 세계 최고수준의 성장을 이루었다.
박정희의 경제가 불행중 약간이나마 좋아진 것은 60년대 후반기에 한일협정으로 돈(무상 3억 달라, 차관 2억 달라)이 들어오고 베트남전쟁에 따른 특수로 10억달라 이상 들어오면서부터였다. (다른 대통령들은 외국으로부터 돈을 받은 것도 없어도, 그리고 월남특수가 없어도 박정희이상의 경제발전을 이루어 냈다. 그래서 지금의 한국의 경제력이 세계 11위이다.)
*베트남 전에서 한국군 5만 명이 이 5년간 받은 수당은 1억3,000만 달라였다. 당시(60년대) 외화보유고는 3억 달라에도 미달 했으므로 한국외환 보유고의 거의 반에 해당하는 숫자였고, 또한 한국 총수출액의 40%에 해당하는 거였다.(그런데 전투수당마저 실종되는 사태가 발생하기도 했음)
국가부도낸 박정희을 근대화 아버지로 추앙
http://www.youtube.com/watch?v=qetnoqBR7zs&NR=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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박정희의 경제신화를 말해주는 대표적인 키워드들은 경제개발5개년계획, 수출주도경제, 중화학공업 육성, 빈곤타파, 그리고 새마을운동이다. 그러나,
경제개발 5개년계획은 그 자체가 이미 윤보선-장면의 민주당 정부에서 다 만든 것을 그대로 베껴서 실행한 것에 불과하고,
수출주도 경제라는 것도 실제로는 가공무역이라는 허울좋은 논리 아래 자본, 원자재, 기술, 시장을 모두 대외에 의존한 채, 오로지 노동자들의
고혈을 쥐어짜는 저임금 노동에 근거하는 구조를 강압적으로 만든 위에서 형성된 것으로서,
이런 식의 수입유발형 수출구조라는 기형화된 경제구조가 우리가 지금 당면하고 있는 소수 대기업의 수출은 좃나게 잘 되서 돈이 넘쳐나는 데,
내수는 바짝 기근이 들어 중소기업과 국민 대다수는 살기가 힘들어지는 현실’의 근본 원인이었으며,
그나마 그것을 가능하게 한 자본도 금번의 정부 문서 공개에서 확연히 드러났듯이, 굴욕적이고 상식적으로 이해될 수 없는 개망나니 짓거리로 들여온
대일경협차관과, 베트남 전쟁, 독일파견근로자, 중동노동자들이 피땀흘려 벌어들인 돈을 제멋대로 도용한 바탕 위에 가능했던 것이었고,
동시에 노조나 노동3권 같은 것은 말만 꺼내도 빨갱이로 몰아 때려잡기를 예사로 했던 폭압의 사슬과 함께, 저임금 노동을 가능하게 하는 수많은
산업 예비군들을 대도시로 유인하여 청량리, 영등포, 신림동, 구로동, 양천동 등 당시의 서울 변두리는 물론 종로, 동대문 같은 도심에 이르기까지
서울 지역의 대부분을 판자촌, 빈민촌, 벌집으로 불리우는 공단지역의 집단기숙촌 등 슬럼 지대로 만들면서 빈곤층의 대량 양산을 토대로 한 것이었고,
이런 식으로 빈곤타파의 기치 하에 국민의 배고픔을 해결한답시고 오히려 국민의 창자를 바짝 졸라매게 했던 극단의 모순을 갖는 식으로 절대 빈곤층을
양산하는 가운데, 농촌의 젊은 남녀들 대부분이 서울과 대도시의 공단으로 몰리면서 그들 중 상당수는 사창가 아니면 막노동꾼이나 백수건달로 떠돌게 만들었고,
심지어 중년 여성들도 오산댁이니 파주댁이니 하는 말들이 흔했던 것에서 알 수 있던 것처럼, 소수 부자들의 식모나 파출부로 유입시키기까지 하면서
오늘날의 빈곤의 대물림을 구조화하는 기원을 만든 것이었다.
새마을 운동, 이것도 완전히 농민들을 상대로 벌인 사기극에 불과했다. 그 예를 박정희가 벌인 새마을 운동을 대변하는 몇 가지 키워드를 들어서 따져보겠다.
우리가 새마을 운동하면 기억할 수 있는 것들은 경지정리, 통일벼 등 품종개량을 통한 (소위 녹색혁명으로 주창되던) 식량증산, 4H, 부녀회, 새마을지도자 등
농업인력 조직화, 지붕개량, 도로확장, 같은 취락구조 개선, 경운기, 이양기 등 ‘농업 기계화’, 그리고 그 유명한 혼분식 장려등이었다.
기본적으로 새마을 운동은 그 발상 자체가 북한의 새벽별 보기 천리마 운동 이스라엘의 키브츠/모샤브 등을 짬뽕으로 베낀 것에 불과하고,
경지정리의 경우, 땅이 하도 넓어서 비행기로 농약을 뿌릴 정도인 미국이나 우크라이나 같은 나라와 달리, 호남평야, 김제평야 같은 일부 지역을
제외하고 국토의 대부분이 산골 구비 구비에 놓인 경사지인 우리나라 지형상 경지정리는 식량증산과는 하등 상관없는 남의 것 베끼기에 불과한 짓이었고,
품종개량 한답시고 중앙정보부 시켜서 이스라엘에서 훔쳐온 통일벼는 건조한 중동 땅에서나 맞는 것이지 장마같은 우기를 경과하고 항상 물이 많은
우리나라 땅에서는 제대로 자랄 수 없는 것인데도, 오히려 일제 때 보급되어 우리나라에 잘맞는 속칭 아끼바리종자를 대신해서 강제로 파종하라고
하여 한 해 농사만 망치고 슬그머니 사라진 것이었으며, 4H니 뭐니 하는 것들은 따질 필요도 없는 사실상 관제 조직에 불과한 것이었고,
지붕개량이니 뭐니 하는 ‘취락구조 개선’도 금강스레트, 대동중공업 같은 소수 기업들의 내수 시장을 키워준 것에 불과하고,
마지막으로 그 유명한 ‘혼분식 장려’는 반만년 동안 잘만 먹고 살아온 멀쩡한 쌀밥을 하루 아침에 영양가 없는 것으로 폄하하면서 국내에서는 이미
사양길에 들어간 지 오래고, 50년 내전 이후 한동안 미국의 원조 물자로만 들어오다가 60년도부터는 잉여 농산물로 수입되던 보리, 밀가루 등을 학생들의
도시락까지 검사하면서 국민들에게 강제로 먹으라고 한 것에 불과하며,
결국 이런 식의 황당무계한 새마을 운동의 결과가 바로 오늘 날의 구조적으로 폐폐한 농촌 경제를 만든 기원이었다.
정치경제에서 배운 특화이론(또는 비교우위론)이 생각나시는가?
이 얘기는 무역, 즉 수출드라이브를 주창한 박정희 일당의 내세운 논리의 핵심으로서 간단히 말하자면, A, B 두 나라가 각자 강점을 갖는 분야만 집중적으로
발전시켜서 서로 무역을 통해 교환하는 게 좋다는 것이었다. 말이야 그럴 듯해보이지만, 실상은 자본, 기술, 원자재는 물론 시장 자체를 미국이나 일본 같은
선진국에 철저히 종속시키자는 것에 불과했다.
또 지리 시간에 배운 도시계획의 동심원 이론(메트로폴리탄)이 기억나시는가?
이 얘기는 국토 개발과 관련된 것으로서, 나라를 대도시 중심으로 개발하고 그 중심에는 상권을, 그 외곽에는 주거지역을 구성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이것 역시
말만 그럴 듯해보일 뿐 그 원본은 땅이 남아돌 정도로 넓은 미국에서 공부했답시고 박정권에 빌붙어먹던 관료놈들이 국토의 환경이 다른 우리나라에 그대로
적용한 것으로서 오늘날 비대한 수도권 블랙홀을 만든 근원이었다.
박정희의 경제개발 신화를 제대로 비교해서 평가해보려면 기본적으로 역사적 배경은 물론 국토규모, 경제조건, 환경, 문화, 국민정서, 삶의 질 등에서
전반에 걸쳐서 비슷한 여건을 갖고 있으면서도 모범 사례로 삼을만한 나라가 되어야 할 것이다.
따라서 그 대상으로는 아시아에서는 대만이나 싱가폴 정도가 해당되고, 유럽에서는 아일랜드나 스페인, 핀란드, 아일랜드, 네덜란드 같은 이른바 강소국이라
불리우는 그런 나라들이 대상이 되어야 한다.
위에서 언급한 아시아 국가들 중 대만은 물론 싱가폴도 박정희보다는 덜하지만 그와 비슷하게 일인집권에 장기독재를 겪었음에도 우리보다 더 나으면 나았지
결코 부족하지 않은 자타가 공인하는 강소국들이고,
핀란드나 아일랜드, 네덜란드도 우리처럼 국토도 자원도 빈곤하고 오랜 세월 동안 소련과 영국의 지배를 겪거나 강대국들의 틈바구니에서 약소국의 서러움을
겪었으며 특히 아일랜드 같은 경우는 금세기 들어 대기근으로 단 4년만에 100만 이상이 굶어죽고 그보다 더 많은 사람들이 신대륙이나 타국으로 이동하는 가난한
나라였지만 지금은 한결같이 세계 최고 수준의 탄탄한 경제 성장과 기술력과 안정적인 사회보장 제도, 높은 삶의 질을 구가하고 있으며,
특히 이렇게 되기까지 박정희 개새끼는 같은 놈은 아예 비슷한 종자를 찾아보기도 힘들만큼 더할 나위없이 투명하고 모범적인 민주주의를 통하여 국가발전을
이루었다. 하다못해 박정희와 비슷한 독재자 프랑코의 장기집권을 겪은 스페인조차도 우리 보다는 훨씬 더 튼튼한 경제력과 사회, 정치 구조를 갖추고 있다.
과거를 되돌아보는 것이든, 현재의 시금석으로 삼든, 미래의 모형으로 모방하는 것이든, 모든 면에서 우리가 비교하고 배워야 할 나라들은 조금 늦더라도
제대로 발전하는 위에서 예로 든 아시아, 유럽의 강소국들이지 필리핀이나 태국 같은 뒤쳐진 국가가 아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