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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꿈이있는교회는 지역사회의 문제를 교인·주민들과 함께 해결하며 변화를 도모하는 사역을 펼치고 있다. 목사나 교인이나 다 같이 방역에서 유괴 예방까지 지역의 필요를 찾아 활동하면서 주민과 벗이 되어 가고 있다. ⓒ뉴스앤조이 임안섭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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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역기를 손에 쥐고 골목을 누비는 사람이 등장했다. 관공서 직원은 아니었다. 알고 보니 목사였다. 여름철 예배당 방역을 위해 구매한 연막 소독기를 마을 방역을 위해 쓰기 시작한 것이다. 한 번도 아니고 계속 나왔다. 지역의 필요를 채우고 싶은 마음에서 실행한 일이었다. 전북 익산 꿈이있는교회 노지훈 목사의 이야기다.
방역하는 사람이 목사인 걸 알게 된 주민들은 처음엔 놀랐다. "아니, 무슨 이런 일까지 하세요?(웃음)" 시간이 점점 지나면서 반기기 시작했다. "우리 집도 해 주세요."
노 목사는 단순히 좋게 보이려고 이 일을 하지는 않았다. 지역사회의 문제를 교인·주민들과 함께 해결하며 변화를 도모하는 선교 철학이 그에게 있었다. 해외 빈민가에서 현지인이 스스로 당면한 문제를 해결하도록 돕는, 지역사회 보건 선교 전략인 CHE(Community Health Evangelism)를 도시에 접목하려 한 것이다. 예배당 건축이나 교인 수를 늘리는 일은 관심 밖이다. 교인들의 제자화, 지역사회의 총체적인 변화가 먼저였다.
▲ '겨자씨 프로젝트'는 꿈이있는교회 교인들이 마을 지도를 그리면서 지역사회의 필요를 찾아 활동하는 사역이다. '8주간의 기적'은 주로 지역 엄마들과 함께 생활에 필요한 학습을 하는 사역이다. (사진 제공 꿈이있는교회)
지역을 섬기는 사역은 현재 노 목사뿐 아니라 교인들도 동참하고 있다. '겨자씨 프로젝트'라는 이름으로 교인들이 마을 지도를 그리면서 지역사회의 필요를 찾아 활동한다. 교인들은 쓰레기가 불법으로 버려지는 곳에 화단을 설치하고, 아파트 주변에 있는 음식물 쓰레기통을 씻고, 놀이터를 청소하거나 보수했다. 큰돈을 들이는 사역은 지양한다. 현지 자원을 활용하여 누구나 참여해 문제를 함께 해결해 가는 데 초점을 둔다. 겨자씨 프로젝트는 익산 지역에 있는 이리중앙교회·기쁨의교회·청복교회에도 전수해 다른 곳으로 뻗어 나갔다.
교회는 지역 주민들에게 어린이 유괴 및 성폭력 예방법을 교육하기도 했다. 엄마와 아이가 직접 유괴 상황을 재연하면서 어떻게 대처해야 하는지 실습했다. 이것은 '8주간의 기적'이라는 사역 단위에서 진행한 활동이었다. 주로 지역의 젊은 엄마들이 소그룹으로 모여 필요한 주제를 가지고 8주간 공부하며 변화를 도모한다. 천연 세제 만들기, 자녀들의 아토피 예방 및 치료, 우울증 예방 교육 등을 해 왔다. 아빠들을 위해서는 아이들과 잘 노는 법을 공부하는 '아빠 놀이 학교'를 열었다.
꿈이있는교회는 <뉴스앤조이>가 지역을 섬기는 교회를 탐방하다가 만난 곳이다. 시골과 도시를 누비며 서울을 비롯해 충청·전라·경상 지역을 돌았다. 이렇게 만난 교회가 10곳이다. (관련 기사 : 지역 주민의 좋은 이웃, '진짜 교회' 탐방기 / 농가 빚 해결하니 교회도 마을도 생생) 이 중 교인이 활발히 사역에 동참하는 도시 교회로 꿈이있는교회, 전남 완도성광교회(정우겸 목사), 경기 용인 고기교회(안홍택 목사)가 있었다.
지역 섬김 사역 위원회만 220개…평신도 '은사 사역' 활발
▲ 완도성광교회 정우겸 목사는 전 교인의 사역자화를 꿈꾸며 목회해 왔다. 교인들이 자기 은사를 발견하고 그에 맞게 사역에 참여할 수 있도록 각종 위원회를 구성했다. 현재 예배·전도·양육과 행정·봉사·지역복지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830개의 위원회가 설치되어 있다. ⓒ뉴스앤조이 임안섭
"나는 교회에서 무엇 하는 사람인가." 완도성광교회 예배당 안에 걸린 현수막 문구다. 또 하나의 펼침막이 보인다. "생명을 구하는 것보다 급하고 중요한 일은 없습니다." 글귀가 예사롭지 않다. 알고 보니 교회가 지향하는 사역 방향과 관련이 있었다. 목사 중심으로 교회 일이 돌아가게 하지 않고, 교인들 중심으로 사역을 펼치는 문화가 교회 안에 뿌리내렸다.
"복 받는 것에만 관심이 있고, 교회 사역에는 참여하지 않으면서 예배만 드리려면 다른 교회에 가시라고 교인들에게 얘기하곤 합니다."
정우겸 목사는 전 교인의 사역자화를 꿈꾸며 목회해 왔다. 꿈에서만 그치지 않고, 교인들이 자기 은사를 발견하고 그에 맞게 사역에 참여할 수 있도록 각종 위원회를 구성했다. 현재 예배·전도·양육과 행정·봉사·지역복지 등 다양한 영역에 걸쳐 830개의 위원회가 설치되어 있다. 교인들은 MBTI 검사나 은사 세미나에 참여해 본인의 은사를 점검하고, 평신도 사역 지원서를 '사역조정위원회'에 제출하는 과정을 거쳐 사역에 동참한다. 교인 500여 명은 여러 개의 위원회에 참여해 활동할 수 있다.
▲ 지역을 섬기는 사역을 하는 위원회는 220여 개나 된다. 위원회에서는 독거노인 도시락 배달, 다문화 가정 자조 모임 지원 등등의 사역을 펼친다. (사진 제공 완도성광교회)
지역을 섬기는 사역을 하는 위원회는 220여 개나 된다. 이 위원회는 전 교인 헌혈 추진, 주택 수리, 독거노인 결연, 알코올중독인 치유, 이혼 가정 돌봄, 성광어린이집·완도청소년문화의집 사역, 청해노인전문요양원 봉사, 다문화가정지원센터 사역 등등으로 세분되어 있다.
위원회 사역은 교회와 지역에 많은 유익을 끼쳤다. 지속적으로 사역에 함께한 교인들은 예수님의 제자로서 이웃 사랑을 실천하는 신앙의 성숙이 뒤따랐다. 목사나 신도 사이의 벽을 허물고 동역자로 사역하는 관계도 자라났다. 지역에는 어린아이부터 노인까지 전 생애의 복지를 책임지는 사역이 자리 잡았다. 이제 완도성광교회는 지역에 없어서는 안 되는 존재가 되었다.
지역 녹지 지켜 '창조 신앙' 깃들어…자본·성장 좇는 종교인 거부
▲ 경기 용인시 고기리 마을에 녹지와 습지를 보존하며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지키고자 하는 교회가 있다. 고기교회가 바로 그곳이다. 주변 녹지에 생태 교실을 열어 지역 아이들이 논에 모내기도 하고, 습지에 서식하는 도롱뇽·올챙이·개구리·가재·반딧불이도 접하게끔 했다. ⓒ뉴스앤조이 임안섭
경기 용인시 변두리에 고기리 마을이 있다. 자연환경이 잘 보존되어 있던 곳인데, 지금은 개발 붐으로 인해 녹지가 사라지는 곳이 늘어났다. 그럼에도 주변 녹지와 습지를 보존하며 하나님의 창조질서를 지키고자 하는 교회가 있다. 고기교회가 바로 그곳이다.
안홍택 목사는 목회를 시작한 1990년부터 지금까지 쭉 주변 생태를 보존해 왔다. 무분별한 지역 개발을 경계했다. 2000년에는 지역에 대규모 저유소가 들어선다는 소식을 접하고, 개발 반대에 나섰다. 안 목사는 공사 부지에 레미콘이 들어오면 동네 할머니들과 같이 도로 위에서 막아섰다. 저유소 공사를 반대한 지역 주민들과 친해지는 계기가 되었다. 결과적으로 저유소 공사를 막지는 못했지만, 설계도에서 미흡했던 안전장치를 보강하는 데 합의를 이끌어 냈다.
"자기를 부인하고 자신을 내주는 십자가의 영성에 생태계의 원리가 담겨 있습니다. 끝까지 개발하고 성장하려고 하면 하나님의 창조질서는 파괴됩니다. 한국교회도 끊임없이 성장하려고 하는데, 성장을 멈추지 않으면 좋은 열매를 맺을 수 없습니다."
안 목사의 고백이다. 고기교회에는 교회 터전이 개인 소유가 아니라 하나님의 땅이고 보존해야 할 곳이라는 신앙이 깃들었다. 주변 녹지에 생태 교실을 열어 지역 아이들이 논에 모내기도 하고, 습지에 서식하는 도롱뇽·올챙이·개구리·가재·반딧불이도 접하게끔 했다.
▲ 고기교회는 지역에 어린이 도서관이 없던 시절 '밤토실'이라는 도서관을 만들었다. 목공방 '아래'도 만들어 교인이나 지역민에게 목공 기술을 나누고 있다. 교인들이 서로 생활용품을 나누고 차도 마시는 '그냥 가게'를 같이 운영하며 나누고 베푸는 문화도 실천하고 있다. (사진 왼쪽 위 제공 고기교회 / 그 외 사진 ⓒ뉴스앤조이 임안섭)
지역 문제는 고기교회와 떼려야 뗄 수 없는 문제였다. 지역에 어린이 도서관이 없던 2000년대 중반, 교회는 '도서관 만들기 모임' 사람들과 함께 의기투합해 교회 건물에서 '밤토실'이라 이름붙인 도서관을 시작했다. 1만 권이 넘는 책을 전부 기증받았다. 목공방 '아래'도 만들어 교인이나 지역민에게 목공 기술을 나누고 있다.
고기교회 교인들에게는 사역이 곧 일상이었다. 교인들은 도서관 도우미로 활동하고, 생태 교실에 참여하고, 녹지를 보살피고, 근처 텃밭에서 함께 농사짓는다. 서로 생활용품을 나누고 판매도 하고 차도 마시는 '그냥 가게'를 같이 운영하며 나누고 베푸는 문화를 실천한다. 지역 현안이나 사회문제에도 관심을 가지고 세월호 참사 유가족과 같은, 고난받는 이웃을 돕는다. 교인들은 형식적인 프로그램이 아니라 일상과 분리되지 않는 사역에 동참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