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산박물관이 3차례 조사 후 발간한 <울산 영축사-출토유물 자료집> 표지와
내부 유물 사진들 . |
신라시대 최대 가람이었던 영축사(靈鷲寺)의 사지 규모를 최종 확인하는 <울산 영축사-출토유물 자료집>이 발간됐다.
울산박물관(관장 신광섭)은 ‘율리 영축사지(시 기념물 제24호)’에 대한 1·2차 발굴조사에 이어 지난 2014년 12월 3차 조사에서 영축사의 중심 사역 규모가 경주 감은사에 버금감을 확인하고 최근 종합 보고서를 자료집으로 발간했다.
보고서는 강당지 조사를 통해 영축사가 강당-금당-동ㆍ서탑-중문-회랑으로 이루어진 대가람이었음을 밝히고, 강당지는 금당지 중심에서 북쪽으로 26.9m 떨어져 금당, 중문과 함께 동일한 남북중심축에 있으며, 강당지 구조는 정면 7칸, 측면 3칸, 잔존 규모는 동서 20.7m, 남북 8.9m의 크기로, 동쪽에는 정면 1칸, 측면 1칸 구조의 부속 건물지 2동이 동서 방향으로 나란히 배열됐음을 확인한다.
더구나 금당지는 통일신라시대 사질토를 수평으로 기단 2m까지 판축 성토하여 축조한 후, 어느 시점에 금당지 석부재(石部材)를 전면 교체하는 중창과정을 거치고 12세기 고려시대 시점에 폐사(廢寺)한 것으로 계측하고 있다.
이번 발간된 총145쪽의 <출토유물 자료집>은 <삼국유사>에 신라 신문왕대(683년) 창건으로 기록된 영축사에 대한 1·2차 발굴조사 성과와 548점의 출토유물 중 중요 유물을 중심으로 총 4부로 구성됐다.
자료집은 영축사의 가람 구조가 4개 방향의 출입구가 확인된 금당지를 중심으로 동·서쪽에 석탑이 위치하고 금당지의 중심축에서 남쪽으로는 석등과 사찰로 들어서는 입구인 중문지가 위치하는 통일신라시대 전형적인 쌍탑 가람(雙塔 伽藍)임을 소상히 밝히고 있다.
영축사의 사지 규모를 최종 확인하는 조사발굴 전경사진 |
특히 보고서 2부 ‘영축사, 가람을 조성하다’에서는 영축사의 가람을 구성하는 금당지, 동·서탑지, 중문지, 회랑지를 중심으로, 영축사의 대지(垈地) 조성 방법과 귀부, 석등의 조사 성과에 대해 소개하고 있다. 아울러 중심 사역을 감싸는 회랑지 조사를 통해 영축사의 가람과 중심 사역 범위를 분명하게 밝히고 있다.
보고서는 학술 자문회의 결론을 통해 “통일신라 창건 대규모 사칠로서, 특히 금당은 4면 입구가 자리잡은 적멸보궁형 금당형식으로 불교 건축사 연구에 중요한 유구이다”면서 “통일신라부터 고려시대까지 건축의 발달을 구조적으로 파악할 중요 유적지”라고 밝혔다.
보고서는 1부 ‘영축사, 다시 숨을 쉬다’에서 영축사의 창건 설화와 연혁, 영축사의 위치와 고고·역사적 환경, 지금까지의 발굴조사 현황을 설명하고, 3부 ‘유물을 통해 영축사를 바라보다’에서는 1ㆍ2차 발굴조사에서 확인된 총 548점의 유물을 선별해 소개했다.
이들 유물 중에는 통일신라~고려시대에 해당하는 와전류가 많아 연화문, 연화당초문, 모란문 등의 수막새와 당초문, 쌍조문, 초화문 등의 암막새, ‘영축(靈鷲)’, ‘대관(大官)’, ‘삼보(三寶)’, ‘대천십구사평팔천왕(大天十九四平八天王)’ 등의 문자나 기호가 새겨진 기와류가 대부분이다.
또한 유물 보고에서 밝혀지는 통일신라시대 제작된 석조여래좌상과 광배는 전체적으로 양감이 풍부하고, 금당지, 동탑지에서 출토된 금동여래입상은 통일신라시대 소형 금동불의 양식을 잘 보여준다.
이어 보고서는 ‘△河東郡遇/上黙念潛祈/△’, ‘物/而般若/宗河/△△’ 등의 문자가 새겨진 비석편도 확인했다면서, 이를 통해 통일신라시대에서 고려시대에 해당되는 것으로 영축사의 존속 시기를 밝혀주고 있다.
이어 보고서 4부 ‘영축사,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는 영축사지의 발굴조사 성과를 간략하게 정리하고 앞으로의 발굴조사 계획을 담고 있다. 특히 보고서는 3층 석탑 규모와 형식이 통일신라 조성 기법의 전형이라서 학술조사가 시급하다며, 이중 귀부에 대해 아주 희소한 예로서 학술적 중요도가 높다고 밝혔다.
영축사의 가람 배치도 |
신광섭 울산박물관장은 “영축사의 강당지 확인으로 경주 감은사와 가람 배치나 규모 등에서 큰 차이가 없는 점을 감안하면, 영축사가 신라의 지방 사찰 중에도 상당한 규모의 사찰이었고, 울산 불교문화의 위상을 보여주는 중요한 사찰”이라며 “향후 연차적인 발굴조사를 통해 영축사의 창건-중창-폐사 과정과 동ㆍ서탑의 규모 및 축조방법, 석탑 부재의 정밀조사를 통해 영축사의 역사적 위상을 밝히고 통일신라시대 울산지역 불교문화 연구의 기초 자료로 활용할 수 있도록 할 계획”이라고 말했다.
울산박물관의 이현정 학예연구사는 “출토유물은 약사불(藥師佛)을 중심으로 꽃과 구름문이 장식된 광배(光背)편 1점, 연화문이 장식된 소형 유공초석(有空礎石) 1점, 석등 부재인 화사석(火舍石) 1점 등이 중요하다”면서 “8세기대 유행한 구양순체(歐陽詢體)로 새겨진 비석편 2점과 통일신라~고려시대 각종 기와류가 다수 출토된 기록들이 이번 보고서의 성과”라고 말했다.
첫댓글 신라시대 최대 가람이었던 영축사(靈鷲寺)라... 경주 황룡사지보다 컸었나 황룡사지에 가 보니 참으로 드넓던데...을 구조적으로 파악할 중요 유적지”라고 _()_
그 큰 가람이 고례 때 폐사되었군요. “통일신라부터 고려시대까지 건축의 발
하니 중요한 사지임을 알 수 있네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