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중 제3주일(하느님의 말씀 주일, 해외 원조 주일)
복음묵상 말씀입니다.
그분께서는 두루마리를 펴시고
이러한 말씀이 기록된 부분을 찾으셨다.
18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19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
예수님께서 회당에서 선포하신 말씀은,
이사야 예언서 61장 의 말씀으로,
예수님께서는,
하느님께서 당신 백성 이스라엘 백성에게 보내주시기로 약속하신
‘기름부음을 받은 자’, ‘메시아’ 곧 ‘그리스도’ 이심을 드러내며,
동시에,
하느님의 뜻을 온전히 이루실 그리스도 로서
예수님께서
당신의 모든 것을 바쳐 선포하실 ‘은혜로운 해’, ‘희년’을
기쁨과 희망 가득한 모습으로 그려냅니다.
그리고, 예수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오늘 이 성경 말씀이 너희가 듣는 가운데에서 이루어졌다.”
이미 이루어진 것은, 되돌릴 수 없습니다. 이 말씀은,
예수님께서 오늘 회당에서 선포하신 은혜로운 해, 기쁨의 해는
반드시 당신을 통해 이루어질 것이라는,
하느님의 구원 계획에 대한 예수님 스스로의 확신과,
은혜로운 해, 기쁨의 해를,
당신 친히 반드시 이루실 것이라는 예수님의 강한 의지를
드러냅니다.
사실,
예수님께서 선포하신 은혜로운 해, 기쁨의 해 는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 이시라는 이유 만으로,
마술처럼 갑자기 하늘에서 떨어지는 것이 아니고,
예수님께서 하느님의 아드님이셨음에도 불구하고,
당신의 온 삶을 바쳐, 십자가의 죽음을 통해
우리에게 가져다 주신,
예수님의 목숨값으로 얻게 된 값진 선물인 것입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좋은 분‘이라고도 하지만,
하느님께서는, ’좋음 자체‘ 이십니다.
좋다 는 것은, 상대방의 관점에서 이해해 볼 수 있는데,
’하느님께서 좋음 자체이시다‘는 표현은,
이 세상 그 어떤 것들도
하느님께로부터 긍정적인 에너지를 얻고,
하느님 때문에, 행복해진다 는 의미입니다.
그리고, 좋음 자체이신 하느님을
눈에 보이는 모습으로, 우리와 같은 인간으로서
보여주신 분이,
바로, 예수님 이십니다.
누군가를 행복하게 만드는 것은
쉽지 않습니다.
적어도, 누군가를 행복하게 만드는 동안은,
나의 것을 내려 놓아야 하고, 나의 것을 내어 놓아야 하기 때문입니다.
누군가를 행복하게 만든다는 것의 또 다른 표현은,
누군가를 감동시킨다는 것입니다.
이 세상 그 누구도, 나의 것을 움켜잡고 있으면서,
상대방을 감동시킬 수 없습니다. 오히려,
나의 것을 얼마만큼 기꺼이 내어 주느냐 에 따라,
감동이 시작되고, 그 크기도 달라집니다.
우리는 하느님을 좋으신 분 이라고 고백합니다.
그리고, 그러한 하느님을 온 삶으로 보여주신 예수님을
메시아, 그리스도 라고 고백합니다.
그래서, 우리는,
우리가 누리고 있는 모든 좋은 것들을,
하느님께, 하느님을 보여주신 예수님께
빚졌다고 할 수 있습니다.
그 빚은, 오직,
하느님께서 보여주신 방식대로만
예수님께서 보여주신 방식대로만
갚을 수 있으며,
그러한 방식으로, 이 세상에 좋음은
하느님께로부터 시작되어, 하느님께로 다시 돌아갑니다.
하느님께서 적어도 나에게
어떠한 모습으로 좋으신 분이신지를
돌아보도록 합시다. 그리고, 그 좋음이,
하느님께서 당신 자신을 나에게
기꺼이, 또 온전히
내어 주셨기 때문에
시작되고 완성되었다는 사실을
기억하도록 합시다.
그리고, 나 역시, 예수님처럼은 아니더라도,
오늘 복음에서 선포하신
예수님의 이사야서의 말씀을 살아가도록
불리움을 받았음에 감사드리며,
언젠가는 나 역시,
오늘의 성경 말씀을
내 삶으로 선포하도록 합시다.
18 “주님께서 나에게 기름을 부어 주시니 주님의 영이 내 위에 내리셨다.
주님께서 나를 보내시어 가난한 이들에게 기쁜 소식을 전하고
잡혀간 이들에게 해방을 선포하며 눈먼 이들을 다시 보게 하고
억압받는 이들을 해방시켜 내보내며
19 주님의 은혜로운 해를 선포하게 하셨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