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6절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하나니
맹세는 저희 모든 다투는 일에 최후 확정이니라”
맹세는 보증서입니다. 성경은 언약이고 계약문서입니다.
하나님의 권위와 그 변치 않으시는 성품을 걸고 맹세한 것이 성경입니다.
성경은 하나님께서 이대로 하시겠다는 일방적인 계약문서입니다. 그래서 거기에 성령의
기운을 불어 넣으신 겁니다. 사실 성경에서 구하라고 하는 말씀까지 하나님이 이루십니다.
구하라 하는 그 말씀까지도 구하도록 하시는 하나님의 능력이 그 속에 스며들어 있습니다.
말씀이 들어와서 역사하면 반드시 그렇게 된다는 겁니다. 왜 그럴까요? 우리 안에 소원을
두고 행하시는 이는 하나님이시니까요. 우리에게 현재는 있는데 미래를 어떻게 믿느냐
그래서 하나님의 맹세가 나옵니다. ‘내가 반드시 이루리라’ 그걸 아브라함이 알았다는 겁니다.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부르셨습니다.
아브라함에게 말씀하시길 제물을 바쳐라 가져와서 쪼개라 하십니다.
그래서 아브라함이 제물을 쪼갰습니다. 하나님께서 '내가 너를 믿음의 조상으로
만들겠다 하늘의 별과 같이 땅의 모래같이 네 자손을 많게 하겠다 우리 맹세하자'하시고는
그 사이를 둘이 같이 지나가야 만약 그 맹세를 어기면 짐승들이 쪼개진 것처럼 맹세를
한 당사자가 쪼개져야 되는 것이 맹세임에도 그 때에 하나님이 아브라함을 너는 잠이나
자라하시고 잠을 재우시고는 혼자만 지나가시므로 일방적으로 맹세를 해 버렸습니다.
그 의미는 ‘내가 만약 이 약속을 네게 지키지 않으면 내가 이 짐승들처럼 네 대신 쪼개어
지겠다'는 겁니다. 결국 하나님은 자기를 쪼개서 우리가 어긴 그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자기 아들 예수 그리스도를 생축처럼 십자가에서 쪼개어 이 약속을 지키셨습니다.
맹세로 지키셨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아브라함에게 맹세하셨다고 하십니다.
‘너는 잠이나 자라 나 혼자 지나 갈테다’ 하시고는 완전히 원맨쇼를 하신 겁니다.
이게 우리가 가진 믿음입니다. 지금도 우리가 이 믿음이란 사업을 하나님과
합작 운영하는 것 같지만 사실은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해치우십니다. 다만 우리는
거기에 겨우 반응하고 있을 뿐입니다. 아브라함이 부랴부랴 일어나보니까 하나님이
벌써 지나가 버리신 뒤였습니다. 우리 인간은 이것 밖에 못합니다. 하나님이 하신 일의
뒤치다꺼리 밖에 못합니다. 하나님께서 혼자 쪼개진 제물 사이로 지나가시듯 결국 자기를
십자가에 쪼개서 이방인들에게 넘겨주셨습니다. 예수 그리스도가 십자가로 율법의
저주에서 우리를 속량하지 않았으면 어떻게 이 아브라함에게 임한 약속이
이방인인 우리들에게까지 넘어 올 수가 있었겠습니까? 어떻게 우리가 믿음으로
말미암아 성령의 약속을 받을 수 있겠습니까? 하나님이 맹세로 하신 말씀을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십자가에서 실행하셨기 때문입니다.
그래서 16절에 맹세하는 모습을 다시 봅시다. “사람들은 자기보다 더 큰 자를
가리켜 맹세하나니 맹세는 그들이 다투는 모든 일의 최후 확정이니라” 사람들은 자기
보다 더 큰 자 앞에서 맹세하잖아요. 그리고 맹세는 모든 다투는 일에 최후 확정입니다.
법률사무소에서 서로 계약하고 공증을 합니다. 각자 도장을 찍고 공증을 한 후에
서로 계약서를 나눠 갖습니다. 이 말은 이미 건너갔다는 뜻입니다. 그래서 공증된
계약서는 재판을 할 필요 없잖아요. 계약을 안 지키면 바로 효력이 발생합니다.
사람들도 이렇게 하는데 신실하신 하나님께서 그 맹세를 어떻게 이루시겠습니까?
17절 “하나님은 약속을 기업으로 받는 자들에게 그 뜻이
변하지 아니함을 충분히 나타내시려고 그 일을 맹세로 보증하셨나니”
하나님께서 약속을 기업으로 받은 자들 곧 약속의 상속자들에게 주시는
맹세는 무엇인가? 바로 성경입니다. 이는 하나님의 약속입니다.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이루겠다는 약속이 바로 성경입니다. 그리고 그 약속을 우리에게 이루신 분이 바로
예수 그리스도입니다. 그리고 우리에게 오셔서 우리의 구원을 완성하시려고 우리의
구원의 완성의 날까지 보증이 되시기 위해서 우리에게 오신 분이 성령이십니다.
이것이 바로 하나님의 맹세라는 겁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최후 확정은 성경입니다.
하나님의 맹세의 책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에 있는 말씀이 그대로 믿어진다면
하나님의 맹세를 믿는 겁니다. 이건 대단한 믿음입니다. 그래서 말씀을 믿는 믿음이
그렇게 중요하다는 겁니다. 예수 그리스도께서 말씀하시기를 너희들이 영생을 얻고자
성경을 상고하거니와 성경은 나에 관하여 증거하는 것이라(요5:39)하십니다.
예수 그리스도를 보내서 아담 안에 타락한 모든 인간들을 구원해 내겠다는 맹세의 책이
성경입니다. 구원하실 뿐 아니라 그분이 스스로 완성시키겠다는 맹세의 책이 성경입니다.
성경이 바로 하나님의 맹세의 책입니다. 그래서 우리가 성경을 약속의 책이라고 하잖아요.
구약, 신약이라고 부릅니다. 그런데 언제 우리가 하나님과 약속한 적이 있습니까?
하나님이 일방적으로 약속하셨습니다. 이미 아브라함에게 약속해 버렸습니다.
그 약속을 지금 이루어가고 있는 겁니다. 이삭으로 말미암은 씨, 예수 그리스도로
말미암아 이 약속을 이루고 있는 겁니다. 세계의 역사도 이 약속이 이루어지면 끝입니다.
성경은 하나님의 맹세가 담긴 책입니다. 보통 책이 아닙니다. ‘너희 속에 착한 일을
시작하신 이가 예수 그리스도의 날에 이루실 것을 확신 하노라’(빌1:6)
사도 바울은 하나님의 예정과 역사와 하나님의 완성을 철저하게 믿은 사람입니다.
그 약속의 말씀에 얹혀버린 사실을 잘 아는 사람이었습니다.
우리도 이런 확신이 있어야 됩니다. 우리의 믿음, 우리의 구원은 그냥 된 게 아닙니다.
하나님의 맹세로 된 것입니다. 그래서 하나님이 맹세한 일로 인해서 우리가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과 한 식구가 되었습니다. 대단한 복입니다. 예수님이 맹세를 많이
하셨습니다. ‘만약 내 말을 너희가 믿으면 영생을 얻으리라 영원히 죽음을 보지
아니하리라 아무도 내 손에서 빼앗을 자가 없느니라’ 수도 없이 맹세하셨습니다.
그 중에서도 예수님의 가장 큰 맹세는 내 몸을 먹어라 이 잔을 받아라
내 생명이 네 생명 네 생명이 내 생명이 되리라는 말씀 아닙니까?
자기 몸과 자기 피를 우리의 구원을 위해 십자가에 던지신 겁니다. 그래서
그 떡으로 한 몸이 되고, 그 피 한 잔으로 하나가 되고 한 생명이 되게 하신 겁니다.
우리의 이 구원이 그냥 된 것이 아닙니다. 하나님의 맹세로 된 것입니다.
그래서 성경을 깊이 상고하고 묵상하고 되새김질 하셔야 됩니다.
하나님의 맹세의 이 성경책이 우리의 육신화가 되도록 해야 됩니다.
그러므로 믿음과 오래 참음으로 몸이 예수 그리스도를 믿도록 해야 됩니다.
18절 “이는 하나님이 거짓말을 하실 수 없는
이 두 가지 변하지 못할 사실로 말미암아 앞에 있는 소망을
얻으려고 피난처를 찾는 우리에게 큰 안위를 받게 하려하심이라”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실 수 없습니다.
하나님은 신실하고 미쁘시기 때문에 하나님에게는 거짓말이 없습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부르심과 은사에는 후회함이 없습니다. 고후1장에 하나님의
말씀은 예 했다가 아니오가 없다고 합니다. 그래서 하나님의 모든 말씀은
그리스도 안에서 예만 됩니다. 하나님께는 거짓이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그리고 하나님에게 실패라는 단어가 없습니다. 된다고 했다가 안 된다가 없습니다.
안 된다고 했다가 된다고 하는 것도 없습니다. 이랬다저랬다 하는 분이 아닙니다.
그래서 변치 못할 이 두 가지 사실은 하나님은 거짓말을 할 수 없다는 것
이것이 변치 못할 사실입니다. 그 다음엔 큰 위로를 주시는 겁니다. 앞에 있는
소망을 붙잡으려고 피하는 자들에게 주시는 약속은 하나님은 거짓말을 하시지
않으신다는 사실과 이 약속을 따라가는 자들에게 위로가 되신다는 사실입니다.
첫댓글 아멘! 감사합니다.
주님 참 감사합니다. 영광을 받으소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