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도의 세례 (1693)
루카 조르다노
17세기 이탈리아 바로크 미술의 거장 루카 조르다노(Luca Giordano, 1634-1705)는
나폴리에서 태어나 호세 데 리베라와 마티아 프레티 등에게 그림을 배웠고,
1650년 이후 로마에서 피에트로 다 코르토나의 장식 양식을 배웠으며,
베네치아에서 밝은 색채의 표현을 수용했다.
그는 작품 활동을 주로 나폴리에서 하였지만 피렌체와 베네치아에서도
명성을 날렸으며 이탈리아 회화사에 뚜렷한 발자취를 남겼다.
그는 합스부르크 왕가의 카를로스 2세(Carlos Ⅱ, 재위 1665-1700)에게
초청되어 1692-94년에 엘 에스코리알 수도원의 천정화를 제작했고,
마드리드와 톨레도에서 10년 동안 활동하며
많은 제단화와 프레스코를 그려 명성과 부를 얻었는데,
그가 1693년경에 그린 <그리스도의 세례>는
현재 미국 남부 도시 뉴올리언스 미술관에 소장 되어있고,
마태오복음 3장 13-17절이 그 배경인데,
예수님께서 요르단강에서 세례자 성 요한에게 세례를 받는 장면이다.
그때에 예수님께서는 요한에게 세례를 받으시려고
갈릴래아에서 요르단으로 그를 찾아가셨다.
그러나 요한은 “제가 선생님께 세례를 받아야 할 터인데
선생님께서 저에게 오시다니요?” 하면서 그분을 말렸다.
예수님께서는 “지금은 이대로 하십시오.
우리는 이렇게 해서 마땅히 모든 의로움을 이루어야 합니다.” 하고 대답하셨다.
그제야 요한이 예수님의 뜻을 받아들였다.
예수님께서는 세례를 받으시고 곧 물에서 올라오셨다.
그때 그분께 하늘이 열렸다.
그분께서는 하느님의 영이 비둘기처럼 당신 위로 내려오시는 것을 보셨다.
그리고 하늘에서 이렇게 말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이는 내가 사랑하는 아들, 내 마음에 드는 아들이다.”(마태 3,13-17)
조르다노의 이 작품은 호세 데 리베라가 1643년에 그린 작품과 구성이 비슷하다.
사실은 두 그림 모두 고전적인 <주님 탄생 예고>의 구성을 빌려 왔다.
마리아를 방문하여 성령이 깃들이심을 알리는 천사와
기도서를 밀어 두고 두 손을 가슴에 모으며 순종의 자세를 하는 마리아의 자세가,
세례자 요한과 세례를 받으시는 그리스도의 자세로 바뀌었다.
리베라는 등장인물들을 화면 경계까지 끌어왔다.
보는 이도 현재성의 극한에서
눈앞에서 전개되는 세례 사건에 동참하지 않을 수 없다.
붓놀림과 채색도 어느 한구석 모호한 곳이 없다.
예수님의 오른발 끝이 물속을 짚고 있다.
조개껍데기에서 떨어지는 물줄기가
세례받는 이의 등줄기를 적시는 느낌이 생생하다.
예수님이 그림 밖으로 시선을 돌린 것도, 현재성의 실감을 더 한다.
그런 점에서 리베라는 수르바란의 전통과 맥을 나눈다.
세례는 더 이상 책갈피 속의 기적이 아니라 현실이다.
조르다노는 리베라의 <그리스도의 세례>에 베네치아의 감성을 더했다.
부드럽게 휘감아 치는 색채의 향기가 세례의 기적을 감싼다.
수많은 천사와 황금빛 구름은 리베라의 가치 없는 현실을
다시금 성스러운 기적으로 돌이킨다.
그림 한복판을 가로지르는 세례자의 손에 조개껍데기가 들려있다.
리베라처럼 조르다노 역시 세례받는 이가
강물 속에 허리나 어깨까지 몸을 담그고 세례를 받는 동방 유형을 버리고,
새로운 관례를 따랐다.
14세기 이후 세례자는 조개껍데기나 그릇을 사용하고,
때로 도구 없이 맨손으로 물을 떠서 뿌린다.
배경의 신성한 분위기에서 세례의 사건을 이끌어내는 은유적인 명암법은
바로크 화가의 자랑이다.
예수님은 눈을 감고 허리를 숙였다.
리베라의 예수님이 보는 이를 설득하여 그림 안의 사건으로 끌어들인다면,
조르다노는 세례의 기적을 내면화한다.
눈감은 예수님에게 성령의 비둘기와 천사들이 날아온다.
천사의 출현은 동방 전통이다.
눈감은 예수님을 내려다보는 세례자도 비둘기의 형상을 보았다.
낙타털 옷을 걸친 세례자 요한은 붉은 겉옷을 길게 늘어뜨렸다.
베네치아 화가들이 아끼고 사랑하는 붉은색은 영혼의 불타오르는 경건을 뜻한다.
그의 왼손이 허리 잘린 나무의 단면을 짚고 있다.
이것은 “도끼가 이미 나무뿌리에 닿아 있다.
좋은 열매를 맺지 않는 나무는 모두 찍혀서 불 속에 던져진다.”(마태 3,10)라는
세례자 요한의 설교가 떠오르게 하는 대목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