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소에 충만한 여호와의 영광
이제 출애굽기 마지막 장에 이르게 되었습니다. 드디어 성막이 하나님의 명하신 대로 완성이 되는 내용입니다. 모세가 두 번째 돌 판을 가지고 시내산에서 내려와 백성들을 모으고 “여호와께서 너희에게 명하사 행하게 하신 말씀이 이러하니라”(35:1) 하고 하나님께 받은 말씀을 전해준 이후로 하나님께서 친히 나타나시는 바가 한 번도 없었습니다. 오직 “말씀”만이 주어졌을 뿐입니다. 그들은 말씀대로 믿고 준행했습니다. 성막이 완성이 되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1) 하고 하나님이 등장하시는 것입니다. 이는 39장에서는 모세가 “필한 모든 것을”(39:43) 점검했고, 40장에서는 하나님이 점검해 보시고 명한 대로 되었음을 결재하신 셈입니다. 그리하여 “너는 정월 초 일일에 성막 곧 회막을 세우라”(2)고 명하십니다.
39장에서 모세는 “축복”하였고, 40장에서 하나님은 복을 주시는 것입니다. 이것이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34)로 나타났던 것입니다. 이는 모세가 “이스라엘이여 너는 행복자로다 여호와의 구원을 너같이 얻은 백성이 누구뇨”(신 33:29)한 대로 최고 최대의 복이었던 것입니다. 명하신 대로 행하지 않았어도 “성소에 충만한 여호와의 영광”이었겠습니까? 이를 두 단원으로 나누어 상고하겠습니다.
첫째 단원(1-33) 성막을 세우라
둘째 단원(34-38) 모세가 들어갈 수 없었더라
첫째 단원(1-33) 성막을 세우라
첫째 단원은 성막을 세우는 내용입니다. 앙장과 덮개와 판자와 기구들을 만들 때에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만들었음을 관찰하였습니다. 이제 성막을 세우는데 있어서도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행해야함을 성경은 보여주고 있습니다. 특히 성막 기구들을 제 위치에 놓아야만 하는 것입니다. 그래야만 성막이라는 모형을 통해서 계시하려는 그리스도의 복음이 바르게 드러나게 되기 때문입니다. 1-16절까지는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시는 내용이고, 17-33까지는 명하신 대로 세우는 내용입니다. 얼마나 철저하게 복종하고 있는가를 살펴보겠습니다.
☞ 명하시기를 :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일러 가라사대 너는 정월 초 일일에 성막 곧 회막을 세우고(1-2),
※ 명한 대로 : 제 이년 정월 곧 그 달 초 일일에 성막을 세우니라(17).
☞ 명하시기를
① 또 증거궤를 들여놓고 또 장으로 그 궤를 가리우고(3),
② 또 상을 들여놓고 그 위에 물품을 진설하고(4상),
③ 등대를 들여놓고 불을 켜고(4하),
④ 또 금 향단을 증거궤 앞에 두고(5상),
⑤ 성막 문에 장을 달고(5하),
⑥ 또 번제단을 회막의 성막 문 앞에 놓고(6),
⑦ 또 물두멍을 회막과 단 사이에 놓고 그 속에 물을 담고(7),
⑧ 또 뜰 주위에 포장을 치고 뜰 문에 장을 달고(8),
⑨ 또 관유를 취하여 성막과 그 안에 있는 모든 것에 발라 그것과 그 모든 기구를 거룩하게 하라 그것이 거룩하리라(9).
⑩ 너는 또 번제단과 그 모든 기구에 발라 그 안을 거룩하게 하라 그 단이 지극히 거룩하리라(10).
※ 명한 대로
①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되니라(19).
②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되니라(21).
③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되니라(23).
④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되니라(25).
⑤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되니라(27).
⑥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되니라(29).
⑦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되니라(32).
⑧ 모세가 그같이 행하되 곧 여호와께서 자기에게 명하신 대로 다 행하였더라(16).
⑨ 모세가 이같이 역사(役事)를 필하였더라(33).
둘째 단원(34-38) 모세가 들어갈 수 없었다
“그 후에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으며”(34-35).
“그 후에”란 “모세가 이같이 역사를 필하였더라”(33하)한 그 후를 뜻합니다.
①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34상),
②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매(34하),
③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으니(35상),
④ 이는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35중),
⑤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함이었기(35하) 때문이라고 말씀합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얼마나 충만하였는가를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다”는 묘사가 단적으로 말해주고 있습니다. 어찌하여 성막을 “여호와의 명하신 대로” 세워야만 했는가? 바로 이를 위해서였던 것입니다. 성막이 여호와께서 모세에게 명하신 대로 되지 않았다 해도 “구름이 회막 위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하였겠습니까?
이점에서 25:8절 말씀을 상기할 필요가 있습니다. “내가 그들 중에 거할 성소”라고 말씀합니다.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했다”는 것은 여호와께서 성막에 임재(臨在)하심을 나타내고 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하심은 “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장막을 치매) 우리가 그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요 1:14)하실 임마누엘의 모형이었던 것입니다. 성경은 “옛적에 선지자들로 여러 부분과 여러 모양으로 우리 조상들에게 말씀하신 하나님이 이 모든 날 마지막에 아들로 우리에게 말씀”(히 1:1)하셨다고 증거하고 있습니다. 즉 하나님께서는 그리스도를 보내시기 전에 “예표와, 그림자와, 예언과, 모형”을 통해서 충분하리 만치 믿을 만한 계시를 하신 후에 그의 성취로 마지막에 아들을 보내주셨다는 뜻인 것입니다.
하나님께서는 이 계시를 모세를 통해서만 주신 것은 아니었습니다. 다윗과 솔로몬 당시 성전을 건축하는 과정에서도 보여주셨습니다. 다윗은 증거하기를 “이 위의 모든 것의 식양(式樣)을 여호와의 손이 내게 임하여 그려 나로 알게 하셨다”(대상 28:19)고 말씀합니다. 그리고 성전을 그 식양 대로 준공하고 솔로몬이 봉헌 기도를 드렸을 때에 “불이 하늘에서부터 내려와서 그 번제물과 제물들을 사르고 여호와의 영광이 그 전에 가득하니 여호와의 영광이 여호와의 전에 가득하므로 제사장이 그 전에 능히 들어가지 못하였다”(대하 7:1-2)고 말씀합니다. 이는 임마누엘에 대한 명백한 모형이었던 것입니다.
임마누엘
그런데 성막계시는 여기가 끝이 아닙니다. 왜냐하면 주님께서 육신의 장막을 입고 이 땅에 오신 것이 구속사역의 끝이 아니기 때문입니다. 그 점이 식양을 통해서 분명히 계시되어 있습니다. 식양을 통한 중심점은 “번제단-가로막혀 있는 휘장-여호와의 영광이 충만한 지성소”라는 연장선상(延長線上)에 있는 것입니다. 범죄 함으로 하나님 존전에서 추방당한 아담의 후예들이 어떻게 여호와의 영광 앞에 나아갈 수가 있는가? 그에 대한 해답이 “번제단과, 물두멍”을 통해서 제시되어 있습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 했다는 이 계시는 도성인신(道成人身)에서 끝나는 것이 아닙니다. 예수 그리스도는 육신을 입고 오시기 전, 창세 전부터 “아버지와 함께 영화를 가졌던”(요 17:5) 분이시기 때문입니다. 그러므로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 했다는 이 계시는 예수 그리스도의 구속으로 말미암아 하나님의 교회에 충만할 것으로 적용이 됩니다. 이를 놓쳐서는 아니 됩니다. 이를 위해서가 아니라면 성막(성육신)도, 번제단(십자가)도 의미가 없는 것입니다.
그러므로 바울 사도는 이를 망각하고 있는 고린도교회를 향하여 “너희(교회)가 하나님의 성전인 것과 하나님의 성령이 너희 안에 거하시는 것을 알지 못하느뇨”(고전 3:16) 하고 일깨워주었던 것입니다. 지금 하나님의 영광은 성막이나 성전이라는 건물 안에 충만한 것이 아니라 성도의 모임인 교회에 충만하다는 이 영광스러움을 망각해서는 아니 됩니다.
너희가 하나님의 성전
이점에서 강조해야할 점이 있습니다. 그것은 성경이 “모세가 회막에 들어갈 수 없었다(출 40:35), 제사장이 능히 그 전에 들어가지 못하였다(대하 7:2)” 하고 말씀하고 있기 때문입니다. 들어 갈 수가 없었던 것은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성전)에 충만했기 때문입니다. 마치 불이 집에 가득하기 때문에 소방대원이 들어갈 수가 없었다는 말과 같은 뜻인 것입니다. 그렇다면 모세는, 솔로몬은, 그리고 제사장들은 분명 밖에 있었다는 말이 됩니다. 바로 여기에 구약과 신약의 차이가 있습니다. 그림자와 참 것이 다른 점이 이것입니다. 오순절에 임하신 성령은 다락방에 충만하고 120명 성도들은 밖에 있었던 것이 아닙니다. “불의 혀같이 갈라지는 것이 저희에게 보여 각 사람 위에 임하여 있더니 저희가 다 성령의 충만함을 받고 성령이 말하게 하심을 따라 다른 방언으로 말하기를 시작하니라”(행 2:3-4)고 말씀합니다.
성막(그리스도의 몸)에 충만했던 하나님의 영광은 구속함을 얻은 성도들에게 충만하게 임한 것입니다. 성경은 말씀합니다. “그(그리스도) 안에는 신성의 모든 충만이 육체로 거하시고 너희도 그 안에서 충만하여졌으니 그는 모든 정사와 권세의 머리시니라”(골 2:9-10). 머리에만 충만하고 몸의 지체들은 텅텅 비어있는 것이 아닙니다. 이를 알았기에 시편 기자는 이렇게 찬양합니다.
형제가 연합하여 동거함이(교회)
어찌 그리 선하고 아름다운고
머리에 있는 보배로운 기름이
수염 곧 아론의 수염에 흘러서
그 옷깃(온 지체)까지 내림 같고
헐몬(제일 높은 산, 그리스도를 상징)의 이슬이
시온의 산들(교회)에 내림같도다
거기서 여호와께서 복을 명하셨나니 곧 영생이로다”(시 133:2-3).
우리는 한 걸음 더 나아가야만 합니다. 그리고 명심, 또 명심해야할 말씀을 받게 되었습니다. 성경은 “너희 몸은 너희가 하나님께로부터 받은바 너희 가운데 계신 성령의 전 인줄을 알지 못하느냐”(고전 6:19)고 말씀합니다.
① 형제의 몸이 성전(성막)이라고 말씀합니다.
② 형제의 몸에 성령(하나님)이 거하신다고 말씀합니다.
③ 형제의 몸에는 여호와의 영광이 충만으로 거하고 있음을 믿으시기 바랍니다.
④ “알지 못하느냐”고 책망하십니다. 형제는 이를 망각하고 있지는 아니합니까? 알고 있다면 얼마나 자주 묵상하고 있습니까!
이처럼 영광스러운 성소는 그들 가운데 있었습니다. 우리나라는 남을 향하여 집을 짓는데 12지파는 영광스러운 성소를 중심으로 진을 쳤습니다. 어느 지파, 어느 장막에서도 “구름이 회막에 덮이고 여호와의 영광이 성막에 충만”한 것을 바라볼 수가 있었던 것입니다. 그리고 성막에 임한 하나님의 영광은 약속의 땅을 향하여 진군해 나가는 하나님의 군대를 인도하여주셨으며(36-37), 보호하여(38)주셨습니다.
첫 창조에 관하여 기술하고 있는 내용은 창세기 1-2장에 불과합니다만 재창조와 관련된 기사는 출애굽기 40개 장, 나아가 성경 66권을 통해서 기술하고 있는 것입니다. 그렇습니다. 재창조의 구속사역은 창세기 3장에서 “여자의 후손은 네 머리를 상하게 할 것이요”(창 3:15) 하고 선언하심으로부터 시작하여 계시록 마지막에 가서 “이루었도다 나는 알파와 오메가요 처음과 나중이라”(계 21:6)고 선언하시기까지 이어지고 있는 것입니다.
이를 요약하면 모세의 성막, 솔로몬의 성전에 충만했던 여호와의 영광이 임마누엘로 충만하였다가 십자가의 대속으로 말미암아 성도의 몸과 그들의 모임인 교회에 충만하게 되고 “보라 하나님의 장막이 사람들과 함께 있으매 하나님이 저희와 함께 거하시리니 저희는 하나님의 백성이 되고 하나님은 친히 저희와 함께 계셔서 모든 눈물을 그 눈에서 씻기시매 다시 사망이 없고 애통하는 것이나 곡하는 것이나 아픈 것이 다시 있지 아니하리니 처음 것들이 다 지나갔음이러라”(계 21:3-4)에서 완성되는 것입니다. 여기가 “여호와의 영광이 충만했다”는 성막계시의 절정입니다. 할렐루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