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해 여행3 - 남해 독일 마을 맥주 축제에서 독일 파견 광부와 간호사를 생각하다!
2022년 10월 2일 승용차를 타고 남해 고속도로를 달려서 사천시로 들어가서는 옛날
삼천포를 지나 2003년에 개통된 창선도와 육지를 잇는 창선 - 삼천포
대교를 지나 창선도를 달려서는... 이어 남해도로 들어가서는 10여분을 더 달립니다.
삼동면에 자리한 남해 독일 마을에 도착해서는 오른쪽 길로 마을로 들어가 산 중턱에 우리가 예약한 팬션을
찾아 체크인후 가방을 맡기고 10여분을 걸어서 셔틀버스를 타고 독일마을에서 내리는데 여긴 1960
년대에 산업 역군으로 독일에 파견되어 한국의 경제발전에 기여한 독일 거주 교포들을 위해 세워졌습니다.
저 교포들이 나이들아 은퇴한 후에 한국에 정착할수 있도록 삶의 터전을 제공해주고, 독일의
이국 문화를 경험하는 관광지로 개발하기 위해 2001년 부터 조성한 곳인데 오늘
맥주 축제가 열리고 있으며 이 마을은 드라마 환상의 커플이 촬영된 곳으로도 유명한합니다.
영국 주간지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 지 에서는 이 마을이 과연 실제로 교포들을
정착시키는데 성공했는지 여부는 분명하지 않다(Where the Rhine meets
the Pacific) 라고 말했는데 역사 전시관을 보면서 문득 “영화 국제시장” 이 떠오릅니다.
2014년 12월 17일에 개봉한 영화로 부산시 국제시장을 배경으로 1950년대 6.25 전쟁때 흥남 철수작전
부터 파독광부 베트남 전쟁 이산가족찾기 등에 한국전쟁 이후 대한민국의 역사에 온갖
드라마틱했던 격변기를 몸소 겪으며 살아온 산업화 세대인 덕수(황정민 분) 를 주인공으로 그렸습니다.
부산으로 피란 온‘덕수’(황정민 분)의 다섯 식구, 전쟁 통에 헤어진 아버지를 대신해야 했던‘덕수’ 는
고모가 운영하는 국제시장의 수입 잡화점 ‘꽃분이네’ 서 일하며 가족의 생계를 꾸려 나갑니다.
남동생의 대학교 입학 등록금을 벌기 위해 이역만리 독일에 광부로 떠난‘덕수’ 는그곳에서 첫사랑이자 평생의
동반자 ‘영자’(김윤진 분)를 만나는데 그는 가족의 삶의 터전이 되어버린 ‘꽃분이네’ 가게를 지키기 위해
‘선장’이 되고 싶었던 오랜 꿈을 접고 다시 한번 전쟁이 한창이던 베트남으로 건너가 기술 근로자로 일합니다.
초반부는 흥남 철수작전 사건을 모티브로 하니 엄마, 아빠, 세 명의 동생들과 함경남도 흥남에서 행복
하게 살아가던 소년 윤덕수, 하지만 그 행복은 1950년, 한반도가 남북으로 갈라져 전쟁을
하게 되면서 끝나버리고 덕수네 가족을 비롯한 흥남 주민들은 서둘러 짐을 챙겨 피난길에 오릅니다.
이미 모든 퇴로는 다 막혀있고 미군들이 철수시키려는 화물선 메러디스 빅토리(Meredith Victory) 호가
유일했으니 배에 타고 있던 미10군단 통역관 현봉학 씨가 제발 난민들을 구해달라고 애원한
것을 미 10군단장 알몬드 소장이 승인하여 무기를 모두 버리고 난민들을 태우는 과감한 결단을 내립니다.
하지만 배가 아무리 크다고 한들 10만이나 달하는 난민들을 모두 태우기에는 역부족이었고 제때 배에
오르지 못한 난민들은 밧줄에 매달려서라도 올라오고 있었으니 덕수 역시 여동생 막순이를 들쳐
업고 밧줄을 잡아서 올라오고 있던중, 누군가 팔을 뻗어 막순이의 어깨를 잡고 끌어당겨 버렸고 배에
오른뒤 허전한 걸 깨달은 덕수는 곧바로 동생을 찾아 밑을 내려다 봤지만 동생은 흔적을 감춘 뒤였습니다.
딸아이가 없어진 걸 알게 된 덕수의 아버지 윤진규는 이제부턴 네가 가장이니 가족들 잘
지키라는 말을남기고 없어진 딸 아이를 찾기 위해 다시 밑으로 내려가는데....
그 순간 배는 그만 출발해버렸고 그렇게 덕수는 여동생과 아버지와 생이별을 하게 됩니다.
이후 남은 가족들을 이끌고 덕수가 온 곳은 부산에 사는 고모가 꾸리는 '꽃분이네' 라는 잡화점
이니.... 덕수네를 내쫓기는커녕 네 식구(엄마, 덕수, 막냇동생 끝순, 남동생 승규)
가 더부살이할 방 한 칸까지 내주며 그리고 덕수 또한 임시 천막 학교에서 만난
부산 소년 달구와 죽이 잘 맞는 친구가 되며 낯설기만 하던 부산이라는 곳이 익숙해져 갑니다.
수십년후, 청년이 된 덕수는 아버지의 말대로 가족들을 먹여 살리기 위해 온갖 궂은 일을 하고 있던 어느 날,
기쁜 소식이 날아드니 공부에 매진하던 승규가 서울대에 합격했다는 것이었으나.... 덕수네 형편으로
그 비싼 대학 등록금을 감당하는 건 불가능에 가까웠는데 이런 친구를 위해 달구는 좋은 일거리를 추천합니다.
바로 파독 광부모집, 머나먼 독일까지 날아가 석탄을 캐는 일을 해야 하는 직업이지만 고수입이란
말에 결국 면접과 체력 검사를 통과하고 독일로 날아가고 그곳에서 광부들과 나란히 파독
간호사일을 하고 있던 영자를 만나 사랑에 빠졌고 고국에서 돌아오자마자 결혼식을 치르는데
이후 해양대에 합격하며 오래전 부터 꿈이었던 선장의 길을 걷나 싶었지만 또 다른 문제가 터집니다.
막냇동생 끝순이 혼수 자금 문제로 엄마와 말다툼하는 걸 우연히 들은 것이니 결국 덕수는 눈물을
머금고 선장의 꿈을 접곤 이번엔 베트남에서 기술자 일을 하겠다고 하는데, 베트남은 전쟁이
한창이었기에 철없는 여동생만 혼수자금이 생긴다며 좋아라 할뿐 엄마는 물론이고
영자 조차도 과부만들 샘이라며 강한 반대를 하는데..... 평범한 아버지는 가족을 지킬 수 있을까?
당시 한국의 1인당 국민소득은 100달러도 되지 않았고 봄이면 보릿고개에 굶어죽는 사람들이 늘렸으며
미국원조와 부대찌개와 꿀꿀이죽으로 연명하던 시절인데.... 공장이나 기업이 없으니 최대 세목은
논에 매기는 농지세인지라 국세로는 공무원과 경찰, 군인 월급 줄 돈도 되지 않던 세계 최빈국 이었습니다.
유일한 방법이 농업국에서 탈피해 공업국이 되는 것이었지만 돈과 기술이 없으니 빌려와야 했는데, 이승만
정부, 민주당 정부, 공화당 정부등 3차례나 발버둥을 cutdm나 미국과 영국은 냉담하게 거절했고
박대통령은 서독에 가서 광부와 간호사 월급을 담보로 4천만불 차관을 빌려오지만 이 돈으로는 역부족이라....
이제 대한믹구이 공업화를 하기 위해 돈과 기술을 얻어올 나라는 전세계에서 오직 한나라,
철천지 원수놈인 일본 밖에 없었으니.... 박대통령은 과거 일본에서 천황폐하(일왕) 의
황군이 되기 위해 일본 육사를 다녔으니 그 사실만 해도 친일파라 욕먹을법도 한데,
일본인들에게 무릂을 꿇고 당시 일본 외환보유고의 3분지 1에 해당하는 6억불을 들여 옵니다.
지식인과 야당에 대학생들은 친일파 박정희의 굴욕외교라며 원수놈들에게서 구걸할수 없다면서
결사반대를 하며 온 나라가 데모대로 뒤덮히니.... 박정희는 탱크를 몰고 대학으로
쳐들어가서 학교를 휴교시키고 데모 주동자를 잡아 군대에 강제로 보내고는 저 돈을 들여옵니다.
일본에서 와세대대학을 다녔던 박태준은 대일청구권 자금 중에 농업분야에 쓰기로 한 1억불을
종합제철소 건설로 용도 변경을 하기 위해 일본으로 날아가서는 대학 은사에게 읍소
하니 이 갸룩한 정성에 감동한 은사가 자기 제자인 후지제철(나중에 신일본제철)
사장과 정치계 인물들을 소개 시켜주어 결국 1억 2천만불을 제철소 건설로 용도변경을 합니다.
저때 6억불은 물가상승으로 지금 돈으로 치면 100억불 가까이 되는데, 1억 2천만불로는 종합제철소
건설 자금으로는 부족하니 일본 기술자들이 신일본제철 중고 기계설비를 듣어와 포항
에서 재조립하고는 한국인들을 기술자로 훈련시키며 1973년 첫 쇳물까지 뽑아주니 포항제철 입니다.
만약 그때 포항제철을 건설하지 못했다면 일본이나 미국에서 강철을 수입해 와야 하는데 첫째
금액이 엄청 비싸고 두 번째는 수입을 하는 과정에서 기간이 오래 걸리니..... 철강과
기계공업에 조선업과 자동차등 공장은 초창기에는 제품 수준이 아주 낮앗으니 단가가
비싸져서 수출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이니 포철은 한국 공업화의 출발점으로 1등공신 입니다.
나머지 3억달러 정도로는 울산공업단지, 경부고속도로, 소양강댐(용수 및 전기 생산)에 부두
항만시설등 기반 시설을 건설하고 2억달러로는 반제품, 석유, 철광석, 나프타, 고무,
나무등 원재료를 수입해 공업화를 이루어 100달러 국민소득이 35,0000 달러가 된 것입니다.
철천지 원수놈인 일본에서 돈을 들여오는 것을 "굴욕외교" 라고 결사반대했지만.... 그럼
무슨 대안을 제시했다는 말을 들은적이 없으니.... 반대를 위한 반대일뿐 그때
원수놈의 돈이라도 들여와 포찰을 짓지 않았다면 한국은 농업국가로 머물렀을 것입니다.
그러다가 70년대 후반에 중국의 등소평이 문화대혁명을 수습하고 핑퐁외교로 미국과 수교한후 공업화로
세계시장에 잔출했으니...... 그때라면 어느 천사 국가가 한국에 돈과 기술을 주어(가능성도
거의 없지만) 뒤늦게 공업화를 했더라도 중국과는 경쟁이 안 되니 한국은 영영 기회가 없었을 것입니다.
또 경부고속도로 건설을 격렬히 반대했는데... 야당 국회의원은 한국에 차가 몇 대나 있다고 저런데 피 같은
돈을 쓰나? 고속도로를 만들면 도로에 다닐 차도 없으니 부자, 한량들이 기생을 데리고 경주 놀러
다닐 때나 이용할 것이라고 성토했는데.... 우물안 개구리라 “물류” 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었던 것입니다?
박정희는 만주 군관학교와 일본 육사를 다닌 자체만으로도 친일파인데 더욱 입학을 위해 혈서 까지
썼으며, 여순 반란사건에 연루된 남로당원 빨갱이로 군사재판에서 일본군 선배들의 도움으로
간신히 무기징역을 선고받았고, 군사 쿠데타를 일으켜 유신독재를 했으니 민주주의를 파괴하고
인권을 유린한 독재자이나, 공업화로 굶어 죽어가던 국민을 살렸으니 우리민족 생명의 은인 이십니다.
조선이 일본에 망해 식민지가 된 것은 국력이 약하고 군사력이 없었기 때문인데..... 공맹과 주자의 성리학을
최고의 가치로 여겨 서양 오랑캐를 배척하고 쇄국정책에다가 천주교도를 수만명이나 잡아죽이면서,
대원군과 민왕비가 권력투쟁으로 서로를 죽이려 혈안이 되었으니 어찌 국력과 군사력을 기를수 있었으랴....
첫댓글 남해독일마을 매년 가을에 맥주축제가 열리는군요.
저도 영화 국제시장 재미잇게 잘 보앗습니다,
황정민이 독일광산에서 일하다가 광산이 무너지기도 하죠?
박정희대통령이 일본에서 6억달러를 안 빌려왓으면 오늘은 한국은 없겟죠?
포철이 우리나라를 살려네요.
그렇습니다. 당시 포항제철을
건설하지 못했더라면
철강과 건설, 자동자, 가전제품, 조선소등
일본이나 미국에서 강철을 사와야 하는데...
가격도 엄청 비싸고 수입에 시간도 많이
걸리는지라 품질도 별론데 제품 단가가 높아
수출 자체가 불가능했을 것으로 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