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본에 살다보면 내가 한 일도 아닌데 창피해서 얼굴이 붉어지는 일이 종종 있습니다.
일본이라는 나라는 평소에는 소탈한 것 같은데 형식을 차리는 자리에서는 믿기 어려울 만큼 형식을 차리는 습관이 있습니다.
가령 장례식에 갈 때에는 반드시 검은 양복(최근에 좀 느슨해진 느낌도 들지만)에 검은 넥타이를 하고 가야 합니다. 그렇지 않으면 상주에게 미안한 마음이 하늘을 찌릅니다.
한국에서는 결혼식에 초대를 받건 안 받건 사돈에 팔촌쯤 되면 너도 나도 가게 마련인데 여기에서는 초대받지 않은 사람은 아예 얼씬도 못합니다. 초청장을 받으면 '출석한다' 답신을 보내고 출석을 해야 합니다. 이것은 아마 자리 때문인 듯한데 한국에서와 같이 식이 끝나면 한상차려 놓고 아무나 자리에 않아 잔치음식을 먹고 갈비탕(한국에...
서 결혼식에 참석한 것이 20년은 된 것 같아서 안 맞을 수도 있음)한 그릇 해치우면 되는 것이 아니라, 자리에 맞게 코스요리가 나오기 때문인 듯합니다.
서로 문화가 다르다 보니 문화에 적응 못한 외국인들이 옷을 잘 못 입고 나오기 일쑤입니다.
중국 사람들이 많이 그런 일을 하는데 쓰레기 봉지를 들고 나오거나 가까운 편의점에 갈 때 잠옷차림으로 나옵니다. 그것도 아주 당당(?)하게...
한국사람들 때문에 당황하는 적도 있습니다.
한때 이효린가 하는 가수가 야구모자에 튜리닝(트레이닝 복)을 입은 것이 유행을 해서 웬만한 젊은 여성들은 외출 할 때에도 그 팻션으로 나가곤 하는데 이곳에선 튜리닝은 운동할때만 입는 옷입니다. 그 사정을 모르는 사람들이 거리에 쏟아져 나오는데 나 같이 점잖은 사람은 당황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우리 진영이가 초등학교 입학식 때이니 지금으로부터 13,4년 전 얘깁니다만 우리 부부는 최고로 멋있는 옷으로 차려입고 입학식에 갔습니다.
남자야 원래 검은색 계통의 양복을 입는 것이 대부분이라서 별 일이 없겠지만 나의 아내는 울긋불긋한 화려한 옷을 입고 입학식에 갔습니다.
웬걸... 부모들이 남자는 검은색 계통의 양복이라서 대부분 같았지만 엄마쪽은 곤색계통의 트이지 않은 겉옷에 힌부라우스를 입고 있는 겁니다. 그것도 죄다...그날 완전히 우리 마눌은 군계일학이 되었습니다.
사진을 찍는데 가관이더군요.
입학하는 애들은 앞줄에 앉고 서고 그 가운데 에 담임선생님이 앉고 부모들은 뒤에 서게 되는데 우리 마눌이 완전 주인공인거예요. 지금도 그 사진을 보고 있노라면 왜 그리도 창피한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