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생활 불교 스크랩 무당의 내력. 굿의 기원
인덕스님 추천 0 조회 86 13.01.01 15:47 댓글 0
게시글 본문내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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무당의 내력

 

조성제

 

서울대학교 규장각에 소장된 가람문고본에 조선시대 무당에 대한 기록을 한 <무당내력巫黨來歷>이란 책이 있다. 이 책을 보면,

『상원 갑자 10월 3일 신인이 태백산을 내려오시어 신의 가르침을 설하고 백성을 가르쳤다.

큰아들 부루가 어질고 다복하여 집집마다 땅을 택하여 단을 쌓고 질그릇에 벼와 곡식을 채워 짚으로 영을 짜서 덮는다. 이를 부루단지 혹은 업주가리라고 하였다.

매년 시월 햇곡식으로 채우며 떡과 과일과 술을 바쳐 기도를 한다. 기도할 때는 반드시 나이든 여인이 한다. 이를 무당이라고 하였다.』라고 기록되어 있다.

 

상고시대의 무당은 하늘에 제를 올리고 백성들에게 계를 가르쳐 교화하는 것을 주 임무로 하였기 때문에 당연히 한인천제, 한웅천왕, 단군왕검 그 자체가 제사장이었던 것이다. 그러나 이 기록을 검토하여 보면 무당이라는 공식적인 말이 부루단군이 돌아가시고 태자 가륵이 즉위하면서 백성들 사이에 일어났던 부루단군을 추모하는 과정에서 자연적으로 생겨났음이 확인된다.

 

이렇게 부루단군을 추모하는 과정에서 나이 많은 여자들에게 영적인 힘이 생기게 되면서 자연적으로 발생한 무당이 현재까지 이어온 무당이 아닌가 한다. 일반 백성들 사이에서 처음으로 무당이 탄생하는 과정이다.

 

<삼한관경> ?본기 제4편?을 보면 『한웅천왕이 제사를 지내려 갈 때 풍백은 천부를 거울에 새겨 앞서가고 우사는 북을 치며 주위를 돌면서 춤을 춘다.』라고 하였다.

여기서 풍백이 천부의 거울을 들고 앞서갔다는 것은 지금 무당들이 지니고 있는 동경으로 해석이 되며, 우사가 북을 치며 주위를 돌면서 춤을 춘다는 것은 하늘의 신을 맞이하러 가는 사람, 즉 무당들이라고 할 수 있다. 북을 치면서 주위를 돈다는 것은 지금 국악에서 여러 명이 소고를 치며 원을 그리며 도는 소고춤으로 전해졌다고 생각한다. 그러나 불교에서는 성모천왕이라는 있지도 않는 여인을 만들어 법우화상과 혼인을 하는 것으로 각색을 하였다.

이것은 불교가 무교를 흡수하였다는 것으로 해석도 되고, 아니면 불교의 교세를 확장하기 위하여 강력한 걸림돌인 무교와 불교가 부부의 연을 맺었으니 즉 무불일체巫佛一體라고 말하면서 무교를 잠식하기 위한 수단일 수도 있다.

 

이렇게 세월이 흐르면서 자꾸만 외부 세력에 의하여 변질된 무교는 현재에 와서는 무당이라는 말 자체가 천하게 느껴지고 폄하하는 말로 들리게 되어 무당들도 무당이라는 말을 싫어한다.

 

 

영가 해원을 하고 있는 모습. 사진 조성제 제공.

 

 

그러나 무(巫)란 낱말을 풀이해 보면 무는 공工자에서 비롯되었다. 단군시대에 공공共工이라는 벼슬이 있었다. 공工은 일을 업으로 삼아 전문적으로 하는 사람, 즉 ‘숙달된 사람’이라는 뜻이다.

공공共工은 하늘에 제를 지내고 하늘의 뜻을 전하는 일을 맡아 하는, 즉 단군왕검의 일을 대신 맡아서 잘 처리할 사람이란 뜻이다.

 

공공이라는 관직이 고려 때는 재상宰相으로, 후대에서는 대감大監으로 명칭이 변하였다. 그리고 중국에서는 후대까지 공공이라는 관직이 있었다. 이 공工 자에 두 사람이 들어가 있는 것이 무巫 자이다.

공工 자에 들어간 두 사람은 즉 단군왕검을 대신하여 하늘과 땅에 제를 올리는 일을 전문적으로 담당하던 남녀 두 사람을 말한다. 즉 남무男巫와 여무女巫인 것이다. ‘남무’를 다른 말로 축祝 또는 격覡이라 전한다.

남자 무당인 ‘축’이 하는 종교행위는 지금 제사를 주관하고 축문祝文을 읽는 행위이다. 이것이 오늘날 법사라고 불리는 경을 읽는 사람들이 모두 남자라는 것으로 증명된다. 또 이 행위에서 나라의 제를 지낼 때, 가정에서 차례를 지낼 때 지켜야 할 예절이 나오게 되는 것이다.

 

여자 무당인 ‘무’가 하는 행위는 하늘에 원하는 바를 몸짓으로 표현하였는데 그것이 지금의 굿으로 발전하였다고 볼 수가 있다. 오늘날에도 무당들은 굿이 떨어졌다, 굿을 띄었다, 굿을 맡는다고 한다. 굿이 떨어졌다, 굿을 띄었다, 굿을 맡았다는 것은 하늘에서 무당에게 일을 맡겼다는 뜻이며, 굿을 띄고 일을 맡는다는 것을 나타내는 문자는 임壬자가 된다.

 

여기서 우리 속담인 “소꼬리 잡은 놈이 임자”란 말이 나온다. 굿을 맡는다는 것은 곧 하늘로부터 천제를 지내는 일을 맡은 대리자라는 뜻으로, 임자가 나오고 임壬자에서 왕검이란 말이 나오고 이 말이 변하여 임금이 되었다.

 

신라 방언에 무당을 차차웅次次雄이라 하는데 차차웅이 제사를 숭상하고 신을 섬김으로써 그를 경외하여 불렀다고 한다. 차차웅(雄)을 무당이라고 하는 것은 신시 한웅으로부터 비롯되었을 것이다.

또한 단을 설치하고 하늘에 제사를 지내므로 단군이라고 불렀다. 단군이란 하늘의 아들로써 신의 권한을 대신하는 사람이다. 이렇듯 무巫가 지니고 있는 뜻은 크고 엄숙하다.

 

무당이라는 말은 두 가지 의미를 가지는데 옛 기록을 보면 무당의 당 자를 무리 ‘당黨’자를 쓴 것을 볼 수가 있다. 여기서 말하는 무당巫黨은 여러 명의 무당을 말하는데 즉 무함 ? 무즉 ? 무반 ? 무팽 ? 무고 ? 무진 ? 무례 ? 무저 ? 무사 ? 무라 등 열 무당을 말하며 무함이 또한 최초의 신의神?라고 한다.

 

그리고 지금 흔히 말하는 무당은 개인을 나타내는 말로서, 무당이라는 ‘당堂’자도 옛날 옥편을 보면 집이라는 뜻이 아니라 바로 세운다는 뜻도 포함되어 있다. 또 ‘당堂’자는 토지신을 지킨다는 뜻으로 만들어 졌다. 그러면 무당巫堂이라는 말은 하늘과 땅의 이치를 바로 세우는 사람, 즉 천지인의 우주 섭리를 가르치고 지키는 막중한 임무를 맡은 사람이 무당인 것이다.

 

이렇듯 막중한 임무를 띠고 이 땅에 살아가는 무당들이 시대의 변천과 무당들의 무지로 천한 계급으로, 아주 무식한 집단으로 추락하게 된 것에 대해 누구를 탓할 것이 아니라 우리 스스로 반성하고 노력하여 무당이라는 말을 그 어떤 말보다도 존경의 대상이 되는 말로 바꾸어 놓아야 할 것이다.

 

 

 

 

굿은 얽힌 원한 풀어 함께 살자는 것

 

 

해원굿-.jpg

해원굿 사진 <한겨레> 자료

 

 

굿의 기원

 

무교는 우리 할머니들의 생활의 지혜요, 삶 그 자체였으며 오랜 세월 우리들과 함께 하면서 우리 민족 심성의 원형이자 민족의 정체성이라 생각한다.

 

굿은 무교의 사제인 무당들이 하늘에 제를 지내는 행위를 일컫는 말이다. 굿은 인간이 시대를 살아가는데 꼭 필요한 그 시대의 정서를 우리 가슴에 심어주고, 굿이라는 형태를 빌려서 좁게는 개인, 나아가서는 마을단위, 더 나아가서는 나라의 안녕과 풍요를 기원하면서 우리 민중들과 함께 하여왔다.

 

이렇게 민중들에게 굿을 통하여 무교가 담고 있는 근본을 자연스럽게 가르치며 실천해 왔다. 그것이 바로 생생지생生生之生과 접화군생接化群生이라고 말하고 싶다.

 

즉 우주의 모든 만물에는 모두가 생명이 있으며 각자 서로의 생명을 중요시하여 그 존재 가치를 인정하여 서로 아끼고 사랑하고 화합하여 모두가 더불어 잘 살아갈 수 있는 정신을 말한다. 굿이란 말은 얼마나 좋은 말인지 영어에 좋다는 뜻인 굿(Good)이 있고 신을 말하는 갓(God)도 굿에서 나왔다.

 

각 지방마다 굿의 형태는 조금씩 다르지만 굿이 추구하는 뜻과 목적은 한가지다. 굿은 우리 민족의 정치, 경제, 역사, 종교, 철학, 사상, 문화를 총체적으로 표현한 우리의 정체성의 결정체다.

 

또한 굿은 현실에서 억압된 인간들의 마음을 해소해주고 화해동심和解同心과 해원상생解寃相生 즉, 살아오면서 생기게 되는 이웃 간의 반목을 풀어버리고 한 마음으로 서로를 위로하면서 상생할 수 있는 계기를 굿이라는 것을 통하여 제공하는 축제적인 기능도 지니고 있다.

 

이러한 우리의 심성이 담긴 굿을 우리 정신을 잃어버린 시대에 남의 시각으로 남의 정신으로 왜곡되게 바라본 학자들의 기록과 외래 종교의 영향을 받은 많은 사람들이 굿은 미신이라 폄하하며 싫어한다.

 

한웅천왕은 소도를 만들어 삼신께 제를 올리고 삼신을 조상으로 삼았다. 그 당시 제를 올릴 때 지금 굿의 원형인 춤을 추면서 삼신께 제를 올리지 않았나 하는 생각이다.

 

상고시대의 소도는 바로 굿을 하든 장소라고 생각한다. 소도에서 굿을 하면서 하늘의 문을 여는 것이다. 그래서 무당들이 굿을 할 때 천문天門을 연다고 한다. 또 어떤 이는 산문山門을 연다고 하기도 한다. 여기서 말하는 천문은 하늘의 문이고 산문은 소도의 문으로, 산의 문도 될 수가 있다. 또 지방에 따라서 골매기문이라고도 한다.

 

굿에 대한 기록은 거의 찾아볼 수가 없어 굿의 기원을 찾아보기는 어렵다. 문헌으로 전하는 가장 오래된 종교적 제의로는 <삼국지/위지 동이전>에 전하는 부여의 영고와 고구려의 동맹, 예의 무천 같은 제천의식을 들 수 있으며 이러한 제천의식들이 굿의 원형들이라고 생각한다.

 

 

 

삼각산 도당굿-.jpg

삼각산 도당굿

 

 

무당에 관한 직접적인 기록은 <삼국사기>와 <삼국유사>에 전하는 신라 제2대 남해왕 조를 보면 남해왕은 차차웅으로 불렸는데, 이 말은 무당을 나타내는 말이라 한다. 남해왕은 시조의 묘를 세워 친누이동생 아로阿老로 하여금 제사를 주관케 하였다는 기록이 있다.

 

이 기록들은 굿의 기원을 밝히는 데는 별로 도움이 되지를 않는다.

 

굿의 기원은 인간이 태어나면서부터 제천의식에서 비롯되었다고 보아야 하기 때문에 남해왕보다 더 훨씬 위로 올라가서 살펴야 할 것이다. 그 이유는 무가에 나오는 많은 어원들이 한인시대부터 시작하기 때문이다. 한인천제, 한웅천왕, 단군왕검 세 분의 시대에 종교행사는 하늘을 살피고 교신을 하는 제천의식으로 압축할 수 있다. 그러므로 많은 주문(사설)을 낭독하고 큰 동작으로 몸짓을 하여 원하는 바를 전달하려고 했을 것이다.

 

우리 속담에 「쇠꼬리 쥔 놈이 임자」란 말이 있다. 이 말은 그 당시 쇠꼬리를 쥔 사람이 임금이라는 말일 것이다. 즉 무당이 흰 쇠꼬리를 쥐고서 흔들면서 춤을 추었다고 볼 수가 있다. 또 이 말은 천제를 드릴 때 모우?牛라는 흰 소를 잡았다는 말이다. 기독교에서 양을 잡아 제를 올리는 번제의식이 우리의 천제를 모방한 것이 아닌가 한다. 지금도 무당들이 굿을 할 때 부채 끝에 긴 천을 달아 그것을 쥐고서 춤을 춘다. 이러한 행위도 흰 쇠꼬리를 쥐고서 춤추던 그 때의 풍속이 아닌가 한다.

 

또 풍물패들이 상모 춤에서 전립의 꼭대기에 흰 깃털을 달고 상모를 돌리는 것도, 그 당시 무당이 손에 쥐고서 춤을 추던 것을 지금은 모자 위에 올려서 돌리는 것이다.

 

이런 의식은 철 따라 춘분마지, 하지마지, 추분마지, 동지마지로 이어졌다. 이런 연유로 우리는 지금도 봄에는 꽃맞이, 여름에는 유두맞이, 가을에는 햇곡맞이 겨울에는 동지맞이 굿이라 한다.

 

그 당시 굿은 반드시 큰 산 바로 아래 봉우리에서 굿을 하였다 한다. 또 굿을 할 때에는 반드시 모?를 꽂고 반드시 춤을 추었다. 이 모를 꽂는 풍속이 지금도 남아 있다. 바로 떡시루에 서리화를 꽂는 것이다.

 

단군조선이나 <예>의 무천舞天은 바로 하늘을 향해 춤을 추었다는 뜻이다. 또 영고迎鼓는 북을 치며 마지 한다는 의미로, 동맹東盟은 동쪽하늘에 뜨는 해와 달에게 피로써 맹세한다는 행위이므로, 이것들은 바로 동쪽에 제물을 차리고 북을 두드려 춤을 추면서 해와 달이 뜨는 것을 맞이했다고 볼 수 있다.

 

이것이 지금도 행하고 있는 일월마지 굿이다. 그러다 부루단군 시대에 와서 하늘만 위하는 굿이 아닌 조상을 추모하는 의식과 팔가八加에서 단군왕검을 숭배하는 의식을 종족의 특징을 살려 만들어지면서 여러 형태의 굿거리가 생겨났다고 해석할 수 있다.

 

조선시대에 만들어 진 <무당내력>이라는 책을 보면 굿을 할 때는 칠성제석거리를 비롯한 모든 거리에서 반드시 단군을 먼저 청배를 하였다고 기록되어 있는 것으로 봐서 부루단군 시절에 와서부터 우리가 하는 형태의 굿거리가 생긴 것으로 유추할 수 있다.

 

그러면 굿을 할 때에는 반드시 공수를 준다. 또한 많은 사람들이 굿을 할 때 주는 공수는 영험하다고 하여 서로 받으려고 한다. 그러면 언제부터 공수가 시작되었고 공수의 의미는 무엇일까?

공수는 한자로 공수貢壽와 공수供授 두 가지로 나타내고 있다. <태백일사/소도경전본훈>에 보면, 신시의 음악을 공수라 한다고 하였다. 공수를 다른 말로는 두열頭列이라고도 하기도 하였다.

 

무리는 둘러서서 줄지어 합창으로써 삼신으로 하여금 크게 기쁘시게 하고, 나라가 번영하여 민심이 윤택해질 것을 빌었다고 하였다.

 

<백호통소의>란 책에서는 공수를 조리朝離라 했다. 조리란 선善과 악惡을 구분하고, 시是와 비非를 가리고, 틀어진 것을 바르게 잡는 다는 뜻이다.

 

또 <통전악지>란 책에서는 주리侏離라 하였고, <삼국사기>는 도솔이라 했다고 기록되어 있다. 한자로 공수貢壽라고 하는 것은 인간이나 짐승을 제물로 올릴 때 사용하였던 음악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하여 본다. 누군가 제사를 지내면서 목숨을 바친다는 무서운 말이다.

 

두 번째 공수供授는 제사를 지내는 자가 신에게서 무엇인가를 받기를 원할 때 사용하였던 음악이 아닌가 한다. 두열頭列은 제사를 지낼 때 하늘에서 전하는 천부의 소리를 듣기 위하여 우두머리들이 줄지어 서있다는 것이다.

 

즉, 오가五加의 우두머리가 열을 지어 서서 천부의 소리를 듣고 스스로 깨우치는 것을 공수라고 할 수 있다. 또 공수는 즐겁고 건강하기를 신에게 기원하고 순리에 따라 족함을 안다는 뜻이 담겨 있다고 하였으니 “즐겁고 건강하기를 신에게 기원하는”부분에서는 지금 행해지는 공수와 큰 차이가 없다는 생각이 된다.

 

공수가 한자의 뜻대로 하늘에 무당의 목숨을 바쳐 그 집안이 즐겁고 건강하기를 기원하는 것이라면 무당이 굿을 맡을 때는 신중하게 처신하여야 하고 또 목숨을 걸고 정성을 드려야 한다는 것을 단적으로 나타낸 말이라 하겠다.

 

지금 굿을 맡아 정성을 드리고 있는 많은 무당들이 허공수를 남발하고 있으니 그 무당들은 목숨이 몇 개라도 모자랄 것이다.

 

 

/ 휴심정 한겨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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