By LEE SIEGEL
올 3월 어느 기자가 버락 오바마 대통령에게 가장 유명한 하버드 졸업생으로 농구선수 제레미 린이 오바마 대통령을 앞섰다는 사실을 아느냐고 장난스럽게 물어봤다. 이 질문엔 어폐가 있다. 누가 누구를 앞선 게 사실이라고 치더라도, 소수인종인 제레미 린은 그간 스포트라이트를 받지 못하다가 오바마 대통령보다 아주 잠깐 유명해졌을 뿐이니까.
제레미 린의 활약은 그가 속한 인종 집단의 ‘살아있는 비유’라 할 만하다. 누구도 퓨리서치센터가 올 여름에 발표한 아시아계 미국인에 관한 방대한 논문의 첫 문단에 이의를 제기하지 못할 것이다.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미국에서 가장 높은 소득을 올리고, 가장 교육을 잘 받고, 가장 빠르게 성장하고 있는 인종군이다. 그들은 대다수 미국인들에 비해 자신들의 삶, 재정상태, 국가가 나아가는 방향에 대해 만족해 한다. 이들은 결혼, 육아, 성실함, 직업적 성공에 커다란 가치를 부여한다.”
졸업생 대부분이 아시아계로 채워진 뉴욕시 명문 스타이브샌트 고등학교 졸업식 축사 동영상에서 제레미 린은 “당신의 능력에 한계가 없음을 남들에게 증명하라”고 말했다.
제레미 린은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성공을 묘하게 돌려서 칭찬하는 사회적 분위기를 꼬집을 것일지도 모른다. 하버드와 예일과 같은 아이비리그 엘리트들은 유대인들의 약진에 위협을 느끼고는 유대계 입학생수를 제한하는 쿼터제를 비밀리에 만들었다. 요즘 이들 명문학교는 아시아계 학생들을 차별한다는 비난을 받고있다.
최근 보고서에 따르면 아시아계 학생들이 대학에 합격하려면 SAT에서 백인 학생들보다 고득점을 올려야 한다. 아시아계 그리고 유대계의 미국 이민 역사는 사뭇 다르지만, 비범한 성공 스토리에 드리워진 탁월함과 그 성공이 주는 부담감이라는 측면에서 공통점을 찾을 수 있다.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정신력과 의지로 성공을 거머쥐는 아메리칸 드림이라는 이상을 가장 잘 구현한 이민자 집단이 아닐까 싶다.
한국계 경영 컨설턴트 권율이 6년 전 리얼리티쇼 ‘서바이버’ 시즌 13의 우승자가 됐을 때, 사회과학자들은 꿈이 현실이 된 것만 같았을 것이다. 이 프로그램의 제작자는 시즌 13 출연자들을 백인, 흑인, 히스패닉, 아시아계로 구분했다. 이런 인종별 분류가 무식한 방법이라고 비난 받기 십상이겠지만, 프로그램의 의도는 적중했다.
이 프로그램은 새로 도착한 종족(이민자)들 사이에서 은밀히 벌어지는 (미국 사회의) 영원한 난투극을 수면으로 드러내는 데 성공했다. 권율의 성공은 추상적인 사회적 트렌드를 생생하게 구체화했다. 아시아계는 새로운 미국 이민자 그룹 가운데 가장 인구가 많은 그룹인 히스패닉을 제쳤을 뿐만 아니라 아메리칸 드림을 추구하면서 선두 위치까지 확보하기에 이르렀다.
인구통계학적 관점에서 따져볼 때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중국계, 필리핀계, 인도계, 베트남계, 한국계, 일본계로 분류할 수 있다. 중국계 인구가 가장 많고 일본계 인구가 가장 적다. 퓨리서치센터 논문은 통계학적 근거를 풍부하게 들고 있다. 인도계와 필리핀계는 아시아계 미국인들 가운데 가장 높은 가계소득을 올린다.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대체로 진보적 성향의 정치인에게 한 표를 행사한다. 일본계와 필리핀계는 자신의 인종이 아닌 인종과 결혼하는 경향을 보인다. 중국계 미국인들은 다른 어떤 아시아계 미국인들보다 부모 세대가 자신과 비슷한 나이였을 때보다 자신이 재정적으로 훨씬 더 성공을 거뒀다고 답하는 그룹이다.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2000년에서 2010년 사이에 46% 증가해, 다른 인종보다 훨씬 빠른 속도로 늘어났다. 1980년에서 2010년 사이에 아시아계 미국인 인구는 4배 증가했다. 중국계 미국인들의 증가 속도가 가장 높았다. ‘위대한 개츠비’ 등장인물로 은근히 백인우월주의 성향을 내보인 톰 뷰캐넌이 이 소식을 들었으면 흥분해서 뒷목을 잡고 쓰러졌을 것이다(필자의 러시아-유대계 친척이 표현을 빌어왔다). 소설 속에서 뷰캐넌은 ‘백인종의 기득권을 지켜내지 못하면 어느 순간 (타인종의 활약에 의해 백인들이) 잠식당하고 말 것’이라며 ‘황색 위험’에 대한 경각심을 고취시켰다.
톰 뷰캐넌의 ‘황색 위험’ 이론은 요즘에 와서는 편견에 사로잡힌 이질적인 생각으로 들리겠지만,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눈부신 활약상에 대해 대다수 미국인들의 마음이 그리 편치만은 않다는 사실은 짚고 넘어갈 필요가 있다. 미국은 역사적으로 볼 때 이민자가 급속도로 주류 문화에 흡수됨과 동시에 이에 대한 극렬한 저항 또한 극심하게 나타나는 곳이다.
19세기 후반부터 미국으로 대거 들어온 아시아계 이민자들은 대부분 농장이나 광산에서 일하거나 철로를 공사하는 미숙련 노동자들로서, 폭력적이고 때로는 치명적인 편견에 시달렸다. 아시아계 이민자들에 대한 적대감은 차별금지법이 시행됨으로써 공식적인 제재가 가해졌다. 차별금지법은 처음에는 중국계 여성을 대상으로 시행되다가 나중에는 중국계 모든 이민자로 확대됐고, 1924년에는 아시아계 이민자 모두에게 적용됐다. 진주만 공격 이후 일본계 미국인들이 억류됐던 것은 미국 역사상 유례없는 일이다. 다른 어떤 이민자 그룹도 인종적 연좌제에 연루돼 그처럼 대규모로 수용되지 않았다.
이민국적법이 아시아계 이민자들에게 문을 활짝 연 1965년 이후 아시아계는 (다른 인종 그룹이 한바탕 격변을 겪은 것과 달리) 순조롭게 미국 사회에 동화했다.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역사를 성취와 안정성 면에서 가장 유사한 인종 그룹인 유대계 미국인들과 비교해보자. 중•동부 유럽 유대인들도 19세기 후반 미국 이민을 시작했다. 하지만 이들은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처음 직면했던 맹렬한 인종적 증오심을 불러일으키지는 않았다. 하지만 유대계는 아시아계보다 문화적으로 자기 주장이 강하고 사회적 야심이 강했던 터라 미국 사회에서 성공하는 데 지독한 장애물에 부딪쳐야 했다.
1930년대까지 미국 영화에 등장하는 아시아계는 찰리 챈밖에 없었지만 유대인들은 헐리우드를 좌지우지하고 있었다. 유대인들은 1931년 뉴욕에 ‘그룹 시어터’를 설립하고 연기와 연출 기법을 재정립했다. 주류 미국 정치에 반란을 일으키는 인종 그룹으로서는 오랫동안 독점적인 위치를 점하고 있던 아일랜드계는 처음부터 유대계의 정계 진입을 막아섰지만, 유대인들은 윌슨 대통령 보좌관 자리에 이르는 등 고위급까지 진출했다. 1930년대에 유대인들은 프랭클린 루즈벨트 대통령의 ‘두뇌위원회’라는 고문단의 핵심인사로 포진하고 있었다. 세계 제2차대전 종전 무렵 유대인들은 미국 사회의 거의 모든 측면에서 뚜렷한 존재감을 나타내고 있었다.
고질적인 반유대주의와 유대인에 대한 은밀한 차별은 홀로코스트 이후에도 계속됐다. 하지만 유례없이 잔혹한 인종대학살 때문에 유대계 입학자 수 제한이라는 아이비리그 쿼터제도 결국 막을 내린다. 사회적 야심이 강한 유대계는 WASP(와스프:앵글로색슨계 백인 개신교도)만 들어갈 수 있는 천국과도 같은 요새에 진입하고 싶어했다. 일부 회원만 받는 컨트리클럽, 배타적인 전문직 클럽, 아이비리그 출신들이 모이는 로펌, 명문 재단 같은 곳들이다. 하지만 이곳에서는 유대인들의 진입을 마땅찮아했다.
1975년에야 솔 벨로우는 관련 질문을 받고 이런 불평을 했다.
“몇 년 전에 필립 로스와 버나드 맬라머드와 나를 문단의 하트와 섀프너와 맥스(유대계로서 성공적으로 남성복 브랜드를 론칭한 사람들을 유대계 작가들에 빗댄 표현)라고 부르는 게 유행이었다. 주류 개신교도들은 기득권을 빼앗겼다고 생각했는지 우리 주변에 유대인 거주 지역 임을 알리는 장벽을 높게 세웠다.”
솔 벨로우가 이렇게 말한 1975년은 그가 노벨상을 수상하기 겨우 한 해 전이다. 이후 솔 벨로우는 퓰리처상을 1회, 미국 문학상(National Book Award)을 2회 수상했다. 벨로우는 유대인에 대한 박해를 이렇게 웃어넘길 수 있었지만, 유대계 문화 인사들에 대한 차별적 형태는 실제로 수십년 전부터 행해지고 있었다.
반유대주의에 대한 ‘인식’은 종종 ‘현실’을 능가했다. 홀로코스트 이후 유대계에 대한 적대감을 조금이라도 표현하면 추잡한 짓이라는 무언의 사회적 인식이 있었지만, 이를 넘어서 떠들썩한 도덕적 범죄로까지 증폭됐기 때문이다. 그런데 또 하나의 요인이 작용하고 있었다. 존재감과 사회적 권력까지 거머쥔 유대인들이 주류 사회로부터 거부당하거나 배제된다고 주장해봐야 배부른 투정으로 들릴 수 있었다는 사실 말이다.
유대인들의 지위가 미국 사회에서 상승했는데도 불구하고 반유대주의가 계속되는 이유는 유대인들이 무정부주의자 엠마 골드만에서 시작해서 자칭 ‘이피(Yippie: 히피와 신좌파의 중간을 자처하는 미국 젊은이)’ 애비 호프만에 이르기까지 미국의 반사회적인사나 반체제인사를 옹호하는 데 선두에 서는 경우가 빈번했기 때문이다.
미국사회의 당대 주적인 소비에트 공산주의를 집대성한 사람들도 대부분 유대인이었다. WASP 기득권층이 유대인이라는 신참에게 점차 지반을 잃음에 따라 ‘공산주의자’와 ‘유대인’은 종종 동의어로 혼용되게 됐다. 헐리우드하면 도덕적 해이를 떠올리고, 유대인하면 헐리우드를 연상하는 것도 저급한 반유대 정서를 강화시켰다. 미국 엔터테인먼트 업계에서 유대적 정서와 감수성이 보편적으로 받아들여지고 있다는 사실이 증명됐음에도 불구하고 말이다.
아시아계는 유대계와는 정반대 궤도를 걸어왔다. 극렬한 인종차별과 이민 금지로 인해 아시아계는 거의 100년 동안 미국 사회에서 부상하지 못하다가 어느 순간 급속도로 성장했다. 19세기나 1930년대에 유대계 이민자들은 히틀러를 피해 도망친 난민이었고, 1980년대에는 소비에트 연방을 피해 도망친 난민이었다. 모두 무일푼으로 미국에 건너왔다. 그런데 아시아계는 다른 어떤 이민자 그룹보다 교육을 잘 받고 부유한 상태로 미국에 왔다.
아시아계 미국인들은 정치나 엔터테인먼트와 같은 활동적인 영역은 기피하는 경향을 보였다. 정치나 엔터테인먼트는 감정을 여과없이 드러내는 능력이나 감정을 쉽게 속일 수 있는 능력이 타고난 자산으로 여겨지는 분야다. 아시아는 타인 앞에서 감정을 과장되게 드러내는 것을 삼가는 문화라서 이런 선택을 했던 것일까?
물론 아시아계 문화 인사는 수도 없이 많고, 아시아계 정치인들도 소수지만 분명히 존재한다. 골상학적 특징상 서구인의 눈으로는 포착하기 어려운 동양인의 표정과 겸손함을 미덕으로 강조하는 동양 문화 때문에 대다수 아시아계는 대중의 눈에 띄지 못했고, 그로 인해 미국인의 편견과 증오의 대상에서 빗겨 간 것도 사실이다. 아시아계는 공적인 역할을 수행하더라도 정치 토론을 하는 연단에 서거나 영화 스크린을 화려하게 장식하는 배우가 되기보다는 무료 법률 상담을 하는 변호사나 보건소에서 진료하는 의사가 될 것이다.
하지만 아시아계가 이처럼 놀라운 사회적 성공을 거두는 가운데, 과연 아시아계가 언제까지나 시기심을 받지 않을 수 있을까? 그것도 대다수 아시아계 이민자가 넘어오는 중국과의 경제적 정치적 갈등이 계속되고 경기침체마저 지속되는 요즘 같은 시기에.
중국이 언젠가 미국의 명백한 주적이 될 경우, 중국계 미국인들의 불안은, 미국과 유대인의 은밀한 동맹이 문제시될 때마다 유대계 미국인들보다 겪는 불안보다 훨씬 더 강렬해질 수 있다.
에이미 추아가 2011년에 발표한 다분히 의도적이고 도발적인 육아 회고록 ‘호랑이 엄마 찬가(Battle Hymn of the Tiger Mother)’에 대해 세간에서 비난이 쏟아진 배경에는 아시아계 미국인들의 부상에 대해 미국 사회 일부가 분개했기때문인지도 모를 일이다. 특히 ‘완벽한’ 아이를 키운다는 부분에서 폭발했을 것이다. 고백하건대 필자도 이 책을 누구 못지않게 신랄하게 비판했다. 유대계가WASP 기득권을 위협했을 때처럼 중국계가 유대계의 문화적 기득권을 위협했기 때문에, 필자는 유대계 작가로서 불쾌했던 걸까? 아마 그럴 지도 모른다.
아시아계와 유대계의 경쟁이 현재 미국 사회 다양한 영역에서 미묘하게 벌어지고 있지만, 아시아계 미국인들이 문화적인 영향력을 행사하기 시작했을 때는 이 경쟁이 어떤 양상으로 나타날지 자못 궁금해진다. 유대인들의 달변, 지적 성향, 통렬한 역설, 솔직함이 아시아계의 신중함, 사회를 존중하는 마음, 음악, 과학, 수학처럼 비언어적인 재능에 자리를 내어줄 것인가? WASP가 헤게모니를 쥐고 있을 때처럼 상황은 좀 더 잠잠해질까?
문화의 변덕스러운 성질 또한 고려할 대상이다. 한국계 코미디언 마거릿 조의 솔직하고 과감한 유머 스타일은 유대계 코미디언 사라 실버맨과 같은 계보다. 제레미 린은 2012년 스타이븐샌트 졸업색 동영상에 아시아계 친구가 부른 익살스러운 랩을 집어넣었다. 올 6월에 졸업생 대표 연설을 했던 사람은 뮤지컬 드라마 ‘글리(Glee)’에 출연했던 중국계 미국인 텔리 렁(32)이었다.
텔리 렁은 농담하고 소리치고 반어적인 표현을 서슴지 않고 관중을 도발하고 놀리면서 20분 넘게 화려한 언변을 뽐냈다. 그는 안정된 중산층으로 살기를 바라는 부모님의 기대를 저버리고 아메리칸 드림이 대체 무엇인지 부모님으로 하여금 다시 생각하게 만들었다는 말도 했다.
그의 연설 방식은 필자가 감히 이렇게 말해도 되는지 모르겠지만, 유대인을 연상시켰다. 달리 말하면, 그 또한 어딘가에서 미국으로 건너와서 해묵은 미국의 가치에 생기를 불어넣은 이민자의 한 명일 뿐이라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