雲甫 金基昶 (김기창)의 생애와 작품 경향
2004.08.11
1914년 서울 운니동에서 태어난 김씨는 7살 때 장티푸스로 인한 고열로 귀머거리가 됐다. 그는 12살에 복학했으나 강의를 듣지 못하는 무료함을 달래기 위해 공책에 새, 꽃, 사람, 개 등을 그렸다. 아들의 소질을 알아본 어머니는 그가 보통학교를 졸업하자 이당 김은호 화백에게 사사하도록 주선했고, 이는 그의 일생에 결정적 전환점이 됐다.
1931년 18살 소년이 선전에 <판상도무(板上跳舞)>라는 널뛰기 소재의 작품으로 입선해 일찍이 대가의 소질을 보였다.
1937년 선전에서는 할머니에게서 옛이야기를 듣는 아이들 모습을 그린 <고담>으로 최고상인 창덕궁상을 수상하기도 했다.
광복 이듬해 동료화가 우향 박래현과 결혼했다.
한국전쟁 피난지 군산에서 조선시대 한국인의 모습으로 예수의 일대기를 그린 <성화> 연작을 2년에 걸쳐 제작했다. 나아가 완전 추상인 <문자도> 제작에도 관심을 기울였다.
60년대 들어 해외 화단에 나선 운보는 자신의 작품세계에 가장 뚜렷한 변화를 보이는 완전추상 <태고의 이미지>, <청자의 이미지> 등 이미지 연작으로 한국화의 새 가능성을 제시했다.
서울 예술의전당에서 열린 `운보 김기창 팔순 기념 대회고전'을 계기로 작품 4천여점 <운보 김기창 전작도록> (전5권)을 발간했다.
80년대 중반 외가가 있던 충북 청원군 내수읍 형동리에 `운보의 집'을 세우고그 옆에 운향미술관과 도예전시관, 운보공방 등 문화공간을 조성했다. 이중 운보공방은 농아들에게 도자기 기술을 가르쳐 자립기반을 닦도록 한 곳으로, 청각 장애인의 권익옹호에 앞장선 운보의 자상한 면모를 엿볼 수 있다.
운보의 집 / 충북 청원군 내수읍 형동리
운보의 집은 운보(雲甫) 김기창(金基昶) 화백의 사저로써 약 26,600평의
부지위에 운보미술관, 우향미술관, 도예전시관, 운보공방, 운보찻집 등을
건립한 문화예술 공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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