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강하고 담대하라 - 수1장1-9(14/12/14,주일낮설교)
* 여러분! 사람은 무언가 새로운 일에 도전하려고 할 때 두려움이 몰려옵니다. 처음 직장에 첫 출근할 때 얼마나 두렵습니까? 그리고 새로운 사업을 시작할 때 또 얼마나 두렵습니까? 또 처음 직분을 맡았을 때 두렵습니다. 저도 오늘 위임을 받고 첫 번째 맞는 주일인데, 사실 두렵습니다. ‘내가 잘 할 수 있을까?’ 저와 마찬가지로 이번 임직을 받으신 안수집사님, 권사님들도 아마 동일하게 ‘내가 잘 감당할 수 있을까?’ ‘온누리교회에 기둥과 같은 충성스런 중직자가 될 수 있을까?’ 그런 무거운 마음과 두려움 마음이 상존할 것입니다. * 우리는 매일 수많은 크고 작은 두려움의 공격을 받고 있습니다. 두려움은 그것이 크던 작던 간에 그 안에 대단한 파괴력을 가지고 있습니다. 두려움에는 많은 종류가 있습니다. 질병의 두려움, 실패의 두려움, 불행에 대한 두려움, 인정받지 못할까 하는 두려움, 버림당할까 하는 두려움, 재난에 대한 두려움 등등 얼마나 많은지 모릅니다.
* 제2차 세계대전 당시 전쟁으로 죽은 미국 군인의 수가 30만명이었다고 합니다. 그런데 사랑하는 아들과 남편을 전쟁터에 보내고 두려움 때문에 심장병으로 죽은 시민의 수가 백 만 명이 넘었다고 합니다. 적군의 총칼에 죽는 것보다 두려움과 공포로 인해 죽은 사람이 훨씬 많았다는 것입니다.
* 여러분! 성경에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가장 많이 반복 명령한 말씀이 무엇인지 아십니까? '서로 사랑하라.‘ '전도하라.’ '기도하라.' 이런 말씀일 것 같지만, 실은 '두려워하지 말라.'입니다. 성경에 자그만치 365번이나 기록되어있다고 합니다. 사람이 날마다 두려워하니까. 하나님께서 날마다 하루에 한번씩 두려워하지 말라고 365번을 기록해 놨다는 것입니다.
* 그러면 왜 하나님께서는 성경에 그렇게 많이 ‘두려워하지 말라’라고 기록해 놨을까요? 두려움은 우리로 하여금 더 큰 축복의 자리로 나아가지 못하게 하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은 영적으로 더 깊이 성장하지 못하게 하고, 성장을 가로막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은 맡긴 사명을 시작도 하기도 전에, 우리를 침몰시키는 무서운 바이러스와 같기 때문입니다. 두려움은 믿음을 무력하게 만들고, 꿈과 비전을 앗아가 버리기 때문입니다.
* 오늘 본문 말씀에서 두려움에 떨고 있는 여호수아에게 주님은 말씀하십니다. “강하고 담대하라. 강하고 담대하라. 강하고 담대하라.” 세 번씩이나 반복하고 있습니다. 9절에는 다같이 “내가 네게 명령한 것이 아니냐 강하고 담대하라 두려워하지 말며 놀라지 말라.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네 하나님 여호와가 너와 함께 하느니라. 하시니라.” 할렐루야! (사41:10절) “두려워하지 말라. 내가 너와 함께 함이라 놀라지 말라. 나는 네 하나님이 됨이라 내가 너를 굳세게 하리라. 참으로 너를 도와 주리라. 참으로 나의 의로운 손으로 너를 붙들리라.”
찬양 “두려워말라. 강하고 담대하라. 낙심하며 실망치 말라. 낙심하며 실망치 말라. 실망치 말라. 네 소원이루는 날 속히 오리니 내게 영광돌리리, 네 소원이루는 날 속히 오리니 내게 영광돌리리“
** 어떻게 하면 두려움을 극복하고 강하고 담대한 용사가 될 수 있습니까? 첫째, 순종함으로 나아갈 때 극복할 수 있습니다. 2절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블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 여러분! 모세가 누굽니까? 모세는 이스라엘의 영웅 중에 영웅입니다. 400여년간 애굽 바로왕의 노예로 있던 이스라엘 백성들을 10가지 재앙으로 출애굽 시켰으며, 홍해를 갈라 바른 땅같이 건네게 하는 기적을 베풀었으며, 광야 40년 동안 하늘에서 만나를 내리게 해서 200만명이나 되는 이스라엘 온 백성들을 살게 했으며, 바위를 깨뜨려 샘물이 터지게 하여 목마름을 해갈시키고, 강력한 아말렉 군대를 격파했으며, 뱀과 전갈이 우굴거리는 광야에 길을 내었던 강력한 리더십으로 이스라엘을 이끌었던 위대한 영웅 중 영웅이었습니다. 그런데 그 모세가 죽었습니다. 이스라엘 백성들에게는 거의 신적인 존재였습니다. 그런 그가 죽었으니 그 슬픔과 좌절감과 두려움은 얼마나 컷겠습니까?
* 그에 비해 여호수아는 초라하기 그지 없습니다. 여호수아는 모세의 수행비서 일 뿐이었습니다. 그에게는 카리스마도, 특별한 능력도 없습니다. 출입할 줄 모르는 부족한 종이었습니다. 그런 어린 종을 하나님께서 모세의 뒤를 이어 민족의 지도자로 세우신 것입니다. 그리고 말씀하십니다. 2절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이제 너는 이 모든 백성과 더블어 일어나 이 요단을 건너 내가 그들 곧 이스라엘 자손에게 주는 그 땅으로 가라” 명령하십니다.
*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주신 첫 번째 임무는 두 가지입니다. ① 일어나 그 약속한 땅으로 가라고 합니다. ‘지금 모세가 죽어서 온 백성들이 슬픔에 젖어 있습니다. 일어날 힘도 없습니다.’ 그런 상황에서 하나님께서는 내 종 모세가 죽었으니 잠시 전열을 정비하고 천천히 하라고 하지 않습니다.’ ‘모세가 죽었으니 쉬라고 하지 않습니다.’ 지금 여호수아도 떨고 있고, 백성들도 떨고 있습니다. 어떻게 해야 할지, 무엇을 해야 할지, 정신이 없습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님은 명령하십니다. “지금 일어나 그 약속의 땅으로 가라”고 하십니다. 이러한 때라도 하나님의 말씀을 듣고 그대로 순종할 수 있느냐? 이것이 아주 중요합니다.
예) 한 알콜 중독자가 있었습니다. 아내는 견디다 못해 가출해버리고 말았습니다. 그에게는 두 자녀가 있었는데, 두 자녀는 엄마 없이 어렵게 자라났습니다. 세월이 흘러 20년 후에 첫째 아들은 대학교수가 되어 “금주운동”을 펼치는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리고 둘째 아들은 아버지와 똑같은 알코올 중독자가 되고 말았습니다. 한 기자가 금주운동을 펼치는 첫째 아들에게 ‘어떻게 그런 일을 하게 되었느냐고’ 묻습니다. 그 교수는 “아버지 때문이었다고‘ 라고 대답했습니다. 그리고 다시 알코올 중독자 아들에게 가서 ‘어떻게 알코올 중독자가 되었느냐고’ 묻습니다. 역시 똑같이 “아버지 때문이었다”고 대답했습니다. 여러분! 똑같은 환경에서, 똑같이 어려움을 당했는데 그 결과는 전혀 달랐습니다. 왜입니까? 그들의 반응 때문입니다. 아버지의 알콜 중독으로 인해 나는 절대 술을 먹지 않으리라, 우리 가정을 깨뜨린 그 술 먹지 않으리라. 결심하고 새로운 삶을 산 것입니다. 그리고 금주 운동을 펼친 사람이 되었습니다. 그러나 둘째 아들은 아버지 술 중독으로 인해, 가정이 파탄 난 것을 보았으면서도 똑 같이 답습한 것입니다.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고통을 도약의 기회로 삼느냐? 절망의 변명거리로 삼느냐? 그것은 본인의 문제입니다. 혹시 부모 잘못 만났다고 원망 불평하시지는 않습니까? 내 행복을 누가 망쳤다고 원망 불평하시지는 않습니까? 핑계대지 마시길 바랍니다. 여러분! 어떤 문제 앞에 어떻게 반응하냐? 긍정적으로 반응하느냐? 부정적으로 반응하느냐?에 따라, 그의 인생은 달라지는 것입니다. 그 문제로 인해 지금은 고통이 되지만, 그 문제를 하나님의 뜻으로 알고, 긍정적으로 반응해서, 말씀대로 순종하면 그 문제가 오히려 축복이 되는 줄 믿습니다. 아멘. * 능력의 지도자 모세가 죽었다고 슬퍼하며 낙심하며 주저앉아 버리면, 소망이 없습니다. 그러나 말씀 의지하여, 순종하며 나아가면, 두려움은 떠나가고, 문제는 떠나가고, 우리 앞에 이적과 기사와 표적들이 날마다 일어날 줄 믿습니다. 아멘.
* 하나님께서 여호수아에게 주신 임무 두 번째로? ② 백성들과 더블어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2절 “이 모든 백성으로 더불어(함께)” 가라고 말씀하십니다. (더블어=함께) 젊은 청년들이 군대를 가면, 유격 훈련이란 것을 받습니다. 그 훈련이 얼마나 힘든지 모릅니다. T.V를 보면, ‘진짜 사나이’이라는 프로그램이 있습니다. 거기에 보면, 유격훈련하는 장면이 나옵니다. 얼마나 힘든 훈련인지 대충 알 수 있을 것입니다. 만약 그 훈련을 혼자 받는다고 한다면, 아마 아무도 감당하지를 못할 것입니다. 그러나 그 훈련을 여러 사람들과 함께, 친구들과 함께 받기 때문에 그 극한 훈련을 극복하는 것입니다. 아무리 어렵고 힘든 훈련이라 할지라도, 함께 하면, 능히 감당할 수 있습니다.
여러분! 교회 일이 그렇습니다. 교회 일은 아무리 지식이 많고, 능력이 많고, 기도 많이 하는 사람이라 할지라도 혼자 하면 시험에 듭니다. 교회 일은 작은 일이라도 함께 해야 합니다. 혼자할 일을 열사람, 백사람이 함께 합력할 때, 교회가 재밌고, 그런 교회가 잘되는 교회입니다. * 교회에 아무리 큰 일은 있다하더라도 성도들이 서로 함께 합심해서, 함께 하면, 함께 기도하고, 함께 울어주고, ‘더블어’ ‘함께’하면, 어떤 어려움도, 어떤 환난과 고난도 다 극복할 줄 믿습니다. 아멘. * 위대한 지도자 모세가 죽었으니 ‘우리가 어떻게 하겠어.’ ‘우리 민족은 이젠 끝이야’ ‘틀렸어’ 하고 부정적인 생각으로 가득하면 그 공동체는 안 되는 것입니다. 그러나 주님은 여호수아에게 혼자 가라고 하지 않습니다. 내 백성들과 더블어(함께) 가라고 하십니다. 저는 온누리교회 여러분들을 존경합니다. 그리고 사랑합니다. 우리 함께하면, 이 모든 어려움을 다 극복할 수 있습니다. 함께 가면, 외롭지 않습니다. 함께 가면, 즐겁습니다. 함께 가면, 신이 납니다. 함께 할 때, 성령충만한 공동체가 됩니다. 기적의 공동체가 되는 줄 믿습니다. 아멘.
* 여러분! 기러기의 협동 정신 아시죠? 먼 거리를 이동할 때, 기억자로, 삼각형으로 날아가면 약70%난 힘이 덜 든다고 합니다. 맨 앞선 기러기가 모든 비바람을 다 맞으면서, 헤쳐나가면 뒤에 있는 기러기는 별 힘들이지 않고 날아간다는 것입니다. 맨 앞에 있는 기러기가 너무 지칠 쯤 되면, 그 기러기는 제일 뒤로 가고, 그 뒤에 있는 기러기가 맨 선두에 날면서 또 모든 비바람을 맞는 다는 것입니다. 이렇게 더블어, 합력해서 날아가면, 남극에서 북극까지 날아간다는 것입니다. 이것이 더블어 정신입니다. 함께하는 공동체입니다. 여러분! 잘 되는 공동체는 똑똑한 사람이 많은 공동체가 아니라, 협력할 줄 아는 사람, 겸손히 섬기는 사람들이 많은 공동체가 잘 되는 것입니다.
예) 미국의 유명한 칼럼니스트인 제임스 레스턴이 이런 말을 한 적이 있습니다. “미국의 민주주의는 똑똑한 사람이 없었기 때문에 오히려 번영할 수 있었다.”고 말합니다. 나라에 너무 똑똑한 사람들이 많으면 그 나라는 오히려 잘 안돌아간다는 것입니다. * 교회 안에도 너무 똑똑한 사람들이 많으면 시끄럽습니다. 교회 안에서는 어쩌면 바보같이 주님만 바라보고, 순종하고, 협력자들이 많은 교회가 잘 될 줄 믿습니다. 아멘. 찬양 “우리 서로 뜨겁게 사랑 하면은 좋은 일이 있으리라. 많이 있으리라.”
* 어떻게 하면 두려움을 극복하고 강하고 담대한 용사가 될 수 있습니까? 둘째, 레마의 말씀을 받으면 됩니다. 7-8절 “오직 강하고 극히 담대하여 나의 종 모세가 네게 명령한 그 율법을 다 지켜 행하고 우로나 좌로나 치우치지 말라. 그리하면 어디로 가든지 형통하리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헬라어로 ‘말씀’을 뜻하는 두 가지 단어가 있습니다. 하나는 ‘로고스’이고, 또 하나는 ‘레마’입니다. ‘로고스’라는 말은 하나님께서 우리에게 주신 모든 성경 말씀, 66권의 말씀을 가르킵니다. 그에 반하여 ‘레마’는 이 로고스의 말씀가운데서 특별히 내가 처한 현실에서 ‘오늘 내가 꼭 들어야 할 말씀, 지금 꼭 필요한 말씀’을 가리킵니다. 우리가 이 세상을 살아가면서 레마의 말씀을 들려지면, 범사에 담대해 지고, 삶이 풍성해 집니다. 그런데, 레마의 말씀이 들려지지 않으면, 교회를 다녀도 답답합니다. 말씀을 들어도 은혜가 되지 않습니다. 레마의 말씀이 들리지 않으면, 캄캄한 세상을 사는 것과 같습니다. 아무 의미 없는 삶을 사는 것입니다. 소망이 없습니다. 두려움 속에서 살 수 밖에 없습니다. 그러나 레마의 말씀이 들리면, 들리기 시작하면, 바로 영적 눈이 뜨이는 것입니다. 말씀이 들리니 교회 생활이 즐겁습니다. 예배가 은혜가 넘칩니다. 말씀 한마디 한마디가 내 귀에 들어옵니다. 감동이 임합니다. 말씀듣다가 눈물을 흘립니다. 찬양하다 눈물이 납니다. 기도하면 통곡을 합니다. 오늘 하나님의 레마의 말씀이 각자 들리시길 축복합니다. 아멘. * 여호수아에게 하나님께서 레마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8절 “이 율법책을 네 입에서 떠나지 말게 하며, 주야로 그것을 묵상하여 그 안에 기록된 대로 다 지켜 행하라. 그리하면 네 길이 평탄하게 될 것이며, 네가 형통하리라.” 할렐루야!
* 성경을 보면, 하나님의 사람들은 바로 하나님의 레마의 말씀을 들었습니다. 야곱은 형을 속이고 형의 보복이 두려워 도망가는 처지에 얼마나 그의 마음이 두려웠겠습니까? 그때 하나님께서 야곱에게 ‘레마의 말씀을’ 들려 주셨습니다. (창28:15)“내가 너와 함께 있어 네가 어디로 가든지 너를 지키며 너를 이끌어 이 땅으로 돌아오게 할지라 내가 네게 허락한 것을 다 이루기까지 너를 떠나지 아니하리라” 이 말씀은 단비와 같은 레마의 말씀이었습니다. 그는 이 말씀 때문에, 이 말씀 붙들고 외삼촌 라반의 집에서 이십 년 동안 머슴 살이를 하면서도 그는 지칠 줄을 모르고 살았습니다. 왜입니까? 레마의 말씀을 들었기 때문입니다. * 저에게도 주님께서 레마의 말씀을 주셨습니다. 호2:15절 말씀입니다. “거기서 비로소 그의 포도원을 그에게 주고, 아골 골짜기로 소망의 문을 삼아 주리니 그가 거기서 응대하기를 어렸을 때와 애굽 땅에서 올라 오던 날과 같이 하리라.” 말씀을 생각하면서, 합심해서 기도하겠습니다. “강하고 담대한 믿음이 되기 위해서”는 1. 말씀 앞에 무조건 순종하고 나아가면 어떤 어려움도 극복하게 하실 줄 믿습니다. ①주님이 말씀하시면, 즉각 순종합시다. 일어나 약속의 땅으로 나아갑시다. ②온성도들과 함께 더블어 가면 외롭지 않습니다. 즐겁고, 행복합니다. 우리 함께 손잡고 이겨나갑시다. 잘 될 줄 믿습니다. 승리할 줄 믿습니다. 2. 레마의 말씀 달라고 기도하시고, 레마의 말씀이 들리게 해 달라고 기도하시고, 레마의 말씀 붙들고 좌로나 우로나 치우치지 않게 해 달라고 다같이 주여 3창하고 기도하겠습니다. 아멘. |
첫댓글 아멘
강하고 담대하게 주님의 이름으로 나아갑니다. 함께 동행하심을 믿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