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책이 51년에 있었던 신천 대학살에 대한 이야기인 것을 듣고 나는 반사적으로 피카소의 그림인 <한국에서의 학살>을 떠올렸었다. 실제로 그 그림은 신천 대학살 때의 한국의 참상을 배경으로 하고 있다. 그림 속에서는 그저 아무 힘도 없는 부녀자와 아이들이 나체로 서 있고 오른쪽에는 중세시대의 기사와도 같은 복장을 한 인물들이 총을 겨누고 서 있다. 전쟁이라는 현실에 그대로 노출되어있는 사람들의 모습은 그 반대편에 인정사정없이 총을 겨눈 채 서 있는 인물들과 큰 대조를 이루며 결코 말로는 표현할 수 없는 시대의 아픔을 그대로 느끼게 했다.
이데올로기와 종교, 이 두 사상의 공통점은 ‘왜?’라는 질문을 받아들이지 않는다는 점이다. 그저 무조건 받아들여야 하는, 무조건 옳은 사상으로 우리에게 이해될 뿐이라는 것이다. 이러한 생각들은 주로 이유를 묻지 않고 무조건적인 복종을 요구하기 때문에 상상할 수 없을 정도로 엄청난 힘을 발휘할 수 있다. 1950년 황해도 신천에서 일어났던 신천 대학살은 그러한 거대한 두 힘이 그대로 부딪치면서 일어났던 사건이었다. ‘종교’와 ‘이데올로기’의 충돌. 작가 황석영씨는 <손님>에서 우리나라에 들어온 ‘기독교’와 ‘사회주의’라는 사상을 ‘손님’이라고 칭하며 당시의 참상을 들려주고 있다.
손님은 반갑고도 낯선 존재다. 황석영씨가 밝혔듯이 '손님'이 상징하는 것은 '기독교'와 '사회주의'를 말하는 것이다. 타의에 의해 마을 사람들이 가지게 된 이 두 가지 이념의 대립은 신천리 마을 사람들은 두 편으로 나뉘게 했고, 서로가 서로를 죽음으로 몰아가게 했다. 이 글의 주인공은 류요섭 목사 한 사람이 아닌 죽은 그의 형, 동네 사람들 모두이다. 각각의 상황과 입장에서 당시의 학살의 현장을 생생하게 보여준다. 종교와 이데올로기가 서로를 향해 겨누는 비수가 되었던 것이다. 어렸을 적부터 함께 자라고 생활했던 찬샘골 사람들. 그러나 서로를 증오하고 죽이게 만든 ‘손님’은 바로 주체적으로 받아들이지 못한 종교와 이데올로기 때문이었다. 사회주의자들과 기독교인들은 서로의 주장만을 내세우며 신천리 사람들을 고문하고 살해했다. 자유와 평등, 기도, 신의 이름으로 같이 생활하며 자랐던 동네 사람들을 무참히 짓밟았던 것이다. 아무런 죄책감 없이 이런 무서운 일들을 행할 수 있게 만들어버렸던 두 손님인 종교와 이데올로기. 그것은 결국 인간으로서의 마지막 경계선까지 넘게 만들었던 것이다.
“가해자 아닌 것덜이 어딨어!”라고 외쳤던 요섭의 삼촌의 말처럼, 신천 대학살의 책임은 몇몇의 개인들에만 전가되는 것이 결코 아니다. 동시대를 살았던 모든 자들, 그리고 바로 그 땅에서 미래를 만들어나가려 하는 다음 세대인 우리에게도 책임이라는 것이 존재한다고 생각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피해자가 누구이며 가해자는 누구인가라는 이분법적 사고를 하는 것이 아닌 ‘우리 모두럴 구원할 수 있는’ 화해와 상생의 길을 만들어가려는 시도가 현재의 우리 세대에서 반드시 있어야 할 것이다. 그러한 시도는 당연히 우리 윤리 교과 안에서 시작되어야 할 것으로 믿는다. 서로 다른 삶의 입장과 체험을 이해하며 보듬어줄 수 있는 힘을 가진 것이 바로 윤리가 가진 진면목이기 때문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