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일운동가 안재구 선생의 자서전 ‘어떤 현대사’를 연재한다. 시기는 해방 직후부터 6.25전쟁 때까지로 안 선생이 겪었던 현대사를 정리한 것이다. 이 자서전을 통해 독자들은 해방과 전쟁 속에 부대낀 한 인간의 이야기와 함께 당시의 시대상황, 특히 지역운동사를 생생하게 접하게 될 것이다. 이 연재는 1회부터 매주 수요일과 토요일 두 차례에 걸쳐 게재됐는데, 41회부터는 매주 토요일에 게재된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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방동마을의 그믐날
2월 9일 새벽이 가까워오자 북서풍이 불기 시작했다. 어제 저녁 그처럼 푸근하던 날씨가 갑자기 추워졌다. 나는 느슨하게 입은 내의와 털실세타를 여미고 웃옷 깃을 잠그고 이불속에 머리를 묻고 곁에서 자는 순희를 끌어안았다. 바람은 점점 세게 불었다. 봉화불의 재는 바람에 다 날아가고 덜 탄 나뭇가지만 검은 숯을 입고 뒹굴고 있었다. 꼭 내 몸뚱이처럼. 도저히 견딜 수 없어 이불 밖으로 나왔더니 봉화 불 곁에 있었던 두 무더기의 잠군들이 없었다. 우리만 남았다. 나는 일어나 이불 밖으로 나와 어깨를 펴니 추위에 뼈가 굳었던지 우두둑 소리가 났다. “순희야, 일어나. 모두 어디를 가고 없다. 아직도 동천이 깜깜하니 밤중이기는 하지만 이대로 산만댕이(정상의 밀양사투리)에 있다간 ‘아이스케이크’가 되겠다. 빨리 일어나.” 라고 마구 재촉했다. 그러자 한 이부자리에서 자던 형(성이 조〈曺〉씨이고 애석하게도 이름은 잊었다.)이 이불 밖으로 나왔다. 나는 춥기도 하고 장난기도 나서 이불 밑에서 자고 있는 순희 위에 덮쳐 간지럼을 주었다. 순희를 간지럼으로 키들키들 하면서 이불 밖으로 나왔다. 그리고는 몸서리를 치면서 이불을 걷어 뒤집어쓰고 눈만 내놓고, “어찌 이리 각중에(갑자기) 추워졌노. 안되겠다. 그만 내려가자.” 하고선 그냥 방동고개마루를 향해 뛰어 내려간다. 나는 급해서 욕이 나왔다. “야, 임마야. 이 그믐밤에 달음박질이가? 임마, 거기 안 서나! 대가리 깨지기전에!” 순희는 욕을 듣고서는 그냥 키들거리며 웃기만 하고 내려가기만 한다. 나는 어릴 때부터 밤눈이 좀 어두웠다. 순희가 달려 내려간 길을 조심조심 더듬어 내려갔다. 방동고개 밑, 어제 순희와 함께 고개 마루 바로 밑에 성호를 보았던 그 자리에서 순희는 기다리고 있었다. 두 사람이 고개 마루에 도착하자 순희는 일어서서, “어이 재구야, 나 여깄다. 둘이 이리 오너라. 여기는 바람이 하나도 없다. 낙엽이 쌓여 땅바닥도 포금하다. 빨리 이리로 오너라. 지금 우리가 내려가야 방에 자기는 틀렸고, 남들이 편하게 자는 잠만 깨운다. 이 포근한 낙엽 위에 이불을 덮고 앉았더니 내 몸의 온기로 추위가 당장 멈춘다. 바람도 없고. 바로 여기가 천하명당 자리다. 아침까지 여기에서 셋이 자고 가자.” 라고 채근했다. 세 사람이 순희가 앉은 자리에 가서 순희를 끼고 갈잎이 깔린 자리에 솜이불을 덮었고 누었더니 종남산 꼭대기에서 떨었던 추위가 풀려 마음도 몸도 한결 느긋해졌다. 우리 둘이 좀체 말이 없이 누운 조 동지에게 여러 가지로 물었는데, 좀처럼 이야기를 안하던 조 동지가 입을 열고 이야기보따리를 풀었다. 그 이야기를 듣는 중 우리 두 사람은 조 동지의 어두운 얼굴과 무언의 태도가 이해되었고. 우리들의 심정을 어둡도록 했다.
조 동지는 초동면의 면소재지 동내 오방동 동남쪽에 이웃하고 있는 신호저수지(초동저수지) 서편에 있는 둑이 시작되는 「돈대미」라고 부르는 조그마한 야산이 있는데, 그 밑에 붙어있는 당시 10여 호쯤 되는 동네에 살고 있다. 대대로 농사짓는 농민이었고, 할아버지 대에는 그리 넉넉하지는 않더라도 세 끼니 밥은 먹고 살만 했다고 했다. 일제 때가 되어 신호 늪이 둑으로 둘러싸여 저수지가 되자 좀 비싸기는 하지만 물세를 내고서도 남에게 빚 얻는 형편은 아니었는데, 할아버지가 돌아가시자 아버지는 그 초상을 치르느라고 경작하고 있는 논을 담보로 수리조합에 빚을 지게 되었다. 마침 연이은 가뭄이 들어 흉년으로 그 빚의 이자를 때맞추어 내지 못하게 되자, 이자가 원금에 붙어 빚은 더욱 불어나게 되어 도저히 감당할 수 없을 지경이 되고 말았다. 일이 이렇게 되자 조 동지 집의 살림의 3분의 2가 담보된 논을 그냥 빼앗길 지경으로 되고 말았다. 조상대대로 경영해오던 농토를 빼앗기지 않으려고 발버둥 친다는 게 이번에는 악질 왜놈지주에게 걸려들었다. 악질 왜놈지주는 수리조합에 진 빚을 몽땅 갚아주되 그 담보로 조 동지 집의 나머지 농토마저 저당하라는 것이고, 그 대신 이때껏 농사짓고 있는 땅에서 소작농으로 살아야 한다는 것이었다. 마침내 조 동지의 집은 알토란같은 나머지 땅을 빚으로 왜놈지주의 소유로 넘어가고, 농사지은 곡식의 80~90%의 소작료를 물어야 하는 소작인의 집으로 전락하고 말았던 것이다. 이렇게 소작인으로 5, 6년을 살면서 착취당해온 조 동지의 집은 8.15해방을 맞이하여, 일제 지주의 착취에서 해방되었다. 그 왜놈 지주는 이 땅에서 쫓겨났고, 빼앗긴 아버지의 땅을 몽땅 도로 찾게 되었던 것이다. 바로 8.15해방은 땅을 찾게 된 이 조 동지 집안의 구세주였던 것이다. 그런데 말이다. 그 해방의 기쁨, 그리고 빼앗긴 땅을 찾았다는 기쁨은 일제로부터 해방된 바로 그 해 한 해, 1945년의 일이었을 뿐이었다. 1946년 2월이 되자, 이와 같이 도로 찾은 땅을 미국 점령군의 소유라는 것으로 되었고, 1946년 2월부터는 소작료를 미 점령군의 대행자인 『신한공사』에서 받아간다는 것이다. 1946년 봄, 보리가을에는 일제 때 지랄을 하던 공출마저 새로 부활시켜 미국 엠피가 군정청 경찰을 끌고 와서 왜놈에게 빼앗겼던 땅에서 농사지은 것은 물론이고, 모든 농민에게 공출이라는 왜놈의 법을 가지고 빼앗아 가는 것이다. 1946년 11월부터는 가을 곡식을 또한 공출하라고 달려들었고, 조 동지의 집에는 『신한공사』라는 곳에서 소작료를 매기고 내라는 청구서가 날아들었다. 10월인민항쟁이 좀 숙어지자 면직원이 지서 순경을 대동하고 공출과 『신한공사』 지세 고지서를 들고 왔고, 12월부터는 강제로 집뒤짐을 해서 빼앗았으며, 『신한공사』의 지세를 받기 위해서는 미군이 군정경찰을 지휘하여 소작료로 약탈했으며, 이 가운데서 실력행사가 일어났고 숫한 농민들이 붙잡혀 갔고 폭행을 당하여 부상을 입었다. 조 동지의 집에서도 공출 받으러 온 면 직원 그리고 지서 순경과 충돌이 생겼고, 이 충돌로 조 동지의 아버지는 인사불성이 되도록 폭행을 당했다. 조 동지는 이와 같은 말도 되지 않은 미군정의 행정에 저항하는 투쟁에 발 벗고 나섰다. 마침내 조 동지는 『2.7구국투쟁』에 떨쳐나선 것이다. 2월 7일, 초동면 경찰지서 공격에서 한 손에는 사제 폭탄을 들고 한 손에는 사제권총을 들고 지서 안으로 쳐들어갔다. “손들엇!” 경찰관은 모두 두 손을 들었다. 아버지를 폭행한 경찰과 눈이 마주쳤다. 그 경찰은 조 동지를 보자 겁이 나서 발악을 했다. 옆구리에 찬 권총으로 손이 가려는 찰라 누가 쏘았는지, “탕!” 한방의 총소리, 그 경찰은 손에 쥔 권총을 떨어뜨렸고 쓰러졌다. 나중에 조 동지가 들어서 알았는데, 조 동지는 거저 격분으로 숨만 헐떡거리고만 있었고 방아쇠를 당기는 것은 잊고 있는 듯 했다. 위기를 느낀 곁에 있는 동지가 쏘았던 것이다. 조 동지는 말했다. “이제 나는 집에는 못 간다. 그래서 이제부터 이 몸은 제2차 해방투쟁에 바치는 몸이다. 아버지의 병구완을 못해 원통하다. 그것도 하나밖에 없는 아들인데......” 하고 울먹거렸다. 이 이야기는 그때 당동고개 마루 낙엽 덮인 구덕에 이불 덮고 이젠 이름도 모르는 조 동지로부터 들은 이야기를 간추려서 쓴 것이다. 이름은 비록 잊었지만 짙은 눈썹, 쌍꺼풀진 눈매, 광대뼈가 좀 나오고 입술이 좀 두터운 이목구비가 반듯한 청년의 얼굴은 아직도 내 기억에 남아있다. 이처럼 이야기를 하는 가운데 동녘하늘에 희미한 빛이 생기더니 점차 밝은 빛으로 되고 구름은 그 빛으로 붉은 빛으로 되면서 그 밑에 푸른빛의 하늘이 열리기 시작했다. 2월 9일의 새벽이다. 바로 그 오늘이 음력으로 섣달 그믐날이었다. 이불을 둘둘 말아 칡넝쿨로 감아 묶어서 조 동지가 어깨에 둘러매고 내리막 고갯길을 성큼성큼 걸어 내려갔다. 내리막길이 산의 서녘 비탈에 있어서 아직은 발밑은 어두웠다. 밤눈이 좀 어두운 나는 조심조심 걸어갔다. 그러니 좀 뒤처질 수밖에 없었다. 좀 내려가다가 앞서 내려간 두 사람은 못보고 그냥 내려갔는데 발자국 소리를 듣고 잠을 깬 한 무더기가 이불 밖으로 얼굴을 내고 보다가 잇달아 내려오는 나를 보고 소리쳤다. “어이, 산망댕이에서 오는 가 뵈?” 나는 멈추어 서서 대답했다. “우리도 추워서 잠이 깼는데 그대로 있다가 얼어 죽을 것 같아, 고개 마루가 바로 바람막이가 되는 편의 구덕에 낙엽이 깔려있어 그 구덕에 들어가 따뜻하게 자고 내려오는 길인데요.” “아이고, 우리는 평평한 데를 고른다고 해서, 맨땅바닥이라 밑에서 올라오는 냉기로 오금이 얼어 이제는 힘줄마저 얼어선지 일어나지도 못하겠네.” 라고 한다. “그래요. 억지로라도 일어나 운동을 하소. 고생을 많이 했구먼. 빨리 일어나소. 제자리걸음하고 허리 펴기 굽히기 하고요.” 기온은 영하 10도는 될 것 같았다. 아무튼 지난밤을 지나면서 낙엽의 보온, 그중에서 갈잎의 보온효과를 몸으로 배운 셈이다. ‘이렇게 해서 산사람의 생활을 하나 씩 몸으로 배워 쌓아나가야 하는구나.’ 하고 생각했다. 그들도 일어나 몸 굽히기 운동을 하고 이불을 몽쳐 칡넝쿨로 묶어서 둘러메고 내려가기 시작했다. 이제야 서녘 비탈도 환히 보일만치 날이 샜다. 우리는 방동마을로 들어섰다. 본부처럼 되어있는 면 당책과 두 분 할아버지가 계시는 집 사랑채 앞마당에는 화톳불을 피어놓고 있는데, 그 둘레에 먼저 온 순희도 있고 조 동지도 있었다. 산에서 한뎃잠을 잔 다른 한 조도 이미 와서 활활 타는 화톳불에 데워진 빨간 얼굴로 이야기를 하고 있었다. 좀 있다가 두 할아버지와 아재가 기침했을 것 같아 사랑방 앞에서 기척을 내고, “할아버지, 저 재굽니다. 잘 주무셨습니까.” 방에서 인기척이 나더니 방문이 열렸다. 죽서 할배가 문 앞에 나오시고, 그 뒤에 월산 할배, 계음 아재의 얼굴이 함께 있었다. 죽서 할배가 두 분과 겸해서 아침인사를 받으셨다. 나는 인사말씀을 드렸다. “할아버지, 아재. 밤새 안녕하셨습니까.” 모두 한 목소리로 “오냐, 어젯밤 한고(寒苦)하느라고 고생 많았제.” “괘않습니다.” 이때 뒤에서 성호의 목소리가 들렸다. “책임자 동지. 그리고 두 분 선생님들, 밤새 안녕하십니까.” 면책 동지는, “어이구, 성호 동지. 어젯밤 춥지는 않았소?” “예, 아주 따뜻하게 잘 잤습니다.” “건강치 않은 몸으로 고생이 많소. 든든한 후방이 있어야 할 텐데. 선배가 할 노릇을 잘 못해 미안하오.” “책임자 동지. 어렵다고 해서 안 할 일은 아니지 않습니까. 명이 붙어있는 한 해야 할 일이지요. 걱정하시지 말기 바랍니다.” “알았소. 힘껏 싸웁시다.” 면책 동지는 방에 계신 두 분에게 말했다. “자, 이제 방에서 인사받기는 그만하고 밖으로 나갑시다.” 하고 세 분 선배들이 모두 나와 화톳불 앞으로 오셨다. 순희는 어디서 희어 멀끔하게 해서 나왔다. 성호 동무와 우리 셋은 다시 모였다. 곧 아침 식사시간이 되었다. 어제 저녁과 별반 다르지 않았다. 당시 우리 형편으로서는 끼니를 거르지 않은 것만 해도 족한 것이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입초만 남겨두고 모두 화톳불을 둘러싸고 모였다. 다 모이자 면책 동지는 앞으로의 일에 대해서 다음과 같이 말했다. “이곳에는 오래 있지 않고 준비되는 대로 각자 임무를 받고 떠난다. 그 동안 우리의 안전과 질서를 위해서 몇 가지 규정을 정해 지켜야 한다. 이 문제에 대해 두 분 선배와 토론한 결과, 첫째는, 적들의 침투를 방지하기 위하여 군호를 정해서 피아를 구별하는 것이다. 둘째는, 비록 오래 있지는 않으나 이 동절에 건강을 지켜야 하기 때문에 한뎃잠을 잘 곳을 잘 만들어야 하고 불침번을 세워야 한다. 셋째는, 이 마을을 벗어날 일이 있을 때는 반드시 책임자에게 그 이유와 돌아올 시간을 정해주고 그 시간을 지켜야 한다. 그 중 첫째로 군호는 지금 정해서 실시하기로 한다. 여러분, 어떻습니까. 이의가 있으신 동지는 손들어주십시오.” 이의를 제의하는 분은 아무도 없었다. “그러면 박수로써 동의해주시기 바랍니다.” “좋습니다.” 라고 외치면서 전체가 박수를 쳤다. 월산 할배가 이번에는 말씀하고 나오셨다. “한고할 장소를 정해야 하겠습니다. 적장한 장소로 생각되는 곳이 있으면 말하시오.” 그래서 나는 나섰다. 그리고 다음과 같은 내용의 제의를 했다. 어제 우리가 산 정상에서 자다가 추위를 피해 옮긴 곳을 이야기 하면서, ≪지면보다 낮은 구더기를 택하는 것, 낙엽, 특히 갈잎을 될수록 두텁게 푹신하게 깔 것, 동네 입구 밖에서 보이지 않은 곳, 본부 가까이 한 곳, 당동고개 마루, 바로 어제 우리들이 잤든 곳. 이유는 적의 불의의 침입에 즉각 대처할 수 있도록. 그러기 위해 불침번을 세워야 한다는 것≫ 을 제의했다. 나의 이 제의를 모두가 받아들여 동네에 있는 연장을 빌려 작업에 나섰다. 동내에는 내일 설 제사를 지내기 위해 가루를 빻는 절구질 소리가 들리고 있었다. 쿵 쾅 뚝 딱 |